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났을 때 비로소 사랑은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것이 얼마나 빛났는지, 얼마나 조악했는지 말이다. 7년 동안 연인으로 지냈던 루이자와 패트릭의 사랑은 전혀 빛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의 이별은 현명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윌과 루이자의 이별은 달랐다. 윌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던 루이자에게 사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는 분명 로맨스 소설로 읽힌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지마비 환자 윌과 그를 간병하는 루이자의 사랑 이야기다. 6개월이라는 시한부 사랑이니 얼마나 진부하고 식상하겠는가. 하지만 소설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다. 유쾌해서 많이 웃었고, 눈부시게 아름다워 황홀했고, 절절하게 애틋해서 아팠다.
모든 게 완벽했던 젊고 부유한 사업가 윌은 불의의 사고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생을 이어간다. 최고의 의료진과 간병인을 두었지만 윌의 삶엔 의욕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족함이 없던 과거였기에 현재를 인정할 수 없었다. 때문에 스스로 삶을 끝내려는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자식의 그런 선택을 받아들 수 있겠는가. 간병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루이자가 면접을 보자마자 취직이 된 이유는 그녀의 활기차고 밝은 성격이 윌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으리라 믿어서다.
루이자는 나고 자란 고향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은 단순한 삶을 사는 여자다.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행복했다. 주인이 문을 닫지 않았더라면 간병이라는 직업을 몰랐을 것이다. 미혼모인 여동생과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실직 위험에 놓인 부모님을 생각하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니 사지마비 환자 윌의 곁에서 상태를 지켜보고 여유 시간에 청소를 하며 고액의 급료를 받는 일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엔 고약하기만 했던 윌과 점차 가까워진다. 윌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세계에 대해 알아간다. 단순한 간병이 아니라 진심으로 윌을 좋아한다.
그러다 루이자는 윌의 선택에 대해 알게 된다. 왜 그녀가 6개월만 고용되었는지 말이다. 윌이 부모님에게 6개월의 시간을 제시한 것이다. 루이자는 분노한다. 그러나 곧 윌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공교롭게도 남자친구 패트릭과 이별한다. 윌과 잦은 외출을 감행한다.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연주회를 가고, 가족을 소개하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루이자가 혼자만 간직한 고민에 대해 털어놓으면 윌은 항상 멋진 답을 제시한다. 루이자는 윌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해외여행을 떠난다. 영국을 떠나 도착한 휴양지, 루이자는 스스로 대견하고 윌은 루이자의 모습에 행복하다.
‘우리를 에워싼 세상이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은 폭풍우 소리, 자줏빛 도는 흑청색 바다, 그리고 부드럽게 일렁이는 거즈 커튼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밤바람에 흔들리는 연꽃 냄새를 맡고 멀리서 짤랑거리며 부딪는 유리잔과 황급하게 의지를 미는 소리를 들었으며, 어딘가 먼 축하 파티장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정없이 날뛰는 자연의 포화를 느꼈다. 팔을 뻗어 윌의 손을 내 손 안에 꼭 쥐었다. 한순간, 나는 지금 이 순간처럼 세상에 또 다른 인간에게 이토록 강렬하게 연결된 느낌을 다시는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462쪽)
자신이 마음을 전한 루이자는 윌이 스위스행을 포기할 것이라 믿었다.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윌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랬다. 뻔한 결말이 아니었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윌과 루이자의 행복한 결말을 짐작했다. 아니, 제발 윌이 루이자와 예쁜 사랑을 하기를 기대했다. 루이자를 찾는 윌을 향해 스위스에서 둘의 아름다운 언약식이 그려지길 간절하게 바랐다.
윌은 떠났고 루이자는 남았다. 윌은 루이자에게 많은 유산을 남겼다. 루이자가 몰랐던 루이자의 재능과 꿈을 찾기에 충분했다. 작은 마을을 떠나 더 넓은 세계에서 루이자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가 남긴 편지. 그 어떤 고백보다 뜨겁고 감미롭다.
‘내 생각은 너무 자주 하지 말아요. 당신이 감상에 빠져 질질 짜는 건 생각하기 싫어요.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534쪽)
아마도 루이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때로 사무치게 그립고 때로 미치도록 보고 싶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도 알잖아요, 내가 얼마나 씩씩한 여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