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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 서해문집 / 2025년 3월
평점 :
냉전은 종식되었는가? 서문에서 저자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식적으로는 종식된 것이 맞겠다. 그러나 러시아에 푸틴이 집권하고 미국이 패권국의 위치에 있는 동안 세계는 불균형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긴장과 갈등의 위협에 놓여 있다. 저자는 오늘날의 세계가 냉전의 이데올로기의 영향 하에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오히려 종교와 민족, 세력 간 갈등이 심화되어 세계를 더 위협한다고 말한다. 미국은 트럼프가 집권하여 계산기를 두드리며 협상국에 보편 관세라는 미명 하에 폭탄을 돌리고 있고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몇 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 세계에 증오와 차별이 난무하며 배제되는 세력이 늘어나고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는 지금 냉전의 의미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냉전은 이데올로기적 갈등, 생활 양식의 변화, 기술의 발달에 의한 배경 하에 일어났다. 냉전이 진행되는 동안 식민주의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각종 폭력이 발생했다. 레닌의 사회주의 좌파는 몰락한 반면 미국은 패권국으로 발돋움하였다. 그 와중에 사회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소련과 자본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의 힘을 따르지 않으려는 제3의 세력인 신생 국가들이 있었다.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서는 탈식민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의 강화로 각종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이 책은 냉전의 시간을 189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로 보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 냉전의 시기를 1945년 이후, 아니면 더 뒤인 1950년대 이후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냉전의 기원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배경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이 특징적인 것은 미소 양국 체제를 중심으로 서술된 냉전사가 아니라 유럽,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등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냉전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미소냉전과 국공내전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전공은 18세기 이후의 동아시아사이다. 그래서인지 특히 해당 시기 아시아의 역사적 사건을 잘 짚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한계는 있다. 긴 시간과 넓은 공간의 냉전 지구사를 압축적으로 다루었으나 어쩔 수 없이 미소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서술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미소 세력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 있는 서술은 인상적이었다.
1차 세계대전 무렵이 되면 기술 문명에 반대하는 급진 자본주의 흐름이 생겨나는 동시에 식민주의 저항의 흐름이 일어난다. 그리고 반자본주의의 진영인 소련에 맞서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자연스레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대결의 장이 열린다. 2차 세계대전은 미소체제를 바탕으로 하는 냉전의 틀이 만들어지는 공간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서유럽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미국은 이를 마셜플랜으로 복구시킨다. 소련은 이웃하는 동유럽 국가를 공산당 통치 하에 만들면서 공산주의 체제에 안전성 보장을 강화시켰다. 프랑스 공산당은 소련의 협조 하에 인도차이나에 개입했고 미국은 이에 맞섰다. 베를린은 봉쇄되었고 이는 자연스레 분단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매카시즘으로 반공주의의 흐름을 굳혔고 소련은 숙청과 공개재판을 통해 부르주아라고 자칭 일컫는 세력을 철저히 몰아냈다.
한국전쟁은 전세계적으로 냉전을 격화시켰고 나아가 핵전쟁의 위기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중국은 소련과 관계가 틀어진 뒤 인도와 국경전쟁을 벌이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된다. 물론 제3세계는 반둥회의 이후 미소 어느 진영도 거부하며 비동맹운동을 내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미소는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각국의 정치와 경제에 개입하면서 세계를 끝나지 않는 갈등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1960년대 유럽에서 여성 운동을 비롯한 사회적, 정치적 권리 찾기 운동이 벌어지고 서유럽 국가들이 협력의 길에 들어섰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쓴맛을 본 뒤 닉슨과 저우언라이 만남 이후 중국과 관계 개선을 하고 소련과도 무기협정을 통해 최소한 서로에게 칼을 겨누지 않기로 한다. 물론 인도와 중동,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충돌은 미소가 또 철저히 이용하는 우를 범하기는 하지만. 1980년대 소련의 개혁 개방 이후 공산권 국가들에 시장 경제가 도입된다. 1989년 12월 몰타에서 미소회담 때 냉전 종식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1991년 소련 해체 선언이 나오면서 냉전은 끝이 난다. 중국, 소련과 동유럽이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되면서 결과적으로 미국은 승자로 남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후 집권한 클린턴은 시장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자본주의를 강화했고 부시는 미국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지배를 강조했다는 점만 다르다.
냉전은 자본주의/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확산되고 적용되는 과정에서 벌어졌으나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모습은 제각각이었으며 의미도 달랐다. 이처럼 냉전은 시간적 연대와 지리 공간을 넓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주로 냉전이 1950년에서 1970년대 이전까지의 짧은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이 책은 1980년 이후와 냉전이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세계가 형성된 맥락과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이 책이 번역되기 전 저자의 다른 저작인 <냉전의 지구사>라는 책이 나온 바 있는데 이 책이 대중적으로 좀 더 편하게 읽히도록 쓰여졌다면 그 책은 좀 더 학술적인 서적이라고 보여진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책이 워낙 방대한 시간에 대하여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압축적으로 다루다보니 900페이지 가까이 되는 페이지에도 불구하고 각 역사를 자세하게 보기는 어렵다. 이 책을 통해 전체적인 냉전의 역사적 흐름과 맥락을 확인하고 각국의 역사는 관련 서적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좋겠다.
간만에 머리가 즐거운 독서였다. 역시 관심 분야의 책을 읽는 일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요즘 전세계적으로 신냉전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참으로 시기적절한 독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미국과 소련에서 근대 개념은19세기 말에 공통된 출발점을 가졌고, 냉전 시기 내내 많은 공통점을 유지했다. 두 나라는 모두 과거 세 세기에 걸쳐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유럽의 팽창 및 유럽적 사고방식의 팽창에 그 기원이 있었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한 중심-유럽과 그 파생물이 세계를 지배했다. 유럽인이 세운 제국들은 점차 지구 대부분을 손에 넣었고, 이 제국들은 자국민을 세 대륙에 정착하게 했다. 이는 독특히 펼쳐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일부 유럽인과 유럽계 사람은 자신들이 발전시킨 이념과 기술로 세계 전체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 P23
제3세계 운동이 탄생한 것은 바로 신생 독립국을 세우는 과정에 서방이 개입하면서다. 반식민 활동가는 점차 이 용어를 사용했는데, 마르티니크의 활동가 프란츠 파농Franz Fanon이 1961년 《대지의저주받은 사람들》이라는 저서로 대중화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훨씬전부터 드러나 있었다. 이제 비유럽인이 자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미래도 주된 책임을 진다는 인식이었다. 새롭게 탈식민화한 국가 사이의 연대가 세계 다수 민중을 바탕으로 세력권을 탄생하게 한다는 관념이기도 했다. 또한 냉전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동맹국이 얼마나 오만하고 무책임하며 세계의 발전 상황과 동떨어져 있는지가 드러났다는 사고였다. 소비에트권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제3세계의 분노의 화살을 정면에서 맞은 것은 바로 아이젠하워 행정부였다. - P385
닉슨은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소련과 미국의 관계에서 안정된 균형을 찾고자 했다. 그가 추구한 목표는 전쟁 위험을 줄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이 창조한 국제체계에 들어오도록 모스크바를 구슬리는 것이었다. 닉슨이 볼 때, 소련은 혁명을 지나온 국가로, 이데올로기보다는 국가 이익이 더 중요했다. 소련이 미국의 세계 권력에 도전하지 않는 한, 대통령은 기꺼이 다른 초강대국으로 소련을 인정하고 동유럽에서 패권을 유지하게 내버려둘 것이었다. 소련의 러시아 지도부는 어쨌든 동료 유럽인이라는 게 닉슨의 결론이었다. - P571
집권 초기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소련 안팎의 정치 지도를 다시 그리고자 했다. 그가 볼 때, 냉전은 적어도 전 지구적 대결과 대화의 부재라는 고전적 형태로는 이제 의미를 잃은 상태였다. 그의 출발점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아니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였다. 그는 유물론적 분석을 믿는 동시에, 결단력 있는 소수가 사회 전체를 대신해 행동할 수 있는 능력도 믿었다. 그리고 고르바초프는 소련이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유지하고 발전하게 하는 데 서방의 관행을 일부 채택해야 함을 깨달았다. 배워서 적용하는 것은 약함의 징표가 아니라 힘의 원천이라는게 그의 판단이었다. - P768
하지만 국제질서 재편을 위한 고르바초프의 계획은 유럽을 넘어 확대되었다. 그가 볼 때, 냉전을 끝내는 것은 냉전이 장악하기 전인 19세기 말에 존재한 국가 이익 개념으로 돌아가는 것을 넘어선다는 의미였다. 그가 품은 전망은 잘 조직된 세계, 즉 유엔 및 포괄적인국제 협정으로 국제 문제를 규제하는 한편, 냉전 시기에 지역 분쟁에서 양쪽이 모두 너무도 자주 벌인 무차별 학살을 방지하는 세계였다.
세계 전체가 자유와 자유시장이라는 미국식 개념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미국이 확신하는 상황에서, 고르바초프의 전망은 순진해 보였을수 있다. - P770
냉전 이전과 당시, 그리고 그 후에도 모든 이가 유리한 위치를 원한다. 고려 대상이 될 기회를. 종교나 생활방식, 영토 등 어떤 문제든 자신들의 것이라고 여기는 대상에 존중을. 종종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은 자신, 또는 자기 가족보다 더 큰 어떤 것, 목숨도 바칠 수 있는 거대한 이념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냉전은 이런 관념이 권력이나 영향력, 통제를 위해 왜곡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보여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이 인간적 충동이 그 자체로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니다. 정반대로, 만약 핵 절멸로 세계를 위협하는 일이 없이, 병자를 치유하거나 가난을 없애거나 모든 사람의 인생에 기회를 주는 것이 계획이었다면, 우리는 아마 냉전에 투입된 큰 노력을 좋은 시도라고 요약했을 것이다. - P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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