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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번역하기
캐시 박 홍 지음, 정은귀 옮김 / 마티 / 2024년 8월
평점 :
시를 읽는 일은 쉽지가 않다. 압축된 단어나 문장을 풀어내어 숨은 의미를 생각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 읽기는 결국 독자가 읽고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캐시 박 홍의 첫 시집을 읽으며 시라는 것이 번역과도 닮았다 생각했다.
외국어를 모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아무리 원문을 그대로 살리는 노력을 한다 해도 번역가의 해석이 깃들게 마련인데 시도 마찬가지로 해석이 개입이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캐시 박 홍은 이미 국내에 출간된 산문집으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인데 여러 권의 시집을 냈을 정도로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한다.
산문집을 읽은 독자로 기대감을 갖고 있었기에 시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한국에서 건너가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 온 저자는 여러 경험들을 중첩하여 겪었다.
부모 세대를 통해 전해 들은 한국의 과거와 낯선 타국에서 다른 인종과 부딪치며 동양인(나아가 한국인)임을 인식하는 일은 두려움과 좌절을 동반한 혼란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시집의 시들은 대체적으로 하나의 결처럼 느껴졌다.
'대상화', '타자화', '어긋남' 등의 단어로 압축되었다.
번호를 매기고 평가를 하는 일은 어떤 기준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원의 동물들을 가두고 인간들은 그 앞에 서서 구경을 한다.
19세기 서양인들은 원주민 등을 동물 취급하여 가두고 평가를 했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자신들이 보고 싶은 대로 타인을 훓는 것은 난도질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서 대상화되어 평가당해왔다.
말도 안 되는 오만함과 이기심, 탐욕이 투영된 시선은 타인을 무너뜨리게 한다.
정작 대상화되는 객체는 원하지도 않았던 일이었는데 말이다.
서양인은 동양인을 특이한(특별한?) 시선으로 훓(었)고, 이제 한국인은 이방인을 경멸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단어들이 생기는 것처럼
미개하다 평가했던 과거를 부끄러워하는 일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 이상으로 공감 가는 내용의 시가 많았다.
인간에 대한 환멸.
같은 여성으로서 느끼는 공감대, 그리고 동양인으로서 느끼는 차별과 혐오.
고정된 시선과 구속, 속박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어려움 등.
믿을 것이 점차 사라져가는 환멸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슬픔과 고통을 내어 보이는 시는 독자에게 위로를 안겨주는 것 같다.
저자의 시가 계속해서 번역되어 나오기를 소망해본다.
둘 다 싸구려 농담을 좋아하지 않았다. "동양인들은 다 붙어 있어요?" "이 날카로운 핀을 잉의 목에 붙여서 두 사람 모두 고통을 느끼는지 좀 보겠습니다." "당신네들은 아기들을 양배추로 변신시킨다는데 진짜예요?" "우리는 착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에요. 우린 당신들한테 바나나를 주잖아요."
대학 다닐 때, 그녀의 수줍음은 ____________로 오해받았다, 그런 부분을 고치려고, 그녀는 피어싱을 했다.
전시 c: 내 입은 구피처럼 열렸다가 닫혔다. 동사들은 잃어버렸고, 생략부호들이 찌꺼기처럼 흘러내렸다.
산산이 부서진 집-상자-침대-속-미친-미친 년.
그는 한국의 방탕함을 일본에 탓했다: "우리가 그 제국주의자 새끼들처럼 무분별하게 씹을 한다니까."
(내 할머니는 한때 일본 성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들은 탄광 노동자로 보내져 옷도 못 갖춰 입고 일했다)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기에 남아프리카의 한 노예 소녀가 팔리게 된 걸까
흥행사로부터 의사에게, 의사로부터 흥행사에게. 나는 그 냉기와 의사들의 손 때문에 죽은 거야.
그럼에도 그들은 내 썩은 몸뚱아리를 전시에 이용했지, 대체-인간이란-어떤-존재야.
우리가 몸과 먼저 연관짓는 것은 늘 고통이다, 가슴에 대고 누르는 주먹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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