카프가 한국의 사회주의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압도적이어서 그것을 배제하고 한국 근대문학과 예술을 논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바로 그러한 카프의 위상이 역설적으로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사회주의적 문학(실천)을 협소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사회주의문학을 카프를 통해서만 논의하는 관행은 사회주의가 한국 근대문학에 끼친 영향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 카프 소속 작가의 비평론과 작품을 중심으로 한 단선적인 문학사 서술은 다양한 원천을 가진 사상적 흐름과 입체적인 스펙트럼을 형성했던 당대 사회주의‘들‘의 다양한 문화적 실상을 파악하는 것을 차단했다. - P11

송영은 1924년 4월에 있었던 각종 단체들의 발기대회에 염군사 단원들이 음악과 촌극으로 그들을 고무했다고 적고 있다. 즉, 이들은 사회주의 관련 단체들의 출범식에서 문화선전을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일본 경찰이 합법단체인 염군사를 직접 해산하진 못했지만 그 개별 구성원들을 장기 구류하는 방식으로 탄압했고, 사상성이 강하지 못했던 많은 이들이 염군사 조직을 떠났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 중에도 송영 자신과 이호, 이적효, 김영팔 등이 염군사의 기치를 지키며 "전 조선적인 혁명적인 프롤레타리 - P46

아 문예 단체를 결성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했으며, "염군사의 주동적인 역할에의한 설복으로 파스큘라 핵심 분자들과 카프를 만들었다고 끝맺고 있다. - P47

나카니시 이노스케가 그의 조선 방문과카프 출범이라는 일회적 사건의 영향을 넘어 식민지 조선의 초창기 프로작가들에게 작품 내적인 차원에서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나카니시 이노스케의 일본어 작품 및 한글로 번역된 작품이 식민지 조선의 작가와 독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읽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P87

논강은 "조선의 무산계급운동은 1927년을 일기로서 운동의 질적 방향 전환을 감행하였으며 따라서 무산계급예술운동에도 질적 방향 전환을 요구하여 이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은 이 전환의실행을 기했다고 설명한다. 논강의 이론에 따르면 무산계급운동의 방향 전환은 "부분적 투쟁으로부터 대중적 전체적 투쟁을 의미하는 것이니, 즉 조합주의 투쟁에서 정치투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논강은 "일본의 제국주의의 지배 밑에 있는 전 조선 - P122

민중은 필연적으로 이 정치 과정을 과정하여야 하며 그리해서 지금 그것을 과정하고 있고, "조선의 민족적 단일당‘을 절규하며 조선 각지에서 총역량을 이리로 집중시키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과정을 과정한다‘는 말은 후쿠모토가즈오가 즐겨 쓰는 논법으로 당시 사상계에 유행하던 말이다. 이론투쟁의 강조와 조합주의에서 정치투쟁으로의 전환 등은 후쿠모토주의의 중심 주장이며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안광천의 논법이자 조선공산당(M당)의 기조였다. - P123

일본 최초의 문예잡지 씨 뿌리는 사람은 관동대지진과 함께 벌어진 사회주의운동 탄압으로 1923년 10월 폐간되었으나, 1924년 6월에 문예전선』으로 재창간되었고, 1925년 12월 결성된 ‘일본프롤레타리아문예연맹(프로연‘은 문예전선을 기관지로 삼는다. 그로부터 1년 뒤 1926년에 ‘프로‘이 ‘일본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프로예藝)‘이 되었다. 그러다가다시 ‘프로‘가 분열하여 1927년 6월 ‘노농예술연맹(노예)이 만들어지지만 다시 그 ‘노예‘도 분열하면서 1927년 ‘전위예술연맹(전)‘이 생겨났고, 그 결과 ‘프로‘, ‘노예‘, ‘전예‘의 3파 정립 시대가 출현했다. 이후 1928년3월 15일 일본공산당에 대한 탄압을 계기로 ‘프로‘와 ‘예‘가 합병하여
‘전일본무산자예술연맹‘(나프NAPF)이 1928년 3월 25일 결성되었고, 기관지 전기戰가 발간되었다. 1928년 12월 25일에 다시 나프를 개조하여 ‘전일본무산자예술단체협의회‘(약칭은 여전히 ‘나프‘)가 되었고, 그 산하에 ‘일본프롤레타리아미술가동맹‘, ‘일본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 ‘일본프롤레타리아극장동맹‘, ‘일본프롤레타리아작가동맹‘, ‘일본프롤레타리아음악가동맹‘, ‘일본프롤레타리아가인동맹‘을 두고 기관지 「나프』를 발간한다. 1928년의 나프 결성으로부터 1931년 9월 만주사변 때까지가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 P147

카프의 방향 전환은 조선공산당 운동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었으며, 카프 맹원 중 많은 이들이 당대 사회주의 운동과 직접 관련되거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군기 사건은 코민테른 6회 대회와 이어지는12월 결정과 결의, 그리고 조선공산당재건을 모색하던 엠엘파와 서울상해파의활동과 관련되어 있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수세에 몰린 김기진과 박영희를거들며 엠엘계와 연계된 동경 소장파들은 서기 명의로 "반카프적 반XX적분파적 파괴 행동의 음모와 『군기」 탈취 책동"을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뒤를 이어 김남천 등이 군기파를 비판하고 나섰으며, 이 사건의 와중에 타락 간부로 지목된 김기진, 박영희 등이 큰 타격을 입고 카프 지도부의 일선에서 물러났는데, 이를 계기로 임화를 중심으로 한 도쿄 소장파들이 카프 중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다. - P179

사상범들의 전향서인 감상록에는 쓰기/말하기를 강제하는 경찰, 검사, 판사, 형무소장에게 고백하는 형식으로 자신이 향후 ‘지배적 사회규범에 순응하며 살아갈 것이며, 지금까지의 일탈을 교정하게 된 계기로 ‘생활‘, ‘가족‘ 등의 알리바이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감상록‘에는 ‘통제경제론‘, ‘민족협화론‘ 등, 당대 식민지 지식인의 마르크시즘에 대한 전향적 논의가 등장한다. 이러한 논의의 등장 역시 ‘지배적 사회규범‘에의 순응이라는 관점에서 이해 가능하다. 즉, 식민지 법기구가 전향을 강제하는 과정에서당국은 식민지 사상범들에게 마르크시즘이라는 비정상성의 교정을 요구했는데, 감상록의 작성자인 전향 지식인들은 통제경제론, 민족협화론 등 제국의 공식적인 담론과 중첩되는 변형된 마르크시즘의 전유를 통해 검열의 임계 지점에서 당국에 자신의 전향에 대한 진정성을 설득하려 시도했다. - P227

서구 아방가르드 작품의 여성화 현상에 대해 말한 리타 펠스키(Rita Felski)의「근대성의 젠더」에 따르면, 여성과의 상상적 동일시는 지배적인 남성성의 사회규범에서 자주 소외를 느끼는 아방가르드 작가의 공통적 현상이며 "여성화된 - P355

남성은 당대적 가치들의 위기를 말하는 도발적인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리타 펠스키의 관점에 기대어 박선영은 김남천의 긍정적 인물들의 여성화를 육체적·정치적으로 통제된 지식인으로서 작가 자신의 침해된 남성성의 느낌을 의미화하는 한편, 일본이 ‘신성한‘ 전쟁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리라 여겨지는사람들에게 요구한 호전적 남성성에 대한 도전적인 상징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남천이 마련한 그 박무경의 자리는 당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여성작가들의자리이기도 했다. - P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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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플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읽고 있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은 '한국문학을 권하다'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이태준의 중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중단편이라 잠깐 짬이 났을 때 읽기에도 부담이 없어서 읽고 있다. 오랜만에 이태준의 소설을 읽지만 역시 좋은데 그시절 인텔리의 삶이 아니라 소시민들의 일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들이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비애와 슬픔이 어린 아름다움이라 더 값지다. 예를 들어 「그림자」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고요한 달 아래 고요한 밤길이다.

그러나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달밤에 나뭇잎들의 가지에서 흩어지는 슬픔도 있다. 이것을 자지 않고 길 위에서 굴리고 있는 심술궃은 바람도 있다.

어느 날 어느 곳에서 그가 나의 옷깃을 스치며 지나간들 내가 무엇으로 그의 걸음을 막을 수 있으랴.

모두가 한낱 그림자로다.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의 인생이 온통 그림자로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겠지만(이것은 사회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인생의 특정 시기를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을 것 같다.



또 김초엽의 신간 소설을 읽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SF 장르임에도 허상처럼 느껴지지 않고 계급과 환경, 차별 등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금속 피부를 이식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던지 여러 개의 자아를 현실화한 이야기 등등.

인간과 지구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도 돋보인다. 

이제 반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역시 김초엽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면서 그의 이야기는 현실 SF 문학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2.

3개월 반만에 인바디를 측정했다. 보통 6개월 정도 지나서 잰다고 하던데 지금 내가 운동을 잘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져서 재보았다. 근력이 조금은 늘었을 거라고 예측했으나 예상 수치보다 더 많이 나와서 놀랐다. 근력이 연령대 기준 표준 이하 범위였기 때문에 사실 운동하면서 표준 범위에만 들어와도 좋겠다 생각했다. 이번에 근소하기는 하지만 표준 범위에 들어왔다.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체중을 늘리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체지방이 살짝 늘기는 했으나 골격근량이 1kg 늘고 기초대사량도 늘었으니 근력 운동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 같다. 

어제는 하체 운동을 했다. 마지막에 정리 운동을 하면서 플랭크를 하는데 마지막 세트에서 30초를 못 버틴 것이 아쉬웠다. 마무리로 런닝머신에서 15분을 걷고 나왔는데 살짝 힘들기는 했지만 버틸만했다. 한달 전 하체 운동하고 나서 집에 갈 때 다리가 후들거렸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3.

다음주 여행을 앞두고 있다. 앞선 추석 연휴가 길었지만 그때는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은 어딜 가나 인산인해일 것이라 예약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2주도 안 되서 휴가 내고 여행을 가려니 살짝 민망하다. 다행히 큰 일이 없어서 일 때문에 못 가는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휴가 내는게 눈치보여서 그렇지^^; 하지만 연차가 아직 10일 가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쓰는 데는 문제가 없다. 11월에는 옆지기와 함께 갈 여행도 계획되어 있어서 하반기는 여행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한다.

이번에 여행을 준비해보니 10년 만에 가는 거라 그런지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무계획으로 가볼까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성격상 불안하여 지난주부터 준비한다고 하는데 뭐가 이리 할 게 많은 것 같은지. 핸드폰 데이터 안 되면 결제조차 막히고 구글 지도도 안 통하는 곳이라 걱정이 크다. 더군다나 혼자 가는 여행으로는 근 13~4년 만이다(정작 옆지기는 별 걱정 안하는 것 같음). 불안해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해보려 노력중이다. 


내내 비만 내리고 우중충했었기에 어제, 그제 반짝 내비치는 해가 참 좋았다. 걷고 운동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 되었는데 볕 쏘이고 일상을 충분히 즐기며 매일을 보내시길 바란다.




++ 추가) 페이퍼 쓰기 전 이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한다는 걸 다른 이야기 때문에 정작 빼먹었다.


아침에 신문을 읽다가 반가운 인물의 이야기를 접했다. 어릴 적 한때나마 꾸었던 직업인의 최신 소식이었던 것. 여전히 멋진 삶을 살고 계신 듯하여 참 좋았다(과거 좋아했던 사람이 나중에 보니 망가져있다던지 그러면 솔직히 기분이 좀 그렇지 않나). 

그때는 무슨 자신감으로 그 직업을 꿈꾸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었는데... 그때는 무얼 모를때니 직업인의 진짜 세계에 대해서 생각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꿈꾼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래도 그분을 좋아해서 직접 쓴 책도 사서 읽어보고 했던 기억이 새록하다.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생각한다. 그게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나이가 들면서 더 느끼게 된다.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고 멋진 삶을 살아가시길 소망했다. 물론 나도 그러려고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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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0-1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연차가 10일이나 남았어요! 부러워요. ㅋㅋㅋ 전 이제 딸랑 3일 남았습니다.. -_-
그리고 십몇 년 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도 설렐 거 같아요. 어디로 가시는지는 지켜보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5-10-17 11: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10일 딱 하루 모자른 9일 남았더라구요^^ 상반기에 안 쓰고 아껴놓았죠ㅋㅋ
십수년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 설렘 반, 불안 반입니다. 그치만 어떻게든 되겠죠. 가볍게 가고 싶어서 노트북은 안 가져가지 않을까 싶어요. 가져간다고 해도 체력상 매일 글쓸 것 같지도 않아서!ㅎㅎ 후기는 나중에라도 남겨보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5-10-1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력도 늘었고 혼자 여행도 앞두고 계시고…왠지 좋은 일이 많이 생기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겁쟁이라 혼자 어행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네요. 그래서 혼자 여행하시는 분들 참 존경스럽고 좀 부럽기도 합니다.
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
저도 매의 눈으로 잘 지켜보겠습니다.ㅋㅋ

거리의화가 2025-10-17 12:06   좋아요 1 | URL
근력은 정말 살기 위해 키워야했어요. 컴퓨터 앞에서 거북목에 어깨, 허리 다 안 좋아진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제 슬슬 폐경도 생각해야 하니까 골다공증도 우려되다보니!ㅎㅎ
저도 겁 무척 많습니다(번지점프 아직 한 번도 안 해본 일인). 근데 여행에서의 경험은 책에서 받는 경험과 감동과는 다른 직접적인 체험이라 와 닿더라구요. 정말 오래간만에 혼자 가는 거라 많이 긴장됩니다. 그래도 잘 되겠죠뭐ㅎㅎ

페넬로페 2025-10-1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여전히, 꾸준히 열심히 책 읽으시는 모습에 감명받습니다.
혼자서 여행도 가시고.
넘 부러워요.
저는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요.
사랑이 아니라 길 찾기 용도로도
꼭 남편을 대동하거든요.
늘어난 근력과 함께
혼자만의 여행
안전하고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목적지가 궁금합니다.

거리의화가 2025-10-17 12:11   좋아요 0 | URL
여행도 체력이 될 때 해야하잖아요. 가면 갈수록 체력도 한계가 있다보니 지금 미루면 나중에는 더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도 쫄보라 여행하면서 무서운 적 많은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들에게 묻게 되더라구요(길치에 방향치라). 다행히 지금까지 여행지에서 경험한 사람들이 대부분 친절하고 좋았었어요. 무사히 여행 잘 하고 오겠습니다. 여행지에서, 또는 다녀와서 후기로 인사드릴게요.

다락방 2025-10-17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이 혼자 여행을 가신다면, 그곳은 중국의 어디쯤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근력 늘었으니 충분히 여행도 잘 즐기실 수 있으실것 같네요. 여행 가서도 글 올려주셨으면 좋겠는데, 생각해보니 글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소식 또 전해주세요!

거리의화가 2025-10-17 14:15   좋아요 0 | URL
앗 역시 다락방 님 단 번에 맞추시는!
데이터용 이심을 가져가긴 하는데 이게 제발 문제가 없어야만 하는. 데이터만 문제가 없다면 글은 올릴 수 있으나 그곳은 항시적으로 짐 검사를 하기 때문에 번거로워서 노트북은 안 가져갈 것 같아요ㅠㅠ 어쨌든 소식 전하겠습니다^^

독서괭 2025-10-18 12:48   좋아요 0 | URL
오오 화가님 그동안 갈고닦은 중국어 실력 발휘하고 오시는 건가요!!

거리의화가 2025-10-19 17:29   좋아요 1 | URL
괭 님 읽는 것은 그래도 좀 시간이 주어지면 어떻게든 하지만 말은 또 별개의 영역이더군요. 가면 긴장되서 쉬운 단어도 생각이 안 날 것 같아요-_-;(작년에 대만 갔을 때를 떠올리면) 그래도 최대한 파파고에 의지하지 않고 여행해보려구요^^;;; 그래도 이번엔 중국 가서 꼭 서점 가서 책은 사올겁니다!ㅎㅎㅎ

단발머리 2025-10-17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가시는 여행이시라니 부럽습니다!! 이번 여행 후에 멋진 사진이랑 후기를 자세히, 길게길게~~ 써주세요!
여행 소식도 부러운데 근력을 위해 체중을 늘려야 했다~~ 이 부분도 부러워요. 이 메카니즘을 잘 모르는 저라서요. 체중을 늘려야 한다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신나는 일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5-10-18 13:40   좋아요 1 | URL
혼자 하는 여행이 사진 찍을 때 불편한 거 빼곤 다 좋아요. 누구 기호에 맞출 필요도 없고 내 컨디션에 따라 다닐 수 있으니까요.
15년 넘게 체중 변화가 없는 사람이어서 살 찌우는데 좀 애먹었어요. 원래 밥을 많이 못 먹는데 평소보다 더 양을 늘리고 주식 중간에 단백질 관련 음식을 계속 먹어줬네요. 체중이 늘지 않으면 원래 있는 체중에서 근력량을 늘리기가 거의 힘들다고 해요. 그래서 체중을 늘리는거라고!ㅎㅎ

희선 2025-10-18 0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한 효과가 나타났군요 처음보다 많이 좋아져서 기분 좋으실 듯합니다 앞으로도 근력을 키워가시기 바랍니다 운동을 하면 버릇이 들어서 안 하면 뭔가 빼먹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겠네요

혼자 어딘가에 가시는군요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오시면 좋겠네요 안전하게 잘 다녀오시기를 바랍니다 아직이지만, 그때가 다가오면...

거리의화가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5-10-18 13:42   좋아요 1 | URL
네. 3개월여만에 1킬로그램 찌는 게 쉽지 않다고 하는데 어쨌든 운동효과가 있어서 참 다행이죠. 점점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라는 생각을 몸이 체득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여행 다니는 중이나 다녀와서 찾아뵐게요.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오는…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시길^^

독서괭 2025-10-18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꾸준히 운동하신 보람이 있겠어요! 저도 요즘 운동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인바디 궁금하네요. 좀 좋아졌으려나.
혼자만의 여행 부럽습니다! 충분히 즐기고 오시면 좋겠어요^^

거리의화가 2025-10-18 13:45   좋아요 1 | URL
괭 님도 열운동 중이시군요^^ 운동을 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도움이 되어서 독서할 때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열심히 하셨으니 인바디 좋아지셨을겁니다.
즐겁게 여행하고 돌아올게요^^*
 

1.
1932년과는 달리 지금은 매순간 이윤을 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물론 그때도 그렇기는 했지만 적어도 사회의 혁신을 위해 선택지를 고민해보기는 했던 것 같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사실상 독점 폐해 자본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처럼 전세계적으로 부익부빈익빈은 심각하다.
부국과 빈국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누구는 넘쳐나는 자본을 다 쓰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더 얻기 위해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한 나라 안에서도 자본에 따른 계급이 만들어져 위계적 불평등이 생기는 것이 심화되었다.
무엇이 문제고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는 알겠는데 사실상 인간의 욕심과 자본주의의 극대화를 막아내지 않는다면 이것에 최선책을 찾을 수 있을까.

2.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기란 쉬운 일이다.
책에 나온 내용을 믿고 그대로 따르기도 생각보다 쉽다.
뉴스, 기사, 칼럼 등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도 많다.
맹신하는 것은 쉬우나 그렇게 대부분의 정보를 얻는다면 굳이 나를 스쳐가는 정보인데 그것을 보고 읽고 들을 필요가 있을까.
뇌를 거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자세를 저자는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나조차도 어떤 정보든 따져 물으며 확인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내가 볼 때 분명한 사실은, 경제라는 기계를 다시 정상가동시키려면 더 이상 작동하는 매순간 이윤을 내라고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서부와 캐나다에서는 음식이썩어나는데 전 세계 모든 산업 지역에서는 실업자들이 굶주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음식을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준다면, 그리고 그들이 서구 농부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울 수있는 작업에 배치된다면, 개별 자본가는 이윤을 내지 못하더라도 세계는 좀 더 부유해질 것이다. 개인적 이윤이란 동기는고장 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공공 부문의 조직화된 노력만이 세계의 경제 상황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1932.1.27) - P108

현대인은 대부분 사안에서 결코 성가시게 자기의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연구나 경험을 통해 권위를 갖추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편이 안전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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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도 회사 전체적으로 쉬는 바람에 어쩌다 10일 연휴를 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피곤함은 가시지 않은 거지?^^; 


제목처럼 연휴 동안 맑은 휴일 찾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흐리고 비오고 맑은 하늘을 찾기가 이리 어렵다니... 기상청 예보 믿고 나갔다가 비가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아무튼 수요일인가 맑은 하늘을 딱 한 번 내보인 적이 있었는데 볕이 뜨겁기는 했지만 그것이 참으로 반갑게 느껴졌다. 





그 이튿날은 또 흐려서 비가 올락말락이었는데 더 있으면 또 비가 올 것 같아 모처럼 옆지기를 끌어냈다. 

산책을 하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막걸리를 먹자고 했는데 막상 보이는 것은 맥주 호프집 아니면 고깃집 밖에 없었다(고기는 그날 따라 안 끌려서). 

결국 선택한 집은 맥주 호프집. 안주는 국물 있는 돈까스 김치 나베로 시켜주고...(왠지 모자를 것 같아 소세지 튀김류도)



한동안 외식을 안하다가 함께 했는데 그 시간이 꽤나 즐거웠다. 맥주 위에 올려진 것은 샤베트인데 역시 딱히 내 기호는 아니었지만...

안주들도 괜찮았고 나누는 대화도 즐거웠다. 집에 있으면 서로 핸드폰 보거나 각자 할 일 하기 바쁘니 점점 대화를 하는 시간이 주니 말이다.


연휴 동안은 3권의 책을 읽었다. 대서양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남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그리고 18세기의 인도에 대한 이야기까지. 대부분 굵직한 책들이어서 연휴가 아니면 사실 읽는데 꽤나 오래 걸릴 책들이었다. 

남은 10월은 여행 계획도 있고 아무래도 읽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필라테스 운동은 다행히 계속 진행중이다. 선생님이 칭찬에 후하셔서 매번 나의 의지를 북돋운다. "예전에 안 되던 자세였는데 이젠 너무 자연스럽게 되네요." "잘하고 있어요." 등등... 선생님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칭찬에 사람은 약할 수밖에 없다. 질책하는 것보다는 칭찬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그나저나 내일이 출근이라니...!!! 긴 연휴가 끝났으니 이제 다시 일에 집중해야 또 여행을 무사히 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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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10-12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휴에 묵직한 책 잔 읽으셨네요.
긴 연휴가 끝나서 많이 아쉬우시겠어요.
내일 출근 잘하시구요.
또 며칠 있음 주말이 다가옵니다.ㅋㅋ
근데 맥주 위에도 샤베트가!!😀

거리의화가 2025-10-13 07:56   좋아요 1 | URL
긴 연휴가 끝나서 아깝기는 한데 주말도 있고, 곧 여행 때문에 또 며칠 간의 연휴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맥주 위에 샤베트 신기하죠?ㅋㅋ 딱히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뭘 섞거나 소스 얹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그래도 보는 맛이 있었어요. 출근은 했는데 하품만 나오고 있습니다!ㅋㅋㅋ 한주 활기차게 시작하시길^^
 
야만의 해변에서 - 아메리카 원주민, 대항해 시대의 또다른 주인공
캐럴라인 도즈 페넉 지음, 김희순 옮김 / 까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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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중요하다. 이름은 우리 자신을 부르는 것이며, 사람들이 우리를 언급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누구였는지를 나타내는 것이자 상대방이 그와 나의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 P17


나의 이름은 사라지고 무언가가 되거나 집단화되어 통칭된다면 어떨까. ‘나를 업신여기는구나.’ 또는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구나.’하고 여기지 않을까. 과거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제대로 불리지 않았으며 지워진 채 이용 당하는 세월이 길었다.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일부터 시작이다. 이 책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항해 시대 이후 수많은 유럽인들이 기독교 선교를 위해(명목으로) 아메리카 땅에 건너갔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개종시키면서 원래의 문화는 사라지거나 동화되었고 집단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그렇다면 원래 살던 사람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토착민’? 이제는 ’인디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일이 조심스러워진 것 같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대중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원주민’도 그렇다. 어릴 때는 ‘식인종’이라는 말도 사용됐다. 어쨌든 저자는 앞선 단어 대신 인종적, 국가적 의미를 최대한 제거한 중립적인 용어인 ‘인디저너스’라는 단어를 쓰자고 말한다.  


대항해 시대 아메리카라는 공간은 익숙하지만 대부분 유럽에서 아메리카라는 방향으로 일관되어 있었던 것 같다. 출발점은 늘 유럽과 서구였고 그곳이 문명이었다. 인디저너스들은 사물화되거나 노예화되어 유럽인들에게 흥밋거리나 유용한 도구쯤으로 전락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야기한다면 무시하거나 배제되었던 그들의 삶과 문화는 찾을 길이 더 희박해질 것이다. 그들은 결코 피동적이거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체념하듯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자신만의 무기와 기술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인디저너스들은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중재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부를 얻은 경우도 있었다. 유럽에서 여러 대를 걸쳐 살면서 가문을 일구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때 가족이 모두 정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구성원 중 일부는 스스로 거부하거나 부득이한 경우로 내쫓겨 아메리카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15세기경 노예는 삶의 일부였고, 이슬람 지역, 동유럽, 아프리카, 카나리아 제도 출신 사람들은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의 노에 시장에서 일상적으로 거래되었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신부는 인디오들의 수호자였음에도 인디저너스 수를 줄이기 위해서 아프리카 해안 지역 출신의 노예 도입을 지지했다. 이렇게 노예가 당연시되던 시절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당도했을 때 만난 사람들을 사물로 취급했다는 일은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한 인종적, 차별적 언행이 정당화되지는 않겠지만). 

스페인으로 건너간 인디저너스들은 스페인 시민과 마찬가지로 이론적으로는 노예화로부터 보호화되었다. 그러나 스페인 왕실은 노예 제도에 세 가지 예외상황을 두었는데 인디저너스가 그 중 하나였으며, 정당한 전쟁에서(이것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지는???) 포로로 잡은 경우, 몸값의 대상에서 구조된 경우가 그렇다. 과연 인디저너스들은 노예제도의 문제와 논쟁을 몰랐을까? 저자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마르틴의 예가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그는 “나는 자유를 원한다.”하고 외치며 노예를 벗어나기 위한 법정 투쟁을 끈질기게 했다. 멕시코 출신 마르틴은 9~10살 무렵 스페인 왕실 재정 담당 관리인 살라사르의 눈에 띄어 시동으로 일하게 되었다(살라사르는 마르틴의 얼굴에 낙인을 찍을 정도로 잔혹한 사람이었다). 이후 주인을 따라 스페인에 가게 되었고 여러 가정을 전전하며 가사 노동자로 일했다. 살라사르에게 붙잡히지 않았다면 그가 법정에 서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의 결단과 투쟁은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는 저를 때리고 벽에 밀쳤어요. 만약 다른 이들이 저를 데려가지 않았다면 아마 저를 죽였을 거예요. …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가 저를 해치지 못하도록 저를 그의 영향권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십시오.” 그의 외침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를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에도 성폭력,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등 수많은 사례들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제대로 분리하지 않아서 다치거나 죽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가. 


현재 인디저너스들의 문헌과 자료, 유물 등은 대부분 유럽에 소장되어 있다. 승리의 행진과 호기심의 서랍으로 시작하여 "인간 동물원"과 "민속학적 전시"에 이르기까지, 유색인종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무력화하는 수집과 전시 행위는 오랜 역사가 있으며, 그 흔해 빠진 "과학적" 인종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직접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아메리카인을 전시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유럽인의 의도와 이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전시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당시 인종주의는 초기 단계일 뿐이었지만, 당시의 수집가, 역사가, 민속지 학자(종종 종교인들이 "다른 민족"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그들을 개종시키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는 사람들을 "인종"으로 구분했고, 그들을 비난하는 데에 그것을 이용하는 일을 "자연스럽고" "과학적인" 믿음으로만들었다. 유명한 물건들, 심지어 사람까지 소유하려고 했던 16세기 수집가들의 열망은 문화, 민족, 그리고 "인종"의 분류와 위계를 구축하는데에 기여했다. - P313


대항해 시대 담배, 카카오, 옥수수, 감자, 토마토 등이 물을 건너 넘어갔다. 유럽을 비롯한 서구는 자원을 상품이자 이익으로 보았으나 인디저너스들은 자신들의 땅을 명확히 인식하고 가치를 이해했다. 땅에서 얻어지는 것은 소중하며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믿음은 “상호주의와 지속가능성의 윤리에 기반한 대지와의 관계”를 의미한다. 상품화의 시대 아메리카의 물건은 세계화되었다. 그들은 유럽인에게 자신들이 가진 작물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주었고 연결망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유럽인의 문화, 경계와 차별을 직접 확인한 인디저너스는 자본에 따라 일부는 부를 쌓지만 또 다른 일부는 굶는 사람들이 있는 등 심각한 불평등에 놀랐다. 유럽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거부감은 인디저너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고 한다. 유럽의 불평등을 그들이 인식했다는 시실이 흥미로웠다. 


1519년 코르테스가 아메리카에 왔을 때 아길라르와 말린친을 만났고 둘은 코르테스의 현지 통역사가 되었다. 아길라르가 스페인어를 마야어로 통역하면 말린친은 마야어를 나우아틀어로 통역했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나우아틀어를 마야어로, 이를 다시 스페인어로 통역했다(지역마다 언어가 달랐다). 말린친은 스페인어를 빠르게 익혀 나중에는 코르테스의 수석 통역사가 되었다고(말린친은 나중에 코르테스 사이에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나중에 펠리페 2세의 비서가 된다). 인디저너스들에게는 이윤을 좇아 대서양을 건널 필요가 없었으나 많은 젊은 인디저너스들이 개인의 욕심, 가문과 공동체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대서양을 건넜다. 이처럼 그들은 대륙 간 중재자이자 통역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문화 사이를 오가는 법과 언어를 배운 “중재자들”은 중간 지대에서 자신들에게만 허락된 기회와 통찰력을 지닐 수 있었다. 

아 폽 바트스는 유럽인이 왔을 때 경례를 거부하고 깃털을 세우고 케치 복장을 하면서 위신을 세우는 것으로 ‘우리를 함부로 보지 마라!’를 강조했다면 외교관의 선례를 만든 목테수마 가문 같은 인디저너스들의 활약도 존재한다. 이들은 대서양을 정기적으로 건너고 사절단과 외교관을 스페인 궁정에 보내며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얻어내기 위해 협상했다. 인디저너스 귀족 가문 연맹이었던 틀락스칼라 상류층은 스페인과 밀접한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 


유럽에서 인디저너스의 역사는 배제되거나 억압되거나 무시되었다. 그렇지만 책에서 보듯 그들도 새로운 땅을 찾아 기회를 얻고 연결된 상업망을 이용하여 무역을 하였으며 외교 사절단을 파견하여 적극적으로 협상을 벌였다. 그들에 대한 시선을 박물관에 새겨진 어느 존재처럼 보는 일은 벗어나야 한다. 저자의 노력처럼 인디저너스 여행자를 찾아내는 일을 통해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고 희미한 삶들은 너무 닳은 나머지 서구 역사에 아주 옅은 흔적만을 남기는 듯 보이지만, 쌓이고 쌓여서 그 여행가들에 대한 과거의 그림을 만들어가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눈에 띄고, 때로는 평범했지만, 그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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