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沛公引兵西過高陽高陽人酈食其爲里監門沛公麾下騎士適食其里中人食其見謂曰吾聞沛公慢而易人多大略此眞吾所願從遊騎士曰沛公不好儒諸客冠儒冠來者沛公輒解其冠溲溺其中未可以儒生說也酈生曰第言之騎士從容言至高陽傳舍使人召酈生
酈生至入謁沛公方倨(踞)牀使兩女子洗足而見酈生生長揖不拜曰足下必欲誅無道秦不宜倨見長者於是沛公輟洗起攝衣延生上坐謝之酈生因言六國從(縱)橫時沛公喜問曰計將安出酈生曰足下起糾合之衆收散亂之兵不滿萬人欲以徑入彊秦此所謂探虎口者也夫陳留天下之衝四通五達之郊也今其城中又多積粟臣善其令請得使之令下足下卽不聽足下擧兵攻之臣爲內應於是遣酈生行沛公引兵隨之遂下陳留號酈食其爲廣野君酈生常爲說客使諸侯〈出漢書食其傳〉
○ 夏四月沛公南攻潁川屠之因張良遂略韓地良引兵從沛公略南陽郡南陽守齮降引兵西無不下者所過亡(毋)得鹵掠秦民皆喜
○ 王離軍旣沒章邯軍棘原項羽軍漳南秦兵數却二世使人讓章邯邯恐使長史欣請事咸陽留司馬門三日趙高不見有不信之心欣至軍報曰高用事于中下無可爲者今戰勝高必嫉吾功不勝不免於死邯乃與羽約盟洹水之上已盟邯見羽流涕爲言趙高羽乃立章邯爲雍王置楚軍中使長史欣爲上將軍將秦軍爲前行 〈出史記項羽紀〉
○ 初趙高欲專秦權恐群臣不聽乃先設驗持鹿獻於二世曰馬也二世笑曰丞相誤耶謂鹿爲馬問左右或黙或言馬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後群臣皆畏高莫敢言其過
○ 高前數言關東盜無能爲也及項羽虜王離等而章邯等軍數敗關東皆畔高恐二世怒誅及其身乃謝病不朝陰與其壻咸陽令閻樂謀易置上更立子嬰樂將吏卒入望夷宮與二世曰受命於丞相誅足下麾其兵進二世自殺趙高乃立子嬰爲秦王令子嬰齋當廟見受玉璽子嬰與其子二人謀曰丞相高殺(弑)二世恐群臣誅之乃佯以義立我使我齋見廟我稱病不行丞相必自來來則殺之高果自往子嬰遂刺殺高於齋宮三族高家〈出本紀〉
○ 子嬰遣將將兵距嶢關沛公欲擊之張良曰秦兵尙彊未可輕願先遣人益張旗幟於山上爲疑兵使酈食其陸賈往說秦將啗以利秦將果欲連和沛公欲許之張良曰此獨其將欲叛恐其士卒不從不如因其懈怠擊之沛公引兵繞嶢關踰蕢山擊秦軍大破之遂至藍田又戰其北秦兵大敗〈出高祖紀〉
右秦自莊襄王至子嬰合四十三年子嬰爲王四十六日而降于漢
패공이 고양 사람 역이기를 만나 그의 범상치 않음을 알아보고 자세를 고쳐 잡는다. 진나라는 여전히 강하므로 천하의 요충지인 진유를 항복하도록 하겠다 하고 약속을 지키자 광야군으로 삼았다.
패공이 영천을 공격해 도륙하고 장량으로 한나라 땅을 도륙하게 했다. 이후 장량이 서쪽으로 나아가자 항복하지 않는 곳이 없었고 이 때 군사들로 하여금 노략질을 못하게 하여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2세 황제가 장감을 꾸짖자 두려워하여 그가 사마흔에게 조고의 형편을 알아보게 했다. 조고가 중앙에서 일을 멋대로 행하니 아래 사람들이 불만이 많다 하니 우리가 싸움에서 이기면 그가 우리를 질투할 것이고 지면 우리를 죽일 것이라 말한다. 이에 장감이 항우와 맹약한다.
조고가 관동의 반란군들은 상대할 것이 없다 말했으나 항우의 군대가 매번 이기며 진나라 군대들이 배반하였다. 2세 황제가 노할 것을 두려워한 조고는 칭병하여 조회에 나가지 않았고 사위와 계획하여 자영을 왕으로 바꿔칠 것을 계획하고 마침내 그를 자살하도록 만든다. 자영은 그의 두 아들과 더불어 승상 조고를 그냥 둬선 안되겠다 생각하여 삼족을 멸한다.
진나라는 장량왕부터 자영까지 43년, 자영은 왕이 된 지 겨우 46일 만에 한나라에 항복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