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정말 느긋하게 놀았다.
토요일에 궁궐에 놀러가볼까 했었는데 일어나보니 가기 애매한 시간이 되어 있었다. 불금에 술을 꽤나 마시고 자는 바람에… 그놈의 술이 원수야!-_-;
아무튼 읽던 책을 집어 들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은 읽기 시작한지는 꽤나 지났지만 워낙 분량도 많고 페이지 당 글자 수도 많은 편이라 이제야 다 읽었다. 저자의 이론이 정립해가는 과정을 역추적한다는 생각으로 읽어나가면 된다.
공부도 기본 얼개를 세우고 이에 살을 덧붙여 가면서 심화해나가는 과정이라 여긴다.
한 사람의 이론이 체계화하는 과정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었다. 어떤 분야에서 이런 꾸준한 결과물들을 쌓는 작업이 참으로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갖게도 한다.
<갑골문자>는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1999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중국 사회의 모습을 기자의 눈을 통해 들여다본다. 반미, 반제운동이 일어나던 상하이, 베이징 사회, 중국과 북한의 국경에서의 모습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그리고 밀린 드라마를 보느라 시간을 제법 썼다. 초반에는 진도가 안 나가더니 사건의 동기가 수면 위에 오르자 그 이후는 순삭으로 볼 수 있었다.
학습 교재를 통해서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역시 재미가 있어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인데… 아무튼 자막 없이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그날을 꿈꾼다.
또 산책은 이틀 연속 했다. 날이 별로 춥지 않은 듯했는데 호수는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꽝꽝 얼어 있었다. 토요일 날이 맑길래 셔터를 눌렀다.
오늘 아침 <공포의 권력>을 읽었다. 어렵다. 너무 어려워… 읽는 것은 글자, 머리는 물음표가 된다.
오염 의식들은 조각조각 자르고, 표식을 떼어내며, 규칙·범주·사회성을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연루된, 그리고 그것 자체의 절단에 내재하고 있는 어떠한 의미 작용도 가지지 않는다. 이때 우리는 거꾸로 자문하게 된다. 과연 모든 글쓰기는 언어가 우리에게 인식되는 단계인 제2단계의 의식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스스로를 다시 기억하도록 하면서 언어 기호 자체를 가로지르는 이 표식떼기, 즉 오염 의식은 언어 기호의 전(前)조건이 되고 벌써 그것들을 넘쳐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글쓰기란 사실상 고유의 이름 저편에 있는 오랜 권한에 도전하는 주체와 대면하고있다. 이 권한이 내포하는 어머니성은 결코 위대한 작가를 회피하지도 않으며, 게다가 아브젝시옹이라 규정된 것과의 맞대면도 더이상은 피하지 않는다. - P121
그래도 위와 같은 문장에서는 눈이 번쩍 하는 것이 있어서 끝까지 읽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