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대한 많은 사람의 오해는 울산이 1962년 울산공업지구지정으로 시작해 1970년대 중화학 공업화로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장생포에서 고래나 잡던 평화로운 마을을 정부가 지정하여 울산에 온산공단, 울산공단이 생기고 석유화학 콤비나트가 들어섰다. 그뒤에 정주영 회장이 현대자동차 공장을 세우고 조선소를 세웠다. 그리고부자도시가 되었다"라는 식의 설명은 중간 단계가 너무 허술할 뿐아니라, 그 전사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옳지 않다. 산업도시 울산을제대로 이해하려면 중화학 공업화의 출발이 하필 ‘왜 울산이었는가‘부터 알아야한다. - P48
울산은 이케다에 의해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을 위한 공업도시이자 석유 비축기지로서 설계됐다. 울산은 ‘공업항, 어항, 연락항, 무역항, 공항‘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분류됐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엮으면 일본의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서 울산의 역할이중시됐음을 알 수 있다. 이케다의 구상 아래 당시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일본은 오키나와에서 출발한 전투기의 급유지로 울산을 선택했다. •급유를 한 후 다시 전투기를 띄워 중국 또는 러시아와 교전 지역인 만 - P50
주와 연해주 등으로 바로 출격할 수 있는 중간 기착지였던 셈이다. 물자는 배를 통해, 인력은 기차를 통해, 전투기는 바다를 통해 움직일 수있는 울산. 모든 것을 병참기지로서의 기능에 최적화해 설계했다고 말할수 있다. - P51
5.16 군사쿠데타가 벌어진 이후 쿠데타 세력이 처음 했던 일 중 하나가 기업인을 부정 축재자 명목으로 가둔 것이다. 당시 삼성 이병철, 삼양사 김연수 등 부정축재자로 몰린 많은 기업인은 군사정권 초기부정축재의 죄를 경감받을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그들은 ‘경제재건촉진회‘를 창립했다. 이들의 대책이 바로 공장 헌납이었다. 자신들이 기업을 경영하면서 형성한 노하우 혹은 암묵지 tacit knowledge를 통해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여 경제개발에 기여한다는 논리였다. 자금은기업인이 외자를 유치하고 정부가 내자를 동원하는 것으로 협상했고결과는 성공적이었다. - P55
경로 의존설은 산업의 젖줄인 정유 공장의 준공, 정유 공장의 부산물로 생겨나는 석유화학단지의 건설로 산업도시 울산이 출발했다는 해석이다. 입지 요건설은 울산이 가지고 있었던 인프라와 지형적 요건 등 객관적 요소에 초점을 둔 관점이고, 커넥션설은 당시 투자와 사업을 추진량을 지녔던 기업가들의 속내와 정치적 결정에 집산이 산업도시로서 타진될 수 있었던 원인을 직간접적으로 보여 준다는 장점이 있다. 경로 의존설은 우발적이든 의도적이든 산업의 기초 인프라가 설치되면서 국가와 산업계에 의해 전략적으로 집중 투자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른 상승작용으로 투자-재투자가 반복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특히 산업화 초기 국토 전반에 균형발전을 꾀하기보다는 한정된 자원을 활용하고 집중 투자해 규모의 경제효과를 누리려 했던, 즉 ‘전략적 산업 정책‘을 펼쳤던 박정희 정부의사정을 고려한다면 경로 의존성은 불가피했다. 향후 산업도시의 궤적 - P60
을 일정 수준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경로 의존설은 장점이 있다. 따라서 이 중 한 가지를 이유를 꼽는 것은 무리다. 입지 요건과 당시 기업가들의 이해관계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울산에서 공업센터가 시작됐고, 공업센터라는 기반을 활용해야 했기에 경로 의존이 작동하면서 중화학공업화가 전개됐다는 것이 합당한 해석이다. - P61
한국 제조업 담론에서 누락돼 있으나 앞으로 핵심으로 삼아야 할것은 소부장 중소기업이나 제조 스타트업이 돼야 한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혁신 기술‘을 개발하거나 소부장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사고에 구체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전국어디에 본사·연구소·공장이 입지해 있는지, 산업 내 연결망이 어떤지, 혁신이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업이나 산업 단위 어느 수준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노사관계는 어떻게 풀고 산업과 기업 내부 인력은어떻게 교류하는지, 지역 사회와 어떻게 결속되어 있는지 등의 경제지리 차원의 구체적 질문이 빠져 있다. 또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글로벌가치사슬 gobal value chain의 문제를 혁신 문제와 함께 살피지 못하기 일쑤다. 더불어 제품을 만드는 생산의 문제나 혁신 기술을 실제로 현장에 - P82
‘어떻게‘ 안착시키느냐의 쟁점도 생략한다. 당연히 노사관계도 그저 ‘노조가 문제‘ 혹은 ‘재벌의 탐욕‘이라는 피상적 수준으로 다뤄진다. 이러니 문제를 제대로 풀기 어렵다. - P83
브래버먼은 제품 개발과 설계(기본, 상세, 생산)를 하는 소수 엔지니어의 기능을 ‘구상‘이라 하고, 설계에 따라 각자 맡은역만 작업하는 노동자의 기능을 ‘실행‘이라 했다. ‘구상과 실행의 분리‘는 엔지니어가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작업을 지시하고, 노동자의 공정에 대한 품질이나 자주 관리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또 노동자와 엔지니어가 생산 과정에서 함께 의논하는 과정이 줄어들었다는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P94
이제는 엔지니어링의 잠재력과 기본기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선배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는 도제 방식만 가지고 울산3대산업의 엔지니어 역할을 해낼 수 없다. 이제 조선소에서는 줄자와 모눈종이로 설계를 하는 게 아니다. 모든 제품설계를 CADComputer AidedDesign 프로그램으로 수행하고, 생산관리의 많은 것은 센서를 거쳐 생산실행시스템인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와 전사자원계획시스템인 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등을 통해 데이터 기반으로 진행된다. 더나아가 4차 산업혁명이 강조되는 지금 IIOT나 디지털 트윈 등 스마트팩토리로 통칭되는 데이터 기반 공정 운영과 자동화, 로봇의 활용, 현장의 3D/4D 구현은 훨씬 더 심화되는 상황이다. 현장에서 그나마 가장 ‘인간적‘인 방식의 일은 조선소나 자동차 공장이나 석유화학 공장이나 공히 노무관리다. 하지만 노무관리자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달리말하면 엔지니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물리적 화학적 수치를 해석하고, 기하학적 공간에 역학적 지식을 활용해 제품을물성까지 고려하여 배치하거나 소재와 부품 사용시 그 영향력이 얼마 - P123
나 되는지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일이 기초적인 공학 지식과자연과학 지식에 기대게 됐다는 것이다. - P124
당시의 고용조정은 정부가 3자 개입을 해서 회사측과 노동자들을설득해서 이룬 제한적 성과였다. 그러나 제한적 성과만으로는 회사와노조 모두에게 남은 깊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다. 이는 두고두고 노사양측에 강한 트라우마를 남겼고서로의 전략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먼저 노동조합과 회사가 갖고 있던 목표가 변했다. 당시 노동조합김광식 집행부는 해고 대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통분담을 주장했으나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동료가 해고당하는모습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경영 위기가 왔을 때는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벌자"는 신념 체계를 형성했다. 더불어 일종의 트라우마에 따른 교섭 전략이 탄생했다. 투쟁적으로 경제적 이윤을 챙기려는 노동조합의 전투적조합주의 전략이었다. 그에 비해 회사는 더 이상 생산직 노동자를 생 - P143
산성 향상의 파트너로 삼지 않는 기조를 강화했다. 현대자동차 정리해고사태는 울산의 ‘남성 생계부양자경제‘의 신화가 다시금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이른바 ‘밥꽃양‘ 사태다.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에 난항을 겪자 협상 카드로 식당 여성 노동자 300명이 지목됐고 그들은 남성 고용 보호를 위해 해고당했다. ‘남성 생계부양자 정규직 노동자‘를 지키기 위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해고를 거래한 것이다. - P144
생산성 동맹은 노사관계가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을 때 가능하다. 포스코의 생산성 동맹은 노사관계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이나 복지뿐 아니라 생산성 관점에서 노동자의 숙련 형성 자체가 영향받을 수 있음을시사한다. 노사관계의 신뢰는 역사적으로 발생했던 노사분규와 갈등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달려 있다. 생산성 동맹은 노사관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좀 더 넓게 보면 국가가 노사관계에 어떠한 방식의 인센티브를 주거나 강제하는지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다. - P189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인데 왜 주주shareholder가 아니라 이해당사자라고 표현할까. 기업이 책임져야 할 것은 주주이고, 사실상노사관계는 ‘외생적 비용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한국이나 영미식자본주의의 사고다. 하지만 생산 현장은 단순히 지시하고 따르는 곳이 아니다. 노동자와 관리자 그리고 회사가교섭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해당사자의 협치라고부르는 것이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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