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니 ‘비체abject’, 즉 어떤 규정된 대상이 아니라는 말은 참 유용한 언어였다. 어떤 존재를 무엇이다(A)라고 규정하지 않고, 무엇이 아니다(~A)라고 말하는 방식은 그 존재를 어떤 경계에 가두기보다 그 여분의 공간, 경계의 열림에 위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페미니즘의 역사는 남성이 정해놓은 위치를 벗어나 경계를 넘나들었던 여성들, 항상 흐르고 있기에 개념적으로 잡힐 수 없는 ‘비-체’가 되었던 여성들에 의해 쓰인 것이었다. 그녀들이 비판받거나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기존의 언어나 질서로는 파악되지 않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포감을 주는 대상이자, 곧 더러운 존재로 여겨진 ‘비체’였다. - P15

페미니즘이 결국 갇혀 있던 타자를 해방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다면, 페미니스트들은 지금 부상하는 비체의 해방적 잠재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녀들의 급진적 타자성을 마주하면서 그동안의 언어들을 점검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 - P16

"결혼을 구성하는 총체적 교환관계는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에서가 아니라 두 집단의 남성들 사이에서 성립되며, 여성은 한 사람의 파트너가 아니라 교환 대상의 하나로 성립된다."(주석:1 게일 루빈, 신혜수/임옥희/조혜영/허윤 옮김, 『일탈』, 현실문화, 2015, 114쪽.)

따라서 루빈은 여성교환이라는 개념이 여성억압의 사회적 구조를 설명하는 핵심이라고 본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여성은 교환되기 시작한 순간 대상화되었으며, 여기에 여성억압의 기원이 있다. - P19

이리가레는 여성교환을 통해 남성들의 연대가 지속되는 경제를 "남성경제"라고 불렀다. 남성경제는 "남성이 자기와 유사한 존재인 남성을 번식"시키려는 욕망, 또는 여자들을 통해 "남자들 사이의 관계", "남성 위주의 동성애"를 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따른다. 남성경제에서 거래의 주체가 되는 것은 욕망을 가진 남성이다. 여성은 남성의 욕망에 부합하는 대상이자 남성의 욕망에 따라 교환되는 자리에 놓이게 된다.
남성경제의 정치경제학에서 분명한 것은 어머니든, 처녀든, 창녀든 모든 여성들은 남성경제 안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 세 가지 상품들에는 남성의 욕망에 따라 서로 다른 사회적 가치가 매겨진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소유물이 된 "번식의 도구"(주석:2 뤼스 이리가레, 이은민 옮김, 『하나이지 않은 성』, 동문선, 2000, 240쪽.)로서 이미 유통이 끝난 상품인 반면, 창녀는 재생산의 가치를 갖지는 않지만 쾌락의 가치에 따라 현실적으로 교환되고 있는 상품이다. 가장 높은 교환가치를 지니는 상품은 "순수한 교환가치"(주석:3 같은 책, 241쪽.)를 지니는 처녀이다. - P19

남성은 소유자로서의 남성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여성을 대상으로 만들어 멸시할 수밖에 없다. 여성도 이 구조에서 예외가 아니다. 여성에게 여성혐오는 ‘자기혐오’로 나타난다. 딸은 어머니의 무력함도 증오하지만, 어머니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성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는 사실, 즉 자신이 결국 남성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망’을 경유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도 절망한다. 따라서 여성은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 P21

남성들은 재생산용 여성과 쾌락용 여성을 이분화하여 소유함으로써 여성혐오의 지배 구조를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성녀와 창녀, 결혼 상대와 놀이 상대 등의 이분법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여성들은 모두 대상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기혐오라는 공통점을 갖지만, 성녀와 창녀의 이분화는 여성들의 연대를 매우 힘들게 만든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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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3-09 13: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열심히 독서 중이시네요. 화이팅! 저도 이 책 다시 읽어보려고 어제 주문했어요.

거리의화가 2022-03-09 17:52   좋아요 0 | URL
네. 이 책 읽으니 좀 개념이 잡히는 것 같아요. 얇아서 더 좋네요!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