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말하는 간호사 부키 전문직 리포트 4
권혜림 외 지음 / 부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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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를 말하고 있나?


다른 인터넷 서점도 마찬가지지만, ‘간호사’로 검색되는 책 중 전공 관련서적을 빼면 일반인을 위해 씌인 책은 굉장히 적다. ‘의사’로 검색되는 책 중 일반인의 교양을 위해 씌여진 책이 많은 것에 비해서 굉장히 적게 출판된다. 한해 배출되는 의사보다 간호사 수가 훨씬 더 많고, 말 잘하는 이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책에는 소홀한 것이 좀 아쉬웠었다.

 

졸업할 무렵,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일반인이 간호사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간호사는 사회교양도 좁고, 자기 분야가 아니면 관심도 없으며, 이야기 주제가 상당히 폐쇄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고 했다. 그 이유로 대학과정에서 사회교양을 쌓고, 넓은 인간관계를 맺어 놓는 타 과와는 달리, 오로지 성적에 목을 메야하는 커리큐럼과 스스로 관심분야를 넓히지 않는 데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간호사들은 자세히 알게 되면 자신들 보다 삶을 깊게 성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생사의 순간도 많이 보고, 다양한 환자를 통해 다양한 삶을 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덧붙이셨다.


책을 통해 다른 삶을 간접 경험해보는 일반인들에 비해, 환자의 손으로 느끼게 되는 다른 삶은 깊숙하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 것 같다. 그렇게 생각 깊은 사람들인데 왜 직접 쓴 책은 적을 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이 책의 한계를 통해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 책은 ‘간호사를 말하기 위해’ 쓴 책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간호사를 할 사람을 위해 쓴’ 책이다. 제목 위에 붙은 ‘부키 전문직 리포트 시리즈’라는 것이 글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그래서 책 내용이 현직 간호사가 9,500원을 주고 사서 보기에는 적합지 않은 것 같다. 신규간호사나, 간호학생, 간호사를 지망하는 고교생은 읽어 볼만하다. 내가 학생 실습도 모두 끝낸 예비 간호사라라 그런지, 책을 이해하는 데는 힘들지 않았다. 책에서 드러나는 선배간호사의 모습에서, 내가 힘들 것임은 확실히 읽었다.


신규간호사(이하: 신규)의 응급실 수련기 중에 ‘신규는 한번 배운 것은 두 번 다시 묻지 못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신규의 생활을 한 마디로 압축해 놓은 듯해서 가슴에 새겨 두기로 했다. 학생 실습 때, 물어봐도 될 내용도 머뭇거리기만 한 것이 아쉬웠었다. 신규 때는 하나라도 더 배우고, 더 물어보려고 생각 해둔 것과 상충되긴 하지만 잘 새겨 넣기로 했다.


미국간호사 시험을 치뤘던 이야기, 병원에서든 다른 직장에서든 공부를 놓치 못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안스러우면서도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해야하나, 할 수 있을까하면서 그 페이지를 읽었다.


간호업무가 힘든 것도 있지만 일반인이 보는 간호사의 편견이나, 간호사를 부르는 호칭에서 스트레스 받는다는 내용도, 생각해볼 문제였다. 자기 확신과 간호 가치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 신장실 간호사가 쓴 글이 가장 많았다. 그녀의 글을 통해 연차 있는 선배가 신규를 재물로 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그녀의 글에서 선배의 무서움을 느꼈다. ( 간호계 선후배 사이를 일반 직장인에게 비교 설명하기는 많이 힘이 든다. 듣는 이에 따라, 설명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어 여기서 끝낸다.)


3장에서 말하는 다른 일로 전환한 간호사출신들의 직업내용이 신선했다. 그 장에 등장하는 간호사들은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껴서 직업을 바꾼 이가 많았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서술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리고 짧은 책에 많은 이의 이야기를 담으려 하다보니, 간호사로써 보람됨을 느끼는 순간을 적게 서술한 것도 아쉽다. 서술되어 있기는 한데, 개인적인 경험보다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내용이 등장한 것도 있어서 다른 이의 진솔한 글까지 다시  보게 해서 좀 실망스러웠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간호사의 일은 상당히 평면적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인터넷에서 50%정도는 검색가능하지 않을 까하는 의구심도 든다. 간호사 카페나 간호사 협회에 올라오는 글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까지 잘 하면서, 책에는 진부하게 씌여 있었다. 이게 부키 전문직 리포터라는 ‘직업 소개서’의 한계인 듯하다.

 

원론적이며, 문장 채우려도 쓴 것 같은 수식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업계용어라는 ‘대박환자’, ‘혈관이 없는’ 용어도 다른 말로 골라 썼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도 되었다.


간호사들이 직접 썼다고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일부는 ‘구술정리’라는 방법이 사용된 것이 가장 실망스럽다. 제목처럼 간호사는 말만 해준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직접 썼다면, 더 괜찮은 글을 썼을 신민정 선생님의 글까지 구술정리된 것이 가장 섭했다. 구술정리는 정리 하는 이의 의도에 따라 편집이 될 수도 있음을 알고 계셨을 텐데 구술정리를 하신 것이 매우 섭했다. 이 것을 통해 이 책의 출판의도가 ‘간호사가 말하는 간호사’와는 달리 ‘편집부가 원하는 간호사’였음을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리고 이런 부키 기획으로라도 기다렸던 간호사 책이 나왔으니,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지 머뭇거리면서 이야기 해본다.


이 책을 택한 이유는 가장 최근에 나왔으며, 인터넷에서 검색된 유일한 ‘간호사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업적 이야기만 서술 되어 있을 뿐, 기대했던 간호사의 에세이적인 내용은 없었다. 선배 간호사 선생님들이 얼마나 솔직하시고, 글을 잘 쓰는지 나는 안다. 그런데도 왜 간호사의 이야기는 없을 것일까? 이 책을 읽고 생각해 보겠다는 서평 의도와는 달리 이유를 쓰질 못하겠다.

 

선배 간호사들을 위해 써본 글은 한편도 없으며, 미래의 간호사들에게 해 줄 좋은 소재 글이나 있을지, 내 글 솜씨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  


ps. 내가 실습 때 본 선배 간호사 선생님 중에 나빠 보였던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간호사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느껴야했다. 그 것은 부모님의 이중적인 시선과 나 자신의 이중적인 사고의 문제였다. 아직도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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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2-2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호사들과 잠깐동안 함께 지낸 적이 있는데 의외로 규율이 어찌나 센지 깜짝 놀랬답니다 상명하복 이런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막연히 백의의 천사라는 부드러운 이미지만 상상했다가 군기가 장난 아닌 거 보고 놀랬어요 일반인들이 모르는 직업적 애환도 많겠죠?

마태우스 2005-02-2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과양님, 좋은 책 써주실 걸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 역시 왜 기생충 책은 없을까, 라는 의문을 잠시 품었었지요^^

모과양 2005-02-22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 간호사회의 수직적 서열관계를 보셨군요. 잘 보셨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주 무서운 제도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간호업무에 필수 불가결하기도 해요. 거기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내공이 쌓이면, 페이퍼에 왕창~~

마태우스 님, 그럼 우리끼리라도 공지영-히토나리,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합동소설 연재합시다.

모과양 2011-01-30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비 간호사님이라고 하신 B님, 혹시 이 댓글을 보신다면 블로그 주소나 메일을 알려주시겠어요? 답장을 보내려고 해도 뭘 몰라서 답변을 하기 힘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