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시장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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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는 존재가 불확실한 것들에 대해 공포를 느꼈다. 이를테면 귀신이나 유령 같은 것.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없었기에 공포의 크기는 커져만 같다. 그것들은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 어른이 된 후에 공포의 대상은 잘 알려진 범죄자나 질병으로 바뀌었다. 공포를 이기는 방법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김성중은 어린 시절 상상 속 친구를 만들어 용기를 얻었던 것처럼 소설로 우리는 이끈다. 그곳엔 현실과 맞닿은 모호한 경계이거나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매력으로 현실을 잊게 만든다.

 

 ‘한동안 숨을 고르고 몸을 일으켜보니 거기에는 내가 두려워한 풍경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사면상도, 열두 골목을 가득 메운 이국적인 상품도, 물고기를 잡던 소년들과 수상한 환전상도, 멋진 창녀들과 처음으로 산 종이가면도, 로나와 주코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부서진 노란 물고기 비늘만이 지나간 밤을 증거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먼지바람이 불어오는 강둑에 서서 풀숲 사이의 허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국경시장」, 34쪽)

 

 표제작「국경시장」이 그러하다.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국경이라는 공간이 제시하는 묘한 신비감은 고단한 삶으로 단단해진 긴장을 풀어놓게 만든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보았다면 맞는 말일까?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환상이라고 설명하고 싶지 않다. 버리고 싶은 기억을 팔아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국경시장. 문신처럼 새겨져 절대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의 한 조각이 화폐로 교환되는 놀라운 곳에 발을 들이민다. 기억 전부를 팔아 다른 나로 살고 싶은 열망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버려진 기억 조각들이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다른 나를 원한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를 갈망하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부여된 천재적 재능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쿠문」의 주인공과 그를 동경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천재병이 확산될 수 있다는 설정은 얼마나 기발한가. 천재병 ‘쿠문’에 전염되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원하고 원한다.  다른 상상이 다른 권력을 만든다.’ (「쿠문」, 46쪽)란 문장은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쿠문」에서의 상상은「관념 잼」으로 연결된다. 유혹과 욕망에서 벗어나 관조의 삶을 선택한 주인공 낙경씨는 사물의 반란과 마주한다. 옷장에서 프라이팬이 나오고 거울은 검고 딱딱하게 변해 있었다. 사물이 자유롭게 변하듯 인간 낙경씨도 유리병이 되고야 만다. 사물이 되어 인간의 세상을 바라본다. 

 

 김성중의 사고로 보자면 인간(사물과 생물 역시)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 서슴없이 악을 행한다. 「필멸」의 주인공 앙투안은 작곡가로 최고의 경지에 오르고 싶지만 후원도 재능도 없다. 그가 다니는 음악원엔 놀라운 재능을 가진 영국 귀족 제프리, 든든한 집안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의 뱅상, 신심 깊은 노력파 비투수가 있다. 진실한 친구는 아니지만 경쟁자인 네 사람은 뱅상이 경마로 번 돈으로 화려한 밤을 보내고 놀라운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결코 나눌 수 없는 선율이었다. 주인이 되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다. ‘진실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물리력뿐이었다. 범속한 인간 사이의 경쟁이 대개 그렇듯.’ (「필멸」, 164쪽)

 

 그리하여 달라진 삶을 위해 기억을 팔고 병에 전염되기를 원한다. 상상의 크기만 다를 뿐 소설 속 인물은 모두 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동족」속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글을 읽으며 뱀이라는 사실을 잊은 킹코브라나 인간보다는 숲의 나무와 하나가 되기를 꿈꾸는 「나무 힘줄 피아노」의 유메를 괴기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어쩌면 김성중은 인간 스스로 만든 틀을 변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더욱 완벽해지는 꿈처럼 말이다. 그 꿈에 동반할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나는 나쁜 꿈을 꿀 때마다 깨어나지 전에 꿈의 줄거리를 바꿔오던 사람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하늘을 날았고, 괴물에게 잡아먹힐 순간에는 주인공의 자리에 나 아닌 다른 인물을 세워두곤 했다. 그리하여 나에게는 흉몽을 꾼 기억이 없다.’ (한 방울의 죄,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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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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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꿈에 대해 질문하기를 좋아한다. 말 그대로 꿈이니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침없이 답을 내놓는 이는 매우 적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살아가는 게 대부분의 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설령 자신의 생 전부를 걸고 꿈을 찾아 가고 있다 해도 그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꿈에 선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것에 대해 흐리터분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스토너의 생도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다가 농업을 위해 대학을 진학한 그가 문학을 사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슬론 교수가 셰익스피어의 글을 통해 자신에게 무슨 질문을 했는지 알지 못했지만 이미 그는 문학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쩌면 인생에 단 한 번 찾아오는 운명적 만남이었을지도 모른다.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스토너에게 문학은 능동적인 삶으로 전향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삶의 중심엔 문학이 있었고 그것만이 전부가 되었다. 문학에 대해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친구들이 참전을 선택했을 때에도 스토너는 대학에 남았다.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는 삶이 얼마나 버거운 것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저 문학을 사랑했을 뿐이다. 공부를 계속하며 강의를 맡았고 첫눈에 반한 이디스와 결혼을 했고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가 태어났다. 안정적인 삼각형 구조를 이룬 그런 완벽한 삶이 시작된 듯 보였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아내와 소통하지 못한 것처럼 스토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학문에 매달렸다.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그가 책꽂이를 만들기 위해 낡은 판자들을 사포로 문지르자 표면의 거친 느낌이 사라졌다. 낡은 회색 표면이 조각조각 떨어져나가면서 나무 본래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더니, 마침내 풍요롭고 순수한 질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이렇게 가구를 수리해서 서재에 배치하는 동안 서서히 모양을 다듬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것도, 현실 속에 실현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143쪽)

 

 그에게 문학은 무한의 존재였다. 때문에 자신 자신이 문학과 완전히 겹쳐 칠 수 있는 순간을 갈망했다. 문학과 하나가 되기 위한 길에 교수의 권위나 출세는 들어올 수 없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옳다고 믿는 자신의 교수법을 고수하고 뒤늦게 만난 캐서린과의 사랑도 포기해야 했다. 스토너의 생에 융통성은 찾을 수 없었다. 이디스와 위태로운 결혼생활을 지속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생에 대해 자신 있게 이의를 제기할 이가 몇이나 될까. 그는 정말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을 뿐이다.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時)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353쪽)

 

 우리는 생에 가장 중요한 건 목적을 위해 소진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은 성공이나 명예 혹은 사랑을 목적이라 여기며 수 천 수 만의 목적이 있다는 걸 모른다. 스토너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인 문학을 향해 살았다. 그는 죽음을 암시하는 암과 마주했을 때에도 문학을 원했다. 단언컨대 그의 마지막 얼굴은 무척 평안했을 것이다. 자신의 길을 벗어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살아왔다. 쓸쓸하고 고독했지만 충만했다. 때문에 그의 삶은 숭고하고 위대하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392쪽)

 

 모든 생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찬란하고 특별하다. 모든 존재가 그렇듯이 나와 당신의 이야기도 그렇다. 마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광활한 우주에서 빛을 발하는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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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4-0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사의 자목련이 너무 이쁘심!

자목련 2015-04-07 11:14   좋아요 0 | URL
*^^*
 
훗날 훗사람 문학동네 시인선 39
이사라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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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가을 바다를 보러간 적이 있다. 늦은 오후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적었다. 굴을 따서 파는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싱싱한 굴이라며 싸게 준다고 말했다.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아주머니에게는 그리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도 내가 될 수 없다. 이사라의 시집 『훗날 훗사람』 속 이런 시를 읽으면서 그 바닷가를 생각한다. 어쩌자고 첫 시가 이런 시란 말인가. 아무 상관없는 아주머니의 얼굴에 피었을 검버섯은 내 어머니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검버섯 피부의 시간이 당신을 지나간다

 

 시간을 다 보낸 얼룩이 지나간다

 

 날이 저물고 아픈 별들이 뜨고

 내가 울면

 세상에 한 방울 얼룩이 지겠지

 

 우리가 울다 지치면

 한 문명도 얼룩이 되고

 

 갓 피어나는 꽃들도 얼룩이 되지

 

 지금 나는

 당신의 얼룩진 날들이 나에게 무늬를 입히고

 달아나는 걸 본다

 모든 것을 사랑하였어도

 밤을 떠나는 별처럼 당신이 나를 지나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라진 문명이 돌연 찾아든 것처럼

 내 벽에는 오래된 당신의

 벽화가 빛나겠지

 

 천년을 휘돈 나비가 찾아들고

 

 다시 한바탕 시간들 위로 꽃잎 날리고

 비 내리고 사랑하고 울고 이끼 끼고

 

 나의 얼룩도

 당신처럼 시간을 지나가겠지

 -「얼룩」 전문, 12~13쪽

 

 

 시간을 다 보낸 얼룩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남겨진 얼룩도 그것과 같은 것일까. 시간이라는 얼룩, 혹은 시간을 견디는 얼룩일까. 알 수 없는 시어에 마음이 흔들린다. 살아가는 중이지만 누구도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삶을 파헤치고만 싶다.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는 생의 주기가 끝난 누군가를 향한 애도가 이어지고 평온히 잠들지 못한 영혼을 겨우 찾아냈다는 소식을 듣는 날들이다. 나는 잔인한 날들이다, 중얼거린다. 이런 시를 읊조리듯 읽는다. 그러나 결국 시에 체하고 만다. 내가 더 사랑해도 좋았을 그 사람은 이미 떠나고 없다. 그리워하는 날들만 남았다. 가슴을 치며 통곡해도 돌아오지 않을 그 사람, 더 많이 사랑해야 했던 그 사람...

 

 

 그 사람 죽었어

 

 벼락이 가슴을 치는 날이 있다

 내가 더 사랑해도 좋았을 그 사람

 나에게 말없이 떠날 수 있었던 그 사람

 그 사람 없이도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그 사람이

 죽었다

 

 한 사람이 살다가 비 그치듯 사라지면

 그 주위에서 한동안 들끓던 시간이 잦아들며

 갑자기 고요해진다

 지상의 고요는 그렇게 시작되기도 한다

 살아남은 사람이

 그 고요를

 둥글게 둥글게 쓰다듬는다

 그와 나 사이

 빈틈이 없어지도록

 

 그러다 봄날이면

 영안실의 꽃처럼 뿌리 뽑혔던 그 사람이

 말없이 새순 돋듯

 빈틈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빈틈」전문, 111쪽

 

 

 또 한없이 느리게 햇살이 복도에 머문다

 시간은 사라진 지 오래고

 복도의 어디에도 복도의 그림자는 없다

 

 기다랗고 물기 없는 바게트를 손에 쥐고

 느리게 빵을 뜯으며

 게처럼 복도를 걷는다

 

 햇살이 펼쳐놓은 복도 속으로

 빵과 함께 들어가서

 복도를 품으면

 사라진 시간이 돌아올까?

 

 해 질 무렵부터

 집은 저 복도의 끝 어딘가에서 혼자 부풀겠지

 병원은 저 복도 끝 어딘가에서 혼자 부풀겠지

 복도도 그렇게 또 햇살을 건너가겠지

 

 햇살이 주무르던 모든 것들 멈추고

 세상은 밤새 발효가 시작되고

 

 사랑해서

 하루라도 못 보면 안 될 것같이

 마치 그렇게 하다보면 정말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느리게 정말 느리게

 사랑이란 정말 느리게

 안녕히 가라는 말 정말 느리게

 

 시간이 사라진 복도에서

 게걸음으로 느리게

 더 느리게 헤어지는 우리들

 -「느린 이별」전문, 52~53쪽

 

 

 그리하여 나의 이별은 진행 중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별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살아내야 후회하지 않은 사랑을 배울 수 있을까. 아니, 후회하지 않는 삶 말이다. 그런 삶을 만드는 건 우리 자신이겠지. 둘이었다가 하나가 되는 시간, 함께였다가 혼자가 되는 시간을 견디는 일은 버틸 수 있을까. 느린 이별이 아니라 멈춘 이별이어도 좋겠다. 때로는 말이다. 어쩌면 시인은 시간이라는 약을 처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떠나온 골목에서

 피는 목련을 두고 왔다는 먼 소리가 들린다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던 많은 기억들이

 묵묵히 걸어왔는데

 이제 기억이 터트린 말들이

 골목을 향해 간다

 

 소리의 끝에 매달린

 속말들이 문을 열고

 그 끝에서

 자신의 제단을 오른다

 

 골목은 그곳에서 떠난 사람이

 훗날 훗사람이 되어 오리라는 것을

 기다려왔던 것일까

 

 제단 위에 벌써

 바람이 불고 허공이 차려진다

 

 목련이 지면

 피는 목련을 두고 왔다는

 그 소리도

 제단 위에서

 구름빛으로 사라지겠지

 

 훗날 훗사람이 또 태어나길 기약하겠지

 -「훗날 훗사람」전문, 42~43쪽

 

 

 누군가 떠난 자리를 채울 그 사람, 훗날 훗사람을 기다린다. 빨리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우리는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저마다 시간을 지나가는 방법을 터득할 것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어떤 날은 시도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일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훗날 훗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괜찮다.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느리게 천천히 오더라도 말이다. 상처의 얼룩, 이별의 고통도 모두 회복될 테니까.

 

 

 가슴 위로

 이맘때쯤 배 한 척 지나가는 일은

 숨겨두었던

 푸른 눈물에 상처를 내는 일이다

 

 거품처럼 요란한 그 길에서

 기억은 포말처럼 날뛰고 뒤집어지는데,

 그 위를

 물그림자가 가고 있다

 

 눈물 속에서 뿜는 용암 덩어리가 스러지면

 

 모든 길은 떠나거나 흐르거나

 칼날 지나간 자국마다

 그것을 견딘 힘을 본다

 

 어느새 지워지는 흉터의 길들처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그 길의

 한순간이 잘 아물어 있다

 

 낯선 세계에 잠시 다녀온 듯

 낮잠에서 깨어난 듯

 - 「회복중이다」전문,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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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5-04-02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좋아요.^^

자목련 2015-04-03 10:45   좋아요 0 | URL
음, 덧글이 더 좋아요^^

詩21 2015-04-0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 약 처방이 의사 약 처방보다 약발이 좋다지요

자목련 2015-04-03 10: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때로는 한 알의 약보다 시 한 구절이 강력한 처방이지요.
 
훗날 훗사람 문학동네 시인선 39
이사라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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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간이라는 약을 처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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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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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을 약속하지만 모든 건 소멸한다. 저마다의 생을 살다가 사라진다. 야속하게 떠나는 이도 있다. 남겨진 이들에게 평생의 숙제를 안겨주고 말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측할 수 있다면 완전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런 삶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결핍으로 가득하기에 자꾸만 어딘가에 매달리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환상의 빛속 젊은 여자 유미코가 답을 들을 수 없는 죽은 남편에게 말을 건네는 일도 그렇지 않을까.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하나의 방법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태어난 지 세 달 된 아이를 두고 자살을 선택한 남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유미코는 다른 남자와 재혼해 평탄하게 살고 있지만 여전히 7년 전 죽은 남편의 그림자를 버릴 수 없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열차를 향해 걸어간 남편의 심연에 닿고 싶은 마음이 젊은 아내를 흔든다. 전 남편을 향한 그녀의 독백은 아스라이 희미해진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고야 만다.

 

 ‘추위도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저는 내버려진 어선에 달라붙은 채 오랫동안 겨울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바다의 흔들림과 함께 제 몸도 흔들흔들 흔들렸습니다. 아마가사키의 그 터널 나가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이제 아무래도 좋아, 행복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죽는다고 해도 좋아. 뿜어져 올랐다가 흩어져 날아가는 커다란 파도와 함께 그런 생각이 자꾸만 가슴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당신이 죽었다는 것을, 저는 그때 확실히 실감했던 것입니다. 아아, 당신은 얼마나 쓸쓸하고 불쌍한 사람이었을까요. 눈물과 흐느낌, 저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언제까지고 울었습니다.’ (「환상의 빛」, 60쪽)

 

 온통 상실의 슬픔으로 채워진 소설이지만 아름다운 한 편의 풍경화로 다가온다. 소설 속 유미코의 독백과 눈빛이 닿는 바다를 상상하게 만드니 말이다. 가만히 바라보면 자석에 끌린 듯 걸어들어가게 만드는 겨울 바다에서 전 남편의 마음 한 조각과 맞닿는 느낌.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남편의 감정이 전해서 눈물을 터트리고 마는 아내.

 

 ‘가만히 시선을 주고 있으니 잔물결의 빛과 함께 상쾌한 소리까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곳만은 바다가 아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부드럽고 평온한 일각처럼 생각되어 흔들흔들 다가가고 싶어집니다. 그렇지만 미쳐 날뛰는 소소기 바다의 본성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잔물결이 바로 어둡고 차가운 심해의 입구라는 것을 깨닫고 제정신을 차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아, 역시 이렇게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기분이 좋네요. 이야기를 시작하면 가끔 몸 어딘가에서 찡하니 뜨거운 아픔이 일어 기분이 좋습니다.’ (「환상의 빛」, 82쪽)

 

 안타깝게도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한다. 존재와 부재 사이에 수많은 기억들이 넘실댄다. 때로 그 기억은 생을 견디게 만든다. 죽은 아들의 1주기에 자신을 찾아온 이혼한 남편을 통해서 그것과 마주하는 밤 벚꽃의 주인공 아야코.  남편의 외도를 참지 못해 이혼을 선택한 아야코에게 그와 함께 살았던 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신혼부부를 통해 뒤늦게 발견한다. 밤 벚꽃의 황홀함은 지나가 버린 아야코의 젊은 시절과 닮았던 것이다. 다시 불러올 수 없는 철없던 시절이라 그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져버리는 활짝 핀 벚꽃을, 아야코는 툇마루에 앉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일찍이 이렇게 숨을 죽이고 바라본 적은 없었다. 부풀어 오른 엷은 분홍색의 커다란 면화가 파란 빛의 테두리를 두르고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톡톡, 톡톡 줄어가는 요염한 생물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아야코는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신기한 밤을, 벚꽃과 함께 깨어 있자고 마음먹었다. (「밤 벚꽃」, 109쪽)

 

 모든 생이 그렇게 흘러간다. 야속하게도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가치를 깨닫는다. 그래서 사는 동안 어떤 이의 죽음을 껴안기도 한다. 불륜 상대 요코를 만나러 가는 길에 친하지 않았던 친구의 죽음을 듣는 박쥐, 출장을 위해 탄 기차 옆 칸의 할아버지의 울음소리를 통해 어린 시절 죽은 친구를 떠올리는 침대차는 가깝거나 먼 이들의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아름다워서 슬픈 소설이다. 잔잔하고 담백하게 죽음과 삶에 대해 말한다. 그게 우리네 생이라는 게 더욱 아프다. 점점 죽음이 익숙하게 다가오는 나이를 살고 있다. 어떤 죽음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런 과정을 반복해서 경험하는 게 삶이구나 생각한다. 어느 날 문득 환상의 빛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마주할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어쩌면 스치듯 지나쳤을지도 모를 그것과 반드시 조우할 것이라는 예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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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근원을 알 수 없는 인생의 슬픔
    from 그리하여 멀리서 2016-03-11 10:33 
    우연, 인연, 필연의 만남이 있다. 우연으로 시작된 만남은 인연으로 자라기도 하고 누군가는 우연을 필연이라 믿기고 한다. 피천득은 수필 인연에서 아사코와의 만남 중 세 번째 만남은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헤어진 이들의 만남은 우연, 인연, 필연 중 어디에 해당되는 것일까. 그것도 연인이 아닌 이혼으로 남이 된 이들의 만남이라면. 살다 보면 한 번쯤 마주칠 수 있다고 해도 전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는 근황을 묻고 지난날의 헝클어진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