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준
고종석 지음 / 새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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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가끔 일기를 쓴다. 특별한 일이 없는 반복된 일상의 기록이지만  지난 날의 기록을 마주하는 순간, 묘한 감상에 젖는다. 또렷하게 살아나는 슬픔의 감정이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만나기도 하지만, 나의 생각과 기록을 되짚을 수 있어 좋다. 그러나,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의 기록을 읽는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그리운 사람이 남긴 일기라면 더 그럴 것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할까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소설 독고준은 그런 이야기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읽게 되는 딸의 일상과 생각을 담았다.  
 
 아쉽게도 나는 이 소설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최인훈의 『회색인』과 『서유기』를 읽지 못했다. 해서, 주인공 독고준의 과거를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아버지 독고준과 딸 독고원의 삶을 다룬 소설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소설가 아버지가 일기를 통해 아버지의 생각과 사랑을 확인하는 딸의 애틋한 마음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소설은 독고준의 자살로 시작한다. 전임 대통령이 자살하던 날 독고준은 14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자살을 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왜 그렇게 삶을 마감해야 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일기를 딸 독고원이 읽게 된다.   

 월남을 한 독고준에게 가족은 아내와 두 딸뿐이었다. 평생을 외롭게 살다 간 그의 기록은 담담하면서도 평온했다. 독고원의 시선에서 바라본 독고준의 삶을 만날 수 있기에 액자소설에 가깝다. 독고준의 일기는 단 한 줄의 짧은 기록을 남긴 날도 있고, 장문의 글을 남긴 날도 있다. 소설가의 삶을 살아온 그이기에 어떤 일기는 논평이고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설이며, 비평이기도 하다.  

 독고준의 일기는 1960년 4월 28일부터 2007년 12월 19일까지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일기는 쓰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2009년 5월 23일 일흔 네살의 독고준은 자살한다. 무려 48년의 기록인 일기는 순차적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월별로 공개된다. 독고원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것이라 하겠다.  

 주류에 합류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기에 비주류였던 소설가로 살아온 아버지의 고뇌와 비애, 아버지를 대신해 경제를 책임진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을 일기를 통해 표현했던 아버지. 전처 자식이 있는 남자와 재혼한 작은 딸과 동성애자의 삶을 선택한 자 큰 딸을 향한 무한의 사랑을 기록한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내 아버지를 생각한다. 다정다감한 모습을 찾을 수 없는 아버지, 엄마의 죽음으로 점점 작아지는 아버지의 내면에 무엇이 있을까. 나는 어떤 자식일까, 죄송하고 죄송하다.  

 독고준을 읽으면서 그러니까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1960년대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정치와 문학을 만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한국문학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독고준이 기록한 일기에는 책과 시가 많이 등장한다. 그 부분은 무척 인상적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문학가들의 작품에 대한 글은 문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흥미로운 부분이다. 해서, 독고준의 일기에 거론된 작품들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온다. 

 또한 소설가나 시인, 문학가들의 실명이 드러나기에 마치 논픽션이 아닐까 착각에 빠져든다. 그것은 저자 고종석이 저널리스트이자 언어학자라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책을 읽다 말고 거론된 작가와 작품을 검색하기도 했고, 작가 이제하씨의 홈페이지에 방문하기도 했다. 수많은 작품 중 알랭드 보통의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이나, 윤성학의 시 <뼈아픈 직립>은 나를 사로잡았다. 

 허리뼈 하나가 하중을 비켜섰다/계단을 뛰어 내려오다가/후두둑/직립이 무너져내렸다//뼈를 맞췄다/삶의 벽돌 한 장쯤은/어긋나더라도/금세 다시 끼워놓을 수 있는 것이었구나/유충처럼 꿈틀대며 왔던 길을/바로 서서 걸어 돌아왔다//온몸이 다 잠들지 못하고/밤을 세워 아프다/생뼈를 억지로 끼워넣었으니/한 조각 뼈를 위하여/이백여섯/내 삶의 뼈마디 마디가/기어코 뼈 몸살을 앓아야 했다/ -  윤성학 <뼈아픈 직립> 전문 

 일기에는 유독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부고에 대한 기록이 많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던 인물의 죽음은 그렇게 단 한 줄의 기록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삶은 그런 것인가. 독고준은 분명 가상의 인물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보면 이 사람이 정말 존재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든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자서전이나 수필같다는 느낌이 많다. 

 작가의 문학세계와 그의 삶은 일치할 수 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일치하는 경우보다 휠씬 많을 듯하다.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격언은 아주 깊다란 수준,  매우 추상적인 수준에서만 옳다. 인류는 교활해서, 자신의 추악한 참모습을 아름다운 언어의 천으로 가릴 수 있다. p.397  - 독고준 소묘 중에서 

 마지막으로 고종석 묘사한 독고준의 글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추악한 참모습을 아름다운 언어의 천으로 가리는 인간는 작가뿐 아니라, 인간 본연의 숨겨진 모습은 아닐런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우리 개인의 삶, 우리는 제대로 기록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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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 02 - 김사과 소설집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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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괴한 이미지의 표지는 소설에 대한 복선이라 해도 좋다. 그만큼 소설은 날카롭고, 기이하고, 섬뜩하다. 표제작인 영이를 포함한 8편의 단편은 욕설과 폭행과 분노가 낭자한 불편하고 불쾌한 소설들이다. 해서, 책을 잠시 멈추고 싶은 충동마저 든다. 소설은 독이 든 사과였다. 탐스럽게 윤기가 흐르는 사과를 한 입 베었을 때, 뱉어낼 수 없고 삼킬 수 밖에 없는 강한 향을 가진 그런 사과였다. 

 ‘영이야. 아이들이 영이를 불렀다. 영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영이까지 합쳐서 다섯 명의 영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 방금 전까지 영이는 영이 하나뿐이었는데 아이들이 부르자 하나의 영이와 네 개의 영이들이 된 것이다. 영이는 몹시 당황했다. 하지만 영이가 네 개나 있으니까 괜찮다.’ p.8 

 영이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그녀를 주시하게 될 것이라고.궁금증을 불러오는 문장,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영이는 주인공의 이름이자, 상상으로 만들어진 존재다. 그러니까 누구나 자신만의 영이가 있는 것이다. ‘영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영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주희의 영이가 새까만 뒤통수인 것처럼, 채은이의 영이가 이상한 머리핀인 것처럼, 은영이의 영이가 온통 미소인 것처럼 영이의 영이는 흉한 영이이고 모두 각각의 영이들일 뿐이다.’ p. 9~ 10 

 주인공 영이는 열 두살, 초등학교 5학년이다. 영이는 모두 같은 영이와 차별을 위해 자신의 영이를 순이라 부른다. 영이는 이제 순이인 것이다. 영이는 왜 순이를 만들어야 했을까. 영이의 가정 폭력을 목격하며 자랐다. 술에 취한 아빠, 그런 아빠에게 욕을 하는 엄마. 매일 반복되는 싸움 속에서 두려움에 쌓인 영이는 방치되고 만다. 영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순이를 만들어야 했고, 순이는 그런 영이를 지켜야만 했다. 울고 있는 영이를 달래는 것도 순이였고, 욕을 하는 영이에게 학교 숙제를 기억하게 하는 것도 순이였다.    

 ‘아빠가 술을 마신다 → 엄마가 욕을 한다 → 아빠가 엄마를 때린다 → 엄마와 아빠가 싸운다 

 아빠가 술을 마시면 엄마는 욕을 하고 아빠는 엄마를 때리고 둘은 싸운다. 한 문장으로 쓰면 될 것을 나는 왜 이렇게 많은 문장을 쓰고 있나. 왜냐하면 백 문장에는 백 문장의 진실이 있고 한 문장에는 한 문장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다른 것처럼, 열 시간의 고통과 십분의 고통이 다른 것처럼, 백 문장의 진실과 한 문장의 진실이 다르다. 이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광경이기 때문에, 한 문장 - 삼초의 고통이 아니라 천 문장 - 삼천초의 고통을 안겨줘야 한다. 그래야만 당신도 느낄 수 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읽는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 느끼는 당신을 원한다. 아주 오래 느끼는 당신을 원한다. 당신은 아주 오래 느껴야 한다. 한 번 더 사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오랫동안 말이다.  그래야 영이가 당신 마음속에 오래도록, 영이가 죽고 내가 죽은 뒤에도,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p. 25 

 ‘나는 읽는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 느끼는 당신을 원한다. 아주 오래 느끼는 당신을 원한다. 당신은 아주 오래 느껴야 한다. 한 번 더 사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오랫동안 말이다.’ 영이가 느꼈을 공포와 분노가 담겨진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는 나는 과연 영이처럼 느낄 수 있을까. 

 <이나의 좁고 긴 방>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과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나가 다니는 학교는 장미색 대리석을 깔아놓은 휴게실이 있고 매정에는 최고급 베이커리의 빵이 있다. 그곳은 이상 세계였고 현실은 악취가 가득한 낡은 아파트에 살며 구두를 사기 위해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때워야 한다. 유명 시립대학교에 다니는 이나가 할머니를 살해한 건 우발적인 일이다. 할머니의 지갑에 있던 칠만 오천원 때문이 아니라, 죽음이 가까운 늙은 할머니를 도와준 것뿐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나는 죽은 할머니가 매일 찾아오는 환상이 없었다면 살 수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소설도 마찬가지다. 고추장에 중독된 재수생과 거식증에 걸린 여고생의 이야기인 <과학자>, 담임 선생님을 증오하며 개새끼 죽여버리겠다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10의 원조교재와 일탈을 일삼는 일상을 과감하지만 담담하게 그려낸 <준희>. 평범한 직장인이던 주인공이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고 어느 날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태연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 신기한 날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초등학생을 시작으로 여고생, 재수생, 20대 초반이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며 불안한 환경에 살고 있다. 결코 그들은 가정폭력, 가난, 방치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분노하고 절망한다. 김사과는 그들의 우울한 감정의 기복을 반복된 문장을 통해 부각시킨다. 영이에서 술에 취한 아빠에게 삽으로 내려치며 하는 말(개새끼가 정말로 개가 됐네, 개새끼가 정말로 개가 됐네 p. 32),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환상을 보고 마는 <정오의 산책>에서 주인공 ‘한’은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p. 177)란 말을 반복하며 자위한다.
 
 소설엔 거울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은 거울을 보고 있으나, 자신의 모습을 회피하고 싶다. 영이는 순이를 보고 싶고, 거식증에 걸린 여고생은 좀 더 마른 모습이 비춰지길 바란다. 그건 김사과의 소망인지 모른다.  거울이 도시를 비추고, 그 위로 빛이 내려앉는다. 쏟아져내리는 빛 속에서 다시 거울이 도시 전체를 반사한다. 이제 도시는 반사된 상에 불과하다. 거울이 놓여 있는 것은 하나의 흰 방이다. 방은 다른 방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창, 거울, 탁자, 미국식 아침식사로 구성되어 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기 비치는 것은 내가 아닌 어떤 거리다. 거울 속에서 나는 그 거리에 속해 있다. 여전히 시간은 오후 두시이고 같은 노래가 반복된다. 여전히 계절은 지옥이고 그 계절의 습기가 도시를 조금씩 미치게 만든다.’ p. 244

 김사과의 소설에 등장하는 폭력과 혼상은 김이설의 단편<오늘처럼 고요히>,<순애보>를 떠올린다. 그러나 김이설과 김사과의 소설은 다르다. 김이설의 소설에서 분노와 폭력은 그 대상이 분명하나, 김사과의 폭력은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서, 묻지마 살인과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살인이 등장하는 것이다.  

 신선한 충격이라고 하기엔 피가 넘쳐 흐르는 잔혹한 소설이다. 이제 20대 후반인 김사과가 바라보는 세상을 앞으로 어떻게 그려낼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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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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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을 갖는 건 좋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하게 김훈의 소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  <내 젊은 날의 숲>에 대해서도 김훈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해서, 기자 시절의 김훈을 상상하기도 했다. 읽기 전에 짐작만으로 소설을 판단하는 건 소설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미친 건 소설을 다 읽은 후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맑은 소설이다. 고요한 산사에 울리는 풍경의 울림이랄까. 내게는 그 소리로 들렸다. 그리하여 그 소리에 이끌려 숲으로 들어가  꽃과 나무들 간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게 한다. 김훈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김훈의 소설을 권한다면 <남한산성>이나 <칼의 노래>가 아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소설은 세밀화가인 연주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의 풍경이다. 연주 자신의 가족과 그녀 주변의 인물들을 그녀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묘사한다. 아버지를 경멸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어머니. 군청 공무원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결국 뇌물죄와 공무원이란 위치를 이용해 가족을 부양한 아버지는 감옥에 있다. 비루하고 비루한 가장으로의 삶,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아니지만 연주는 지난한 그의 삶에 연민을 느낀다. 아버지를 감옥에 보내고 자유를 얻는 듯 보이는 어머니, 늙고 병든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생각한다. 

  ‘마음의 일은 말하기 어렵다. 마음의 나라는 멀고 멀어서 자욱하다. 마음의 나라의 노을과 바람과 시간의 질감을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를 면회가면서 알았다.’ p. 11  연주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들은 모두 마음의 일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민통선 안 국립수목원에서 일하게 된 연주는 달마다 대표하는 꽃과 나무를 세밀화로 그려 보존하는 일을 맡는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숲을 통해 연주는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민통선 안의 생활은 단절 아닌 단절의 생활이었다. 안과 밖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할까. 밖에서 보는 국립수목원과 민통선에 주둔한 군인들은 사무적이고 딱딱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와 연주가 만난 김중위는 여리고 부드러운 청년이었고, 수목원의 연구실장 안요한은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이혼을 하고 세상과 소통을 두려워하는 아들 선우와 함께 사는 안요한을 통해 연주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선우와 나란히 식당에 앉아 아들의 밥에 반찬을 얻어주는 모습, 아버지와 꼭 닮은 아들의 모습을 보면 연주가 그랬듯 나도 세상 모든 아버지들, 자식을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하는 사람들, 아버지의 삶이 가엾고 고단하게 느껴진다. 가석방 된 아내와 딸과 마주했을 때, 모든 아버지가 그렇듯  아버지는 꽃을 그리는 자식을 걱정한다. 

 연주가 그리는 숲은 김훈의 문장으로 피어났다. ‘5월의 숲은 강성했다. 숲의 어린 날들은 길지 않았다. 나무들은 바빠서 신록의 풋기를 빠르게 벗어났다. 잎이 우거지면 숲의 음영은 깊었다. 밝음과 어둠이 섞여서 푸른 그늘이 바람에 흔들렸고 나무들 사이로 맑은 시야가 열렸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 스며서 그림자가 오히려 빛을 드러냈고 어둑한 시야 안에서 먼 나무와 풀 들의 모습이 가깝고 선명했다. 숲에서는, 빛이 허술한 자리에서 먼 쪽의 깊이가 들여다보였다.’ p. 143 

 5월의 숲을 상상한다. 5월은 방황하는 청춘을 닮았다. 바람이라는 시련과 고통이라는 그림자, 그 모두가 어우러져 하나의 숲이 탄생되는 듯하다. 문득, 나는 몇 월의 숲을 닮았으며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을까, 생각한다.  

 소설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잘 꿰어진 보석이다. 귀한 문장들, 자꾸 거내어 보고 싶다. 가령 이런 문장들, ‘꽃은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꽃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p. 164  ‘저절로 되어지는 것을 말하는 일은 저절로 되어지지 않는다.’ p. 337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인다고 했던가. 봄을 시작으로 겨울까지 연주가 그려 낸 숲은 삶의 단면이었는지 모른다. 숲에 있을 때 숲의 존재를 모르듯 부재를 인식하고서야 존재를 확인한다. 풀과 꽃과 나무가 모여 이룬 숲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숲에서 나와야 가능하다. 이처럼 우리네 관계도 그러하다. 아버지란 존재의 부재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나와 관계된 사람들과 어울려 있는 모습이 곧 아름다운 풍경임을 우리는 언제나 알게 될까.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는 그 감격적인 순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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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머나먼 - 2010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72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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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친구들과 몰려 다니던 시절, 봄이 되면 봄앓이를 했다. 천지 사방으로 피어나는 꽃들과 연두빛 들판을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른들 말씀이 그렇듯 생각해보면 그 때가 정말 빛나는 시절이었다. 요즘, 그러니까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는 부쩍 겨울이 되면 쓸쓸하고 허전하다. 다행인 건 일상을 나누는 친구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나만 느끼는 외로움이 아니라는 말이다.   


 시간은 늘 괴어 있다 

 수세기 저편에서  
 풀꽃 하나 흔들린다 

 하이덱거적 창문으로서의  
 한 Dasein도 흔들린다  

 흔들리고 흔들리는  
 이 세계 속에서 왜 시간은  
 늘 괴어 있는 것일까? 

 영원으로서 흔들리는 이 세계 안에서  

 흔적도 없이 괴어 있는 
 시간의 잿빛 그림자  - <시간의 잿빛 그림자> 전문 p. 43 

 
 잠들지 못하는 밤, 시를 읽었다. 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 제목의 시집이다.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 후회의 순간들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느 해보다 올해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환자복을 입고, 제법 환자다운 시간을 보낸 것이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병실에 침대를 마주하고 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방사선 치료를 위해 입원과 가퇴원을 반복하던 내 또래의 환자, 단순 종양제거 수술로 알고 열심히 운동을 하셨지만 위암이셨던 할머니 환자. 초췌하고 고통스런 표정의 내 모습이, 그곳에 고스란히 괴어 있다.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그 사막 한가운데서 나 혼자였었다 
 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가고  
 나는 배고팠고 슬펐다 

 어디선가 한 강물이 흘러갔고 
 (그러나 바다는 넘치지 않았고) 

 어디선가 한 하늘이 흘러갔고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 <한 세월이 있었다> 전문 p. 62   

 
 시인에게 괴어 있는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은 늘 그렇게 괴어 있는 건 아닐까. 괴어 있는 시간들이 모여 한 세월을 만들고, 잡히지 않는 순간들은 또 어디론가 흘러가고. 그러다가 한 순간 마주하게 되는 세월들. 우리네 삶이 돌고 돌아가는 물레방아처럼, 지나온 고통과 슬픔은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흘러갔다가 다른 모양으로 내게 돌아오듯 말이다.  

 시를 통해 시인은 지난한 시간을 돌아본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시간을 정리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새롭게 변화하려는 시도, 그러나 불안감도 엿보인다. 확실하지 않은 것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그러하리라. 그래도 어떤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하는 의지, 내일을 향해 무조건 달려가느라 헤아리지 못한 것들을 떠올린다. 시인의 시가 도착할 그곳이 시인의 바람대로 어떤 풀밭이면 좋겠다. 어떤 풀밭엔 무엇이 자라고 있을까.

 
 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이다 
 오랫동안 내 詩밭은 황폐했었다 
 너무 짙은 어둠, 너무 굳어버린 어둠 
 이젠 좀 느리고 하늘거리는 
 포오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 
 그러나 이사 갈 집이 
 어떤 집일런지는 나도 잘 모른다 
 너무 시장 거리도 아니고 
 너무 산기슭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예는, 다른, 다른, 다, 다른,   
 꽃밭이 아닌 어떤 풀밭으로 
 이사 가고 싶다  - <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 전문  p. 50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 <참 우습다>전문 p. 84  

 
<참 우습다>란 시를 읽으면서 거울을 들여다 본다. 주름과 기미가 가득하다. 평균적인 얼굴보다 나이들어 보이는 얼굴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57세의 나이를 생각한다. 내 어머니는 갖지 못한 나이다.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나이, 그러나 언젠가 마주할 나이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 했던가, 나도 피식 웃음이 난다. 꽃 피는 봄이 아니라, 추운 계절에 만났으니 다행일까.  그렇지도 모른다. 앙상한 나뭇가지로 잘 견디는 나무처럼 이 계절을 잘 견디기 위해 좋은 시들이다. 이 계절, 조금은 쓸쓸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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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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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편의 영화, 책, 음악이 특별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처음으로 본 영화라는 이유로, 이별을 했거나 슬픔에 잠겼을 때 들었던 음악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그리고 책이 그렇다. 따뜻한 위로를 주는 책을 만났을 때, 오래 오래 곁에 두게 된다. 그런 이유로 이어령 교수의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는 내게 이제 특별한 책으로 남을 것이다.   
 
 이어령 교수의 젊음의 탄생을 읽었을 때, 그 대상에 속하는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해서, 크게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에 반해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는 어머니라는 존재 때문인지, 읽는 내내 마음이 울렁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글을 시작으로 일상의 기록인 신변잡기라 할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 어쩌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을 수 있다. 부드럽고 섬세한 글로 이처럼 강한 울림을 줄 수 있다니, 놀라웠다. 진정 좋은 글이구나, 감탄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책, 나들이, 뒤주, 금계랍, 귤, 바다로 은유한 글은 아름다웠고 잔잔한 감동을 준다. 어머니가 읽어주시던 책으로 시작된 문학과의 만남, 함께 외갓집을 다녀오던 풍경, 쌀 위에 글씨를 써놓던 지혜, 자식을 위해 매를 들던 모습,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온 귤에 대한 아련한 추억, 바다처럼 넓고 무한한 어머니의 사랑. 

 나들이는 나가면서 동시에 들어오는 모순을 함께 싸버린 아름다운 말이다. p. 17  그 노란 귤과 거의 함께 어머니는 하얀 상자 속의 유골로 돌아오셨다. 물론 그 귤은 어머니도 나도 누구도 먹을 수 없는 열매였다. 그것은 먹는 열매가 아니었다. 그 둥근 과일은 사랑의 태양이었고 그리움의 달이었다. 그 향기로운 몇 알의 귤은 어머니와 함께 묻혔다. p. 24  바다는 살아 있는 어떤 것보다 생명력에 가득 차 있다. 어떤 짐승이 저렇게 강렬하게 숨쉴 수 있고 소리칠 수 있고 쉴 사이 없이 생동할 수 있겠는가. 어떤 풀 어떤 나무가 저렇게 늘 푸른빛으로 번지고 뻗쳐서 이 지상을 덮을 수 있을 것인가. p. 27

 어느 누가  간절함과 애통함을 이리 맑고 곱게 표현할 수 있을까. 1934년 생으로 올해 77세인 할아버지가 그리워하는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였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였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한 번도 글로 옮겨지 못한 미련한 나는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고향인 온양에 대한 크나큰 애정과 문학을 사막으로 표현한 글도 인상적이다. 그는 문학인 사막은  넓은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러니 사막을 건너기 위해 필요한 자신의 몸속에 수분을 저장한 낙타와 선인장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생이라는 끝없는 길을 걷는 우리에게 그는 먼저 걷고 있는 사람으로 어떻게 걸어여 할지 알려준다. 그가 경험하고 깨달은 방법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측은지심[惻隱之心]과 같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감기를 들어 설명한다.  

 만약, 당신이 감기에 걸려 방 안에 누워 있었던 경험이 있다면 이마를 짚는 그 손, 의미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손일 수도 있고, 친구들이나 혹은 조그마한 자기 아들의 손일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의 신열을 느낄 수가 없다.  가장 분명한 병까지도 자기의 힘만으로는, 그 인식만으로는 잡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타인들의 손이 나의 이마를 짚어줄 때, 그 촉감을 통해서만, 선뜻한 타인의 체온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열을 비로소 확인한다. p. 59 ~ 60 

 병든 굴과 조개에서 병을 막아내기 위해 배출한 분비물이 진주가 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겪는 슬픔을 말한다. 고통 없이 탄생할 수 없는 진주처럼 절망과 슬픔을 이겨내면 희망과 즐거움을 만날 꺼라 우리를 응원한다. 우리들 고뇌의 술잔에도 이 아름다운 진주를 넣어라. 그리고 그 빛을 마시고 아픔과 눈물이 굳어버린 슬픔을 다시 녹여라. 그 생명의 술잔을 기울일 때 우리들의 피는 다시 시끄럽게 파동 치리라. 바닷물처럼. 진주의 조개를 흔들어놓던 그 바닷물처럼 고뇌의 술잔에도 그 생명의 술잔에도 잔잔한 파도가 일리라. p. 97~98  밑줄 긋고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글이다. 

 단 한번도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이가 있을까. 때로 낙심과 좌절로 방황하고 그 길에 주저앉고 싶은 순간을 돌아보며 그는 우수라 했다. 열병처럼 다가오던 10대의 첫사랑, 매일 직장에 출근하던 20대의 출근부 도장, 고단한 삶에 찌든 30대 아내의 모습,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회한에 쌓인 40대, 그리고 늙은 아버지들의 일상.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제대로 가고 있는가, 묻는다.  

 낙원보다도 이상하게 생긴 곳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렇다. 그것은 이방의 어느 나라보다도 멀고 먼 공간이다. 그 여행으로 얻은 공간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문학은 어머니의 땅에서 탱자처럼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노랗게 노랗게, 그리고 동글게 동글게 나의 언어들이 울타리를 만들어간다. p. 162

 그에게 문학의 마지막은 시작이 그렇듯 어머니였다. 어머니와 단둘이 떠난 외갓집 여행. 이제는 다시 갈 수 없는 여행이 그를 지탱한 것이다. 어머니 없이 어느 누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있기에 세상은 존재하는 게 아닐까. 때론 한없이 뜨겁고 때론 한없이 강하고 때론 한없이 여리고 거대한 엄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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