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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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육,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인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 P487


어떤 책을 구입하자마자 정독으로 2회독 이상을 해본 것은 오랜만이다. 독서 모임 책으로 이 책을 11월에 샀다가 1회독을 했지만 뭔가 미진한 것 같았다. 모임이 12월로 미뤄졌길래 그참에 정독을 한 번 더 했다. 한 번 더 봤다고 해서 책을 잘 이해했느냐 물어보면 자신감 있게 대답할 수 없겠지만 역시 1회독보다는 2회독이 훨씬 낫다는 것은 확실하다.


파시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나치즘(파시즘)과 대중을 선동하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내용이지만 그들이 연출하는 의식적 행동은 당시 대중에게 감정적 수사로 작용하여 먹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행위는 과장된 연출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떡고물을 주었(기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파시즘은 어떤 사상, 이념과도 결합하여 유연성을 가졌기에 운동성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파시즘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한 설명보다 파시즘이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고 각 지역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추적하는데 집중한다.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공산주의 사이에 제3의 질서가 만들어질 공간이 생긴 것이 직접적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는 자유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 성립된 반자유주의, 이민 인구의 증가로 인한 내부 보수 세력의 결집, 그것을 이용하고 조장함으로써 성립된 민족주의, 인종주의가 배경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파시즘 이데올로기와 파시즘 정권에 반드시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파시즘 정권은 다양한 이해 관계를 바탕으로 여러 과정을 통해 사회 속에서 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시즘이 나오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이자 상황)이 필요했다. 일단 대중이 정치에 전면으로 등장한 것,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해 기득권층이 위협을 받은 것, 좌파 내부에서 분열과 갈등이 벌어진 것이다. 파시즘은 무엇보다 근대성에서 발현된 갈등과 문제점을 현실에서 맞닥뜨린 군중이 대안적인 근대성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점에서 나왔다고 본다. 어쨌든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이 전제 조건이 없는 상황에서 파시즘과 비슷한 형태의 상황은 나올 수 있어도 파시즘이라고 정의내리기 어렵다고.


파시즘은 1919년 3월 23일 밀라노에 모여든 군중이 민족주의에 반하는 사회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파시즘의 기원이 되는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구나... 그러니 나는 파시즘을 이데올로기와 구체적인 실현 형태와 섞어 놓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형태가 두루뭉술하여 그 시작이 언제지 떠올릴 수 없었던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내가 생각한 파시즘의 이미지는 초기가 아닌 후기의 급진화된 파시즘에 가까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이념적인 접근으로 가볍게 시작했으나 사회적 상황과 구체적 현실에 따라 점점 더 과격해져 자리한 형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을 담아 정당을 만들었으나 초기에는 그 세력이 미약했다. 그래서 그들은 부르주아 정당과 결탁하는 선택을 감행했고 대중에게 가능한 이상적 현실을 보여주며 선택과 지지를 호소했다. 

파시즘 정당이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는 뿌리내리는데 성공했으나 다른 곳에서는 실패했던 이유는 지도자의 자질도 있겠지만 사회적 위기가 얼마나 더 큰가, 또 동맹 세력의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황인가에 따라 달라졌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기득권 보수층은 왜 군대를 동원하여 폭력적인 독재 정권을 수립하는데 나아가지 않았는가? 폭력을 선택했다면 대중과 노동자들, 지식인들의 반감에 의해 그들이 좌파의 손에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파시즘이 뿌리를 내리고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급진파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변화의 범위는 줄어들었다. 파시스트들은 혁명이란 단어를 언급하며 대중을 선동했지만 정작 사회경제적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민족 강화라는 명목으로 개인을 공동체에 귀속시켰다. 특히 젊은 세대를 육성하여 자신들에게 충성하도록 하는데 무척 애를 썼다. 모든 파시즘 정권은 국가주의를 강조하여 외국으로부터 자국 문화를 보호하고 통제하는데 주력하면서 문화를 통해 국민 단결 메시지를 내세우는데 주력했다. 파시즘 정권은 경제적으로 저축, 투자를 강조하고 개인의 소비를 줄이도록 설득했으나 대공황, 전후 유럽 경제의 성장률은 1차 대전 이전의 유럽 성장률에도 도달하지 못했으며 일부 국가는 전쟁을 수행하는데 동원할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사실상 경제 개발보다는 전쟁 수행에 더 우위를 둔 것이 아닌가 한다. 파시즘 정권은 개인이 공동체의 삶에 참여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으나 인권, 국제평화 등 전통적 헌법 수호 가치에 비추어 본다면 반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이야기했듯 파시즘이 마지막 급진화 단계에 이르면 자기 파괴(파멸)에 이르게 된다. 정권은 전 국민을 전쟁 수행을 위한 기계로 내던지게 하고 종국에는 민족과 국가마저 거부하는 단계에 이른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끝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조국을 포함한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오늘날에도 파시즘이 있는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1945년 후에는 파시즘이 막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70년대 세계적인 석유 파동, 나아가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경제적, 사회적 위기는 특히 서유럽에 극우 정당이 들어설 수 계기가 마련되었다. 동유럽과 발칸 지역도 선회한 자유주의의 부작용과 영토 분쟁, 소수 민족과의 충돌로 인해 극우적 환경이 마련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저자는 유럽이 시장 자유와 경제 개인주의에 대한 공격이나 시장 규제로 문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거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등의 행위가 없기 때문에 극우정당들이 들어설 자리가 크지 않다고 보았다.

라틴 아메리카에도 파시즘과 비슷한 형태가 있으나 저자는 그들이 대중의 열광적 지지에 기반하지 않았고 팽창주의 노선을 추구할 만큼 자유롭지 않았으므로 독재 정권 또는 폭압 정치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본은 천황제 파시즘 또는 위로부터의 파시즘으로 취사선택한 파시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전제 조건인 대중의 자발적인 행동이 없었는가. 그렇다면 1920년대 벌인 관동 대학살 등에 참여한 일본인들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처럼 <파시즘>은 파시즘의 기원부터 바뀌어가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서술하면서 나라별로 다른 양상을 보였던 이유를 맥락적으로 설득력 있게 잘 그려냈다. 

그렇지만 한계도 보였다. 나는 저자가 과거 파시즘의 배경을 독일과 이탈리아 등 너무 유럽 중심으로 본 것이 아닌가, 파시즘을 전제 정치, 독재 정치나 폭압 정치와 구분하면서 그 범위를 너무 한정적으로 좁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또 젠더적으로는 남성이 지도적 역할을 하고 여성은 보조적으로 그려지는 등의 아쉬움도 있었다.

이 책은 초판이 2004년에 씌여지고 2005년에 번역본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부동산 파산, 실업률의 급증 등의 경제적 위기(로 인한 계급적 갈등), 이민자 증가로 인한 사회적 문제(민족, 인종적 차별로 인한 대내외적 갈등) 등의 현 상황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의 생각과는 달리 현재 세계는 유럽도 극우 정당의 지지율이 급격하게 올라 1,2당이 되기에 이르렀고 연일 MAGA를 부르짖으며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전 세계를 미국 질서에 맞게 다듬으려는 미국의 트럼프가 있다. 일본과 중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국은 아니라 말할 수 있나. 


여러 모로 지금 이 혼란한 정국에 이 책을 읽다니 참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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