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무렵 황후와 라스푸틴의 영향력은 사회와 정부 간의 정치적 마찰을 일으키는 중대한 원인이 됐다. 베를린 정부와의 단독강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전해지는 비밀조직이 황실 내에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면서군사령부에 반역의 음모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힘을 얻게 됐다. 황후와 라스푸틴이 독일을 위해 활동하며, 그들이 베를린 정부와 직접적인 연락을취하고 있고, 차르가 자신의 숙부인 카이저 빌헬름Kaiser Wilhelm에게 러시아군의 이동 상황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로마노프 왕조의 황궁을 ‘친독일적‘이고 ‘부패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혁명을 애국적인 행위로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다.
황실에서 벌어지는 성적 스캔들에 관한 소문도 비슷한 신빙성을 얻었다. 황후가 라스푸틴의 정부이자 자신의 시녀 안나 비루보바의 레즈비언 애인이었으며, 황후가 안나와 함께 라스푸틴과 난교행위를 벌였다는주장이 나왔다. 알렉산드라의 ‘성적 타락‘은 러시아 군주정의 병적 상태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일종의 은유가 됐다. - P96

멘셰비키와 사회주의혁명당은 러시아에게는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우며 군사활동을 지원하는 쪽(수호자파)과,
‘제국주의 전쟁‘의 종식을 국제적으로 펼쳐나가기를 원하는 쪽(국제주의자파)으로 나뉘었다. 이런 분열은 1917년 내내 두 당 모두를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이런 분열 때문에, 1889년 이후로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을 조직하고 통합했던 제2차 인터내셔널이 해체됐다. 그런 분열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민족적 이익보다 계급적이익을 우선하는 세력과, 민족국가의 합법성 및 민족국가들 간의 갈등의필연성을 주장하는 세력 간의 근본적인 세계관의 차이였다. 오직 볼셰비키만이 전쟁을 반대하며 결집을 이루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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