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시대 통론

고대는 본디 귀족정치였으므로, 정권의 소유자가 곧 재산의 소유자이자 지식의 소유자였다. 즉 정치경제상의 통치계급이 곧 지식계급이었으니, 이른바 관료와 스승이분리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귀족들은 집정하여 일을 맡은 만큼 자연히 책을 저술할 여가가 적었고, 또 이미 정권을 잡고 있어서 어떤이상(理想)이 있으면 실제 행위로 나타내어 "정치와 교화의 전장"으로써 실현할 수 있었으므로, 반드시 책을 저술할 필요도 없었다. - P28

중국철학사상 철학 학파의 수에서나, 토론한 문제의 다양성과 그 <범위의 광범함에서나 그리고 연구 흥취의 농후함과 기상의 왕성함등에서나, 자학시대가 제일이었다. - P29

춘추시대(春秋時代)부터 한나라 초에 이르기까지는 중국역사상 일대 해방의 시대였다. 당시의 정치제도, 사회조직, 경제제도에 모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고ㅣ - P29

고대의 봉건제도하에서 천자, 제후, 경대부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인민의 주인이었다.
서인은 자신이 토지를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직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주인인그들의 농노(農奴)일 뿐이었다. - P33

봉록의 세습제와 정전제가 파괴되고, 서민이 해방되어 사유재산을 경영하여 부호가 된 것인데, 이는 고대 경제제도의 일대 변동이었다.
"이런 여러 대변동은 춘추시대에 태동하여 한나라 중엽에 완성되었다. 이 수백 년간은 중국사회 진화의 일대 전환기였다. - P35

한 사회의 구제도가 날로 붕괴되는 과정 중에 자연히 보수적인경향의 사람들은 "세상풍조가 예전과 같지 않고, 인심이 날로 하락하는 것"을 목도하고, 마침내 구제도의 옹호자로 나서게 되는데, 공자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그런데 구제도가 아직 동요하지 않을 때에는 그것이 구제도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존경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나, 구제도가 이미 동요했다면 구제도의 옹호자는 당대의 군주 및 일반인들이 믿고 따르게 하려면 반드시 옹호하는 이유를 밝혀 구제도에 대한 이론상의 근거를 부여해야 했다. 이런 종류의 작업은 공자가 실마리를 열었고, 그후에 유가학파가 계승했다. 유가의 공헌은 바로 여기에 있다. - P36

『한서』 「예문지(藝文志)」는 말한다.
제자 10가(諸子十家) 중에서 일정 수준에 이른 것은 9가 뿐이다. 그것들은모두 왕도(王道 : 주왕실 중심의 정치체제)가 이미 쇠미하고 힘의 정치를 구사할 즈음, 당시 군주들의 희로의 취향이 달랐던 데서 비롯되었다. 그리하여 9가의 학술이 벌떼처럼 일제히 일어나, 각기 한 측면을 바탕으로 스스로 진리로여긴 내용을 숭상하여, 그것을 가지고 변설을 구사하여 제후와의 영합을 도모했다. - P37

"한 무제(漢武帝: 재위 140-87B.C.) 초기에, 위기후(魏其侯)와 무안후(武安侯)가 재상에 임명되면서부터 유가는 융성했다. 드디어 동중서의 대책문에서는 공자를 공공연히 찬양하고 여타의 백가를억눌러 배척했는데, 학교의 관청을 세워 주(州), 군(郡)마다 수재(茂材 :秀才)와 효렴(孝廉)을 천거한 것은 모두 동중서로부터 비롯되었다." - P40

동중서의 주장이 시행되면서 자학시대(子學時代)는 끝이 나고,
동중서의 학설이 수립되면서 경학시대(經學時代)가 시작된다. 대체로 음양오행가(陰陽五行家)의 사상은 유가(儒家)와 결합되어, 동중서에 이르러 체계적으로 표현되었다. 이 이후부터 공자는 신(神)으로, 유가는 유교(儒敎)로 변했다. 소위 고문학(古文學)이 출현하고나서야 공자는 점차 인간으로, 유교는 점차 유가로 회복되었다. - P41

"설령 종이 되더라도 성내는 기색은 없었으니", 이미 사람들은 그런 신경제질서에 안정했음을 알 수 있다. 한나라는 비록 중농억상(重農抑商) 정책을 펴기는 했지만 이런 사회적, 경제적 질서를 결코 근본적으로 변경할 수는 없었다. 춘추시대부터 개시된 대과도기는 여기서 종결되고, 한때 왕성했던 사상도 여기서쇠했다. 이 이후부터 현대 이전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치·경제 제도와 사회조직은 왕망(王: 재위 8-23A.D.)이 정치적 힘으로써한때나마 강제 개혁한 것 외에는 근본적인 변동이 없었기 때문에, 자학시대의 사상적 특수 상황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 P42

고대철학은 대부분 바로 과거의 이른바 제자의 학(學) 안에 존재한다. 따라서 중국철학사상 고대는 자학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제자를 사마담은 음양(陰陽), 유(儒), 묵(墨), 명(名), 법(法), 도덕(道德)의 6가(家)로 나누었다. 가(家)라고 이름한 이유는 제자가 모두 개인적으로 강학했기 때문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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