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매력을 팔다 - 자온길, 시골 마을 재생 프로젝트
박경아 지음 / 포르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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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하우스가 유행이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의 나만의 공간에서 쉴 수 있는 여유를 꿈꾸는 이가 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5도 2촌의 생활을 실천하는 이도 많다. 일상의 벗어나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반색할 곳이 있다. 바로 부여의 ‘자온길’이다. 이미 다녀온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부여의 규암 마을에 자온대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서 왕이 놀면 바위가 스스로 따뜻해졌다는 설화에서 착안해 사람들의 온기로 스스로 따뜻해지는 길, 자온길이란 이름이 탄생했다.


주식회사 세간 대표 박경아의 『오래된 매력을 팔다』는 ‘자온길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다. 옛것을 버리지 않고 취해 새롭게 만든 문화 공간이라고 할까. 전통 콘테츠를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시골 재생 프로젝트라고 해도 좋겠다. 아무리 기획이 좋다고 해도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건 아니다.


자온길 프로젝트는 비어 있던 규암리의 상가 거리의 헌 집 십여 채를 매수하여 리모델링하고 공예 문화 거리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다. 건물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옛 건물을 최대한 살려 전통이 가지고 있는 멋을 그대로 간직하려 노력했다. 공예 작가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한국 전통 공예의 매력을 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지역 전체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도록 기획했다. (5쪽)


공예를 전공한 저자는 20대 초반부터 쌈지길, 인사동, 삼청동, 파주 헤이리 등지에서 아트숍을 운영했다. 서울과 부여를 오가며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에 대한 편견과 따가운 시선, 쉽지 않은 지원과 투자까지, 저자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저자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공예를 전달하는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빈집들은 비록 지금은 손길이 닿지 않아 폐허처럼 보일 수 있지만, 눈앞에서 치워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소중한 유산들이다. 으리으리한 한옥과 고운 비단만 보존해야 하는 유물일까? 무명도, 모시도, 광목도, 가난한 시절에 삐뚤빼뚤한 목재로 만든 한옥도 모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유물이고 자원이다. (79~80쪽)


책에는 저자의 열정과 사업 전반의 노하우, 지역 주민과의 상생을 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골의 헌 집을 매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집 주인을 찾아 설득하는 일, 우여곡절 끝에 아파트 부지로 팔인 집을 매입하는 일, 멸실 신청이 되어 있는 집의 취소 과정까지 저자가 직접 뛰어다닌 것이다. 헌 집이 지닌 매력과 물건을 정리하여 맨 처음 만든 곳은 ‘책방 세:간’이다. 인구 소멸의 시골에 책방이 과연 인기가 있을까 싶지만 부여의 관광지를 들른 이들이 마주한 ‘책방 세:간’은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를 시작으로 오일장 한가운데 주막이 규방 공예공방· 스테이 '청명'으로, 선술집을 도예가의 잔을 선택해서 마시는 찻집 '수월옥', 100년이 넘은 고택은 멋진 공연을 볼 수 있는 공간 '이안당'으로, 과거 양조장이었던 곳은 전통주를 소개하는 펍인 '자온양조장'으로 재연했다.


저자는 현재의 아름다운 자온길이 되기까지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이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도시 재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으로 부동산은 무조건 많이 봐야 하며 건축은 경험을 통해서 배워야 하며 전문 분야에 대한 충분한 지식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바로 디자인과 홍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기록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또한 전통 공예가 어려운 게 아니라 일상으로 쉽게 스며들 수 있기를 바라며 ‘자온길’이 온라인 쇼핑이 발달된 시대에 온라인으로 할 수 없는 일, 직접 문화를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커다란 쇼룸이자 전통을 체험하는 백화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빌딩 숲을 잊고 잠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창 너머의 대나무 숲을 들여다보고,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듣는 곳. 옛날에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래된 공간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에 돌아가서도 이곳에서의 장면들을 꺼내어 숨 쉬고, 그것이 문득 위로와 힘이 되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146쪽)


이 책은 자온길 프로젝의 모든 과정을 담고 있지만 나만의 콘텐츠로 사업을 구상하는 이들에게도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저자의 솔직한 경험과 노하우는 청년 사업가에게 현장의 진행사항을 들려주고 조언을 받을 수 있어 유용하다. 더불어 전통 공예라는 세계의 놀라운 가능성도 만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내가 자란 시골의 풍경을 떠올렸다. 집 뒤에 있던 대나무 숲, 대청마루, 정월 대보름과 추석에 동네를 돌던 사당패의 꽹과리 소리가 아련하게 들리는 듯했다. 부여의 자온길이 궁금해졌다. 계절마다 품은 자연의 소리를 상상하며 자온길을 걷고 그 거리에 스며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가을, 그곳에서 오래된 매력에 취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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