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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서로 돕는다 -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ㅣ 르네상스 라이브러리 7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5년 4월
평점 :
촉망받는 지리학자가 스위스 여행 중 아나키즘 노조 사람들과 만나면서 아나키즘 사상에 영향을 받고 러시아에 돌아와 혁명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로 인해 체코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그와중에 탈출해서 사회주의 아나키즘 운동에 매진했다. 이 책을 쓴 크로포트킨의 이야기다.
현대 사회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끼친 이론이자 사상이다. 아주 오랫동안 그 이론은 생존경쟁 과정에서 약자와 강자에 의한 약육강식이 벌어진다는 논리로 인종 차별과 인간 중심주의로 해석되었다. 최근 들어 그 해석에 반기를 들며 다양한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다. 크로포트킨은 그 시절 이미 다윈의 이론에 대한 해석이 오해에서 비롯된 통념이라고 주장했다(상호부조가 진화를 낳게 하는 진보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진화를 주제로 유럽 대륙에서 최근에 발표된 중요 저작들은 대부분 생존경쟁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양상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는 외부적인 전쟁으로, 이는 혹독한 자연조건에 대한 투쟁 혹은 경쟁 관계에 있는 종에 맞서 벌이는 투쟁을 말한다. 두 번째는 내적인 전쟁으로, 이는 같은 종 내에서 생존 수단을 놓고 벌이는 투쟁을 가리킨다. 생물학자들은 또 진화에 있어서 내적인 전쟁이 벌어지는 범위나, 이것이 진화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모두 과장되었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다윈 자신도 상당히 뼈아프게 인정한 부분이기도 하다. 반면에 종의 번영을 성취하는 데 동물들의 사회성이나 사회적 본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다윈도 이미 인정한 바 있는데도, 오히려 그의 뜻과는 달리 과소평가되었다. ...
당대의 사상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대중들이 인간사회 제도의 진화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으며, 또한 대중은 무기력할 뿐이어서 인간사회 제도의 진보는 정신적,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들에 힘입은 것이라는 주장을 여전히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 P7
그는 오히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은 상호부조하는 과정에서 진화했다고 말한다(진화 과정에서 동물이나 인간들 사이에 보이는 도움은 사랑이나 동정이 아닌 상호부조나 상호지원에서 얻어지는 힘이다). '오?' 나같이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 일었다. 이 책을 사게 된 계기는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어떤 책을 읽다가 장바구니에 담은 것 같은데 항상 장바구니에 담을 때 어떤 계기로 담았는지 적어둬야지 하면서도 매번 지나치곤 한다. 아무튼 그렇게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동물의 상호부조부터 역사적 흐름에 따른 인간의 상호부조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독자를 설득시킨다.
동물계에서는 진화의 단계마다 군집을 발견하게 된다. 군집은 순전히 자연적인 성격을 잃게 되어 더 이상 단순한 본능에 따르지 않고 이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더 고등한 척추동물들은 주기적으로 군집을 이루고, 군집에 의존해서 주어진 욕구, 즉 종의 번식, 이동, 사냥이나 상호 방어 등을 충족한다. 군집은 임시적으로도 이루어진다. - P82~83
동물은 집단 생활 속에서 동정심을 배우는데 이는 감수성과는 다른 더 높은 수준의 도덕에 의한 감정이다. 동물은 경쟁에 의한 충돌이 아니라 기후나 전염병에 의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고대인은 이동생활을 하다가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군집을 이끌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게 되었다. 공동체는 특정한 규율 하에 공동작업을 했으며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자에게는 사법절차에 따라 처벌을 했다. 다양한 부족들의 상호부조 사례가 나오는데 그중 나는 특히 카바일족의 상호부조가 인상적이었다. 카바일족은 이미 사적인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그들 사이에는 분명히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모두 존해했다. 하지만 가깝게 함께 살며 어떻게 빈곤이 시작되는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가난을 모든 사람에게 찾아올 수 있는 일종의 사고로 여긴다. 가난한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부자들은 그들의 논밭에서 일을 해준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은 답례로 자기 차례에 일을 해준다. 더욱이 젬마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공동으로 경작하는 정원이나 논밭을 따로 떼어 놓는다. ... 카바일 마을에 들어온 모든 이방인들은 겨울에 집을 지을 권리를 갖게 되고 24시간 동안 공유지에서 말들이 항상 풀을 뜯을 수 있다. 필요학다면 이방인은 거의 무제한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도 있다. - P181~182
이후 공동체가 국가적 규모로 커져 국가법이 만들어졌음에도 부족 공동체의 민회와 관습법은 유지되었다.
중세 시기 전사집단의 수장들은 법과 권리를 통해 세력을 얻어 확장해나갔다. 그들은 잘못된 행위를 적절하게 복수하는 행위를 정의라 내세웠는데 이는 앞선 부족 단계에서 발전된 것이다. 부족이나 동맹마다 관습법이 달라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과거의 법을 존속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벌금은 공동 설비나 방어를 위한 일에 사용되었다. 자유도시가 등장하면서 동맹회, 협동단체, 친목회 같은 조직들이 만들어진다. 조직을 통한 상호지지와 자유 추구는 유럽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었다. 이는 길드라는 새로운 모델이었는데 구성원들은 서로를 형제나 자매로 부르고 대우하며 평등하게 대했고 공동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했다. 중세도시는 지역에 의한 세대주들과 직업에 따라 서약을 맺은 길드 구성원들인 이중의 연합체로 구성되었다. 중세도시는 개인의 자유, 자치 경영권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 내에서는 평화를 바탕으로 한 상호부조로 굴러갔다.
중세도시는 특히 수공업길드가 중심이 되었다. 수공업길드의 구성원들은 상인이면서 수공업자들이었고 수공업 장인들은 길드를 상대로 물건을 만들어 조합인들을 위해 제품을 만들었기에 품질에 책임을 지면서 장인 정신을 발휘했다. 중세인들은 장인 정신을 존중했기에 제품을 믿고 샀다. 기본적으로 길드는 독립적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교회는 신권을 유지하기 위해 왕이나 황제에 빌붙으며 중앙집권화된 정치를 발달시켰다. 영주는 도시가 자리잡지 않은 곳에 영지를 확보하고 농노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왕실을 위한 요새 도시로 만들어 기사들을 위한 땅을 분배하고 상인들을 위한 권리를 확보했다. 이 영역이 커지면서 점차 국가화되었다. 국가는 길드의 독립성을 침해하기 시작했고 이에 길드 구성원들의 불평이 증가하며 농민, 시민들이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는 농업을 무시하고 상공업의 부를 기반으로 성장했기에 점차 농촌, 지방과 멀어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실제로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점차 중앙집권화되는 국가 체제에 맞서 촌락 공동체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에 저항하는 투쟁이 있었다. 그래도 19세기 초반까지 스위스,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지에서 촌락 공동체(의 공유 제도)는 보편화되어 있었으며 그들은 촌락 공동체 생활에서 유래된 습속을 유지하며 생활했다. 그러나 대세는 거스를 수 없었다. 국가는 공유자를 압박해 분할을 집행하거나 땅을 사적으로 전유하도록 부추기면서 점차 공유 경제는 무너지고 촌락 공동체는 힘을 잃었다.
근대 시기 길드를 이은 것은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조합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공동으로 투쟁하며 때론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다양한 목적을 위해 노동조합끼리 자유롭게 연합을 맺고 협동했다. 그밖에 모든 가능한 방면으로 공동 행위를 위해 만들어진 무수한 사회집단들이 있었다. 국가는 개인 집단 위에 군림하며 동맹을 저항으로 받아들였으나 노동자들은 다양한 위장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결했다. 때로 정치 활동을 통해서 투쟁하기도 했다.
중앙집권국가의 파괴적인 권력도, 고상한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이 과학의 속성으로 치장해서 만들어낸 상호증오도 무자비한 투쟁이라는 학설도 인간의 지성과 감성에 깊이 박혀 있는 연대의식을 제거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의 연대감이란 앞선 진화 과정 속에서 자라난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단계부터 진화를 거듭하며 얻어진 연대감이 마찬가지로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양상 가운데 단 한 가지 요인 때문에 극복될 수는 없다. 최근에 작게는 가족이나 빈민가에 사는 이웃들 그리고 촌락이나 노동자 비밀 결사 형태로 숨어들었던 상호지지와 지원에 대한 욕구는 근대 사회에서도 다시금 거듭 주장되었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미래의 진보에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그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 P339
결론적으로 저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동물은 연합하여 자연 조건에 맞선 투쟁을 위한 최고의 무기로 삼았다. 인간도 씨족을 시작으로 종족, 종족끼리의 연합, 국가로 확대되며 상호부조의 원리 하에 진보했다. 상호투쟁보다 상호지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윤리적인 진보라는 개념 때문이라고. 이처럼 자연 하에 동물, 인간이 서로 협력하고 연합하여 상호부조했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개인적으로 진보와 윤리라는 개념이 서로 합이 맞기란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도 이런 낙관적인 해석을 시도한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챙겨 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