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E. W.
김사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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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세상과 당신이 사는 세상은 다르다. 같은 시간을 살지만 우리의 삶은 모두 다르다. 한때는 내가 사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아주 가까운 곳에 그런 세상이 있음에도 그곳에 그런 삶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회적 계층 혹은 계급이 다르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일은 불가능할 것일까? 김사과의 장편소설 『 N.E.W. 』를 읽다 보면 열심히 노력하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보통의 소시민에게는 불가능처럼 여겨진다. 단절이라고 하면 맞을까.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 김사과는 전형적인 상류사회의 일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오손그룹 회장 정대철, 그의 아들 정지용, 정지용의 아내 최영주가 그리는 새로운 세상, 그것은 우리에겐 비현실적이면서도 잔혹한 풍경이다. 확인할 수 없는 가십의 주인공 정대철과 그에 반해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아들 정지용, 완벽한 계획표대로 성장하고 정지용과 결혼한 최영주. 소설은 세 명의 소비행태와 끝없는 욕망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세계로의 입성을 꿈꾸는 BJ 이하나와 이하나를 돕는 성공자. 정지용이 이하나에게 관심을 보이자 성공자는 이하나에게 정지용이란 새로운 세상을 잡으라 말한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이용하는 관계, 마치 한 편의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건 정대철이 만든 ‘메종드레브’라는 공간과 김사과가 만든 인물의 고유한 특징이다. 5평 원룸에서 200평 펜트하우스로 이어진 ‘메종드레브’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인다. 같은 하늘 아래 너무도 다른 공간, 수많은 감시용 카메라. 펜트하우스에서 사는 정지용에게 5평 원룸에 사는 이하나는 신선한 대상이었다. 그런 공간이 ‘메종드레브’에 존재한다는 게 놀라웠을지도 모른다. 이하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재미있다. 결국 이하나는 정지용의 애인이 되고 5평 원룸을 떠나 서울의 강남에서 풍족한 삶을 누리지만 5평 원룸에서와 다르지 않은 결핍을 느낀다. 더 넓고 호화로운 집, 한도를 알 수 없는 카드는 이하나의 허무를 달래기 위해 사용될 뿐이다.

 

 최영주를 통해 채우지 못한 욕망을 이하나에게 얻는 정지용은 당당하다. 임신한 아내의 비유를 맞추고 최선의 남편인 양 연기를 한다. 그런 남편의 모든 걸 알면서도 그저 감시하는 아내 최영주. 다들 정상이 아니다. 이미 모든 걸 갖고 태어났기에 그런 걸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삶의 궁극적인 행복은 무엇일까.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을 이용하는 정대철, 속내를 감추고 적을 만들지 않는 한 마리 뱀 같은 정지용, 영악하면서도 우아함을 놓치지 않는 마녀의 얼굴을 한 최영주. 그들이 나누는 모호한 대화와 자유자재로 문학 작품을 구사하고 철학을 논하는 건 일종의 완벽한 위장술이다.

 

 “한 번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사람 같은 표정으로, ‘엔, 이, 더블유, 뉴N. E. W.가 현대 세상을 결정했다.’ 그게 무슨 약자인지 아세요? 신경학neurology, 전기electricity,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2. 믿어지세요? 제 아버지가 이렇게 황당할 정도로 유치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런데 사람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하죠. 그게 다 아버지의 연기에 속고 있는 거야.” (201~202쪽)

 

 우리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보이는 게 전부인 것처럼 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떤 이는 SNS를 통해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에 중독된다. 어떤 이는 그것이 허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꾸준하게 새로운 허상을 만든다. 어쩌면 소설 속 인물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비하는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을 놓치고 껍데기로 살고 있는지도.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내가 여전히 알 수 없는 세상,  알고 싶지 않고 궁금하지 않은 다른 세상을 사는 이들, 우리 사회 어딘가 그들만의 세계, ‘메종드레브’ 가 존재한다는 걸 의심할 필요도 없다. 어쨌든 불편하면서도 독특한 이야기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김사과가 보여줄 다음 세상을 결정할 새로운 뉴 N. E. W.는 무엇의 약자가 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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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복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있다고 확신했다. 아침에는 뜨거운 커피를 마셨으니까. 모두 위장이었다. 여름이니 태풍이 올 거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강력한 태풍과 마주할 줄 몰랐다. 태풍 경로, 태풍 위치를 검색하고 있다나는 바람이 너무 무섭다2010년 태풍 곤파스 때문이다. 경험이 이렇게 무섭다.

 바람이 증발한 것처럼 고요하다. 매미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아찔한 고요다. 태풍이 지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부디 피해가 없기를. 이동하면서 태풍의 크기가 줄어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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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사노 아키라 지음, 이영미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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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더워지면서 현관문을 열어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날 이웃의 아기가 현관문을 기웃거린다. 그러다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다. 마구 걷는 걸 좋아하는 시기, 호기심이 많은 시기의 아이가 귀여워 그냥 놔뒀는데 아이의 엄마 입장에서는 문을 열어둔 내가 싫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이 닫혔다면 아이는 그냥 포기했을 테니까. 양육을 담당할 의무가 없는 시선에서 바라보는 아이는 모두 예쁘고 사랑스럽다. 자식이라면 모든 게 달라진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고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으니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그 표현법은 저마다 다르다. 보통의 경우 어머니가 다정하면 아버지는 엄하다. 맞벌이 경우는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 물질적으로 보상을 해준다고 들었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걸 알면서도 일 때문에 나중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 료타도 그랬다. 맡은 일이 너무 많아서, 게이타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꼭 참석해야 하는 행사도 놓치는 일이 잦았다. 전업주부인 미도리가 아이를 챙기니까 괜찮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게이타가 사립학교에 입학하고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 순종적으로 자라는 게 나쁘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소식을 들었다. 출산 당시 바뀌었다고. 병원에서는 바뀐 아이의 부모에게 연락을 취했고 아무렇지 않게 빠른 시간에 아이를 교환하라는 말을 전한다.

 

 노노미야 가족은 삼각형이었다. 료타와 미도리와 게이타가 그리는 삼각형은 이등변삼각형이다. 미도리와 게이타가 연결된 밑변은 짧다. 아주 짧다. 그리고 꼭짓점인 료타는 너무나 먼 곳에 있다. 그래도 좋았다. 비뚤어졌어도, 불안정해 보여도, 그것이 노노미야 가족이었다. (137쪽)

 

 6 동안 살을 비비고 키운 아이가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라니. 미도리는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막상 상대 아이인 류세이를 만났지만 내 아이가 저기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료타는 상대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교양도 없고 경제력도 그렇고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까지 별로다. 어쨌든 자주 만나 서로의 아이를 보고 주말에는 집에서 재우기로 한다. 막장 드라마 소재라 할 수 있는 뒤바뀐 아이. 극과 극으로 비교되는 환경,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극명하게 다르다. 료타가 아이에게 규칙을 정해주었다면 유다이는 자유롭게 방목으로 키웠다. 료타는 아이를 교환하는 게 아니라 류세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게이타와 함께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아빠인 료타와 유다이는 종종 충동 비슷한 게 있지만 엄마인 미도리와 유카리는 서로 연락을 하면서 아이에 대해 정보를 공유한다. 

 

 “시간이 다는 아닐 텐데요.

 “무슨 소리예요. 시간이에요, 아이들은 시간이라고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요.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거죠.” (156쪽)  

 

 가족 영화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영화로 이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이다. 평범한 보통의 일상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면서 가족에 대한 이해와 부모의 의미를 되새기며 잔잔한 감동을 준다. 류세이를 바라보는 미도리의 마음에 퍼지는 파장, 잠에서 깬 게이타를 안심시키며 안아주는 다정한 유카리. 제목처럼 특별히 부성애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는 없다. 낳은 정과 기른 정에서 갈등하는 진부한 모습도 볼 수 없다. 그저 담백하게 일상을 들려주고 조금씩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변화는 감정을 섬세하게 다룰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독자에게 자신의 가족과 부모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료타가 아버지와 새어머니와의 관계를 생각하듯 말이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바빠서 함께 식탁에 모여 밥 한 끼를 먹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가족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고 명절에는 존속 상해의 뉴스를 접한다. 이러한 시대에 다양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은 무엇이며, 부모는 무엇인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끊임없이 묻는다. 가까이 있어도 데면데면하며, 살가운 말 대신 무뚝뚝하게 대하는 나의 행동이 미안하다. 서툴고 어색하지만 조금은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연습을 해본다. 그렇게 우리는 이전보다 좀 더 가까운 사이의 가족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완전한 가족으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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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8-22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영화로 봤는데 나름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그의 작품은 늘 가족을 일관되게 그리더군요.
전 그런 자세도 좋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태풍 지나고>봤는데 오늘 밤 같은 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태풍이 몰려온다니...ㅋ

자목련 2018-08-24 16:12   좋아요 1 | URL
네, 그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느 가족>도 영화 소개에서 보니 가족 구성원이 무척 특별하더라고요.
말씀하신 영화를 떠올리니 놀이터 미끄럼틀(정확한 기억이 맞는지)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프레이야 2018-08-22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본 어느가족도 뭉클했어요. 오히려 사회구조와 가족을 냉정히 바라보게도 되구요. 그게 히로카즈 감독의 의도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따뜻해서 좋았어요. 계속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꾸려서 내보이네요. 태풍전일입니다. 무더위 잘 견디셨는지요.

자목련 2018-08-24 16:15   좋아요 0 | URL
하나의 주제를 폭 넓고 심도 깊게 파고드는 감독인 것 같아요. 소소한 일상과 대화를 통해 감동을 주는 힘, 역시 대단한 감독입니다. 이곳은 어젯밤에는 비과 바람도 많지 않았어요. 폭염의 시간도 어떻게든 지나가는 구나 싶어요. 곧 가을이 오겠지요. 그 안에서 평안하시길 바라요.
 

 기구한 운명이다.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의 앞 부분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나도 한참 잘못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디선가 주룡이 호통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네가 사는 시대는 옳고 좋은 시대냐고 말이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스무 살에 다섯 살 어린 전빈과 결혼한 여자, 독립운동의 뜻을 지닌 남편을 따라 백광운 장군 아래 독립군 부대에 들어간 여자, 남편은 남겨두고 혼자 친정으로 돌아온 여자, 남편의 위독함을 알고 찾았으나 장례를 치른 여자, 시댁으로 돌아왔지만 남편 죽인 여자라 감옥에 갇히고 마는 여자. 전후 사정을 살피지 않고 무조건 잘못과 불행은 모두 주룡의 몫이 된다. 딸을 안아주기는커녕 부끄러워 살던 곳을 떠나는 아버지. 모두 잊겠노라 여기고 농사지으며 살겠다고 결심했으나 부모는 지주에게 딸을 시집보내려 한다. 주룡은 떠나야 했다. 부모를 따라 서간도로 이사 와 시집을 갔고 남편의 뜻에 따라 독립군에 들어갔다 돌아왔고 다시 부모의 뜻에 따라 사리원으로 왔다. 이제는 누구의 말을 따르는 게 아니라 주룡이 원하는 대로 평양으로 왔다. 그리고 고무 공장에 취직했다.

 

 한 번씩 전빈이 애타게 그립기도 하고 백광운 장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공장에서 동료들과 일하며 월급으로 영화도 보고 잡지도 사고 멋지게 사는 모던 걸을 ​꿈꾼다. 부당한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아무 이유 없이 여공에게 매질을 하고 못되게 구는 작업반장, 고무 냄새가 빠지지 않는 작업장, 주룡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도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살려고 했다. 주변 공장의 파업 소식과 노조에 대한 소식을 듣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동료인 흥이 형님과 삼이와 함께 파업단 천막에 들어가 교육을 듣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아이를 낳고도 쉬지 못하고 갓난 아이를 데리고 일을 하러 온 삼이에게 유급휴가 가 당연한 권리라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바로 파업단에 가입한 삼이는 해고와 이혼이라는 협박에 탈퇴를 하고 주룡은 단호한 각오로 가입을 한다. 주저하거나 부끄러울 게 없었다. 독립군 활동은 남편 전빈이 좋아서 택했지만 파업단 가입은 주룡 인생의 지평이 되었다.

 

 기실은 내래 모단 껄이 되는 거 꿈이었습네다. 아이디, 안즉도 모단 껄 되구자 하는 꿈은 저버리지 못했시요. 기레도 인제는 파업단에서 선봉이 되는 거이 나의 바람입네다. (중략) 내 배운 것이라곤 예서 배워준 교육밖에 없는 무지랭이지마는 교육 배워놓으니 알겠습네다. 여직공은 하챦구 모단 껄은 귀한 것이 아이라는 것.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 고무공이 모단 껄 꿈을 꾸든 말든, 관리자가 그따우로 날 대해서는 아니 되얐다는 것. (180쪽)

 

 총파업 대회가 끝나고 경찰의 개입으로 원하던 투쟁의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앞으로를 도모해야 한다며 찾아와 설득하는 달헌을 따라 주룡은 세미나에 참여하고 공부하며 노동조합 결성 결의 대회를 이끈다. 노동자가 모이는 것과 반대로 공장주는 임금 감하를 통보하고 주룡을 주축으로 고무 공장 마흔아홉 명의 여공들은 파업 집회를 시작한다. 백 명의 경찰과 대치하면서도 담담하게 동료를 이끄는 주룡. 공장으로 들어가 아사 투쟁을 시작하지만 경찰의 무력에 당할 도리가 없다. 서로를 독려하며 경찰을 피해 흩어진다. 87년 전 파업 투쟁과 오늘의 그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니. 시대가 변할수록 더 좋아지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주룡이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너무도 안쓰럽고 답답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마지막 수단이라 여겼을 주룡.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간 이들이 주룡의 모습과 겹쳐지는 건 당연하다. 감옥에서도 이어진 아사 투쟁. 그가 바랐던 건 대단한 게 아니라 그저 기본적인 권리였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고공 농성’을 벌였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생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현실이 아프다. 얼마 전 방송을 통해 4500일 만에 복직하는 Ktx 승무원들이 합숙하고 시위했던 현장이 자꾸만 스쳐 지나간다.

 

 전빈 곁에서는 수줍은 주룡, 파업단에서는 당당한 주룡, 모던 걸로 살고 싶었던 주룡. 그녀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생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자 한 게 아니었다. 스스로 개척하며 전진한 것이다. 소설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강주룡도 정달헌도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그렇다. 치열했던 투쟁의 삶은 내가 아는 삶이 아니라고 여기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빛바랜 잡지 속에서 잠자던 주룡을 깨워 세상에 소개한 박서련 작가에게 고맙다. 살아 있는 주룡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지난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강주룡에 대해 언급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여성 독립운동가로 해녀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의 이름도 함께 말이다. 이제부터 많은 이들이 그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기억하는 것만큼 그녀가 바꾸고 싶었던 세상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화통하면서도 당당한 강주룡을 만나는 동안 영초 언니가 자꾸만 생각났다. 강주룡과 천영초, 나는 둘 다 알지 못했던 이들이다. 역사가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내가 관심을 두지 않을 탓일까.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그들의 운명은 너무도 닮았다. 노동운동과 민주화의 역사에 그들은 누구보다도 빛나는 이름이었을 텐데. 한 권의 책으로나마 그들과 만났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보다 나은 사회를 바라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닐 텐데. 투쟁의 시간과 안타까운 죽음은 왜 줄어들지 않는 것일까.

 

 하늘로 올라가는 길처럼 빛나는 광목을 주룡은 단단히 붙든다. 사실은 두려워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이면서. 사실은 살고 싶어서, 그 누구보다도 더 살고 싶어서 활활 불타고 있으면서. 지붕 위에서 잠든 그 여자를 향해 누군가가 외친다. 저기 사람이 있다. (242쪽)

 

 학교에서, 회사에서, 거리에서, 방송에서, SNS에서 만난 주룡을 떠올린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녀들은 주룡. 제대로 살고 싶어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오늘도 당당하게 투쟁하는 아름답고 위대한 그녀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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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8-20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주룡˝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요즘이라면 여성보다는 남성일 것 같은데요.
그 시기의 유행하는 이름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것같아요.
이름 말고도 지금과 그 시기가 다른 것도 많겠지만, 또 많이 다르지 않은 것도 잇을 것 같습니다.
자목련님, 밖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요. 기분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자목련 2018-08-22 17: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좀 특이한 이름이에요. 시대가 달라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고요. 성장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기대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가 봐요. 태풍이 온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피해 없이 지나가야 할 텐데요.
 
잘돼가? 무엇이든 -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이경미 첫 번째 에세이
이경미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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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를 기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성을 들이지 않더라도 쓰는 동안 하루를 돌아보고 감정을 정리하는 일은 일정량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습관처럼 쓴다고 해도 어렵다. 인생의 소중한 날, 슬픈 날은 기록하지 않아도 가슴에 새겨진다. 일기를 쓴다는 건 나를 기록하는 일이다. 나 외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긴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이에게는 기록은 중요한 정보이며 제법 시간이 지난 후에 마주하면 호탕한 웃음을 선물하기도 한다.

 

 남한테 칭찬을 받으려는 생각 속에는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혼자 의연히 선 사람은 칭찬을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남의 비난에도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다. (132쪽)

 

 지나고 보면 다 별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걸 어느 순간 알게 됐다. 호기롭게 말로만 그런 경우도 있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때의 나에게 잘했어, 괜찮아라고 말을 건넬 여유가 생긴다. 쓸데없는 말들이 이어지는 걸 보니 내게 이경미의 『잘 돼가? 무엇이든』​가 나쁘지 않았나 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에세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런 종류란 흥행 영화, 드라마로 대중에게 알려진 이들의 글이라는 거다. 어떻게 보면 괜히 부러워서 심술을 부리는 모양이다. 이경미 감독의 영화는 보지 않았다. 안면홍조증에 걸린 배우 공효진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의 감독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그보다는 방송에서 단편영화를 촬영하는 걸 보여주는 프로를 통해 <아랫집>을 보았을 뿐이다. 기이하면서도 신선하고 놀랍다고 생각했다. 그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글은 역시 감각적이라고 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제목처럼 ‘잘 돼가? 무엇이든?’라고 묻는다면 ‘응, 잘 돼가고 있어. 완벽해!’라고 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처럼 ‘그냥 그래’, 혹은 ‘생각처럼 안 돼서 힘들어’ 하고 답하는 이가 훨씬 많겠다. 예상했겠지만 그냥 사는 이야기다. 그냥 사는 이야기인데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가 아는 어떤 이의 이야기 같아서 웃기도 많이 웃고 고개를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나중에는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속상해했다.

 

 백인 공포증이 있었지만 13살 연하의 백인과 결혼했고 어쩌다 보니 영화학교에 입학했고 시나리오가 안 써져서 죽을 것 같아 악몽을 꾸고 짝사랑하는 이에게 고백도 못 하고 같이 술을 마시고 스크립터로 일할 때는 밧데리를 가져다 달라는 감독의 말을 박대리로 알아듣고 스텝들에게 박대리를 외치고 아빠랑 싸우다가 상추로 맞은 이야기. 진짜 인간 이경미 감독의 소소한 일상이자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블로그의 비공개 카테고리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글들을 공개로 돌려 짠하고 보여주는 거랄까. 그런 느낌이었다. 순간 궁금해졌다. 비공개가 공개로 바뀌는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채널예스에서 ‘이경미의 어쨌든’이란 칼럼으로 연재를 한 글을 제외하면 말이다.

 

 유머를 장착한 진솔한 글을 읽다 보면 이경미 감독에겐 영화, 시나리오, 가족이 전부라는 걸 알게 된다.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좋아하는 일과 든든한 응원을 하는 지원군이 있으니 그녀는 행복한 편이다. 나는 그녀가 부모님과 나누는 정겨운 대화가 너무 좋았다. 아니, 부러웠다. 이상한 소리를 들은 고3 딸을 데리고 광복절에 구마 사제에게 데리고 가고 딸의 손목 염증이 걸려 맥 짚어주는 할아버지가 처방한 여섯 개의 구멍이 있는 스티커를 몸 여기저기 붙이고, 웨딩드레스 대신 원피스 입겠다는 딸 때문에 9일 기도에 들어 가고, 애정이 담긴 잔소리를 문자로 보내는 엄마라니.

 

 입은 꼭 다문 채 점점 마르고 새까맣게 변해가는 나를 본 뒤로 엄마는 매일 밤 “편안히 잘 자라” 문자를 보내주었다. 어두운 망망대해 위에 혼자 남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때, 엄마의 문자는 그날 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빛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저 문자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211쪽)

 

 한때는 잘 살고 싶었다. 소위 남들처럼 행복하게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잘 산다는 게 뭔지, 남들처럼은 또 뭔가 하고 따져보게 되었다. 내가 사는 건 내 삶이지 남들이 사는 삶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알게 됐다. 알았으니 이제 나의 판단과 가치를 믿고 살아간다. 그러니 예전보다 편안해졌고 부질없는 욕심도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내려놓음, 비움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말은 아니다. 오해하지 말길. 좌절하고 질투하고 화내고 버티는 중이니까.

 

 그동안 살면서 깨달은 점 하나는, 선의와 도덕성이 아무리 충분해도 나와 같은 입장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온전한 동의와 공감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살아온 배경이 제각각인 우리. 그러나 인생은 덧없이 짧고,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고,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대에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아등바등 버티기는 다 마찬가지다.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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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19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밧데리!박대리....아 그 순간 얼마나 부끄럽고 황당했을까요 하지만 돌아보면 웃을수 있고 그게 인생인가 싶네요

자목련 2018-08-20 17:19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소소한 실수와 민망한 상황들의 집합체가 인생이겠지요. 이 책에는 그런 에피소드가 몇 개 더 등장하는데 넘 웃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