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E. W.
김사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사는 세상과 당신이 사는 세상은 다르다. 같은 시간을 살지만 우리의 삶은 모두 다르다. 한때는 내가 사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아주 가까운 곳에 그런 세상이 있음에도 그곳에 그런 삶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회적 계층 혹은 계급이 다르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일은 불가능할 것일까? 김사과의 장편소설 『 N.E.W. 』를 읽다 보면 열심히 노력하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보통의 소시민에게는 불가능처럼 여겨진다. 단절이라고 하면 맞을까.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 김사과는 전형적인 상류사회의 일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오손그룹 회장 정대철, 그의 아들 정지용, 정지용의 아내 최영주가 그리는 새로운 세상, 그것은 우리에겐 비현실적이면서도 잔혹한 풍경이다. 확인할 수 없는 가십의 주인공 정대철과 그에 반해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아들 정지용, 완벽한 계획표대로 성장하고 정지용과 결혼한 최영주. 소설은 세 명의 소비행태와 끝없는 욕망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세계로의 입성을 꿈꾸는 BJ 이하나와 이하나를 돕는 성공자. 정지용이 이하나에게 관심을 보이자 성공자는 이하나에게 정지용이란 새로운 세상을 잡으라 말한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이용하는 관계, 마치 한 편의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건 정대철이 만든 ‘메종드레브’라는 공간과 김사과가 만든 인물의 고유한 특징이다. 5평 원룸에서 200평 펜트하우스로 이어진 ‘메종드레브’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인다. 같은 하늘 아래 너무도 다른 공간, 수많은 감시용 카메라. 펜트하우스에서 사는 정지용에게 5평 원룸에 사는 이하나는 신선한 대상이었다. 그런 공간이 ‘메종드레브’에 존재한다는 게 놀라웠을지도 모른다. 이하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재미있다. 결국 이하나는 정지용의 애인이 되고 5평 원룸을 떠나 서울의 강남에서 풍족한 삶을 누리지만 5평 원룸에서와 다르지 않은 결핍을 느낀다. 더 넓고 호화로운 집, 한도를 알 수 없는 카드는 이하나의 허무를 달래기 위해 사용될 뿐이다.

 

 최영주를 통해 채우지 못한 욕망을 이하나에게 얻는 정지용은 당당하다. 임신한 아내의 비유를 맞추고 최선의 남편인 양 연기를 한다. 그런 남편의 모든 걸 알면서도 그저 감시하는 아내 최영주. 다들 정상이 아니다. 이미 모든 걸 갖고 태어났기에 그런 걸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삶의 궁극적인 행복은 무엇일까.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을 이용하는 정대철, 속내를 감추고 적을 만들지 않는 한 마리 뱀 같은 정지용, 영악하면서도 우아함을 놓치지 않는 마녀의 얼굴을 한 최영주. 그들이 나누는 모호한 대화와 자유자재로 문학 작품을 구사하고 철학을 논하는 건 일종의 완벽한 위장술이다.

 

 “한 번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사람 같은 표정으로, ‘엔, 이, 더블유, 뉴N. E. W.가 현대 세상을 결정했다.’ 그게 무슨 약자인지 아세요? 신경학neurology, 전기electricity,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2. 믿어지세요? 제 아버지가 이렇게 황당할 정도로 유치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런데 사람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하죠. 그게 다 아버지의 연기에 속고 있는 거야.” (201~202쪽)

 

 우리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보이는 게 전부인 것처럼 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떤 이는 SNS를 통해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에 중독된다. 어떤 이는 그것이 허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꾸준하게 새로운 허상을 만든다. 어쩌면 소설 속 인물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비하는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을 놓치고 껍데기로 살고 있는지도.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내가 여전히 알 수 없는 세상,  알고 싶지 않고 궁금하지 않은 다른 세상을 사는 이들, 우리 사회 어딘가 그들만의 세계, ‘메종드레브’ 가 존재한다는 걸 의심할 필요도 없다. 어쨌든 불편하면서도 독특한 이야기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김사과가 보여줄 다음 세상을 결정할 새로운 뉴 N. E. W.는 무엇의 약자가 될지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