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인식론적 구도는 독일 이념론자들의 형이상학적 구도로 전환된다. 세계를 "절대이성의 자기전개", ‘절대자의 자기반성"으로 보는 식의,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그래서 반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이들의 사유는 이런 구도를 염두에 두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유한지성은 무한지성이 못 된다. 하지만 그 사이에 날카로운 구분선은 없으며,
유한지성은 무한지성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면서 점차 스스로를 무한지성, ‘신의 관점‘, ‘예지적 직관‘의 차원으로 수렴시켜갈 수 있다. 이것은 곧 정신-속성이 주인공으로 등극한 스피노자주의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 - P510

의 주체/이성이 거의 극한으로 위대한 뉘앙스를 부여받고 있는 장면을 목도한다. - P511

피히테에게 객체는 주체(경험적 주체) 바깥에 있는것이 아니라 주객을 동시에 근거 짓고 있는 주체(선험적 주체) 안에 있다.

피히테는 자신이 도달한 이와 같은 자아, 즉 자기의식을 통한 자기반성의행위 -사행(事行/Tathandlung)를 통해 존립하는 자아를 자유로서의 자아로 파악했다.
이로써 곧 데카르트의 ‘코기토‘와칸트의 ‘선험적 주체‘는 피히테의 ‘자유로서의 자아‘ 또는 ‘사행으로서의, 나‘로 변형된다. 피히테는 이 ‘사행으로서의 나‘가 전통 학문의 토대인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며, 이 원리들을 정초해준다고 보았다. - P516

헤겔은 진리란 단지 실체일 뿐먼 아니라 주체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살아 있는 실체는, 오로지 그것이 스스로를 정립하는 운동인 한에서, 또는 타자화를 매개하는 가운데에서도 스스로임을 놓지 않는 존재인 한에서, 진정으로 주체인존재 또는 달리 말해 진정으로 현실적인/현동적인 존재이다. 주체로서의 실체는 순수하게 단적인 부정성이며, 바로 그렇기에 단순한/미분화된 것의 이분(分) 과정이자 대립자들을 낳는 이중화 과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기해서 서로 맞서는 다자(多者)는 다시금 부정된다. 살아 있는 실체는 근원적인 일자 자체 또는 매개되지 않은 일자가 아니라 바로 이렇게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 자기에로 복귀하는 동일자또는 타자에게서 스스로를 되비추어 - 봄이다. 그것은 자체로써의 생성이며, 자신의종점을 자신의 목표로 전제하고 그것(종점)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는 (목적론적인) 원환이며, 따라서 오직 실현됨으로써만 그리고 그것이 내포하는 목적에 의해서만 현실적이 되는 것이다. (PG, 18) - P533

셸링은 말년에 이르러 형이상학적 사변 자체에 회의를 느낀 듯하다. 그는 (헤겔을 겨냥해) 개념으로만 하는 철학, 거대한 체계 구축이 보여주는 건축미는 있을지언정 현실성이 결여된 철학을 ‘부정철학/소극철학‘이라 칭하고, 이에 대비적으로 ‘긍정철학/적극철학/실증철학‘을 제시한다. 셸링이
"negativ"에 대립시켜 제시한 이 "positiv"라는 개념/가치는 19세기 철학, 나아가 19세기 문명 전체를 특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위상을갖는다.145) 셸링은 독일 이념론에 의해 전개되어 온 사변철학을 경험론적정향으로 되돌리려 했으며, 적극철학을 통해 ‘실존‘과 ‘현실성‘을 사유하고자 했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셸링이 추구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때까지 행해온 형이상학적 사유를 경험론적 정향에 입각해 계속하는 것이지, 이전의경험주의나 유물론으로 회귀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 P571

근대 서구 인식론은 동시대 동북아의 인식론보다 훨씬역동적이고 치밀하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동북아의 경우 근대 학문은 인문과학에서 출발했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사물들과 문헌들을 탐구하는 경험주의적 학문이었다. 그리고 이 학문의 정초로서 새로운 근대적인 주체의 개념화가 있었고, 최한기에 이르러서는 이 주체를 신기를 내포한 형이상학적 주체로까지 고양했다. 이런 과정은 대체적으로 연속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서구의 경우 수학적 물리학이라는 합리주의적 과학과 근대의 새로운 흐름으로 나타난 경험주의 사이에 인식론적 분열증이 있었다. 우리는 로크에게서 이런 분열증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양한 갈래의 모색들을 거쳐 칸트에 의해 이 분열증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았다. 그리고 칸트 사유에 존재하는 다원성을 극복하려 한 일원성의 사유들이 이어졌다. 서구 철학은 이렇게 인식론적 분열증을 앓고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성과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 P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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