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침에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산책을 했다. 아침 기온도 20도 가까이 되니 괜찮겠다 싶었다.
일어나자마자 세수하고 바로 나왔는데 아뿔싸! 아무 것도 안 바르고 심지어 안경도 안 끼고 나왔다.
그 와중에 헤드폰은 챙겨 나와서 토지 18권을 들었다.
이제 6월도 중순이 넘어가니 녹음이 짙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나올 때만 해도 이른 시간이라 해는 안 떴는데 10분쯤 걷다 보니 점점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반팔만 입어 좀 춥다 여겼는데 해가 나고 걷다 보니 추운 것이 가셨다.
안경을 안 쓰니 뵈는 것이 없어서 오히려 시선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선크림을 바르지 않아 기미가 걱정됐을 뿐(어차피 생긴 기미 조금 더 생긴다고 뭐 어떠랴).
이제 여름이 되었으니 한동안 주말에는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해야겠다.
거리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많지 않았다. 화신백화점 앞에도사람은 많지 않았다. 백화점의 임자가 친일파는 아니든 간에조선의 소시민들의 자존심 같은 화신백화점에서 새나오는 불빛은 황황했으나 어떤 적요감이 감돌고 있었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지금은 전시(戰時), 구매력이 감소된 것도 사실이며 그보다 현저히 나타난 것은 물품의 기근이다. 사람들은 어디 어느상점에서 생필품인 무엇을 팔고 있다 할 것 같으면 그곳으로왕창 몰려갔고 그러고 나면 그 상점은 잠잠해진다. 보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돈 있는 사람은 암시장을 찾았고 돈 없는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맬밖에 없었다. 다만 일본인 관공리, 권력 있는 자들은 모든 귀한 물품, 생선이며 버터 치즈에 이르기까지 배급을 받으니 그들만은 전시 밖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아직은 암시장에 가면 값이 비싸 그렇지 대개의 것은 다 구할수 있었다. - P30
살기 위한 몸부림이 보이지 않아도 느껴진다. 그 당시 소시민들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분투했으리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전쟁은 대대적으로 시작되었고 식민지민은 그 때문에 더 팍팍해졌다. 먹고 살기 어려워지면 흉악해지는 것은 인심이 아니겠는가.
요즘 천일염이 공급 대란이라 마트에 가면 그 자리가 비어있다고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임박했는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었다.
이틀동안 한국전쟁의 기원 2번째 권을 읽었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 한반도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을 통해 국가(인물)별 이해 관계와 정치 지형을 살펴볼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의 입장으로 나뉘어서 살펴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대부분의 사건은 얽혀서 서로 영향을 준다. 사건 하나만 덩그러니 벌어지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다.
국제협력주의·봉쇄· 반격이라는 일반적 범주는 한·미 관계를정리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한다. 최초의 공식적 한국 정책, 곧 1943년부터 1947년 초반까지 다국적 신탁통치를 추진한 것은 국제협력주의적 단계를 보여준다. 신탁통치는 한국인이 좋아하지 않았고, 일본 패망 이후 몇 주또는 몇 달 동안 고심한 끝에 봉쇄 정책을 선택한 미 점령군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봉쇄정책은 1947년 봄 공식적으로 승인돼 유엔의 집단 안전보장이라는 국제협력주의의 의상을 걸쳤지만, 그리스와 터키에서 나타난 것 같은 현실 정치로서 봉쇄라는 성질을 지녔다. 그 단계는 1949년 여름,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할 때까지 지속됐지만, 미군이 떠나자마자 반격이라는 대안이 탁자 위에 놓였다. 반격 정책은 전후인 1950년가을에야 실시됐지만 그 전조는 1949년에 나타났으며, 얼핏 보기에 기묘한세력의 지원을 받아 태어났다. - P72
월요일이지만 금요일 퇴근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왜냐! 공연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윤아 솔로 콘서트다.
주말에도 무더웠는데 오늘도 무더울 예정이지만 그래도 공연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한주를 잘 보내야 별 탈없이 공연에 갈 수 있겠지. 컨디션 조절을 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