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흰옷을 입은 여자 에밀리 디킨슨의 진주 실

에밀리 디킨슨은 장시를 한 편도 쓰지 않았고 산문이나 소설, 로맨스도 쓰지 않았다. 바로 이 사실때문에 동시대 성공한 여성들과 비교할 때 디킨슨이 더없이 두드러진다.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과 크리스티나 로세티만 해도 우리가 여성 서정시의 ‘문제’로 규정한 것을 해결하려 하면서 예술에 대한 여성의불안을 극화하고 거리를 둔 채 서사 안에 서정시적 폭발을 안전하게 (말하자면 주제넘지 않게) 끼워넣었기 때문이다. - P984

로세티와 브라우닝 같은 작가들, 우리가 보았던 모든 소설가가 허구를 만들어낼 때 몽환에 도취되어 표현했던 분노와 죄의 환상을 디킨슨은 삶과 그녀 자신의 존재로 글자 그대로 수행했다. 조지 엘리엇과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파괴와 체념의 천사에 대해 썼던 반면, 디킨슨은 스스로 그런 천사가 되었다. 샬럿브론테가 자신의 불안을 고아의 이미지에 투사할 때, 에밀리 디킨슨은 스스로 그 아이의 역할을 재연했다. - P986

사실상 정교한 극적 독백으로 이해되는 디킨슨의 시는 확장된 소설 속 ‘대화‘이며, 소설 - P986

의 주제는 가상 인물의 삶이다. 그 인물은 원래 에밀리 디킨슨이지만 스스로 에밀리, 데이지, 에밀리 형제, 에밀리 아저씨, 디킨슨 삼촌 등으로 다양하게 이름 지었다. - P987

디킨슨은 언젠가 히긴슨에게 ‘자연은 유령이 출몰하는 집―그러나 예술은-유령이 출몰하도록 애쓰는집‘이라고 써 보냈다. 이 말은 나와 타자의 관계를 에머슨식으로 분석했다고 자주 여겨지지만, 이 말의 고딕적 은유는 (만약이 말이 고딕적 은유에 의존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면)우리에게 다른 것, 즉 디킨슨이 (여성) 고딕소설에 나오는 자아의 출몰을(여성) 예술에 본질적이라고 생각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디킨슨에게 예술이란 포에시스-만들기보다 미메시스-행동하기였는데, 이는 그녀가 의식조차 사색적이기보다 연극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P990

이 ‘얌전한 독신녀‘는 진단하는 시선과 객관성을 발휘해 동시대 여자들을 관찰했으며, 자신이 관찰한 ‘얌전한 여자들’을 ‘부서지기 쉬운 숙녀들’, ‘부드러운 천사 같은 피조물들‘, 베일 이미지, 심지 - P993

어 단순히 ‘견면 벨벳‘ 소파 쿠션 같은 수동적인 물건으로 묘사했다." 디킨슨은 대부분의 여자들을 꼼짝 못 하게 옥죄는 것이특히 결혼이라는 ‘부드러운 퇴색‘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은 (디킨슨이 특히 찬양했던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에밀리 브론테가 제시했듯) ‘반은 야생적이며 강하고 자유로운‘ 소녀를 여자와 아내로 변모시켜 에너지와 상상력 넘치는 소녀가 품었던 ‘최초의 전망‘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 P994

초기의 디킨슨은 ‘여자와 아내의‘ 일에 대항해 아이로 분하고17어린 시절의 장엄한 장난감에 매혹되었다. 그 결과가 미친 영향력은 사실 매우 광범위했다. 한편으로는 정교하게 고안된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부분적으로 금이 간) 아이 가면에 초기의디킨슨이 보인 강한 집착은 숱한 시작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놀랄 정도로 혁신적인 (문법적 ‘오류‘로 가득 차 있고 미친 아이만 쓸 법한 엉뚱한 문체로 점철되어 있는) 시로 이어졌다. 반면에 아이 가면(또는 태도나 복장)은 결혼의 공포에서디킨슨을 자유롭게 해주고 품위 있는 장난감과 ‘놀수있게‘ 해주었지만, 결국 디킨슨이 절뚝이는 자아가 되도록 위협했다. 즉그 자아는 디킨슨의 고딕적 삶의 허구가 위기에 부딪쳤을 때,
어린 여자아이가 육아실에 갇히듯 아버지의 집에 디킨슨을 감금시켜버렸다. 복장이라는 의미에서 습관이었던 것이 중독이라는 더 치명적 의미의 습관이 되었고, 결국에는 이 두 가지 습관때문에 디킨슨은 내면의 거주자(뇌리를 떠나지 않는 내면의 타자)는 물론 외부의 거주지(피할 길 없는 감옥)를 얻었다. - P999

자신을 어린 시절의 무책임과 인생의 장난감으로 완전히 동일시하면서, 디킨슨은 나중에 스스로‘낮의 정거장‘이라 불렀던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20그런 만큼 디킨슨은 초기의 많은 시에서 ‘무책임한 역할‘을(붉은 뺨에, 바쁘고, 경이감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성인 세계를 바라보는,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에 뒤떨어진 작은 사람 역할을) 맡는다. - P1000

위협적으로 찬란한 태양은 디킨슨에게 일종의 가부장적인 빛의 신을 의미한다. 이는 디킨슨이 1862년 수전 길버트에게 보낸 편지에 썼던 ‘정오의 남자‘에 대한 특별한 사색에서 분명해진다. - P1006

매일 황금으로 치장하는 신부와 약혼녀에게는 우리의 삶이얼마나 지루해 보일까? [・・・] 그렇지만 수지, 아내에게는 […] 우리의 삶이 세상 다른 어떤 삶보다 더 소중해 보이겠지. 너는 아침 이슬을 맘껏 머금은 꽃을 보았지. 똑같이 아름다운 꽃들이정오에는 강력한 태양 앞에서 고통으로 머리를 숙이는 것도 보았고, 너는 이제 이 목마른 꽃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슬뿐이라고생각하겠지? 아니야, 꽃은 햇빛을 갈구하고 불타는 정오를 갈망할 거야. 햇빛이 자신을 태우고 상처를 입혀도 말이야. 그들은 평화롭게 지내왔어. 그들은 정오의 남자가 아침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 이제 그들의 삶은 그의 것이야. 오, 수지,
[・・・]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 가슴은 무너지는 것 같아.
그래서 가끔은 스스로 굴복해버릴까 봐 온몸을 떨어. - P1007

어떤 의미에서 에밀리 디킨슨은 아버지를 두 명 두고 있는 셈이다. 한 명은 태워버릴 듯이강렬한 남자, 바이런의 영웅 같은 사람으로 ‘홀로 엄숙한 책들을 읽고 결코 놀지 않으며‘, ‘마음은 순수하지만 무섭고 자신을 ‘더 많은 땅에‘ 펼쳐내고자 하는 사람이다. 다른 한 명은 ‘여성 참정권론자‘를 공격한 위풍당당한 공인이며, 히긴슨에게 ‘마르고 건조하며 말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어 ‘에밀리의 삶이어떠할지 추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 P1009

에밀리 디킨슨이 아버지를 문학적 형상의 종류로 의식했다는사실은 그녀의 반항과 불가피했던 감금을 모두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제인 에어조차 세인트 존이 자신을 원칙이라는 철의수의로 에워싸려하면 자유로워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만 제인에게는 몽환의 경지에서 자신을 불러내는 로체스터가있었다. 디킨슨에게는 세인트 존과 로체스터, 사회의 기둥과 독선적인 영웅 모두가 그녀의 아버지/주인/연인이라는 하나의 형 - P1012

상에 압축되어 있다. 그것은 신과 사탄이 하나의 ‘정체 모를 아버지‘ 형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과 같다. - P1013

디킨슨과 비교할 때 브론테의 산문은ㅡ『셜리』의 형식에 대한 브론테 자신의 묘사를 인용하자면 - 월요일 아침처럼 비낭만적‘이다. 39 그러나 디킨슨이 자신의 절망을 더 ‘비뚜름하게’말하긴 해도 그녀도 거의 정확하게 같은 진실을 품고 있다. 디킨슨도 죄책감을 느끼고 두려워하며 자신의 주인에게 인정받기를 애타는 마음으로 기원하며 회신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쇠약해지고 수척해져간다. - P1021

디킨슨의 폐소공포증은 (존 코디가 지적했듯) 광장공포증과 번갈아나타난다. 이 둘은 서로에게 필요한 보충물처럼 기능한다.44 그런데 디킨슨의 영혼이 ‘붕대로 감긴 순간‘은 번번이 ‘탈출의 순간‘으로 대치되었다. 이 탈출의 순간에 디킨슨의 영혼은 성적한계를 격렬한 기세로 초월해 사방에서 폭탄처럼‘ 춤추며, 여성의 복종, 수동성, 자아 포기라는 그림자 같은 봉쇄로부터 ‘정오와 낙원‘이라는 남성적 자기주장으로 달아난다.[] 512편] 앞으로 보겠지만, 그런 탈출을 위한 시인의 전략은 디킨슨이 취했던 패배의 가면이 그랬던 것처럼 다양하고 창의적이었다. 사실상 많은 경우 패배의 가면은 승리의 얼굴로 변형되었다. - P1024

디킨슨의 목소리는 자신이 상상하는 바대로 사형선고를내렸다. 조지 엘리엇의 암가트처럼, 디킨슨은 자신의 ‘복수를[자신의] 목에걸고 다니며 죽음을 말하고, ‘칼날 같은 단어’를 - P1030

디킨슨은 주인의 적을 향해 강력하고 ‘단호하게 엄지손가락’에 힘을 줌으로써 남성적인 권위를, 이른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실존주의적인 용어를 빌려 말한다면 일종의 ‘초월성’을획득하는 것이다. - P1031

하얀 선거, 백열등, 흰색(또는 색이 아닌 색)은 가상의 사람으로서 에밀리 디킨슨의 은유의 역사를 통틀어 핵심적이다. 그의미의 모호성은 그녀의 삶으로 만든 허구라 할 수 있는 ‘진주실‘의 중심 가닥을 구성한다. 1860년대 초반 내지 중반의 어느때쯤, 아마도 1862년, 확실치 않은 사건이 많이 일어났던 시기에 디킨슨은 그 유명한 흰옷을 입는 습관을 들였다. - P1035

디킨슨에게 흰색은 백지상태, 텅52빈 페이지, 살지 않은 삶의 순수한 가능성(‘잃어버린 모든 것‘)을 상징함과 동시에 겨울의 완전한 피로, 북극, ‘극지에서의 속죄‘, 사탄 부대의 이동, 메리 셸리의 불경한 삼위일체가 만나는빙하 황야를 암시한다. 따라서 흰색은 퍼시 셸리의 「흰 산」이그러하듯 창조/파괴의 원칙에 통합된 하늘의 영광과 지옥의 무시무시함을 의미한다. 아이와 유령과 모두 극적으로 연관된 그것은 백합의 발(전족), 거미의 거미줄, 부드러운 데이지의 꽃잎,
그리고 많은 일을 겪은 진주의 꺼끌꺼끌한 겉면이 발하는 색이다. 마지막으로 멜빌에게도 흰색은 중요했지만, 19세기에 흰색은 여성의 색이었음이 분명하고 매번 여성의 또는 여성에 의한상징으로 선택되었다. 디킨슨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 P1039

여자는 순백에 내재된 그런 약함을 어떻게 초월할 수 있을까? (빅토리아 시대의 여러 소설을 포함해) 많은 신화와 이야기가 보여주듯, 한 가지 방법은 흰색 자체의 복잡한 상징성을 더발전시켜 사용하는 것이다. 수동성이 순응과 저항이라는 의미를 모두 함축하는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 순백은 초대를 의미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거부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눈은 태양에쉽게 영향을 받지만, 그것은 열을 거부한 결과다. 처녀성virginity은 단어의 어원이 남성다움이나 힘을 의미하는 남편vir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신화 속 사냥꾼과 달처럼 하얀 디아나의 모습이 우리에게 알려주듯) 자기 안에 있는 일종의 갑옷을 나타낸다. 따라서 눈처럼 하얀 ‘처녀‘에게 처녀성은 약함이 아니라힘을 뜻하고, 신랑에게 바치는 선물이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 주는 양성적 완전성, 자율성, 자족성이라는 은혜다. - P1041

19세기에만 국한되지는 않지만, 멜로드라마적인 고딕물과함께 흰색은 특히 19세기에 죽음, 유령, 수의, 영혼의 ‘방문자‘
를 의미하는 색이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해리엇 비처스토가 냉소적으로 말했듯 ‘유령 가족의 일반적 특성은 흰 수의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 스토는 그녀의 캐시와 에멀라인을 흰 이불로 에워싸 미친 여자가 아닌 미친 여자 유령으로 분장시킴으로써 그들이 사이먼 리그리의 억압에서 탈출하도록 처리한다. - P1047

거미의 성취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디킨슨 세계의 용어를 감안하면)거미는 ‘그‘가 방적의 ‘실체 없는 거래‘를 한다는 점에서 여성적인 것처럼, 침묵 속에 있다는 점에서도 여성적이다. 비밀스럽고 조용하게 춤을 추는 것도 그의 과묵함을 강조하는데, 실 뽑는 일과 베 짜는 일처럼 춤추기는 예술에 대한, 특히 여성 예술에 대한 디킨슨의 은유 중 하나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 P1069

디킨슨은 자신에게도 문학적으로 불확실한 순간이 있었고,
심지어 절망의 순간도 있었지만, 그것이 완전히 잊히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흰옷을 입은-여자‘로서 디킨슨이 입었던 여러 복장은 심리적 파편화를 상징하지만, (또는우리가 앞으로 보겠지만 그 파편화 때문에) 그녀는 자기 삶의어두운 틈새에서 진주 실을 자아내는 거미-예술가가 불가해한방식으로 승리할 것을 깊이 확신했다. - P1072

언젠가 디킨슨은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죽은 자는0 너무 빨리 잊힌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그들은 나를 기억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킨슨이 의미한 ‘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의 시로 짰던 그녀의 삶에 대한 정교하고도 허구화된 태 - P1076

피스트리였음이 틀림없다. 그 태피스트리에서 각각의 시는 어느 정도 그녀가 만나리라 상상한 얼굴들을 만나려고 준비한 얼굴이었다. ‘그들이‘ 기억해야 할 또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여성 예술가로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을 바꿔 쓰면) 영원을유혹하기 위해 시간의 산물을 이용한 방식이다. - P1077

이 모든 여자들에게 바느질은 방어적인 바느질이 필요하지않을 세계에 대한 전망을 감추는 동시에 드러낸다. 에밀리 디킨슨도 마찬가지였다. 거미의 은유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디킨슨 삶의 틈새 안에 거주한 거미 예술가의 머릿속에는 마술적인 장소에 대한 환상, ‘낙원의 태피스트리‘가[] 278편] 있었으며, 거미 예술가는 그녀가 알고 있는 낙원의 이미지를 자신의진주 마법으로 짜고 있었다. 이 낙원에서 여성 예술가는 자신과 자신의 의미를 모호한 그물망으로 위장한 전복적 거미가 아니라 꾸밈없이 빛나는 모습일 것이다. 여기에서 여성 예술가는더는 ‘북극‘의 외로움 속에서 밤새 바느질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마침내 ‘동쪽‘의 새벽 햇살 속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큰소리내며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 P1083

에밀리 디킨슨의 시 묶음이 어렴풋이 그려낸 낙원은 교묘하게 위장된 시적 생애의 말 없는 시작부터 침묵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에밀리 디킨슨이 공공연하게 거주하기를 열망한 곳이다. - P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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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2-26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거리의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2-12-27 09: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알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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