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우리돌의 바다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뭉우리돌 1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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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동분서주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바로 현장만이 줄 수 있는 울림 때문이었다. 때론 그 진동과 떨림이 땅을 치며 우린 왜 이것밖에 안 될까, 하고 한탄을 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들이 있어 내가 있으니. - P11


광복절이 있기 얼마 전 신임 독립기념관장 선정을 두고 여야는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이들은 건국절 논쟁은 그만 해야 한다고 말을 하던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헌법에도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명백히 나와 있는 이 항목에 대해 대응하는 것이 어째서 논쟁이냐. 당연히 격렬히 싸워야 하는 논제이다.

광복절에 발표한 정부의 ‘8.16 통일 독트린’을 보니 뜬금이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통일을 논하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 전개’, ‘북한 주민의 정보접근권 확대’, ‘북한 주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인도적 지원 추진’ 이런 항목들은 북한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항목들 아닌가. 그냥 뱉고 보면 다인지… 대부분의 항목들이 실현 가능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지금 대한민국 내부 정치도 합치를 못하는 마당에 무슨…’ 이란 말이 맴돌았다.


누구나 인생에 한두번은 세계여행을 하는 날을 꿈꾼다. 저자도 그렇게 두 번째 세계여행을 떠났다. 어느 날 인도의 델리 레드포트에 들렀다가 그곳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립운동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후로 여행 목적을 바꿔 그 때부터 세계 곳곳에 산적해 있는 국외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 나서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약 나와 무관한 관광지였다면 아마 그의 기존 계획은 변경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물론 평소 저자가 독립운동(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저자는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을 아우르는 여행기를 책에 내보인다. 


여행 목적을 바꾸게 한 장소인 델리 레드포트는 2차 대전 때 영국군 총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활동지였던 곳이기도 하다(인면은 인도와 버마, 전구는 전투 지역이다). 인면전구공작대는 1943년 ‘조선민족군선전연락대 파견에 관한 협정’이 체결된 이후 2년 여간 심리전단(적군 회유 특수 작전) 작전을 단행했다. 2020년 정부는 광복 75주년을 기념하여 영국군과 공작대 사이를 오가던 연락장교인 롤런드 베이컨 대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정작 인면전구공작대 대원 중 대장 한지성은 서훈을 받지 못했는데 1948년 월북을 선택했기 때문인 듯하다. 

조선의용대로 중국 땅을 누비다 광복군 대장으로 멀리 인도까지 날아간 사람 그리고 북한에서 숙청당한 비운의 독립운동가. 분단이 낳은 비극의 주인공 한지성. 이 이야기를 좇아가다 보니 마치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 못한 또 한 명의 김원봉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젠 만성이 돼버려 잘 느껴지지도 않는 침잠한 슬픔들(P40). 


멕시코 이민이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대략 알고 있었는데 그 뒷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이 몇 가지 있다. 먼저 멕시코 이민이 브로커인 존 마이어스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마이어스는 1904년 국내에 들어온 뒤 전국 11개 지역에 대리점을 설치하고 신문에 허위 광고를 게재(기후가 좋고 부자가 많은 나라… 한국인이 가면 반드시 이득을 볼 것 등등)하여 이민자들을 모집했다. 그렇게 모인 이민자들은 배에 올라 우여곡절 끝에 멕시코 해변에 도착했지만 하선이 허락되지 않아서 4일간 배에 머물렀다. 당시 현지 통역인 권병숙(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사촌)은 멕시코 애니깽 농장주 편에 서서 편지를 검열하거나 금지하는 등의 일을 앞장섰다고 한다. 남보다 못한 동포라니 희망에 부풀었던 이민자들을 두 번 죽이는 행동 아니었을지…


멕시코는 안창호와도 관련이 깊다. 당시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이었던 그는 애니깽 농장주와 이민자들 간의 노동문제 해결하고 한인들을 하나로 모으는 대한인국민회 단체 지회 설립을 위해 멕시코를 방문했다. 그러나 대한인국민회 메리다 지방회 환영식을 치르는 등 멕시코 활동을 모두 끝내고 돌아가려던 그의 귀국행은 고행이 되고 만다. 1918년 6월 귀국행에 오른 뒤 1924년이 되어서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국이 일본의 식민지란 이유로 번번히 비자 발급을 거부당해서 미국->중국(1919), 중국->미국:입국 거절(1921), 중국->미국(1924) 이런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었다고. 1918년 미국으로 돌아가려던 계획이 최초 좌절되었을 때 안창호는 멕시코 제2의 도시였던 과달라하라의 프란세스 호텔에 머물렀다. 2016년에야 호텔 측에서 안창호가 머물렀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고. 한쪽 벽면에는 안창호의 얼굴이, 한글과 스페인어로 기록 내용이 병기되어 있다. 


멕시코의 대표 독립운동가는 김익주다. 부끄럽지만 김익주의 업적을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1920년 기준으로 김익주가 임시정부 등에 보낸 독립자금은 1,500달러에 이르렀고 대한인국민회 탐피코 지방회 결성에 앞장섰으며, 3.1혁명 기념식, 순국선열기념식 등을 주도했다(안창호가 멕시코에 들렀을 때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저자는 그의 손자인 다빗 킴을 직접 만난 이야기를 전했다. 다빗 킴은 태평양 전쟁 후에도 독립자금 모금을 위해 할아버지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광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분단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김익주가 많이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저자가 찍은 다빗 킴 사진이 인상적이었다(몇몇 중요 인물들의 경우 이런 기법을 써서 보여준다). 선명한 배경에 인물을 흐릿하게 처리하여 마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 같은 묘사를 한다고 느껴졌다. 


일제의 한국 병탄 소식이 전해지자 애니깽 노동자로 왔던 이들은 1910년 독립군 양성을 위해 숭무 학교를 설립한다. 멕시코에 이민 온 이들 중 200여 명이 대한제국 군인 출신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사 훈련 뿐 아니라 국어, 국사 교육 등을 철저히 교육했다고 한다. 다만 멕시코 혁명으로 1913년 짧은 세월을 뒤로 하고 문을 닫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은 독립자금 모금으로 독립운동가들을 계속 후원했다.


쿠바 이민은 멕시코 이민사에서부터 시작한다. 설탕 공급으로 유명했던 쿠바는 1차 대전으로 국제 설탕 가격이 오르자 불황의 늪에 빠진 것이다. 멕시코 한인 270여 명은 애니깽 산업이 저물자 더 나은 생활을 꿈꾸기 위해 쿠바 땅을 밟는다. 하지만 현지의 사정은 기대 이상으로 좋지 않았고 시련의 시작이었다. 

저자는 현지에 도착해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아무래도 쿠바는 한국과 제대로 된 외교 관계를 맺지 않은지라 더욱 정보가 부족했다. 인터넷 검색은 기본 흥신소도 찾아가보고 나중에는 국가보훈처에 민원까지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개인정보라 불가하다는 답변을 얻어 좌절했다고 한다. 사적지 자료와 위치는 거의 매번 같지 않았고 이 때문에 나중에는 화가 치밀어 독립기념관 관장에게 메일을 쓰기도 했단다. 국내 사적지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마당에 국외사적지 관리야 오죽하랴 싶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기계적이거나 성의 없는 답변은 너무하지 않나 싶기는 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건데…


쿠바에도 대한인국민회 지방회가 존재했다. 쿠바 지방회는 1945년까지 2만여 달러를 모금해 교육비, 외교비 등에 사용했고 매년 3.1혁명 기념식을 거행하는 등 독립을 향한 마음을 꾸준히 보탰다고 한다. 


저자는 빅토르가 운영하는 까사(민박)를 찾아갔다. 빅토르 호 차는 독립운동가 호근덕(1889~1975)의 후손이다. 호근덕은 대한인국민회를 통해 임정에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광주학생항일운동을 돕는 데 앞장선 인물로 2011년에서야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빅토르가 직계 후손이라는 것도 2017년이 되어서야 밝혀져 서훈이 전달되었다고. 그는 최근까지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묘소를 열심히 관리하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애환을 달래고 있다고. 저자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가 되어 마지막에 방값과 식사비를 치르려고 하자 “내가 독립운동 사진을 찍겠다고 네 한국 집에 머물면 넌 어떻게 할 거니? 우리 아버지가 너에겐 돈을 받지 않으시겠대…” 


마탄사스는 쿠바 야구의 고향 같은 곳이면서 동시에 한인들의 정착 생활이 시작된 공간이다. 시내 외곽 핀카 엘 볼로는 1920년대 한인 100여 가구가 이주해 살던 곳이다.

엘 볼로 입구에는 2005년 미국 시애틀 한인연합장로교회가 후원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당시에는 한인들이 집단 거주했던 방인 기숙사가 있었고 옆 공터에서 3.1 기념식이 치러지기도 했단다. 독립운동가 임천택이 1932년 야학 교실을 열어 청년들을 상대로 교육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는 마을 한가운데 한글학교이자 교회로 쓰던 건물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집주인은 과거 그곳이 어떤 장소로 쓰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촬영을 허락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임천택은 본래 기독교 감리교도였다. 그러다 잡지 <개벽>의 이두성이란 사람 소개로 천도교에 대해 알게 되면서 천도교도가 되었다. 1933년 쿠바 천도교 종리원장으로 임명될 정도였는데, 1937년 최린 일파가 친일로 돌아섰다는 소식을 접하고 분노하여 쿠바 천도교 종리원을 폐쇄하고 다시 감리교인이 되었다고 하는 웃지 못할 사건이 있다. 

임천택은 쿠바 유일 한인 이민 역사서인 <큐바이민사>를 남기기도 했다. 딸인 마르따는 아버지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직접 답사를 하며 발품을 팔아 <쿠바의 한국인들>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소중한 기록을 남겨준 이들 덕분에 쿠바의 한인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카르데나스에는 독립운동가 이윤상의 딸 레오노르 이 박이 살고 있다. 이윤상은 1917년부터 해방 직전까지 임정에 독립자금을 지원했고 광주학생학일운동에는 특히나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이윤상이란 이름은 쿠바 한인 관련 기록에는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록에만 존재하다가 2018년 한 대학의 후손 찾기 봉사단의 노력으로 이윤상의 딸이 레오노르 여사라는 게 확인됐다. 그 전까지 레오노르 여사는 아버지의 독립운동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쿠바 이민 1세대들은 모두 사망했다. 당시를 증언해줄 사람이 거의 남지 않은 상황이다. 먼지 수북한 자료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갖고 있는 거라곤 사진 몇 장과 유품이 전부다. 게다가 쿠바 이민 초기 39개쯤 되는 성 마저 세월이 흐르면서 이 씨는 리Lee, 김 씨는 킨Kin 또는 킹King, 강 씨는 칸Kan,Can 등으로 변해 누가 누구의 핏줄인지 찾을 길이 더욱 묘연해졌다. - P241


하와이 이민은 대한제국이 허가한 처음이자 마지막 집단 이주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가장 필요했던 것은 값싼 노동력이었고 농장주들은 중국인, 일본인 노동자 대신에 대한제국 노동자들에 주목했다. 그렇게 1902년부터 1905년까지 하와이로 넘어간 한인들은 모두 7,300여 명을 헤아린다. 대한제국은 이들에게 외교적 보호나 지원 등을 해주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외교권 박탈로 하와이 이민이 금지되었다. 이후에 이민자들은 미국 본토로 갈 것인지 곻샹으로 갈 것인지 하와이에 남을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이렇게 미국의 이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19년 다뉴바에서 대한여자애국단이 창단된다. 이 단체는 여성들이 근검절약해 독립운동에 나선 것으로 유명하다. 단원들은 후원금을 모아 매달 3달러의 회비를 보탰다. 

대한여자애국단에 있던 한성신은 <신한민보>에 이런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 여러분의 딸들이나 아내들이 나라를 돕겠다고 돈을 좀 청구할 때에 머리를 흔들어 거절하거나 성을 내지 마소서.

대한은 남자 여러분의 대한만 아니요, 우리 여자들의 대한도 되나니 여러분의 아내나 딸들로 하여금 책임을 다하게 하소서. 의무를 각근히 하게 하소서. … - P315


중가주는 독립운동의 금맥이 되는 곳이었다. 통역관으로 하와이에 간 김형순은 ‘넥타린’이란 품종을 개발하여 털 없는 복숭아로 백만장자 반열에 올랐고 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독립운동 지원에 힘을 보탠 것이다.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도 마찬가지다. 

임정 초대 군무총장에 임명된 노백린은 대한인국민회 지원을 받아 샌프란시스코에 윌로우스 한인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해 비행 교관을 양성하는 데 앞장섰다. 일반 비행학교 교육생이 아닌 임정 산하 비행군단 소속 훈련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학교 설립 이후 얼마 되지 않아 폭풍이 강타하여 후원자인 김종림의 쌀농사 업체가 큰 타격을 입는다. 이 때문에 비행학교는 문을 닫고 김종림의 사업도 이후 전성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김종림은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자 60을 앞둔 나이에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에 지원하고 두 아들도 미 해군으로 참전하여 일본과 싸웠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2005년이 되어서야 김종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이를 비롯하여 장인환과 전명운에 얽힌 이야기(너무 슬퍼서 눈물을 여러 번 훔쳤다. 마지막까지 슬프기 짝이 없는…), 이승만에 얽힌 이야기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 책은 붙잡지 않았으면 포착되지 못했을 그 증거의 현장을 찾아 발벗고 나선 저자의 기록이다. 대부분의 현장은 침묵이 흐르고 말이 없다. 그는 그런 순간들을 마주하고 질문을 던졌다. 구체적인 대답은 나올 수 없지만 눈여겨 보지 않았으면 놓쳤을 현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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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문학 선집 7 - 1990년대 성차화된 개인과 여성주의적 각성 한국 여성문학 선집 7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엮음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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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문학 선집 시리즈 읽고 쓰기, 드디어 마지막 권까지 왔다. 1990년대의 시간은 내게도 기억이 비교적 뚜렷한지라 작품의 배경이 익숙한 것이 많았다. 당시 좋았던 시간도 있고 힘들고 아팠던 시간도 있었으나 어쨌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임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읽으며 뭉클했는데 추억 거리가 이제는 실물로 만날 수 없는,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는 안타까움이 일어서가 아닐까 싶다. 


1990년대 여성문학은 여성을 고립과 침묵에 이르게 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여성의 말해지지 않은 욕망과 가치를 복원함으로써 광장과 방의 부당한 분리에 맞서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이 작업은 한편에서는 1980년대 운동권 문학을 여성주의적 개입과 성찰을 통해 바라보며 성 평등이 병행되지 않은 민주화는 여성을 주변화시키는 가부장적 기획의 연장이라는 점을 밝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금기와 제도적 억압에 가로막힌 여성들의 욕망과 열정을 드러내어 여성의 자유를 실험하는 것이었다. - P17


1990년대는 군부 독재가 사라지고 동구권의 공산주의가 유효하지 않게 되면서 억눌렸던 개인의 자유와 욕망이 폭발하듯 분출하기 시작한 시기다. X세대, 오렌지족 등이 등장해 ‘나는 내 뜻대로 움직인다.’를 표방하며 과거와는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려고 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1980년대 강렬했던 민중 분노에 의한 서사와 문학은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로 나뉘어져 있던 세계에서 한 축이 무너지면서 동력을 일부 상실했다. 1980년대 노동 현장이나 집회에 뛰어든 여성들은 남성 노동자를 비롯한 활동가와 함께 연대하며 평등을 꿈꾸었지만 현실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990년대 들어오면 자유주의 체제 하에 자본주의가 더욱 강화되며 집단의 힘은 무너지고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악조건에 부딪치게 된다. 이 때 ‘여성들의 자유는 어떻게 표현되었는가’가 이 시기 문학의 주안점이 되겠다.


1990년대 초까지는 1980년대의 민중 운동에 대한 성찰과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애도에서 쓰여진 글들이 여전히 많이 발표되었다. 


최윤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되어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소설을 통해 역사적 비극과 고통을 재현한다. 

5.18 때 엄마를 잃은 딸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엄마는 오빠가 사망한 뒤 정신줄을 놓은 것이다. 역사적 비극 앞에 한 가정은 이리 쉽게 무너진다. 선택할 수 없는 비극이 인간을 더 비극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닌지… 기억은 쉽게 잊힐지 모르지만 글 속에 재현된 장은 이를 다시 생생한 사건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한다. 


마침내 나는 엄마 손목을 양손으로 꼭 쥐고 놓지 않았지. 그리고 엄마는 미친 학처럼 춤추러 갔어. 사람들의, 함성의, 냄새의 홍수에 실려 그 물살에 뼈가 녹을 때까지 나도 물살에 섞였지. 점점 더 물살이 높아졌어. 사방에 소리와 높은 벽이 앞으로 앞으로 나를 운반했어. 엄마는 내 손을 으스러지게 움켜잡고 내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로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가는 밀물처럼 밀려오곤 했어. … 내 머리 뒤에서 합창하는 수많은 얼굴들. 잊어버릴 수 없는 얼굴들. - P134

죽음은 죽은 자에게는 사건이 아니다. 그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만 혹독하게 생생한 사건이 된다. 죽음은 대답이 없기 때문에. 모든 죽음은 완성되어야 할 것의 미완성이기 때문에. - P139


최영미는 1980년대를 종식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1994년 발표했다. 여성이 노동 운동에 뛰어든 경우 운동은 운동대로 하지만 집안일과 돌봄은 이어졌을 것이다. 운동가나 투쟁가의 남편을 둔 여성이었다면 그를 위한 뒷바라지가 필요했을 테고 말이다. 투쟁가 뒤에는 여성들이 있는데 이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한다. 늘 한 편에는 여성의 전폭적인 노력이 숨어 있음을.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채익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P413


1990년대 여성 문학에는 가부장 가족제도에 도전하고 홀로 길을 떠난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다. 


공지영은 학생 운동 및 구로공단에서 활동가로 생활하고 시위에도 참여하는 등 현장 경력을 쌓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자신과 비슷한) 운동권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가부장 제도에 얽매이자 진보적 기치와는 다르게 불합리한 현실에 처하게 되는 위태로운 상황을 담은 소설이다. 모성을 강요당하고 가정 주부 역할을 (판타지를) 강요받는 현실에서 여성들은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넌 결국 여성해방의 깃발을 들고 오는 남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에 불과했던 거야.

누군가와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었다면 그 누군가가 다가오기 전에 스스로 행복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재능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면 그것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모욕을 감당할 수 없었다면 그녀 자신의 말대로 누구도 자신을 발닦개처럼 밟고 가도록 만들지 말아야 했다. - P525~526


공선옥은 5.18 때 민주화를 경험했다. 이후 전남대에 들어갔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중퇴하고 20대 초반에 시민군이었던 남자와 결혼했다 이혼을 했다고. 아이들과 함께 상경해 미싱사로 일하다가 원고료가 좀 더 높아 소설을 쓰게 되었단다.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경험이 그의 소설의 재료들이 되었다. 


<목마른 계절>에는 영구 임대 아파트를 배경으로 이웃 사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자동차들은 몇 대 없고 화물차들이 가득하여 새벽마다 발차하는 소리로 소음 전쟁이 벌어진다. (‘나는 나는 저팔계. 왜 나를 싫어하냐아~’라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따라 불렀다. 그 때 만화 본다고 부모님 눈치를 봤던 기억도 나고.) 

아파트 공터를 비롯한 놀이터에는 하교 후 부모님이 돌아올 때까지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져 나온다. 어릴 때 아파트에 두 차례 살았는데 한 번은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잘 안나고 다른 한 번은 아파트 공터에서 아이들과 고무줄 놀이, 땅따먹기 등을 하던 기억 때문인지 그 장면만 스냅샷처럼 남아 있다. 

비록 아파트였지만 지금의 아파트 문화와 달리 이웃 사촌이라는 개념이 그 때만 해도 존재했던 것 같다. 소설에도 나오지만 카페 장사를 하는 이웃 사촌의 아이를 대신 맡아서 돌보아 주는 ‘나’가 있다. 한 사람은 소설을 쓰고 다른 한 사람은 카페 주인인데 둘 다 이혼녀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사건에 휘말려서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되고, 가난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나온다. 모두 다 그 시절 이야기인 것 같지만 여전히 지금도 우리 주변에 있을 이야기다. 


목이 말랐다. 속쓰림과 동시에 갈증이 한꺼번에 덮쳐 와 죽을 것만 같았다. … 물 주전자를 기세도 좋게 기울였다. 냉장고에도 물은 없었다. 끓인 물은 아무 데도 없어서 수도꼭지를 틀었다. 이상했다. 수도꼭지에 힘이 없다. 가르륵가르륵, 수도꼭지 속에서 가래 끓는 소리만 난다. … 제한 급수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가뭄이라 하였다. 수원지의 물이 모자라서 격일제 급수를 하는데… - P501

“옘병. 죽을 각오로 살자 그거여. 누구 좋으라고 죽냐 죽기를.” - P513


전경린은 둘째 아이를 출산한 뒤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작가로 등단했다. 지금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의 필명은 전혜린의 이름을 본떠 지은 것이라고 한다. 

<염소를 모는 여자>에는 여러 명의 친구들이 나온다. 나는 3달 전부터 어떤 남자가 염소를 4일 간 맡아 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건 남자는 염소에 어떤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마치 영혼의 단짝처럼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염소가 어떻게 될 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변에는 그런 그를 정신병이 있다 이야기하지만. 권태와 냉담 속에 결혼 생활을 하던 나는 남편이 이웃 사무실 여자와 노닥거리는데도 불구하고 애써 무시해왔다. 


“조용한 한낮에 아파트에서, 칸칸이 벽만 나누어진 닭장 같은 다른 집들을 바라보면, 그 어떤 기이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도 더 어처구니없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돼. 칸칸마다 한 명씩 성숙한 여자들이 들어 있고, 남자를 위해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밤에 남자가 들어오면 섹스에 응해 주고, 남자의 집에 제사를 지내러 가고… 그리고 하나씩 둘씩 아이를 낳고 남자는 처자식 때문에 죽지도 못해 하면서 툴툴거리고, 그 닭장 안에서 멀쩡한 여자 하나가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오 년씩 십 년씩 매달리고… 그리고 어느 날 새벽에 깨어나 보면 발이 뻣뻣하게 굳어 영영 걸어 나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야. - P431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아름다움은 형태가 아니라 본질에 있다. 당신은 아름답다.’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비로소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벗어날 용기를 얻는다. 수영을 배울 때 물을 먹는 것을 결심해야 하는 것처럼 변하기 위해서는 한 발을 내딛어야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소설은 <바리-길 위에서>다. 소설을 쓴 작가는 송경아인데 전산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 국문학과 대학원을 가셨다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전산학과를 나오셨다는 부분에서 이미 내적 친밀감이 느껴졌는데 실제로 쓴 작품들이 SF, 판타지, 장르문학 쪽이 많다. 2000년대에는 진보계 쪽에서 정치 활동도 하셨다고 해서 참 다양한 활동을 하셨구나 싶었다. 지금보다 SF라는 장르가 훨씬 낯설었을 1990년대에 이미 그런 글을 쓰기 시작하여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 드는 다양한 글을 써 오셨다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바리야. 세계가 멸망하는 원인에 나는 나름대로 두 가지 가설을 세워 봤어. 이 세계, 이 시스템에 어쩌면 레지스탕스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게 그 하나지. 그 레지스탕스들은 혼란을 가중시키고 연산에 오류를 범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의미를 상실해 버리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이야. … 또 하나는 이 세계, 이 우주, 이 시스템, 네가 무어라고 불러도 좋은데, 하여간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도 포함되어 있는 이곳이 처음부터 잘못된 프로그램이었다는 거야. 혼란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고 혼란의 정도가 점점 가중되도록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 - P701~702

넌 다른 개체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특성이 있어. 호기심과 지적 욕구지. 호기심과 지적 욕구는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달라. 호기심은 어떤 사건, 우연히 일어나는 어떤 사고들에 대한 관심이지. … 지적 욕구를 가진 개체들은 자기 자신을 확장할 줄 알아. 그들은 어떤 사물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물 뒤에 있는 의미를 바라볼 줄 알아. 바라보려고 노력해. … 한 사람이 자신의 왕국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건지도 몰라. ... 난 네가 그런 경지에 도달했으면 좋겠어. - P703


바리를 비롯한 7명의 자매가 있다. 불라국은 잉여, 부족도 아닌 아름다운 곳이라 바리는 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언니들은 불라국이 병에 걸렸다 생각한다. 서천 서역국은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는 곳이라는데. 나는 성선설보다 성악설을 믿는 지라 인간은 원래부터 악하기 때문에 선해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세계도 원래부터 엉망진창이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작가님의 SF 세계는 지금 보면 전혀 가상 세계 같지 않다. 초기 SF작이라는 것을 감안해야겠지. Data-flow, 서브루틴, 테스터, 포인터, dummy, 변수/상수, 프로그램, 에러, 시스템, garbage, 패킷, 부동소수, 프레임, 패리티 검사, 매개 변수 등 내가 평소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이 소설에 등장하여 읽을 때마다 반갑기도 하고 피식거리기도 하면서 읽었다. 자매들은 계속해서 모험을 떠날 것이다. 


근 3주 정도의 시간을 한국 여성문학 선집을 읽으면서 올 여름의 일부를 의미 있게 보냈다. 선집을 통해서 많은 여성 작가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소중한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종종 꺼내어 읽어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심 가는 작가는 나중에 깊게 파 들어가기도 하고 말이다.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여성문학사연구모임에 독자로서 감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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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8-05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멋지다… 화가님.. 멋져요 😭

거리의화가 2024-08-05 16:20   좋아요 1 | URL
쟝 님 오셨군요^^ 이 시리즈 쟝 님도 반할 만한 컨텐츠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지만 유튜브 컨텐츠 다시 올려주셔서 넘 좋아요. 저 어제 솔닛 부분 듣고 녹아내리는줄요!ㅎㅎ 무더운 여름이지만 건강하게 잘 보내시길!

공쟝쟝 2024-08-06 11:12   좋아요 1 | URL
... 제가 반한 것은 화가님의 독서력입니다....!!.....
읽기로 한 걸 읽어버리시는 이 능력이........... 넘 부럽지 말입니다.......... 3주만에.... ㅜㅜ 아..... 저는 사놓고 뜯지도 않고 있습니다... ㅜㅜ 읽게 되면 다시 글 읽으러 올게여 ㅋㅋ
허... 제가 인용해 오신 공선옥 작가를 좋아한답니다...!?! (나 아는 작가 한명 나옴ㅋㅋㅋ)

유튜브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기본 소득은 너무 먼 일이라 노동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동 수익화를 만들수 있는 유명(과연?)인이 되서 한가한 독자로 활약하고 싶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08-08 08:42   좋아요 1 | URL
펀딩 100자평을 안 읽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에는 읽고 쓰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사두고 안 읽으면 결국 시간이 지나가서 흐지부지되는 것도 있고^^;
덕분에 저도 전체적으로 한국 여성 문학을 갈무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쟝님 유튜브는 점점 번창하리라 믿습니다. 컨텐츠 양도 그렇지만 컨텐츠를 질적으로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도 중요하더라고요. 앞으로도 화이팅입니다!

자목련 2024-08-08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고 멋지고 멋진 화가 님!!
이번에는 아는 작가가 나와서 더 반갑고요 ㅎ
덕분에 저도 이 시리즈를 읽은(?)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4-08-08 08:37   좋아요 0 | URL
90년대라 역시 친숙한 작가들이 많죠^^ 저와 무관하지 않은 시대라 배경도 익숙해서 더 읽기 편한 것도 있었고요.
ㅎㅎ 계속 열심히 읽여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 6 - 1980년대 운동으로서의 글쓰기 한국 여성문학 선집 6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엮음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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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광장에 선 주체로서의 여성이 역사의 증언자로서 등장하는 시기다. 1970년대 서서히 시작된 페미니즘적 시각이 주류 담론과 갈등 및 분열을 일으키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정도까지가 ‘민족’이라는 의미가 가능했던 때가 아니었나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1990년대 이후가 되면 더 이상 ‘민족’이라는 명칭을 쓰기에는 낡은 개념이 되어 버린다. 

1980년대 여성들은 노동자, 민중적 주체로 많은 활동을 했다. 아무래도 5.18과 87은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던 사건인 만큼 문학의 소재로 다양하게 쓰였다. 특히 5.18은 국가가 국민을 탄압한데다 많은 사상자를 낸 만큼 특히 많은 글들이 남아 있다. 이처럼 민중 문학이 활발했는데 여성 작가들이 어떤 특별함을 부여했는지 그것을 보는 일이 중요하다. 당연히 이전 시기처럼 페미니즘에 대한 여성의 시각을 드러낸 주제의 문학도 존재한다. 한국 문화를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 특징이다. 


홍희담은 작가이기도 하지만 광주 민주여성 단체인 송백회 활동을 하는 등 활동가적인 면모도 있다. 특히 <깃발>은 5.18 때 도청을 사수한 여공들의 활약을 담은 중편 소설이라는데 정작 분량 때문인지 담겨져 있지 않아 아쉬웠다. 


김채원은 한국전쟁 때 아버지가 납북되는 경험을 겪었고 자신은 남한에서 지내다 1975년 이후에는 미국,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아버지를 전쟁 때 잃은 경험은 상실과 고통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일찍부터 가장이 되어 살아야 했던 만큼 주체적으로 일어서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을 것 같기도 하다. 화가이기도 한 김채원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내면화하여 표현한다.

<거울의 환>에서는 김치, 된장찌개, 동치미 등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먹던 음식이 등장한다. 묘사를 보고 있자니 마치 밥상 위에 앉아 있는 등 침샘을 자극할 정도였다. 주인공은 예전에 살던 집을 찾던 중 길에서 한 남자를 만나는데, 헤어진 이후 연락을 기다린다. 그들은 다시 만났을까. 할머니는 전쟁이 터지자 거주지에 남고 남은 식구들은 피난길에 오르기도 한다. 어머니와 딸은 갈등 끝에 화해한다. 어머니와 딸은 갈등의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나는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어요.” 라고 말했던 딸이 어머니의 나이가 되면 과거의 그녀를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누구보다 갑갑하게 살았을지 모를 어머니를 이제는 이해하는 세대가 되었다. 


역사는 구르고 사람들은 그 역사라는 것을 피를 흘리면서도 개선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 P229


나이 들어 가는 사람의 떨림이 아니라 나이 들어 가는 여자의 떨림으로, 저의 성을 찾아 여기에 서는 일은 이리도 힘이 든 일입니다. - P248


앞선 시기 최초의 희곡 작가인 김자림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정복근을 설명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1976년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 작가로 등단하여 많은 희곡을 발표했고 여러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고 한다. 대중적으로도 작품이 성공하여 그는 한국 연극계에 이름을 단단히 남겼다. 1980년대가 민중이 글의 주체로 등장하는 만큼 그의 희곡에도 민중적 서사를 담았으나 여기에 여성주의적 관점을 추가시켰다는 것이 포인트다. 

<덫에 걸린 집>에서는 시대는 바뀌었어도 여전히 권력에 취하고 싶어 기생을 찾는 남성들이 등장한다. 절도와 강간 피해를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집안 망신이라며 숨기기 급급한 사람들의 심리도 엿볼 수 있는데 읽는 것만으로 생생함이 느껴져 절망스러웠다. 오늘날에는 발전된 디지털 체계로 여성의 성은 더욱 난도질당하기 쉬운 환경에 들어서게 되버렸다. 어떤 것도 믿을 만한 것이 있을지 모르겠다.


가정파괴범이란 건 대체 누가 붙인 책임 회피적인 이름이지요? 그런 녀석들은 단지 용서 못 할 파렴치범에 불과해요. 집안이 그런 하찮은 범죄 때문에 깨어지는 줄 아세요? 비루한 인습 때문에 깨어지고 배신 때문에 깨어져요. 남편은 아내를 배신하고, 가족은 피해자를 배신하고, 피해자도 자신을 배신해요. (가방 들고 나가며) 난 이제 나 자신을 배신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 P318


강석경은 1985년 등단 후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상업주의 문학을 배격하는 모임인 ‘작가’ 동인에 합류해 창작 활동을 했다. 산업 사회에서 글을 쓰면서 상업주의 문학을 배격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싶은데 실제로 그의 글의 소재는 이와 관련하여 먹고 살기 위해 문학적 순수성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실존적 고뇌를 다룬다. 

<밤의 요람>에서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만날 수 있는데 그녀들이 일상적으로 받는 차별을 잘 그려내고 있다. 선희와 마크, 애니와 톰슨, 미라 등이 등장한다. 기지촌 여성들의 신산한 삶과 피부색, 돈으로 평가되는 개인의 희비극이 그려진다. 

술병이 뒹구는 거리도 어린아이처럼 어둠 속에 누워 있다. 자부심을 지닌 백인과 그 빛의 어둠인 흑인, 거대한 체구의 아메리칸에게 달러와 사랑을 뺏는 여자들, 그들 모두가 밤의 요람에 잠들어 있었다. 발 딛고 내릴 제 땅을 찾지 못하고 욕망의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색색의 인종들이, … - P370


1980년대는 여성 작가 단체, 잡지 등이 등장하기도 했던 때다. 여성평우회, 또 하나의 문화, 여성, 여성운동과 문학 등이 그 주인공이다. 


여성평우회는 한국 여성의 억압이 가부장제 산업화 분단 등에 의해 구조화되었음을 정면으로 응시한, 분단 이후 최초의 단체였다. 여성평우회는 기관지를 펴내고 배움에 대한 나눔의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으며 여러 방면의 사업을 전개했다. 무엇보다 다른 여성 단체와 연대하여 여성 문제를 사회정치적 의제로 내세웠다는 데 의의가 있겠다.

특히 여성 문화 큰 잔치는 마당극에 여성주의적 시각을 덧붙여 내놓은 문화 컨텐츠라고 볼 수 있다. 막을 내린 후에도 한국여성노동자회의 문화 운동으로 계승되어 명맥을 이었다. 


책에는 1984년 10월에 펼쳐진 여성문화 큰잔치 연희마당을 실어 놓았는데 노동자 및 여성의 현실을 자학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내보인다는 생각이 들어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마당 놀이 답게 다양한 컨텐츠가 눈에 띈다. 고사문, 민요 함께 부르기, 이야기마당, 연희마당에는 영화, 사례극, 굿 등의 형식을 빌어 현실을 대차게 깐다. 


시어머니 갓마흔에 아들 낳아

잡색 갓마흔에 아들 낳아

시어머니 어서어서 키워 내어

잡색 어서어서 키워 내어

시어머니 판검사를 만들어서

잡색 판검사를 만들어서

시어머니 농부 신세 면해 보세

잡색 농부 신세 면해 보세


가요 가요 나는 가요

가요 가요 나는 가요 돈 벌러 가요

부모 형제 멀리 떠나 공장에 가요 ( 두 번 반복함) - P598


뭐? 노동자의 인권? 인권 같은 소리 하네. 야, 돈 버는 데 인권이 어디 있고 인정이 어디 있고 양심이 어디 있냐?

뭐? 배가 아프다고? 생리휴가를 달라고? 웃기시네. 야, 생리 안하는 여자 봤어? 아픈 배 움켜쥐고 죽어라고 일해서 이만큼이나 사는 거고 국가도 튼튼해진 거야. 알어? 

이 따위로 일해서 어떻게 작업량을 채우나? 매수 더 뽑아! 불량 내지 말고 정신 차려!(졸고 있는 노동자들 어이없는 듯 쳐다보다가 발길질을 하며)

이게 진짜….. - P600


우리 정부에서는 부강 한국을 위해서 여성 인력 20만을 풀가동시키고 있읍니다. 대한민국 만세! 애국 다찌 만세! (목소리를 낮추며) 니뽄이노, 노동자노, 청소부노 여러분. 논개 정신, 정신대의 전통을 이어받은 한국의 후예들이 환락의 고장, 서울에서 여러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므니다. … - P601


우리 재산, 공동 명의로 합시다. - P608


매맞던 부인, 잡색들의 응원으로 남편을 물고 꼬집고 대든다. 그러나 역부족인 미세스 폭력, 심하게 걷어차이며 바닥에 쓰러져 버린다. 폭력 남편, 한 발을 아내 위에 올리고 승리의 표시를 한다. - P611


어이 시집이나 가지.

여자는 결혼이 최고야.

아들이나 낳지.

… - P615


<여성>은 1985년 창비가 간행한 무크지로 출발했다. 진보적 여성운동을 지향하는 여성 지식인들이 편집인과 필진으로 활동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여성 문학을 비판하고 한국의 페미니즘 진영과 민주 운동이 결합하면서 겪는 과정을 통해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박완서, 박경리 작품을 비판하기도 했다고. 


여성 해방에 대한 불철저한 인식은 불철저한 세계관과 연결될 뿐 아니라 인간 해방을 위해 가장 철저히 싸워 나갈 수 있는 집단을 무시한 어떤 해방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에서 우리는 인간 해방을 위한 총체적 이념의 정립과 여성운동의 일대 전기를 마련해야 할 필요를 절감하였다. … - <여성> 1호, P676


교묘하게도 1987년 체제가 막을 내릴 때쯤 여성문학 단체의 활동이 막을 내린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또 하나의 문화>의 실험이 눈에 띄었는데 그것은 여성주의 무크로 발행된 잡지다. 필진이 조한혜정, 김은실, 조옥라 등 여성학 전공자들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띈다. 다른 여성주의 단체와 달리 1987년 출판사가 설립되어 2003년까지 갔다. 여성의 글쓰기와 표현 양식의 중요함을 알리고 출판 활동에 주안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우리의 우선적인 대상은 두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는 일상생활의 차원에서 문제를 느끼는 사람들로 현재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과 그 주변의 사람들이 되겠죠. … 또 하나는 고등교육을 통해 남녀는 평등하다는 의식은 깨우쳤으면서도 구체적 현실의 장애에 부딪쳐서 제대로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지식층 여성이나, 소수의 좀 더 풍성한 삶을 살고자 하는 남성들이겠지요. 그들이 현재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게 되고 구체적 현실의 장에서 서로 용기를 북돋우면서 발전적 대안을 찾도록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도록 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좌담 ‘또 하나의 문화’를 펴내며,  P667


어느덧 한국 여성문학 선집 마지막 권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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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문학 선집 5 - 1970년대 개발 레짐과 여성주의적 각성 한국 여성문학 선집 5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엮음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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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군부 독재가 들어선 뒤 유신 체제로 사회적 감시는 두드러지게 심했으나 역설적으로 한국 여성 문학은 여성을 가정에 가두는 젠더 통치에 대항하고 여성의 다양한 목소리를 내세우기 시작한다. 특히 신춘 문예나 잡지 등을 통해서 등단하여 전업 여성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외국의 페미니즘 서적 등을 번역하기 시작하는 때도 이 무렵이다. 그 전까지는 여류 문학이라는 용어가 주로 쓰였으나 여성 문학으로 전환하게 된 것도 이 때다. 

직업 여성이 늘어나기는 했어도 기혼 여성은 가정에 얽매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히스테리, 더 나아가 그로테스크함을 표현하는 소재로 선택됐다. 또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속물 근성을 까발리기도 한다. 직업 전선에 뛰어든 노동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수기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여성의 신체를 시적 언어로 표현하는 시인들이 대거 등장하고 모임 활동을 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청미와 여류시가 있다. 


김자림은 한국전쟁 이후 희곡을 쓰기로 결정하고 신춘 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한국 최초 여성 희곡 작가로서 인정받는다고. 

<화돈>에서는 전화 통화를 하는 주부인 ‘나’가 나온다. 기혼 여성이 결혼 생활에 100% 만족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서로 맞춰가야만 하는 부분이 많다. 또한 욕망도 결혼한다고 해서 뚝 끊기지는 않는다. 물적 욕망이든 성적 욕망이든 사라질 리 없다, 다만 도덕적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이 아닐런지. 소설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인데 통화를 하며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끼는 모습이 나온다. 희곡이라 그런지 말 맛이 참 좋았다. 


언니, 난 그 센트럴히이팅에다 불을 지피기 위해서 찌릿한 드릴과 몸서리쳐지는 엽기를 찾아야 했다우. 그러기 위해선 잔인할이만큼 강렬한 사람, 말하잠 나의 과거를 말끔히 소멸시켜 주고 찰나적으로 나를 죽여 주는 사람, 그러면 난 지글지글 타지. 그러구는 아까 말대로 환원하는 거야. 원초의 나로, 다시 구어지니까 말유. 아, 난 그런 사람을 찾아 헤맸다우. - 화돈, P40


박완서의 작품은 <나목>, <엄마의 말뚝> 등은 읽어봤었는데 이번에 <닮은 방들>이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처가 살이 중이었던 부부가 아파트로 독립해 나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성냥갑 마냥 똑같은 모양을 한 아파트(한국의 아파트는 너무 비슷한 모양이라 어딜 가나 보는 재미를 주지 못하는데 해외에서 만난 다양한 아파트의 모양과 색감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의 생활은 지루하고 단조롭다. ‘닮은 방들’이란 제목이 이중적 은유로 느껴졌다. ‘닮은 방들’은 아파트고 간음이란 행위는 그 대상만 바뀔 뿐 비슷하고 닮았다.  


나는 내 이웃의 무수한 닮은 방들이 끔찍했고 내 쌍둥이 아들을 구별 못 하는 일이 끔찍했고 무엇보다도 한 눈을 애꾸를 만들어 가지고 콩알만 한 유리 조각을 통해 퇴근한 남편의 얼굴을 확인하는 일이 끔찍했다. 천정에 달라붙은 20와트 형광등 불빛 밑에서 비인간적으로 창백하고 냉혹해 보여 자기 남편을 아파아트 살인범으로 착각해야 하는 일이 끔찍했다. 

내 생활에서 끔찍하지 않은 일은 철이 엄마의 그 <-짐승 같은 새끼>와 간음을 하고 말 것 같은 예감뿐이었다. - 닮은 방들, P71


오정희의 작품 중 장편 소설 <새>를 작년에 읽었었는데 아이들의 감정에 이입되어 갑갑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작품인 <중국인 거리>를 안 그래도 읽고 싶었는데 여기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한국 전쟁 때 인천의 중국인 거리에 정착했는데 그 경험이 이 소설의 뼈대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조개탄을 때우고 회충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피식했다. 회충약 세대까지는 아니지만 조개탄은 경험해본 적이 있다. 중학교가 공립이다보니 지원이 한정적이었는지 겨울이면 조개탄 땐다고 돌아가면서 아이들이 그것을 날랐던 기억이 난다. 연기도 많이 나고 항상 환기를 해주어야 하는지라 딱히 효과는 없었다. 

아무튼 소설 속 중국인 거리는 도처에 외국인들이 돌아다니고 군인을 상대로 성을 파는 여성이 있는 등 부모 입장에서는 위험한 것들이 난무한 곳이다. 전후 어지럽게 널려 있는 터전 속에서 빈곤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시의 정상에서 조망하는 중국인 거리는, 검게 그을린 목조 적산 가옥 베란다에 널린 얼룩덜룩한 담요와 레이스의 속옷들은, 이 시의 풍물이었고 그림자였고 불가사의한 미소였으며 천칭의 한쪽 손에 얹혀 한없이 기우는 수은이었다. 또한 기우뚱 침몰하기 시작한 배의, 이미 물에 잠긴 고물이었다. - 중국인 거리, P188~189


김승희는 1973년 신춘문예에 소설로 당선되었으나 전공은 현대시인데다가 미국에서 한국 현대시를 가르친 이력이 있고 1979년 첫 시집을 낸 이후에 계속하여 꾸준히 시집을 내는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태양’과 ‘어머니’가 많이 등장하는데 마치 빛의 반대에는 어둠이 있듯 현실과 꿈은 다름을 말하는 듯하다. 

<태양미사>의 시는 읽으면 바로 느낌이 올 정도로 그동안 읽었던 시들 중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어둠이 태양을 선행하니까

태양은 어둠을 살해한다.

현실이 꿈을 선행하니까

그리고 꿈은 현실을 살해한다.

구름의 벽 뒤에서

이제는 태양을 산책하는 독수리여,

나는 감히

신비스런 미립자의 햇빛 파장이

나의 생을 태양에 연결시킬 것을

꿈꾸도다.

… 

- 태양미사, P227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작가로 석정남을 만날 수 있다. 그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 올라와 양장점, 피복 공장, 전자회사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고 한다. 자연스레 그의 글에는 노동자로서 겪는 현실에 대한 부당함과 불만을 고발하는 주제가 담겨 있다. 특히 1978년 그가 실제로 일하기도 한 인천 동일 방직에서 노동자를 해고한 사건을 연극에 올리고 동지 회보를 만드는 등 복직 투쟁에 나서기도 했던 면에서는 실천적 노동가의 모습이 엿보인다. 하지만 노동자로서 일을 하면서도 문학인으로 살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었다고 하니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당시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회사를 상대로 어떤 투쟁을 했는지 그의 소설을 통해 생생히 느껴볼 수 있다. 


3월 14일

우리 회사의 장래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만약에 회사가 문을 닫게 된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 나의 책임은 무겁다. 내년 이때쯤 나는 우리 집의 가장 노릇을 해야 된다. 가장의 월급이 8,000~9,000원 가지고 어떻게 한 가정이 살 수 있을까? 어떻든 빨리 미싱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 - 인간답게 살고 싶다, P234


죽도록 일만 하고 밥 먹고 잠자고, 이런 일은 너무나 무의미하다. 이건 뭐 밥을 먹기 위해서 사는 벌레나 마찬가지의 생활이다. 나는 가끔 시라는 형식의 글을 써 놓고 훌륭한 작품이라는 착각에 빠져 스스로 기뻐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보면 정말 보잘것없는 글이라는 것을 알고 나의 무능력에 대한 깊은 실의에 빠진다. 노력이 부족한 탓일까. - 불타는 눈물, P239


<인간답게 살고 싶다> 발췌문을 읽는데 과거 내 일기를 보는 줄 알았다. IMF가 터지고 나서 입사 후 회사를 여러 번 옮겨 다녀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월급이 과연 제대로 나올지 전전긍긍하며 지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덜너덜 피폐했다는 말이 딱이다. 그 때 일기를 열어보면 하나 같이 우울한 감정 뿐이었다.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한숨과 투쟁이 오롯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여성문학은 글쓰기의 매체가 생겨나며 여성들이 작가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해진 시기였다. 글쓰는 여성 노동자들이 등장하고 사회적 모순과 비판에 대한 문학 소재도 여전히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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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문학 선집 4 - 1960년대 세대교체와 저자성 투쟁 한국 여성문학 선집 4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엮음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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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시민이 등장하면서 공론장의 자각 변동이 이루어진 때이다. 그러나 ... 냉전주의는 시민의 자유를 납작하게 짓눌렀고, 개발과 진보는 신화적 가치로 자리 잡아 신분 상승을 향한 욕망을 부추기는 한편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착취는 불가피한 선택인 양 호도되었다. 또한 서구와 구별되는 한국적 근대화를 향한 이상은 여성을 사적 영역과 전통 속으로 밀어넣어 시민으로부터 분리하고자 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 작가들은 여성에게 할당된 모성의 위상을 수락하며 여성의 시민적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성역할, 가족, 전통, 연성, 문화에 갇히는 역설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신진 여성 작가들은 자율적 개인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가부장제의 여성성 규범을 내파하는 여성 성장을 도모하고, 냉전 권력의 금기를 깨는 ... - P37


한국여성문학선집 4권은 1960년대를 다룬다. 전쟁 후유증에서 벗어나 이제 좀 자신을 알아가면서 자각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는 한편 4.19 이후 목소리를 봉쇄당하는 감시 사회의 단면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또 이 시기가 되면 여성의 몸과 욕망에 대한 주제가 담긴 글이 늘어난다. 여성 작가들은 여성 문학이 한국 문학의 구석진 자리가 아니라 중심에 떠오를 수 있도록 서서히 시동을 건다는 것도 눈에 띈다.


박순녀는 태어난 곳은 함흥이었으나 학업을 위해 홀로 월남하여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일했다. 소설만 쓴 것이 아니고 번역도 하고 드라마도 집필하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했다. 무엇보다 남편이 일찍 사망하여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작품 활동까지 병행했다고 한다.  

<아이 러브 유>에서는 일제 말 여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식민 체제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당시 학교는 여학생들을 근로 봉사라는 미명 아래 방공모를 쓰고 몸빼 바지를 입힌 뒤 전시 훈련 교육을 시켰다. 선생과 교사 간의 갈등은 전시 말에 갈수록 극에 달한다. 일본 출신 선생님과 조선 출신 선생님 간의 비교와 갈등이 눈에 띄게 보이지만 단정지을 수는 없다. 어떤 한 개인과 집단을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눌 수 없는 복합적인 요인과 상황이 존재함에도 한쪽으로 매도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기에.

<어떤 파리>에서는 술집에서, 학교에서 현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했다가 감시를 당하거나 쫓기는 일이 일상적이었음을 경험하게 한다. 선생이 인사 조처를 당하자 아이들이 선생님은 아무 죄가 없으니 돌려달라 말하는데 정부 조사원이 아이들 집을 모두 찾아다니며 배후를 추궁하는 부분에서는 무엇이 사회를 이렇게까지 만드는 것인가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범한 이웃이 간첩이 될 위기에 처하자 증언을 하기로 결심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 선택을 나라면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했다.


난 도무지 너흴 믿을 수 없단 말야. 순진하다면 순진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바보라고도 할 수 있지. 아니 너무나 모른다. 결국 모르기 때문에 불쌍한 거야. 넌 지금 일본 사람이라는 것에 폭발적인 불신과 증오를 느끼게 된 모양이지만, 좀 더 들어가 보면 우리 모든 사람이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눠져 있는 거란다. 말하자면 일본 사람만이 가해자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 사람만이 피해자랄 수도 없어. 너는 알 수 없겠지만 나도 역시 피해자의 한 사람일 따름이야. - 아이 러브 유, P113


빛과 색, 내 앞으로 내 뒤로 꽉 들이차 있는 그 빛과 검은색, 빛과 색-내 사고력은 온통 빛과 색에 동원됐고 나는 그 빛과 색에 묻혀 앗! 하는 내 비명을 들은 것 같았다. - 어떤 파리, P153


이정호는 한국 전쟁 때 김일성을 찬양한 일로 교사를 그만두고 국군에 입성한 뒤 대한청년단 선전부원이 되는 등 놀라운 선택을 했다. 흥남 철수 때 가족과 헤어지는 바람에 이북인 고향을 떠나와 남한에 정착해 가정을 꾸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한국 전쟁에 대한 이야기와 흥남 철수 작전에 대한 뒷 이야기를 글로 써 냈다. 전쟁의 서사는 대부분 남성의 시점에서 쓰여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소중한 기록이라 여겨진다.

<잔양>이 바로 흥남 철수 때를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철수 전 긴박한 상황이지만 군인들은 자유 시간을 갖게 되자 이 때를 만끽하기 위해 마지막을 불태우듯 노는데 열중한다.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타락할 수 있는 것일까. 문제는 이 때문에 피해를 보는 여성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야 따분하게 방에 박혀 있지 말구 밖으로 나가자. 그래. 나는 선뜻 밖으로 나왔다.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아무 데나 쏘다니고 싶었다. … 엄의 눈이 야릇하게 빛났다. 꺼리낌 없이 짐승이 된다는 건 참 유쾌한 일이야. 자넨 그래 의식적으로 그걸 맛보았는가? 의식적이라기보다 오늘 저녁 같은 때는 자연 그렇게 돼 있지 않은가. 평생에 몇 번 없을걸, 이런 챤스는. 죄악이네. 죄악? 짐승이 되고 난 뒤 사람은 더 선량해지는 것이 아닐까? 침묵, 빛나는 눈, 거센 숨결, 나는 이상한 예감이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 가자! 심연 속으로 가라앉아 들어가는 패배와 굴육들, 쓰라림, 나는 어디를 어떻게 달렸는지 모른다. - 잔양, P177


정연희는 보수적 시각에 반대하는 불륜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정점>에서 중산층 부부가 등장한다. 지영은 프리마 발레리나로 활동하다 심장판막증으로 작품 활동을 강제 중단한 뒤 발레리나를 포기하고 결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결혼은 생각했던 이상이 아니었고, 그녀는 남편과 자신이 동화될 수 없음을 깨닫는데, 그 때 마침 내연녀가 등장한다. 완벽한 행복 뒤에는 불안한 서사가 존재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하긴 결혼이란 선택지가 당시로서는 정상 범위에 속하는 것이었을테니. 

결혼 생활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나이가 들고, 주름은 늘고 거울을 보는 것이 싫어질 때가 온다. 지영은 거울을 보며 무신경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지만 그 속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 좀 서글펐다. 


꿈과도 같은 황홀한 젊음이 거울 속에 있다. 그것은 거울 앞에 서 있는 사십이 넘은 여자의 얼굴이 아니라 이십 대의 팽팽한 살갗이다. 차가웠지만 총명한 그리고 사랑스러운 얼굴이 댕그마니 거울 속에 따올라 있었다. … 그 얼굴을 보면서 뜻하지 않았던 희망과도 같은 감동이 살아 움직인다. 무거운 몸에 날개라도 돋아나는 듯한 기분이다. 지영은 손으로 그 얼굴을 쓰다듬는다. 

쓰다듬으며 보니까 그 팽팽하던 얼굴에 갑자기 잔주름이 무수하게 생겼다. - 정점, P248


허영자는 1963년 한국 최초의 여성 시인 동인인 ‘청미회’ 결성에 참여하여 1998년까지 활동을 했다. 그는 서정시를 쓰지만 이성 한 스푼이 들어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녹음>에서는 무당춤을 추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억제하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광기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살면서 단 한번도 미쳐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여성은 없을 것이다. 돌아버리고 싶은 순간에도 미쳐버리면 안 된다는 주문을 외우며 억지로 이성으로 잠재우던 때가 나도 꽤나 있었던 것 같다. 


후루루 몸을 털곤

천지는 또 한 번

무당의 활옷을 챙겨 입었다


다스려 다스려

반눈이나 붙였던 핏물

치오르는 곤두박질을

어쩌면 좋아,


칠칠 흘러내려

비릿내 도는

화냥기를

참말 어쩌면 좋아,


가슴 불꽃을 온통 내쏟아

짱짱한 목소리의

노래를 부르리라


미쳐나는 춤

시퍼런 칼춤을

전신만신으로

또 춤추리라.

- 녹음, P288~289


박시정은 재미 한인 여성의 삶을 다룬 소설을 주로 썼다. 이는 미 한국어 교사로 근무한 경험, 미 평화봉사단 활동 등 자신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날개 소리>에서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장 선생이 등장한다. 그는 타자로서 외국에 철저히 생활해야 하는 고립감과 열등감이 노이로제가 되어 정신병을 만드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당시 해외에 나간 많은 한국인은 이방인으로 생활하면서도 잘 해내고 싶다는 부담감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가부장적 문화의 배경을 가진 한국과 다른 외국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지금 그들에게 한국의 실상을 비쳐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은 힘든 일이다. 내 옷을 벗어 보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들은 때로 한국 문화에, 또는 습관에 충격을 받아 훈련 생활을 포기하고 떠나 버린다. 한국적 상황에서 적응할 수 없는 사람은 일찌감치 떠나보내기 위해서 그들이 한국에 가기 전에 한국을 적나라하게 소개하는 중이다. 그러나 나는 싫다. 그들이 극히 일부분, 그 일부분의 껍데기만 보고 한국을 단정해 버리면 그들의 뇌리엔 평생 잿더미 변소가 한국의 인상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기 때문이다. … 나는 뭔가 잔뜩 기분이 일그러져서 슬라이드가 새것으로 바뀌기를 기다렸다. - 날개 소리,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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