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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책장을 덮으며 오랜만에 리뷰를 쓰고 싶어 컴 앞에 앉았더니,
이런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띈다.
<승객 용변 손수 치워준 '천사표 버스 기사'>
그리고 그 버스 기사님을 찬양하는 댓글들이 주르륵 달렸다.
심신 미약 상태로 승객이 실수를 한 상황이라면 운행중인 버스에서 그 용변을 치우는 건
버스 기사의 몫 아닌가?
그 당연한 일이 포털 뉴스 기사 중 '시사' 부문 메인 으로 뜰 정도면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지즈 네신의 유배지 회고록(거창하게 표현해서)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에는
오랜만의 외출에서 실수를 한 그 노인이나, 용변을 치운 기사님, 그 광경을 지켜본 승객들,
불친절한 자기 동네 버스 기사와 비교하며 그 기사님을 칭송하는 댓글을 다는 네티즌들,
버스를 모는 기사라면 당연한 일이지 그게 뭐 그렇게 대수로운 일입니까? 하며
실력 이상의 딴지를 거는 나 같은 사람들이 나온다.
'용산참사 농성자들 징역 5~8년 구형'이라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폭력으로 무언가를 쟁취할 수 있고 폭력에 상응하는 처벌이 없다면 철거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
모두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나서게 될 것"이라며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서라도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이 검사들의 논지.
분기탱천하여, '적반하장도 유분수가 아닙니까?'라고 댓글을 달려고 했는데
독수리 타법 때문인지 이상하게 손이 떨려 실패했다.
- 우리 역사에는 유배지나 감옥에서 말로 다하지 못할 고초를 겪은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제가 유배지에서 겪은 일들은
관광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서문)
50여 년 전, 터키의 서슬 퍼런 계엄령 하에서 권력의 압제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글로써 신념을 지켜 나가다가 감옥에 갇히고
혹독한 유배생활을 경험한 아지즈 네신의 유배 일기 중
이 유머러스하고 파라독스한 서문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관광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가볍디가볍게 표현한
그의 유배지에서의 기록은 요 며칠 나를 사정없이 웃기고 울렸는데,
"1년 전에만 만났더라도 부모에게 물려받아 탕진한 거액의 유산 중 몇 분의 1을
당신에게 주었을 텐데..."라는 말로 춥고 배고픈 유배지의 작가를 현혹한 사기꾼들에게
마지막 빵 한 조각을 기꺼이 내민 아지즈 네신의 흉내라도 내봐야 하나 어째야 하나......
나 또한, "내일모레 홍콩에서 배만 들어오면..." 이 비슷한 말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현혹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