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의 소설 중 <동방의 애인>이란 작품은 생소했다.

지난 달 <독립운동 열전>을 읽으면서 이 소설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 작품은 1930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소설이었으나 단 39회 만에 중단되어 미완성인 채로 끝나버렸다. 결론도 없고 내용이 전개되다 뚝 끊기니 작품성을 평가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연재가 중단되었던 것은 당시 검열 문제였다.

왜 중단되었을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일단 독립운동 계열 중에서도 혁명을 논하는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모델은 박헌영, 주세죽, 김단야) 마지막 이야기의 배경이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국제당 청년대회장이다.
그리고 무산자 계급운동을 논하는 사회를 위해 뛰어든 청년들의 이야기가 고깝게 보일리는 없었을 것 같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1920년대 상해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프랑스 조계지, 황포탄 등 우리에게 제법 익숙한 지명들이 나온다. 청년들이 혁명을 위해, 신념을 위해 이곳으로 왔지만 타국에서 생활하기에는 무척 어려웠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젊은이답게 사랑을 한다.

사상 투쟁, 독립 운동, 혁명 운동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남녀의 애정 이야기의 비중이 높아서 당시 유행하는 통속 소설에 배경만 덧씌웠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1920년대 상해 당시 살던 조선인 교민들의 생활은 어떠했을까를 확인해볼 수 있다.

재밌게 읽고 있다가 갑자기 끝나버려서 아쉽지만 그만큼 심훈의 글 솜씨는 좋았다. 다만 주인공만 실제 모델로 했을 뿐 이야기의 전개는 그들 실제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작가 심훈은 1920년대 초 상하이에 실제로 체류하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사회를 경험했기에 더 그럴 듯한 소설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풍경 묘사가 기가 막히다).

첫 겨울 오후의 뉘엿뉘엿 넘는 햇발이 불란서공원의 무성한 숲 사이로 부챗살같이 퍼졌다가 연당의 잔잔한 물결 위에 눈이 부시도록 편편이 금비늘을 굴리고는 전기불과 교대하여 지평선을 넘었다.
온 겨울 눈 구경을 하기 어려운 강남의 기후나 그날 저녁은 겨드랑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해빙머리와 같이 쌀쌀하면서도 부드러웠다. (…)
저녁 안개 속에 거슴츠레한 전등불 밑으로 한 쌍 두 쌍 쌍쌍이 모여들었다가는 숨바꼭질을 하듯 으늑한 숲 사이로 흩어진다. 나무 끝을 희롱하는 바람소린 듯 그들의 속삭이는 이야기는 들릴 듯 말듯 귓바퀴를 간지럽힌다. 불란서 사람들이 모이는 구락부에서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독주가 이었다가는 끊어지곤 한다. (P64~65, 동방의 애인)

<장강일기>에도 정정화 여사가 심훈을 만났음을 묘사하는 대목이 있었다.

심대섭이 자주 우리집에 들렀다. 그는 특히 후일 임정의 선전부장을 지냈으며, 평생을 통하여 성엄의 가장 친밀한 친구였던 일파 엄항섭과 상해의 명문 지강대학교 동창으로서 그때도 일파와 함께 자주 찾아왔었다. 심대섭은 귀국 후 심훈이란 필명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나는 귀국 후 그의 미망인과도 알게 되었으며, 그의 저서는 거의 다 읽었다.(P67, 장강일기)

참고로 뒤이어 같은 책에 등장하는 <불사조>라는 작품은 <동방의 애인> 연재가 중단되고(1930년) 이듬해 예고한 뒤 연재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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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12-13 0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훈 하면 계몽운동 소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상록수》던가... 아마 학교 다닐 때 국어 시간에 배우고 읽어보지는 못했던 것 같네요 그때 소설은 거의 학교 다닐 때 조금 들어보기만 했네요 소설 연재가 안 된다 해도 끝까지 썼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끝까지 썼다고 해도 그게 남았을지 모르겠지만...


희선

거리의화가 2022-12-13 09:08   좋아요 1 | URL
<상록수>와 <그날이 오면>은 유명한 작품이죠. 특히나 <상록수>는^^
1930년대는 검열이 무척 심했을 시기였나봅니다. 1925년 치안유지를 위한 법이 생기고 나서(사실상 공산주의자 색출 및 독립운동가 색출) 시기니 더 그랬을 듯하네요. 작품이 잘려서 아쉽지만 어쨌든 실제 인물들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그들의 실제 삶을 통해서 이후를 추측해보는 수밖에 없겠지요^^

레삭매냐 2022-12-13 0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마 당시 의식 있는 지식인
이라면 식민지 치하 조국의
비참한 현실에 눈 감을 수
없지 않았을까요.

대다수 지식인들은 그 반대
의 길을 걸었지만 말입니다.

거리의화가 2022-12-13 09:10   좋아요 1 | URL
마음으로는 모두들 눈감지 못했겠죠. 하지만 결국 마음만큼 행동이 따라주는 것은 또... 쉽지 않아 보입니다ㅠㅠ 물론 앞서 있는 지식인들의 행동은 모두 다 옳은 방향으로 가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당시 민중들이나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