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의 탐색은 가부장적 체계의 역사에 대한 탐색이 된다. 남성지배체계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것과, 그 기능과 양상이 시간이 감에따라 변화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과 뚜렷하게 결별하는 것이다. 이 전통은 가부장제를 비역사적이고 영원하며 눈에 보이지않고 불변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그것을 신비화하였다. 그러나 19, 20세기 들어와서 많은 여성들이 우리가 체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도움을주었던 과정을 마침내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바로 여성들이 취할 수 있었던 사회적 · 교육적 기회의 변화 때문이다. 이제야우리는 역사 속에서 여성의 역할을 개념화할 수 있고, 그리하여 여성을해방할 수 있는 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의식은 남성지배체계의 바람직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결과들로부터 남성들을 자유롭게만들 수도 있다. - P71
문명화된 사회의 제도들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원시적 조건 아래서 유아에 대한 어머니의 실제 힘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오직 어머니의 팔과 보살핌만이 유아에게 추위로부터 피난처가되었고, 어머니의 모유만이 생존을 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무관심이나 유기는 바로 죽음을 의미했다. 생명을 주는 어머니는정말로 삶과 죽음에 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놀랍고도 신비로운 여성의 힘을 관찰한 여성들과 남성들이 어머니 여신을 숭배하게 된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여기서 나의 요점은 여성이 어머니 노릇을 하는 최초의 노동분업을 만들어낸 필연성(necessity)에 대한 강조이다. 수천년 동안 집단의 생존은 그것에 달려 있었고, 다른 대안은 없었다. - P75
분명한 것은, 여성과 출산·양육을 연계시키는 것은 문화적으로 결정된 것이며, 사회적으로 조종된다는 점이다. 나의 요점은 어머니 역할 및 자녀양육 활동과 병행할 수 있는 일거리를 여성들이 선택했던 가장 초기의성별노동분업은 편리하였으며(functional), 그래서 남성들과 여성들이 다같이 받아들일 만했다는 것이다. - P78
여성의 과거에대한 개관에서, 엘리제 볼딩은 인류학적 연구들을 종합하여 매우 다른해석을 내놓았다. 볼딩은 신석기시대 사회들에서 일이 평등하게 공유되었고 그 속에서 남성들과 여성들은 각각 집단의 생존에 적합한 기술과필수적인 지식을 발달시켰음을 발견한다. 문명이전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 평등했음에 틀림없으며, 어쩌면 자신을 남성보다 더 우월한 존재로 보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 P79
초도로에 따르면, 아이에게 어머니 노릇을 하는 사람은 바로 여성들이기 때문에,
커가는 여아는 자신을 타인과의 연속적인 존재로 정의하고 경험하며, 자기(self)에 대한 경험은 더 융통성 있고 더 침범되기 쉬운 자아(ego) 경계를 포함하고 있다. 남아는 경직된 자아경계와 분화에 대한 느낌을 더 많이가지고서 자신을 더욱 분리되고 구별되는 존재로 정의하게 된다. 자기에 대한 여성의 기초적인 느낌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으며, 자기에 대한 남성의기초적인 느낌은 세상과 분리되어 있다.
남아는 양육적인 어머니와 반대로 자기개념이 규정되는 방식에 의해공적 영역에의 참여가 준비된다. 여아는 심지어 자신의 사랑을 남자에게로 옮겨갈 때까지도 어머니와 동일시하고, 언제나 어머니와 일차적으로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관계의 영역들‘에 더 크게 참여하게끔 준비된다. 성별로 규정된 여아와 남아는 "성불평등한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일차적으로 재생산의 영역에 두는 성인의 성역할을 맡도록" 준비된다. - P80
나는 초도로가 현대산업사회에서 여성들이 아이를 양육한 결과라고설명한 그러한 인성형성은 신석기시대의 원시사회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추론한다. 그보다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여러 가지 기술들에서의 유능함에 대한 자각 그리고 식량채집에서의 자급자족과 연관되어있는 여성들의 어머니 역할과 양육행위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힘의 원천으로, 아마도 마법의 힘으로 경험되었음에 틀림없다. - P81
여성의 어머니로서의 효과적인 양육기술이 부족의 생존에 필수적이고, 따라서 매우 높이 평가되었던 것처럼, 남성의 사냥과 전쟁기술도 마찬가지였다. 전쟁과 방어에 숙련된 남성들을 키워내지 못한 부족들은 결국 남성들에게 이런 기술을 장려한 부족들에게 굴복했으리라는 것을 쉽게 가정할 수 있다. 이러한 진화론적 주장이 자주 제기되어 왔지만 나는여기서 또한 변화하는 역사적 조건에 근거한 심리학적 주장에 동의하면서 논의하고 있다. 두려움, 경외 그리고 아마도 여성에 대한 공포라는 상황 속에서 일어났을 개별 남성의 자아형성은 남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자아를 지원하고 자신감을 강화해 주고 가치관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사회제도를 고안해 내게 했을 것이다. - P82
세계 여러 지역의 부족사회들에서 발견되는 현상인 ‘여성교환’(exchange of women)은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 의해 여성종속의 선도적 원인으로 규정되었다. 그것은 여성들이 속한 부족에서 그들을 강압적으로 제거하거나(신부 훔치기), 의례에 의한 능욕 혹은 강간, 정략결혼 등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아동기의 아주 초기부터여성들에게 그에 대한 교의를 항상 먼저 주입시킴으로써 족내혼(endogamy)에 대한 금기와 강제된 결혼에 동의하는 것이 친족에 대한그들의 의무임을 여성들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말한다.
결혼을 구성하는 교환의 총체적 관계는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에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로 구성된 두 집단들 사이에서 성립된다. 그리고 여성은 동반자 중 한 명이 아니라, 교환의 대상물건 중 하나일 뿐이다. .…대체로 그렇듯이, 이것은 소녀의 감정이 고려되었을 때조차도 마찬가지이다. 계획된 결합에 순종하면서 소녀는 그 교환이 일어나도록 허용하거나 촉진이 시키지만, 그녀는 그 교환의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 - P84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과정은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각기 다른 시대에 일어났지만, 원인과 결과는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 수렵채집사회나사회가 농경사회로 바뀌는 시점을 전후해서 친족구조는 모계제에서부계제로 이동하고 사유재산이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사건의 순서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이 있다. 엥겔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사유재산이 먼저 발달하고, 이것이 "여성이라는 성의 세계사적 "전복"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레비-스트로스와 클로드 메이야수(Claude Meillassoux)는 사유재산이 생기게 된 것은 여성교환을통해서였다고 믿는다. 메이야수는 그 과도기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있다. - P87
메이야수는 분만할 때 여성들이 생물학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부족들은 다른 집단들로부터 더 많은 여성들을 조달해야 했고, 또 여성들을 약탈하려는 경향은 부족간의 끊임없는 전쟁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전사문화(戰士文化)가 출현하였다. 여성약탈의 또 다른 결과는 잡혀온 여성들이 그들을 잡아온 남성들에 의해 보호받거나, 약탈부족 전체에 의해 보호되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성들이 정복하고보호했기 때문에 그들은 여성을 사물화하는 사람이 된 반면, 여성은 물건과 같이 소유물로 생각되었다—여성은 사물화되었다. 여성의 재생산능력이 처음에는 부족의 자원으로 인식되다가, 이후 지배엘리트가겨나면서 특정 친족집단의 재산으로 소유되었던 것이다. - P88
나는 여기서 결정론을 주장하거나 의식적으로 조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건들이 특정한방식으로 전개되었으며, 그것은 남성들도 여성들도 의도하지 않았던 특정한 결과를 가져왔다. 산업사회라는 대담한 신세계를 출범시킨 현대남성들이 오염이나 생태계에 대한 영향과 관련된 결과들을 알지 못했던 것만큼이나,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도 그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과정과 결과에 대한 인식이 발달할 수 있었던 시점이 되었을 때는 이미 그 과정을 멈추기레 너무 늦었다. 적어도 여성들에게는. - P90
한쪽에는 여성의 사물화, 다른 쪽에는 국가와 사유재산으로 연결된 관계는 엥겔스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제안된 것과는 정확하게 반대다. 역사적으로 주어진 사회구조적 현상으로서의 여성의 사물화 없이는 사유재산과국가의 기원이 설명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설득력이 있는 아아비의 주장을 따른다면, 우리는 농업혁명 과정에서 인간노동력과 여성들에 대한 성적 착취가 풀 수 없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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