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임신중지에 다가가 이를 경험하고 기억할 때 가질 수 있는 의미는 철저히 제한돼 있다. 여성의 선택을 분명히 제한하자고 호소해서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수사가 제한을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이때 선택이라는 개념은 임신중지의 맥락에서 규범화된다.
임신중지의 탈정치화는 선택이라는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임신중지에 들러붙은 감정은 임신중지의 사회적 의미를 자연적인 것처럼 만들고, 임신중지에 대한 가정을 진실로 유통하는 주요 수단이다.
임신중지를 선택한다는 의미에 들러붙어 그 의미를 바꿔 놓는 감정들은 이미 ‘줄 세워진’ 행동 규범에 여성을 복귀시켜 ‘일직선으로 정렬하는 장치’다. ‘어려운 선택’이라는 서사는 여성이 임신중지를 함으로써, 자연히 또 자동적으로 ‘행복의 대상’인 태아에게 이끌리던 발걸음을 반대로 돌린다고 전제한다. 이때 여성이 임신중지를 하는 여러 이유(대학을 마치지 못해서,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없어서, 독신이어서 등등)가 강조된다. 이런 식으로 임신중지를 정당화하는 일은 흔하다.
감정경제는 충돌하는 두 여성성을 화해시키려 한다. 하나는 여성의 자유를 ‘선택’을 통해 설명하는 포스트페미니즘 담론이다. 다른 하나는 ‘모성’을 여성의 정박지로 고정하는, 엄격히 제한된 젠더규범이다. ‘어려운 선택’과 ‘태아중심적 애통함’을 인용하는 일은 임신중지 여성에게 ‘모성적 주체’라는 문화적 생명력을 복구해 준다.
임신중지를 숨기는 여성 비율이 높다는 것은, 임신중지를 겪어 본 적 없는, 더군다나 임신중지는 고사하고 임신도 하지 않을 남성들이 임신중지를 재현하는 장본인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떻게 여성이 임신중지에 접근하고, 이를 경험해야 하는가’라는 기대가 재현의 영토를 지배해, ‘좋은 여성’에 관한 젠더 전형ㆍ이미지ㆍ이상에 길을 터 준다.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은 임신중지를 겪은 여성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길 거부한 ‘이기적인 어머니’. 임신중지에 어떤 일이 따르는지, 그 심리적ㆍ감정적 후유증이 어떠한지도 모른 채 아이를 죽인 ‘불운하고 취약한 희생자’. 이와 반대로 여성이 임신중지에 접근하는 것을 지지하는 이들은, 여성에게 임신중지를 ‘강요하는’ 경제적ㆍ사회적 상황을 강조한다.
나는 임신중지가 축하받을 일이라고 본다. 임신중지는 의도치 않게 임신을 한 여성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재생산 가능한 연령대의 여성이 재생산과 분리된 이성애 섹스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일이다. ‘의도치 않게 임신한 여성’이라는 위치는 담론적인 동시에 물질적이다.
‘좋은 어머니’는 젠더ㆍ인종ㆍ계급ㆍ섹슈얼리티 등 정체성이 교차하며 형성된 주체로서, 그 정체성들의 역학관계를 떠받치고 강화했다. 다른 말로 하면, 임신중지 재현은 고정된 사회질서를 만드는 수단, 즉 고정된 질서와 그 안에 자연화된 역학관계가 도전받을 때 거기에 대응하는 수단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무언가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주체가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처럼 비쳐야 한다. 그래야 규제가 유지된다. 이 책에서 보았듯, 반임신중지 운동 역시 ‘정보를 갖춘’ 선택이라든지 ‘진정한 선택’을 옹호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정책의 목표는 (물론 이게 바로 그 효과이기도 한데)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즉 오히려 여성이 나중에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게끔 방지하는 정책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오늘날 선택의 주체는, 이를테면 여성이 무한한 선택지를 가졌고, 행복의 대상인 아이에게로 향하기 마련이며, 따라서 그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모성을 선택한다고 하는 식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여기서 그 주체는 여성의 재생산적 신체라는 차원에서, 선택에 깃든 긴장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균형은 깨지기 쉽다. ‘자율성’과 ‘선택’이 있는 곳에 ‘제약조건’과 ‘의존’이 있다. 개인의 선택은 정치적이다.
임신중지 법이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근원은 아니다. 법은 젠더ㆍ임신ㆍ모성 규범을 반영하고 강화하는 장치일 뿐이다.
‘자유’를 ‘선택’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평등의 구조적 양식을 은폐하는 일이다. 재생산 정의를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법을 내세울 때 비슷한 효과가 난다.
괴로움ㆍ애통함ㆍ수치라는 지배적인 각본과 그 대안이 되는 문화적 서사는 늘 같이 존재해 왔다. 이 책의 경우 전자에 주목했고, 그런 각본에 따라 임신중지를 재현하는 영토는 획일성을 띤다. 그러나 문화 지형을 살펴보면 이질성이 뚜렷하다. 이를테면 몇몇 프로초이스 활동가는 임신중지로 여성에게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심리적ㆍ감정적 효과란 없다고 꾸준히 말해 왔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룬 임신중지 서사 헤게모니는 기본적으로 ‘반임신중지’ 입장이다. 이는 소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사자 서사에 근거한 임신중지 정치는 개별 경험의 정치로 환원될 위험이 있다.
임신중지 정치가 임신중지를 하려는 혹은 하고 난 여성의 느낌으로 환원되면, 그 느낌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광범위한 사회ㆍ구조ㆍ정치적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이를테면 양육에 대한 결정, 또 그런 결정에 대한 다른 이들의 평가와 판단을 손쉽게 하거나 감추는 ‘젠더화된 노동분업’과 ‘계급ㆍ인종에 기반한 불평등’, 임신중지와 피임의 구별이나 원치 않은 임신을 막기 위해 여성에게 부여되는 책임 등 역사사회학적 질문, 임신의 조건에 관한 존재론적 질문 등이 있다.
임신중지의 감정 경험을 획일적으로 재현하면 자연화된 여성 주체가 만들어진다. 그 감정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말이다. 여성의 삶과 열망의 이질성은 임신중지의 단일한 서사에 포착될 수 없다.
‘무엇이 행복한 임신중지의 가능성을, 가장 좋게 봐서 규범을 위반한 것, 가장 나쁘게 봐서는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가?’ 임신을 원치 않은 여성의 관점에서 임신중지를 바라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줄 유일한 수단이 있고 그 수단이 비교적 직접적이며 고통을 주지 않는데도 자꾸만 불행으로 재현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터무니없다.
임신한 주체의 다양성을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하고자 하는 캠페인은 프로초이스 운동과 학계에 반드시 필요하다.
임신의 불확정성을 인정한다면 유산 혹은 임신중지에 뒤따르는 다양한 경험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유산한 여성, 한때 원했던 임신을 중지한 여성, 원치 않은 임신을 중지한 여성은 다양한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런 경험들은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이 아무리 임신을 ‘아이와 어머니’라는 단일한 재현에 묶어 내려 하더라도, 서로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임신중지 여성을 평가하려는 고정된 규범이 없을 때, 수치나 죄책감은 임신중지의 정동적 지형에서 사라질 것이다. 모성을 해체해 여성에게 행복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임신중지를 분명 여성의 선택으로 새롭게 프레이밍하되 자율적 행위자가 내린 선택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획에는 오늘날 임신중지의 감정으로 인식되는 것들에 균열을 내는 과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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