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의 생일날 저녁이었다
미역을 찾으니 식칼 놓는 자리에 꽂혀 있고
식칼을 찾으니 냉장고 속에 들어 있다
북어가 세탁기 속에서 빙빙 돌아가고
파슬리 양배추 토마토가 장롱 서랍 속에
비누곽 위에 생선이
전자오븐 레인지 속에 비누가
화분 속에 비타민이
세숫대야 물 속에 소금이
(아, 이렇게 해방이 오고 있구나
세숫대야 물속에서 녹고 있는 소금을 누가 구원하리?)
핸드폰이 냉동칸 속에서 울리고 있을 때
자꾸만 울리고, 울리고 있을 때
너무나 오래 내 이름 속에 갇혀 있었다는 것
드디어 내가 내 바깥으로 나갈 줄 알게 되었다는 것,
이 폭소......
이름의 독재자를 가로질러 이 방면(放免)의 풀밭을
날아서, 맨발에 구름과 이슬을 묻히고 이 새로운.....
이 이름 붙일 수 없는.....맨발에 구름을 묻히고서
웃으면서 날아
간다는......
-- 김승희 詩 '지천명' 全文 <냄비는 동동> 2006년 7월 창비 刊
어제 배달되어온 김승희 시인의 시집을 읽는데 50세에 관한 시가 나왔다.
최승자의 '삼십 세', 고정희의 '마흔 살'과는 좀 다르다.
'방면(放免)의 풀밭' 이라니, 50세는 정말 그런 것일까.
'방면'이라는 단어가 썩 유쾌해 보이진 않는다.
이상하게 김승희 시인이 쓰는 어떤 시(현실참여 시)들은 너무 작위적이어서 어색하고 생경하다.
이 시집에도 미선 효순을 생각하며 쓴 시('나는 그렇게 들었다')가 한 편 있는데
여전히 관념적이며 다른 시들과 겉도는 것 같다.
아들의 운동화를 빨며 두 소녀를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도입부임에도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
재밌는 시들이 여러 편 눈에 띈다.
50세에 대해 쓴 여성시인의 시를 별로 본 적이 없어서 '지천명'을 옮겨 적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