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로서의 민중주의’는 공동의 시공간에서 죽거나 또는 사는 타자들에 대한 연민의 감각과 관련된 것이며, 그래서 민중주의는 일종의 강력한 평등주의다. - P79
사회학자 김명희가 5.18을 소재로 연구했듯, 제대로 애도되지 못한 죽음은 트라우마로 내장되고 영혼을 찍어 누르는 억압이 되어, 알 수 없는 미래에 죽음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광주항쟁은 모두에게 트라우마적 사건이었으되 오랫동안 매도당하고 억압당했다. 또한 광주의 죽음은 심각하게 모독당했다. - P83
반성하지 않는 삶. 반성하기 두려운 삶. 반성은 무섭다. 그래서 뻔뻔스럽다. 낯짝 두꺼워지는 소리…. 아파하면서 살아갈 용기 없는 자, 부끄럽게 죽을 것. 살아감의 아픔을 함께할 자신 없는 자, 부끄러운 삶일 뿐 아니라 죄지음이다. 절망과 무기력. 이 땅의 없는 자, 억눌린 자, 부당하게 빼앗김의 방관, 덧보태어 함께 빼앗음의 죄. (중략) - P87
제 길이 2만 학우 한 명 한 명에게 반미의식을 심어주고 정권 타도와 함께 힘썼으면 하는 마음에 과감히 떠납니다. 불감증의 시대라고 하는 지금 명지대 학우에 슬픔과 연민을 가지다 다시 제자리고 안주해 커피나 콜라를 마시는 2만 학우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해방의 코스모스-박승희 열사-추모문집’(2011) - P92
너희는 가슴에 불을 품고 싸워야 하리. 적들에 대한 증 오와 불타는 적개심으로 전선의 맨 앞에 나서서 투쟁해야 하리. 그 싸움이 네 혼자만이 아니라 2만 학우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고 하는, 함께 하는 싸움이어야 하리. 내 항상 너희와 함께하리니 힘 들고 괴롭더라도 나를 생각하며 힘차게 전진하라. 내 서랍에 코스모스씨가 있으니 2만 학우가 잘 다니는 곳에 심어 주라, 항상 함께하고 싶다. - P94
분단 내전 학살의 역사와 군부독재의 극악한 탄압은 운동에 참여한 학생 청년들의 부모에게 엄청난 공포심을 안겨주었다. 1980-1990년대 대학생의 부모들은 자식이 ‘의식화’되고 운동권에 참여할까 늘 전전긍긍했고, 대학생들은 기성체제와 가치에 물든 부모와 대립하거나 부모를 속이고 운동에 참여해야 했다. - P103
분명 그해 5월의 정념은 ‘죽음’이었으되 ‘그들/우리’ 또한 그 죽음의 사태-짐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나서야 그 죽음에 대해 사고하고 성찰하고 애도하게 되었다. 1991년 5월의 죽음들안, 1980년 이래의 죽음으로부터 이어진 것이며 동시에 한 시대의 종언이자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 P107
박혜정의 죄의식이나 박승희의 신념 같은 것은 ‘1980년대의 종언’과 함께 점점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민중주의도, 초월적 도덕도 마찬가지였다. 페터 슬로터다이크나 슬라보예 지젝의 말대로 ‘냉소적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학생 및 학생운동의 정치문화와 ‘사회’ 사이의 괴리는 더 이상 없게 되었다. 1990년대 말 이후 한국의 대학은 청년의 성소이거나 해방의 상상력이 꽃 피는 공간이 아니라, 가장 속화된, 대기업이나 공무원 입시 준비기관이 되기 시작했다. ‘각자도생’과 ‘무한경쟁’ 외의 다른 가치를 추구할 여지를 주지 않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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