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인 조건은 역사를 위한 무대가 될 수 있지만, 인간은 역사를 만든다. - P29
역사의 재료는 바로 지속성이다. 비록 모든 역사적 사건이 독특하고, 따라서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유동성과 변화와 다양성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가 역사를 가지도록 해주는 것은 주어진 현재와 과거의 관련성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속성을 구성하는 세부적인 사항은 주장일 따름이고, 종종 논란거리가 된다. 비록 겉보기에는 별문제 없이 보이는 이 책의 표제도 하나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많은 특정 민족들, 문화, 역사를 "러시아"라는 제목 아래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중에는 러시아어가 아닌 언어를 구사하면서 스스로를 러시아와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민족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 일부는 나중에 차이점을 인식한 데에서 영감을 얻어 민족국가로서의 독립을 - P30
얻어내고, 자신들의 역사가 러시아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게 된다. - P31
우리는 무엇을 키예프국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최근 대부분의 학자들은 좀더 근대적인 "러시아"보다는 고풍스러운 "루시"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루시가 역사적인 용어였을 뿐만 아니라, 키예프국이 "러시아" 역사의 "연장선 상에 있는 초기 역사를대변하는지, 아니면 나중에 모스크바국이 팽창함에 따라서 그곳에 포함될 지역에 있던 슬라브 계통의 민족들이 관련된 수많은 별도의 역사들 중의 하나인지의 문제가 격렬한 논쟁거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키예프에 수도를 두기 이전의역사와의 연속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도 "루시"라는 용어가 선호되고 있다. - P54
러시아가 비잔티움에 충성을 바친 것은 러시아의 이후의 역사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거나, 결정짓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러시아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외부에 남아 있었음을 의미했고, 반대로 러시아가 가톨릭 교회 자체가 줄 수 있었던 것을 얻지 못하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나머지 유럽 및 라틴 문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고립되는 주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것은 러시아가 서구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도록 크게 부추겼고, 러시아인들과 폴란드인들 사이의 비극적인 적대감을 조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블라디미르가 콘스탄티노플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그가 풍부한 대가를 얻기 위해서 당대에 택할 수 있었던 최상의 정신적, 문화적,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라틴어법이 존재하지 않았고 지역언어를 강조한 것은 이점으로 작용했다. 왜냐하면 그로써 종교가 대중에게 가까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슬라브어 의식(儀式)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민족문화의 발달에 강력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는 강력하고 성공적인 통치자로 기억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 의하여 "사도들과 동등한 러시아인들의 세례자로서 시성되었다. - P63
그러나 어린 시절의 황금기와 마찬가지로, 키예프 루시는 러시아 민족의 기록에서결코 희미하게 남아 있지 않았다. 맑은 샘과도 같은 그 시기의 문학 작품을 통하여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종교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그 시기의신망받을 만한 저술가들에게서, 누구든지 복잡한 근대 세계의 일들에 대한 지침을찾아볼 수도 있다. 키예프 기독교는 푸시킨이 예술적인 감각을 위해서 가진 가치와동일한 가치를 러시아의 종교적 심성에 대해서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기준이자 황금의 척도이자 왕도인 것이다. -페도토프 - P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