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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으로 읽는 미국의 역사 - 식민지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미국을 만들어온 인종이라는 거울
한국미국사학회 지음 / 궁리 / 2025년 12월
평점 :
연초에 잡지를 보다가 이 책을 ‘또‘ 발견하였다. 진작에 신간 꾸러미에서 발견한 책이었지만 외면하고 있던 책이었다. 다른 책을 소개하면서 이 책을 같이 소개하니 궁금하기도 하고 과연 두 책이 어떤 다른 느낌을 가져다줄까 싶어 주문하여 읽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미국사를 다시 훓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한국미국사학회에서 그동안 여러 학자들이 만들어낸 성과물을 엮은 것이기 때문에 학술서라고 보아야 한다. 대중교양서처럼 수월하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기존에 미국 인종, 계급, 젠더 관련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느껴졌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인종‘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여러 사회 현상을 고찰하며 미국의 역사를 훓어본다. 정치 분야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읽는 맛이 있었다.
오늘날 ‘인종‘이 왜 문제인지는 해외 뉴스 한 두개만 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미국 뿐의 문제는 아니지만 미국은 트럼프 제2집권기에 들어서서 그 심각성이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다만 인종을 이해하는 시각은 점차 달라져왔다. 과거에는 생물, 유전, 인류학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었다면 오늘날에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건국기 링컨은 주로 남부 노예해방을 한 인물쯤으로 미화된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는 원주민에 대하여 온정주의적 자세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그는 인디언 시스템의 에이전시직을 비전문가이자 인디언을 만나본 적도 없었던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정치적 지지자들에게 보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또 백인들을 서부에 정착시킨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홈스테드법과 대륙횡단철도 사업으로 원주민들의 땅은 강탈당하기에 이른다.
프리메이슨은 중세 유럽 길드에서 기원한 용어로 17세기 유럽에서 비밀결사우애단체로 출발했다. 이들은 개인과 사회를 개선하며 질서와 조화, 안정을 추구하고 신비주의를 고수했는데 18세기 미국에 유입되어 독립을 위해 뛰던 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프리메이슨 흑인 활동가들은 아프리카인들의 억압의 역사를 강조하기 보다는 흑인의 인종 평등과 노예제 폐지에 힘을 실었다. 이들은 흑인의 정치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여겨 교회와 연계하여 흑인의 시민권과 투표권을 획득하고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폭력적 저항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1917년 미국은 문맹테스트 이민법을 만들고 아시아 이민금지 구역을 설정하였으며 이민자 인두세를 인상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테스트 항목을 킹 제임스 성경에서 발췌함으로써 개신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고 검열관의 판단에 따라 편의적으로 이민 테스트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았다. 이 이민법은 1952년 폐지되기까지 계속되었다.
짐크로시대 외면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운 흑인들이 백인으로 통과하기를 감행했다. 그러나 정체성을 숨기고자 한 흑인들은 자신들의 존재가 발각될까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흑인들의 지위가 상승하면서 백인으로 통과하기는 퇴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정말 사라진 유산일 뿐인가? 여전히 외형적으로 모호한 아프리카계 또는 아시아계 혼혈인은 백인 통과하기를 시도한다. 문제는 이것이 백인 사회를 더 공고히 하는데도 역할을 한다는 현실이다.
20세기 흑인 권리 찾기를 주도한 이로 윌리엄 듀보이스가 있는데 다른 한편에 부커 워싱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커 워싱턴은 워싱턴에서 있었던 애틀랜타 타협으로 흑인은 백인 사회로 점진 통합해야 하며 경제적으로 자립, 현재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등 백인과 흑인의 협력이 필수라 보았다(당연히 백인들은 이에 환호했다). 이는 흑백 분리와 인종 차별을 수용하는 입장으로 보수적인 쪽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윌리엄 듀보이스는 흑인만의 고유성을 강조하며 흑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적 권한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1980년 레이건이 당선되고 미국 사회에 우파적 흐름이 거세지자 과거 부커 워싱턴의 정책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 내 이민이 증가하고 백인 여성이 노동 시장에 진입하자 취업문이 좁아진 흑인들이 위협을 받은데다 1960년대 민권법과 투표권법이 통과되면서 계층간 간격이 커진 탓이었다.
두순자 할린스 총기 사건도 기억에 남는다. 한인 상점주 두순자가 10대 흑인 소녀 할린스를 총기로 쏜 사건이었다. 사건 발발 후 한인들은 이 사건을 인종적으로 다루지 않으려 했으나 사건은 인종 이데올로기의 논리에 따라 할린스를 불량하고 남성적이며 싸움질하는 강도로 몰았고 두순자는 가정적이고 도덕적이며 중산층 계급의 여성의 내러티브가 만들어졌다.
19세기에는 인종 질서가 형성되고 백인의 차별적인 시선이 시작된 시기이다. 미국의 법과 정책은 건국기부터 백인 중심의 인종 질서를 구축했고 19세기 중후반이 되면 서부 확장을 통해 이를 더욱 공고히 했다.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들을 야만인이자 타자로 규정해 백인의 입장으로 이들을 문명화시켜야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20세기 전반이 되어서도 백인 중심의 질서를 재구축하려는 시도는 지속되었다. 산업화로 만들어진 도시공간은 인종주의가 기능하는 장소로 작동하는데 흑인이 백인화되려는 거듭된 시도는 인종의 위계를 무너뜨리고자 함이었지만 오히려 또 다른 분류를 만들어내는 역효과를 낳았을 뿐이었다. 20세기 후반 인종 정치는 인종 위계에서만이 아니라 인종 내부에서도 다양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 전개되었다. 이처럼 미국의 역사는 곧 인종의 역사이므로 인종 연구는 여전히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