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다이계의 침략과 1398년 티무르의 일시적인 델리 정복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남아시아는 몽골에 복속하지 않은 채로 있었다. 몽골의 각 칸국과 남아시아의 다양한 정치체 사이의 외교 소통은 빈번하게, 그리고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졌다. 이러한교류는 13~14세기 조선 기술의 발달과 항해술의 발전으로 더욱활발해졌다. 무슬림, 힌두교도, 중국인 상인들이 운영한 상업 네트워크도 외교적 교류에 기여했다. 게다가 이븐 바투타(1304~1377)와 같이 아프로-유라시아 세계의 먼 지역 사람들도 이러한 교류에 참여했다. - P292
남아시아와 몽골 제국 사이의 상업적 연결은 여러 상인 집단에 속한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무슬림과 타밀 상인의네트워크, 중국 선원들의 운송 시설, 시리아 기독교도들의 디아스포라적 연결 등이 있었다. 이러한 상업 교류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이루어졌으니, 인도양의 해상 항로, 미얀마와 티베트를 건너 원의영토로 가는 육로, 델리와 일 칸국 이란을 연결하는 아프가니스탄 고개 등이 있다. 거래되는 상품의 종류와 무역의 양상 역시 매우 다양했다. 은, 말, 향신료, 도자기, 직물, 노예 등이 남아시아와몽골 칸국들 사이에서 교역된 주요 상품이었다. 남아시아와 몽골칸국들이 이러한 품목을 직접 교환하기도 하고, 남아시아 항구와시장이 더 큰 아프로-유라시아 무역 환경 내에서 단순히 중개 허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말라바르해안의 항구들은 원과일 칸국 사이에서 교환되는 상품들의 중요한 환적(積) 지점이었다. 이러한 남아시아의 중개 역할은 상인 집단들이 장거리 무역의특정 부문에 집중하는 분절적 무역 양상 때문에 등장했고 시간이지나면서도 유지됐다. - P301
몽골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통치할수는 없다"는 중국의 유명한 클리셰를 반증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말을 탄 채 이동하며 통치하는 것은 단점이 없지 않았지만매우 혁신적이었음이 입증됐다. 초기의 대규모 공격 이후에 몽골은 궁극적으로 문화적 활기, 유라시아 규모의 통합, 상업의 활성화, 기술, 과학, 예술의 혁신, 새로운 종교적, 종족적, 지정학적 지형, 초원과 정주 제국 모두가 받아들인 세련된 제도를 낳았다. 몽골은 그들의 파괴적 정복에서 기인하기도 했고, 근대 민족주의 정서의 부침에 의해 더욱 강화된 야만인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13~14세기에 이 제국적 유목민들은 세계를 변화시켰고, 오늘날의 세계화 시대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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