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과 착취의 구별은 경제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이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두 용어는 (분석상으로는 구분되지만) 서로뒤얽혀 가치를 확대하는 ‘자본 축적‘ 메커니즘들에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 정치적으로 봤을 때는 ‘지배‘ 양식과 관련된 용어들이다. 특히 권리를 보유한 개인·시민과, 예속민부자유한 노예·하위 집단의 종속적 구성원을 구별하는 지위 위계제와 관련된다. - P89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강고한 수탈-착취 결합체를 극복하는 일이며, 그 기반 전체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탈-착취 공생을 유발하는 더 큰 시스템을 철폐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수탈과 착취 모두를 근절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종주의를 극복하려면, 이런 변혁의 쟁취를 목표로삼는 인종 교차적 동맹이 필요하다. 이 동맹은 구조 변화의 결과로 저절로 출현하지는 않으며, 꾸준한 정치적 노력을 통해서만구축될 수 있다. 그러려면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는 착취와 수탈이 공생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 P111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적 재생산과 경제적 생산을 분리하여, 전자를 여성과 결부시키고 그 중요성과가치가 눈에 잘 띄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 사회는 바로 그 사회적 재생산과정에 의존해 공식 경제를만들어낸다. 이러한 분할division + 의존dependency + 책임 회피disavowal의 별난 관계야말로 불안정화destabilization를 야기하는 비법이다. 실제로 D로 시작하는 이 네 단어는 모순을 압축한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생산이 사회적 재생산에 크게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무한히 축적하려는 자본주의의 충동이 바로 그 재생산 과정과 역량을 불안정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 장기적 결과는 자본주의 경제에 필수 불가결한 사회적 조건들에 닥치는 주기적 위험이다. - P121
당면한 ‘돌봄 위기‘의 뿌리가 자본주의에 내재한 사회적 모순,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이 모순이 오늘날 취하고 있는 첨예한 형태인 금융화된 자본주의에 있다고 제시했다. 이 주장이 옳다면, 이 위기는 사회 정책에 의한 땜질로는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해결은 오직 현 사회 질서의 심대한 구조적 변혁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재생산을 탐욕스럽게 생산에 종속시키는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극복이다. 다만 이번에는 해방도, 사회보호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이는 생산/재생산 분할을 재발명하고 젠더 질서를 새롭게 구상해야 함을 뜻한다. - P147
자본주의 사회는 ‘자연‘에 의존해 ‘경제‘를 만들면서 둘을 존재론적으로 분할한다. 이 제도배열은 - P165
가치의 최대 축적을 즐기면서도 자연을 손님으로 초대하지는않으며, 이로써 경제가 (자신이 유발한) 생태적 재생산 비용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도록 프로그램화한다. 그 결과 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수록 생태계가 불안정에 빠지며, 주기적으로자본주의 사회의 날림 건축물 전체에 균열을 일으킨다. 자연을필요로 하면서도 하찮게 여김으로써 자본주의는 자기 신체의필수 기관을 먹어 치우는 식인종이 된다. 자본주의는 우로보로스처럼 자기 꼬리를 먹는다. - P166
자본주의의 생태적 모순은 이 시스템의 다른 구성적인 비합리성이나 불의와 깔끔하게 분리될 수 없다. 환경만을쟁점으로 삼는 환원론적 생태지상주의 시각으로 다른 모순들을무시한다면, 자본주의의 독특한 제도적 구조를 놓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를 자연만이 아니라 국가, 돌봄, 인종적·제국주의적 수탈과도 분리함으로써, 함께 상호작용하는 모순들의 얽힘을 제도화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비판이론이 단일한 틀안에서 동시에 추적해야 할 주제다. - P175
오늘날 민주주의의병증은 고립된 문제도, 부문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 사회 질서를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는 전반적 위기 가운데 특히 정치적인 성격을 띠는 지류다. 그 근본 토대는 이 질서의 힘줄, 즉 사회 질서의 제도적 구조와 구성적 역학에 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것에한정되지 않는 과정을 늘 함께 염두에 둬야만, 사회적 총체성에바탕을 둔 비판적 시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포착할 수 있다. 이 사회적 총체성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많은 날카로운 논평가들이 이를 ‘신자유주의‘라 확인하며, 이는 일리가 있다. - P221
정당하고 효과적인공적 권력은 자본 축적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하지만 자본의 무한한 축적 충동은 자신이 의존하는 그 공적 권력을오랜 시간에 걸쳐 불안정에 빠뜨리는 경향이 있다. 이 모순이 - P226
현재 민주주의 위기의 근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또 한가지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또 다른 곤경들과 긴밀히 얽혀 있으며, 그것만 따로 떼어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227
자본주의는 경제가 아니라 사회의 한유형이다. 이 사회에서는 경제화된 행위 및 관계의 무대가 다른비-경제화된 영역들과 분리돼 그 바깥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경제화된 영역은 비-경제화된 영역들에 의존하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나 몰라라 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정치‘ 혹은 정치적 질서에 의존하면서도)와 구별되는 ‘경제‘, ‘사회적재생산‘ 영역에 의존하면서도)과 구별되는 ‘경제적 생산‘의 무대, 무책임하게 내버려진 수탈 관계에 의존하면서도)와 구별되는 착취 관계의 조합, 비인간 자연의 물적 토대에 의존하면서도)와 구별되는 인간 행위의 사회역사적 영역이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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