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책을 읽고 매일 리뷰를 쓰던 날도 있었다. 분명 있었다. 그때는 어떤 힘으로 그렇게 읽고 쓸 수 있었을까. 지금도 읽고 쓰는 일이 불가능하거나 그때와 다르게 뭔가 환경이 바뀌었거나 변화가 있는 데 아닌데 읽는 일도 쓰는 일도 시원찮은 요즘이다. 매일 읽는 건 가능하다. 분량이 적어서 그렇지 읽기는 계속하니까. 그렇다면 내 안의 무언가가 허물어지거나 구멍이 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게 무엇일까?


한 달에 몇 권이라는 정확한 목표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읽는 즐거움과 쓰는 즐거움 대신 다른 무언가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일까. 아, 모르겠다. 그냥 가을이라 그런가. 그게 제일 좋은 이유 같기도 하고. 널브러진 마음을 다시 모아서 집중을 하려 한다. 모은다고 모아질 마을일까 싶지만 그래도.


소설 읽는 시간을 위해, 소설을 샀다. 이 얼마나 당당한 구매인가. 문진영 작가의 단편집 『최소한의 최선』, 김승옥문학상 수상으로 반갑게 돌아온 문진영 작가의 단편집, 좋아하는 정용준 소설가의 추천이 있어 더욱 기대가 된다. 아릿한 슬픔을 마주할 것도 같지만 마냥 깊은 슬픔의 늪은 아닐 것 같다. 지난여름에 단편집으로 만난 윌리엄 트레버의 『운명의 꼭두각시』, 이번엔 장편이다.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트레버의 책은 표지부터 소설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한결같다. 한정현의 장편『마고』까지 예쁜 세 권이다.







어제는 예배를 드리고 왔다. 정말 오랜만에 예배에 참석한 거라서 조금 민망했다. 날씨가 좋아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집이 아닌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물론 떠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고 예약해둔 세탁기, 청소기와 시간을 보냈다. 가을을 느끼기 좋은 날들이다. 맘껏 가을을 즐겨도 좋을 날들이다. 잠깐 딴 생각을 하다 돌아보면 사라질 가을이다.


아침과 저녁의 쌀쌀함이 조금씩 한낮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래도 짧은 가을 뒤에 찾아올 겨울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은 가을이니까. 낙엽이 뒹구는 가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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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씨 2023-10-30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책 못 읽고, 몇 자라도 끄적이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니까,
이제 읽는 것도 뭔가 쓰는 것도 어렵고, 불편하고, 어색하네요. ^^
다른 게 우선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책은 저기 멀리로 가버린 듯해요.
자목련님 말씀처럼, 가을이어서 그래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야 하는데, 저에게 그건 아닌 것 같고요. ^^
괜히 마음이 바쁜 날들에, 책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게 사실인 것 같네요.

그래도....
책 사고 싶어요. ㅎㅎㅎㅎ

자목련 2023-10-31 16:30   좋아요 0 | URL
구단씨 님은 자격증 공부하느라 그런 거 아닐까요? (페이퍼에서 본 것 같아서요)
나중에라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자꾸 미루는 것 같아요.
같은 이유로 계속 사고요 ㅎㅎ

yamoo 2023-10-31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에 있는 책 중에서 6권이 있어요!ㅎㅎㅎ
아주 반가워요!!ㅎㅎㅎ

자목련 2023-10-31 16:28   좋아요 0 | URL
읽지 못한 책을 뒤로 책을 사는...
6권, 어떤 책일까 궁금하네요^^

새파랑 2023-10-3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하얀 마음, 초조한 마음, 운명의 꼭두각시 까지~! 세편 모두 100점 주고 싶은 책들입니다 ㅋ

자목련 2023-11-01 16:56   좋아요 1 | URL
댓글에서도 세 권을 향한 새파랑 님의 애정이 느껴집니다^^
 
2024년 에드워드 호퍼 고독이 나를 위로한다 탁상달력 - 260*190mm 2024 북엔 달력/다이어리
북엔 편집부 지음, 애드워드 호퍼 그림 / 북엔(BOOK&_)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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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서울에서 열린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는 갈 수 없었지만 탁상달력은 내 품에.
이런 상품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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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0-27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품에..!! 😱 탁상달력이 되고싶다!!

자목련 2023-10-30 14:10   좋아요 0 | URL
오래전 품 안에 들어온 은오 님!!
 
드립백 가을하다 - 12g, 7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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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커피,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
일시품절, 인기가 많구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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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매력을 팔다 - 자온길, 시골 마을 재생 프로젝트
박경아 지음 / 포르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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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하우스가 유행이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의 나만의 공간에서 쉴 수 있는 여유를 꿈꾸는 이가 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5도 2촌의 생활을 실천하는 이도 많다. 일상의 벗어나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반색할 곳이 있다. 바로 부여의 ‘자온길’이다. 이미 다녀온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부여의 규암 마을에 자온대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서 왕이 놀면 바위가 스스로 따뜻해졌다는 설화에서 착안해 사람들의 온기로 스스로 따뜻해지는 길, 자온길이란 이름이 탄생했다.


주식회사 세간 대표 박경아의 『오래된 매력을 팔다』는 ‘자온길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다. 옛것을 버리지 않고 취해 새롭게 만든 문화 공간이라고 할까. 전통 콘테츠를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시골 재생 프로젝트라고 해도 좋겠다. 아무리 기획이 좋다고 해도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건 아니다.


자온길 프로젝트는 비어 있던 규암리의 상가 거리의 헌 집 십여 채를 매수하여 리모델링하고 공예 문화 거리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다. 건물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옛 건물을 최대한 살려 전통이 가지고 있는 멋을 그대로 간직하려 노력했다. 공예 작가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한국 전통 공예의 매력을 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지역 전체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도록 기획했다. (5쪽)


공예를 전공한 저자는 20대 초반부터 쌈지길, 인사동, 삼청동, 파주 헤이리 등지에서 아트숍을 운영했다. 서울과 부여를 오가며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에 대한 편견과 따가운 시선, 쉽지 않은 지원과 투자까지, 저자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저자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공예를 전달하는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빈집들은 비록 지금은 손길이 닿지 않아 폐허처럼 보일 수 있지만, 눈앞에서 치워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소중한 유산들이다. 으리으리한 한옥과 고운 비단만 보존해야 하는 유물일까? 무명도, 모시도, 광목도, 가난한 시절에 삐뚤빼뚤한 목재로 만든 한옥도 모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유물이고 자원이다. (79~80쪽)


책에는 저자의 열정과 사업 전반의 노하우, 지역 주민과의 상생을 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골의 헌 집을 매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집 주인을 찾아 설득하는 일, 우여곡절 끝에 아파트 부지로 팔인 집을 매입하는 일, 멸실 신청이 되어 있는 집의 취소 과정까지 저자가 직접 뛰어다닌 것이다. 헌 집이 지닌 매력과 물건을 정리하여 맨 처음 만든 곳은 ‘책방 세:간’이다. 인구 소멸의 시골에 책방이 과연 인기가 있을까 싶지만 부여의 관광지를 들른 이들이 마주한 ‘책방 세:간’은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를 시작으로 오일장 한가운데 주막이 규방 공예공방· 스테이 '청명'으로, 선술집을 도예가의 잔을 선택해서 마시는 찻집 '수월옥', 100년이 넘은 고택은 멋진 공연을 볼 수 있는 공간 '이안당'으로, 과거 양조장이었던 곳은 전통주를 소개하는 펍인 '자온양조장'으로 재연했다.


저자는 현재의 아름다운 자온길이 되기까지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이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도시 재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으로 부동산은 무조건 많이 봐야 하며 건축은 경험을 통해서 배워야 하며 전문 분야에 대한 충분한 지식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바로 디자인과 홍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기록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또한 전통 공예가 어려운 게 아니라 일상으로 쉽게 스며들 수 있기를 바라며 ‘자온길’이 온라인 쇼핑이 발달된 시대에 온라인으로 할 수 없는 일, 직접 문화를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커다란 쇼룸이자 전통을 체험하는 백화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빌딩 숲을 잊고 잠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창 너머의 대나무 숲을 들여다보고,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듣는 곳. 옛날에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래된 공간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에 돌아가서도 이곳에서의 장면들을 꺼내어 숨 쉬고, 그것이 문득 위로와 힘이 되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146쪽)


이 책은 자온길 프로젝의 모든 과정을 담고 있지만 나만의 콘텐츠로 사업을 구상하는 이들에게도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저자의 솔직한 경험과 노하우는 청년 사업가에게 현장의 진행사항을 들려주고 조언을 받을 수 있어 유용하다. 더불어 전통 공예라는 세계의 놀라운 가능성도 만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내가 자란 시골의 풍경을 떠올렸다. 집 뒤에 있던 대나무 숲, 대청마루, 정월 대보름과 추석에 동네를 돌던 사당패의 꽹과리 소리가 아련하게 들리는 듯했다. 부여의 자온길이 궁금해졌다. 계절마다 품은 자연의 소리를 상상하며 자온길을 걷고 그 거리에 스며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가을, 그곳에서 오래된 매력에 취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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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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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뿐인 생을 생각하면 모든 게 의미 있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순간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을 외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순간에 직면한다. 절실하게 매달렸던 것들이 무너지고 믿고 사랑했던 이가 배신하는 건 다반사다.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다 죽고 사는 게 아니라면 삶에 얽매일 필요 없이 단순하게 살는 게 제일 현명하다는 결론을 맺는다. 단순하게 사는 게 가능한가 싶지만 말이다.


지난 7월 사망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면서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며 관계에 얽매여 사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시작된 관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존재,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확인하려 애쓰다 생을 마감하는 존재. 소설의 제목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갈망으로 때로 무겁게 때로 가볍게 생을 살아간다. 아니, 영영 알지 못한 채 번민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과의 만남을 운명이라 여기며 다른 삶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여 길을 잃는 사람들, 사실 잘 모르겠다. 밀란 쿤데라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소설에 등장하는 네 남녀의 사랑이 닿고자 하는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선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을 보면 둘 사이 관계의 주도권은 의사인 토마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여자들을 자유롭게 만나는 토마시는 우연한 만남으로 그를 찾아온 테레자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토마시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테레자가 승자라 할 수 있다. 토마시의 특별한 여자 친구 사비나를 통해 출판사에서 사진을 찍게 된 테레자는 끝내 토마시와 결혼에 성공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소련의 침공으로 체코를 떠나 스위스로 간다.


스위스에서 테레사는 자신의 사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낀다. 체코에서 전쟁의 현실과 참상을 다루었지만 스위스에서는 선인장이나 장미를 찍어야 한다니. 테레사는 토마시와 상의 없이 프라하로 돌아오고 토마시는 그녀를 찾아온다. 토마시에게 테레사의 부재는 자유 그 자체여야 하지 않을까. 더없이 가볍고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었을 텐데. 토마시는 병원 일을 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생각을 신문에 기고하게 된다. 이념이나 정치를 떠나 그저 순수한 의견이었다. 그 일로 토마시는 감시와 회유의 대상이 되었고 테레사와 시골로 향한다. 의사가 아닌 창문을 닦고 나중에는 트럭 운전사가 된다. 테레사와 반려견 카레닌과 함께 살아간다. 마냥 가벼울 수는 없었다. 누군가 그들을 감시한다는 걸 알았기에. 자유롭고 여유로운 시골 생활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남녀는 어떤가? 토마시의 오랜 연인이었던 화가 사비나는 그와 헤어지고 스위스에서 교수 프란츠를 만난다. 프란츠 역시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둘 사이의 사랑도 평탄하지 않다. 사비나는 헤어졌지만 토마시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다. 동시에 그녀를 붙잡는 건 역사였다. 그렇다고 그 무게에 짓눌리지는 않았다. 토마시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가벼움을 누렸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으로 공산주의를 미학적으로 저항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말로 표현하면 배신이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조국을 배신했다. 그런 사비나를 프란츠는 이해할 수 없었다. 파리에서 공부하고 교수가 되고 과학자로 평탄하게 살아가는 프란츠는 사비나의 조국인 체코를 향한 동정심이 있었다. 아마도 그는 모든 것을 책과 이론으로 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리에서의 투쟁이나 시위, 자유를 외치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이상적인 존재로 다가왔던 것이다.


네 남녀에게 삶의 변곡점은 작게는 서로를 만난 것이고 크게는 외부 작용인 역사의 소용돌이로 볼 수 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마침내 토마시와 살게 된 테레자에게는 부단한 노력이 있었고 토마시는 그래야만 한다는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토마시가 테레사를 거부하고 하던 대로 가벼운 삶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소설을 이끄는 건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1960년대 체코란 역사를 떼어놓을 수 없다. 그 두 가지를 실존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묘사하기에 어려운 소설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무거움을 따지기 이전에 존재 그 자체를 참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존재, 그것은 사랑, 이념, 역사,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63~64쪽)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네 사람의 사랑과 삶을 끊임없이 가벼움과 무거움을 저울질하면서도 한쪽으로 기울기를 거부한다. 마치 독자에게 어느 것을 선택할 거냐고, 어떤 게 더 나은 삶이냐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의 시작부터 화자는 내게 너무도 궁금한 존재였다. 네 명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나는 작가 밀란 쿤데라라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는 걸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인물은 저마다 자신의 생을 사랑하고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다. 그 과정이나 결과가 타인의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어디에 의미를 두냐에 따라 그 삶은 지나치게 가벼울 수 있고 걷잡을 수 없이 무거울 수 있을 뿐이다.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9쪽)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단 한 번뿐이라는 것, 영속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역사를 마주할 때 안타까움을 어찌할 수 없다. 1960년대 프라하를 떠올리지 않아도 종교와 이념을 포기하지 못해 일어난 전쟁의 무게는 얼마일지. 우리가 한 번만 살 수 있다는, 그 분명하고 명확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존재의 경중을 떠나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설령 우리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볍다 하더라도 말이다. 살아 있는 동안, 존재 그 자체는 위대하다는 사실에 감동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3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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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3-10-21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어야지읽어야지 하면서 수년째 안 읽고 있어요 자목련님 글 읽고 또다시 읽어야지 하고 다짐하고 갑니다ㅋㅋㅋㅋ

자목련 2023-10-24 14:52   좋아요 1 | URL
저도 대학 때부터 시도했다가 멈추기를 반복, 이제서야 겨우 읽었습니다.
망고 님도 곧 만나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