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함락 1945 걸작 논픽션 26
앤터니 비버 지음, 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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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독일의 공격으로 시작된 독소전쟁은 초반에 독일이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기갑 부대의 기동력과 공군의 비행 운용 능력에 의거하여 승리하며 전쟁의 승기를 잡는 듯 했다. 하지만 900일 간 이어진 레닌그라드의 포위(쇼스타코비치가 7번 레닌그라드를 작곡했지만 정작 레닌그라드에서는 연주할 수 없어 쿠이비예프에서 초연되었고 1942년 여름이 되어서야 레닌그라드에서 연주할 수 있었다)와 결정적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천왕성 작전)를 기점으로 전쟁의 분위기는 바뀐다. 1942년 겨울 추위에 대비가 안 된 독일군은 동상에 걸리는 병사들이 많아졌고 움직이는 거리가 길어진 만큼 보급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12월 소련의 모스크바 반격으로 소련의 공세가 시작된 이후로 전쟁의 흐름은 소련이 주도하고 있었다. 1944년 12월 중순 서부 전선에서 독일의 아르덴 대공세가 성공하였으나(히틀러는 전황을 반전시켰다고 믿었음) 사실상 마지막 불꽃 같은 것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1945년 새해를 맞은 베를린의 풍경을 시작으로 5월 전쟁에 항복하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5개월도 안 되는 시간의 주 무대가 되는 곳은 베를린이다. 짧은 기간 동안을 긴 페이지를 할애하여 저자가 공을 들여 설명하는 덕분에 마치 내가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함과 동시에 괴로움도 느끼게 했다. 특히 베를린 시내의 이야기를 볼 때는 기존에 현장을 다녀와본 적이 있어서였는지 익숙한 지명이 반가우면서도 착잡함을 느끼게 했다. 봄과 여름이면 초록초록한 티어가르텐이 불과 몇 십년 전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로 폐허였을테니 말이다. 


스탈린은 영국과 미국보다 베를린에 먼저 들어가고 싶어했다. 당시 소련의 핵 연구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상세한 연구 정보에 의거하여 가속화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소련은 자국 내에 우라늄 매장층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이 비축해둔 우라늄을 서방 동맹국들보다 선점하기를 원했다. 이와 더불어 관련 장비와 재료를 챙기고 과학 기술자들을 데려가는 일도 필요했다. 

스탈린은 서부 전선에서 별도의 강화 협정이 맺어질까 무척 두려워했는데 특히 독일 서부에서 미국과 영국에 의해 잡힌 다수의 독일군 포로들이 미국과 영국으로 하여금 베를린에 먼저 도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을 극도로 경계하였다. 이는 소련이 베를린을 미리 선점해야 하는 계획에 차질이 있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베를린은 1945년 1월 당시 길어진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했고 시내 곳곳은 폭격으로 엉망이었다. 육군 참모총장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은 1월 9일 히틀러에게 비스와강과 동프로이센 전선에서 소련이 공격 채비를 마쳤음을 보고한다. 하지만 괴링과 히틀러는 잘못된 정보라고 일축해버린다. 

“동부 전선은 카드로 만든 집과 같습니다. 최전선의 한 지점이 뚫리면 전체가 무너질 겁니다.” - P74

동부 전선을 잘 대비하지 않은 것은 히틀러가 독소 전쟁 때 내린 정책 중 가장 큰 실책중 하나일 것이다. 동부 전선을 무사히 지켰다면 독일군의 사상자가 그리 많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약탈, 방화, 강간 등 후폭풍도 없었을 것이다. 


붉은 군대는 1월 13일 체르냐홉스키 장군 지휘 하의 제3벨라루스군이 동프로이센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다. 1월 14일 로코솝스키의 제2벨라루스전선군도 공격을 시작했다. 독일 총사령관 라인하르트 장군이 히틀러에게 전화를 걸어 동프로이센 전선이 위험하다 경고했지만 그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붉은 군대가 동프로이센 땅을 통과한다는 소식에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끔찍한 공포를 불러 일으키면서 많은 이들이 달아나거나 피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식이 늦어 움직이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고 알았다 하더라도 부상을 입거나 몸이 불편하여 정작 움직이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남아 있는 독일인이 거의 없다. 많은 정착지가 완전히 버려졌다.” 그나마도 남은 주민은 대부분 45세 이상이었다. 1945년 1월 12일부터 2월 중순까지 약 850만 명의 독일인이 독일 중부 주에서 자신의 비를 버려둔 채 탈출에 나섰다. 동프로이센에서는 많은 사람, 특히 국민돌격대 소속의 남성과 연약한 여성들이 분노가 무사히 지나가길 기도하면서 숲으로 몸을 숨겼다. 반면 대다수는 소련군이 오기 바로 직전에야 달아나기 시작했다. - P108


연령을 불문하고 소녀와 여성들을 집어삼킨 건 대부분 집단 강간이었다. “붉은 군대의 병사들은 독일 여성들과의 ‘개별적 정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붉은 군대 병사들은 여성들을 공공연하게 소유물 취급했다. - P96


비스와강 전선이 완전히 무너진 뒤로 소련의 전차여단들은 계속 서쪽으로 나아갔다. 하루에 60~70킬로미터씩을 진격했다는데 이는 마치 전쟁 초기에 독일군의 기갑부대의 진격 속도의 빠르기를 떠올리게 한다. 1월 27일 독일군 부대가 오데르강 전선에서 후퇴한 이후 소련군이 얼마 후 오데르강을 건넜다. 이 때 아우슈비츠 부근에서 수용소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이후에도 베를린으로 가는 동안 여러 개의 수용소 현장의 실태를 마주하게 된다. 


1월 30일 히틀러는 독일 국민에게 마지막 연설을 한다. 독일군은 이로써 베를린에 위기가 닥쳤음을 깨닫게 되지만 하인리히 힘러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마라.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죽음과 처벌 뿐이다.”를 강조했다. 이 때 히틀러는 베를린으로 돌진하는 소련 전차여단들의 소식을 듣고 대전차사단을 만들라고 명령하지만 대전차사단은 이미 유명무실한 존재였는데 주요 구성원은 히틀러 유겐트 출신으로 그들이 가진 무기는 자전거에 단 판처파우스트 2문 뿐이었다. 자전거에 싣고 다니다 싸울 때만 고정을 풀고 공격한다는데 이게 과연 얼마나 효율적이었을까. 나치군에 의해 훈련이야 받았겠지만 히틀러 유겐트 대원들의 나이는 대부분 10대 초반이었다. 아이들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2월이 되자 얄타에서 정상 회담이 열린다. 회담의 주요 의제는 폴란드 정부 구성 문제였다. 1944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독일군의 전력이 약화되었을 때 소련이 접근하자 폴란드인들은 위기를 감지하고 소련군이 바르샤바에 도착하기 전 폴란드 저항군이 바르샤바를 해방시킨다며 봉기했다. 문제는 저항군이 보급품이 떨어지며 독일군의 대학살의 대상이 되었고 바르샤바는 피해가 막심했다. 스탈린은 폴란드를 원조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으나 이는 그가 폴란드 정부를 소비에트 정부로 구성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처칠은 전후 소련 세력이 부상할 것을 경계한 반면 루스벨트는 서방과 소련이 공동의 적과 싸우기 위해서 연합해야 한다고 보았다. 루스벨트는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폴란드에 대해서는 기존의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서 규정한 폴란드 동부 영토 대부분을 소련에 병합하기로 합의하였고, 그 대신 폴란드에게는 동독의 일부 지역을 주기로 하였다. 이로써 스탈린은 얄타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챙겼다. 


붉은 군대는 동프로이센 숲에 숨은 독일인들을 수색하며 후방 소탕 작전을 개시한다. 민가에 불을 지르고 약탈하였으며 숨어 있던 국민돌격대원들을 찾아내 피하면 총살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포로로 잡힌 국민돌격대원은 강제 노동을 위해 소련으로 보내졌다. 여성들의 경우 힘든 노동을 하거나 감시병들에게 강간을 당해 성병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것이 자살로 이어지기도 했다. 


스메르시는 NKVD에서 독립한 소련군의 방첩조직으로 "스파이들에게 죽음을"의 준말을 통해 느낄 수 있듯 장교들, 병사들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붉은 군대는 반역죄나 도망(전선 이탈) 등으로 수시로 감시를 받았고 스메르시란 이름만 들어도 적개심을 느낄 정도였다. 1943년 스메르시에 관해 비밀리에 불리던 노래가 있었는데 이후에도 여전히 공공연히 불렸다고 한다.


첫 금속 파편이 연료 탱크에 구멍을 냈지.

나는 T-34에서 뛰어내렸어. 어떻게 그랬는지 몰라.

그러나 그들이 날 특수부에 불렀어.

“이 새끼야, 왜 전차와 함께 불타지 않았어?”

“다음 공격 때는 반드시 불에 타겠습니다.” 내가 대답했어. - P235


2월과 3월에 베를린 맞은편의 오데르 교두보에서 전투가 이어지는 동안 주코프와 로코솝스키는 포메라니아와 서프로이센에 있던 독일군을 괴멸시킨다. 비스와강 건너편의 로코솝스키 휘하 4개 군이 서프로이센 남부로 밀고 나갔으며 2월 말이 되면 주코프와 로코솝스키의 군대가 발트해까지 나아가게 된다. 

독일군은 탄약과 차량용 연료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어 낮에는 움직이기 어려웠다. 반면 소련군은 숲이나 버려진 집에 진을 치고 위장술로 몇 시간 동안 숨어 있다가 방비가 약한 독일군 전선에 침투하여 병사들을 몰래 빼갔다.


3월 말 아이젠하워는 향후의 미군-영국군 작전에 대해 스탈린에게 전문을 보낸다. 핵심은 "베를린이 더 이상 특별히 중요한 목표가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처칠은 격앙적인 반응을 드러냈고 처칠과 아이젠하워 사이에 갈등이 벌어진다. 4월 1일 스탈린은 "베를린은 예전의 전략적 중요성을 잃었습니다. 붉은 군대는 서방 연합군과 합류할 것이고 주력 부대는 5월 하반기쯤 진격할 것입니다." 라며 얼마 후면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했다. 


낮에는 ‘미군’이, 밤에는 ‘영국군’이 강렬한 공습을 이어간 2년 동안, 지하실과 방공호에서는 독특한 파생 문화가 자라났다. 한 일기 저자는 기이한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평가했다. 이 ‘지하실 종족’은 매우 부유한 지역에서든, 아주 가난한 지역에서든 다양한 특성을 만들어냈다. 어떤 이는 총통과 최후의 승리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몇몇 베를린 시민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히틀러를 갑자기 ‘그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주문이나 부적에 집착했다. 많은 지하실 종족은 특별한 미신이나 생존 이론을 발전시켰다. - P424~425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 어떤 것이든 의지할 것을 찾게 된다. 베를린 시민들에게는 이념적 대의명분은 어느덧 사라진 지 오래였다. 4월 23일 프라하의 나치 산하 라디오 방송국에서 총통이 베를린에 잔류하기로 했다는 결정도 시민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았다. 포격에서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베를린은 외부에서 들어온 피란민들, 귀환한 시민들, 몰래 숨어든 군인들 등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시내 지상 건물은 성한 곳이 없었고 언제 폭격이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지하 방공호 대피 생활은 일상이었다. 100만 명이 넘는 이들이 폭격으로 집을 잃었다. 노면 전차의 95퍼센트가 파괴되고 철도의 많은 부분이 파괴로 여전히 물에 잠겨 있었다. 도시의 다른 지역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얼마 안 남은 힘을 써야 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쇠약했다. 그들은 먹을 것을 찾는 데 에너지의 대부분을 써야 했다. 기차 운행이 시작되자마자 수많은 사람이 기차 지붕이나 바깥 쪽에 매달려 먹을 것을 찾아 시골로 향했다. 시내에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아야 했기에 여자들은 폐허 속에서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하기 위해 불 연기를 피웠고 때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폭격을 피해 빠르게 숨어 이동하는 사람들이 다였다. 

하지만 베를린 시민들은 동프로이센, 포메라니아, 슐레지엔에 있는 동포들보다는 훨씬 더 형편이 좋았다. 1940년 220만 명이었던 인구는 1945년 5월 말 19만3000명으로 줄어 있었다. 소련군의 증오를 받은 동프로이센은 점령 지역 대부분이 끔찍한 운명을 맞았다. 땅은 수년 동안 황폐한 채로 방치됐다. 집은 불타거나 가장 기본적인 살림살이가 약탈당했다. - P649~650


4월 30일 히틀러는 아내인 에바와 함께 자살하고 두 시신에는 휘발유가 뿌려져 불태워졌다(히틀러 시신 중 턱은 스메르시가, 두개골은 NKVD가 보관했고 1970년에 나머지 시신을 파내워 불태워 처리했다고 한다). 5월 1일 나치의 선전 장관인 괴벨스와 아내인 마그다도 히틀러 부부 시신이 묻힌 곳 근처에 나란히 서서 청산가리를 삼키고 마찬가지로 시신에 휘발유가 뿌려져 불태워졌다. 그 날 오후 9시 30분 함부르크 라디오 방송국은 중대 발표 연설을 예고했다. 바그너와 브루크너의 7번 교향곡의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대제독 뇌니츠의 연설이 이어졌다. 그는 히틀러가 "군대의 선두에서" 싸우다 사망했다고 말한 다음 자신이 계승자가 된다 밝혔다. 정작 이 때 전기 공급이 안 되어 방송을 들은 독일 국민은 얼마 없었다. 그마저도 전투에서 사망 거짓부렁이라니. 남은 독일군이 베를린에서 탈출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백 명의 친위대와 독일 국방군 병사, 시민들이 함께 빠져나가기 위해 모여들었다. 하지만 소련군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탈출하는 행렬에 포격을 퍼부어 많은 민간인과 병사들이 사망하였다. 


전쟁에서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규율 빠진 병사들은 성적인 면에서 원시적인 남성으로 재빨리 돌아갈 수 있다. 동프로이센에서의 일관성 없는 성폭력과 베를린에서 전리품으로서 성욕 사이의 개념 차이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범죄에 대한 정의는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반면 사회적 그리고 규율상의 제약이 없는 전쟁에서 남성의 어두운 부분이 너무 쉽게 나타날 수 있다. 붉은 군대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심지어 집단 강간은 병사들 사이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한 가지 방법일 수도 있었다. - P516


전쟁을 개시한 자들은 전쟁의 승패에 따라 책임 유무를 따진다 생각하겠지만 전쟁이 한 번 시작되고 나면 피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피해는 결국 약자들,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려 여성들은 성폭력과 강간에 노출되고 그 와중에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거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들은 여성이었을 것이다.  대체 전쟁은 누굴 위한 전쟁인지... 전쟁 버튼은 결코 함부로 눌러서는 안 될 일이다. 


5월 7일 아이젠하워 사령부가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같은 날 독일군 참모총장 알프레트 요들이 항복 문서에 서명을 했다. 다음날 이들은 베를린의 주코프의 사령부에서 서명하면서 전쟁은 마침내 끝이 난다. 


전쟁은 끝났지만 독일과 소련은 막심한 피해를 입은 만큼 오랜 복구 기간이 이어졌고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 지역은 더욱 피해가 컸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동유럽 중 특히 우크라이나는 1930년대에는 스탈린의 집단 공산화 정책으로 인해 대기근을 겪었는데 독소 전쟁으로 독일군과 소련군 양측 모두에 또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물론 폴란드도 그렇지만). 현재는 푸틴이 개시한 전쟁으로 인해 1년이 훌쩍 넘는 기간동안 고스란히 고통을 겪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으로 인해 국민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고 이는 전 세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반도를 비롯한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세계 곳곳이 외교로 풀 일을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가고 있음에 참으로 우려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책을 통해 돌아보는 것은 무척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전쟁 작전이 그려진 여러 장의 지도와 중요 인물들의 경우 본문에서 일화나 사건을 통해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고 논픽션이어서 그런지 더 장면을 실감나게 상상하며 읽을 수 있었다. 또 앞에서도 말했듯 1945년을 시기적으로 한정하여 전시의 일상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전쟁 말미를 훨씬 다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앞으로도 이런 책이 많이 나와서 독자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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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9-25 1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사한 지역에서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이 참 두렵습니다... 베를린은 왠지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었지만, 이제는 한 번 가서 보고 느껴야겠구나 싶어요. 화가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수상 기원!

거리의화가 2023-09-25 15:34   좋아요 1 | URL
우크라이나에서 또 전쟁이 발생하니 유독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지도자들이 과거를 통해서 배우기보다는 당장의 눈앞의 이득에만 몰두하고 외교보다는 자국에만 유리한 조건을 내거는 느낌입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한국의 이야기기도 해서 더 뒷맛이 씁니다ㅜㅜ
개인적으로 베를린 저는 정말 좋았었어요. 기회가 되시면 언제 한 번 가보셔요^^

페넬로페 2023-09-25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리뷰 잘 읽었어요.
저도 완독했는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해요^^

거리의화가 2023-09-25 16:40   좋아요 2 | URL
앗 페넬로페님 안 그래도 읽으실거라 생각했는데 리뷰는 아직 안 올리신거죠? 못 본 것 같아서... 저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책이었어요. 앞으로도 이런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대중 역사서가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잠자냥 2023-09-26 16: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리뷰 올리신 것 봤는데 오늘 읽었습니다.
두껍고 고통스러운 책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거리의화가 2023-09-26 16:28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도 힘든 책 읽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3-10-01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련책들 읽는 계기가 된 독서였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10-03 08:0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리뷰 올리신 거 봤어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독소전쟁사를 훓었습니다. 도움이 된 시간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