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미 - 우리는 왜 기적이어야 했을까, 영화 트윈스터즈 원작
아나이스 보르디에.사만다 푸터먼 지음, 정영수 옮김 / 책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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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첫 조카는 쌍둥이다. 쌍둥이라서 갓난 아이였을 때 무척 작았다. 내가 맨 처음 조카들을 보고 한 말도 왜 이렇게 작으냐는 말이었다. 쌍둥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들다. 잠을 설치는 건 고사하고 두 명이 울 때는 어찌할 봐를 모를 정도다. 물론 기쁨은 그 이상이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말로 표현할 수없다. 고모인 나도 그러한데 부모의 사랑은 얼마나 크겠는가. 일란성으로 조카들이 어렸을 때는 볼 때마다 누구니 하고 물어봐야만 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만났을 때에는 미안해할 일이 생겼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특징을 알아볼 수 있었다.

 

 쌍둥이를 잉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올케언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기쁨보다는 놀라움이 컸을 것이다. 지금이야 쌍둥이가 대세라는 말이 나올 정도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 쌍둥이를 입양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가늠할 수 없다. 나중에 생모를 찾아 그 상황에 대해 물었을 때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던 마음도 함께 말이다.

 

 『Another Me』 속 1987년 부산에서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두 명의 아이는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파리와 뉴욕으로 입양되었다. 각자의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때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며 꿈을 향해 살아왔다. 파리의 아나이스는 외동딸로 경제적 어려움 없이 패션 디자이너로 뉴욕의 사만다는 두 명의 오빠를 두었고 배우가 되었다. 25년 동안 그들의 삶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연처럼 아나이스의 친구가 보낸 한 장의 사진이 기적의 시작이었다. 페이스북, 트위터의 사진 속 동양인(사만다)은 배우로 놀랍게도 자신과 닮아 있었다. 친구들의 말처럼 쌍둥이가 분명했다. 그러나 사만다와의 연락은 쉽지 않았다. 아나이스가 보낸 쪽지를 본 사만다도 마찬가지였다. 사진 속 아나이스는 또 다른 자신이었다. 흥분과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쌍둥이라는 기록은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아나이스와 사만다는 서로의 과거 사진을 공유하고 일상을 나누며 유전자 검사를 통해 쌍둥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처음으로 아나이스의 얼굴을 보니 무척 놀라웠다. 내가 저렇게 생겼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아니었지만 마주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였다. 그 사람은 마치 내가 아는, 꿈속에 나왔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예를 들면 엄마처럼, 온 인생에서 내가 지켜봐온 어떤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만다의 글, 200쪽)

 

 그저 닮은 정도가 아니라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을 마주한 순간의 떨림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대화를 나누고 만남을 갖고 서로의 가족과 교류를 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가족이 태어난 것이다. 25년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둘은 같았지만 달랐다. 문화, 관습의 차이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건 당연하다.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과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입양아로 겪었던 지난 삶아 어떤 슬픔의 시간을 공유하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은 커진다. 

 

 ‘우리는 정말로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갈라져나올 수도 있었지만, 그런다고 해도 우리의 유대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매일 샘과 함께 지내는 일상은 따분해지는 게 아니라 가능한 최선의 방식으로 점점 평범한 일이 되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살고 있고 이제 우리의 삶이 서로 얽혀 있음을 인식했다. 우리는 점점 늙어갈 것이고 기억을 공유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만의 이야기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아나이스의 글, 226쪽)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기적이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SNS가 아니었다면 둘은 영원히 서로를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세상이 다른 기적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어디선가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누군가에게도 기적이 닿기를 바란다. 아나이스와 사만다의 지극히 사적인 기록은 입양으로 헤어진 쌍둥이 자매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 감동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입양 제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뿌리 찾기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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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포트폴리오) 마로니에북스 Taschen 포트폴리오 10
마로니에북스 편집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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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박상미의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다가 펼쳐 본 호퍼의 그림. 그림 속에 담긴 호퍼의 손길을 느낀다. 문득, 그는 어떤 목소리를 지녔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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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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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든 삶이든 궁리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대상이 아니던가.’ (165쪽)

 

 꾸밈없고 솔직한 글이 좋은 글이라고 배웠다. 배운 대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과 감정을 적절히 배합할 수 있는 글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연습과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셀 수 없는 날들의 노력이 쌓여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으니 작가의 삶이란 정말 대단하다. 어느 시절에는 소설가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짐작했다. 이제는 그것이 부단한 쓰기의 결과라는 걸 믿는다. 한창훈은 그런 사람일 것이다. 삶을 쓰는 소설가. 때문에 소설과 산문은 다르지 않았다. 한창훈이라는 고유한 무늬가 문장 속에 있었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는 글쓰기에 대한 책이 아니다. 삶에 대한 책이다. 그가 사랑하는 바다, 섬,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의 표현이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그것과 하나 되어 살아온 삶으로 고독과 결핍을 아는 사람이기에 말이다. 그 안에 글이 소설이 있고 문학이 포함될 뿐이다.

 

 ‘반쯤 가라앉아 가는 배.

 돌에 눌린 배추씨앗처럼, 익사 직전의 상태에서 언어의 싹을 틔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창작하는 이들과 닮았다. 노질을 하고 있는 이상 언젠가는 바닷가에 닿을 것이고 그러는 사이 배는 낡아진다. 결핍과 상처를 창작의 질료로 삼으라는 말은 맨 처음 누가 했을까.’ (106쪽)

 

 파도를 이불 삼은 선원, 건설현장 잡부, 수산물 가공 현장, 살아온 삶의 이력이 말해주듯 한창훈의 문장엔 생명력이 넘친다. 어쩌면 노동을 동반한 생명력이 한창훈 문장의 시원인지도 모른다. 바다와 섬은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아버지를 누군가의 남편을 데려가 버린 바다, 하루가 다르게 얼굴을 바꾸는 바다에서 삶을 퍼올렸다. 그것은 생활이자 소설이다. 그래서 한창훈이 쓰는 소설은 언제나 바다를 품었고 소설 속 인물들은 고단하고 외롭다.

 

 ‘상황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언어. 견디는 자세가 아픔을 더 크게 보여주듯이, 이를 악물로 웃음을 참는 자의 얼굴이 좌중의 웃음을 유발하듯이, 언어는 냉정하게 정돈된 거라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164쪽)

 

 아는 것을 쓰는 것과 안다고 믿는 것을 쓰는 것은 다르다. 한창훈이 쓰는 글은 전자이다. 제대로 문학을 배운 적 없는 사람이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건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온 그의 치열한 삶이 있어 가능했다. 신춘문예 등단 영예가 아니라 당선 상금에 눈을 돌렸던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설 쓰기와 좋은 글과 감동을 주는 글에 대해 고민할 때 만난 백석의 시 여승이 그에게 답을 주었듯 삶을 쓰는 그의 글이 나를 감격하게 만든다. 인간 한창훈도 다르지 않다. 가족과 지인, 문단의 동료에 대한 글에서 그들을 격하게 아끼고 있다는 게 보인다. 시인 안현미를 위한 만세는 마치 행복을 부르는 주문과도 같다.

 

 ‘안현미처럼 사는 인생, 만세다. ‘만세’는 압박과 불편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노래하는 단어이다.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앞으로는 더 잘 될 거라고 예측할 때도 슨다. 뭐 당장 그렇게 안 돼도 상관없다. 만세를 또 부르면 되니까. 자꾸 만세 부르다 보면 얼마 있지 않아 그녀의 웃음소리가 정말로 행복하게 들리게 될 것이다.’ (262쪽)

 

 한창훈과 바다는 자석처럼 서로를 당기는 한 몸이다. 문장에서 파도 소리가 나는 건 착각이 아니다. 바다향 짙은 그의 소설을 함께 읽어도 좋겠다. 그나저나 거문도의 5월 바다는 무슨 빛을 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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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0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는 냉정하게 정돈된 거라야‥
공감합니다.

자목련 2015-05-07 20:50   좋아요 0 | URL
그 냉정함은 얼마나 험난한 것일까, 생각했어요.
한창훈의 산문이 참 좋구나 생각도 함께요...

왕눈이 2015-06-20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쓰는 작가죠. 그냥 글로만 만났으면 좋을 작가네요.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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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에 읽으니 더욱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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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에 꽂혀있는 시집을 다 읽는다면 나는 달라질 것이다. 분명 그러할 것이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를 사지 말고 우선은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맑다 못해 터질 것 같은 투명한 봄날에 꺼내든 시집은 김사인의 『가만히 좋아하는』이다. 최근에 새 시집이 나왔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아직은 이 시집에 더 정겹고 가깝다. 유독 지인에게 선물을 많이 한 시집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제목이 좋다는 거였다. 어떤 바람이나 요구 따위 필요 없이 그저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건 얼마나 지극한 정성이란 말인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행위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생을 향한 눈빛 같은 것 말이다.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

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

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

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

게 되리라 생각한다.

 -「풍경의 깊이」전문, 10~11쪽

 

 

 소중하지 않은 생이 없다는 걸 아는 순간은 언제 오는 것일까. 김사인의 시는 우리 삶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에 근원이 있는 듯하다. 함께 삶을 나누는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아는 것이다. 그가 주목하는 곳엔 꾸미고 치장한 것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것들이 있다. 쓸쓸하고 고즈넉한 풍경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무척 아름답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어른의 손길이랄까.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조용한 일」전문, 38쪽

 

 

 사람들 가슴에

 

 텅텅 빈 바다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길게 사무치는 노래 하나씩 있다

 늙은 돌배나무 뒤틀어진 그림자 있다

 

 사람들 가슴에

 겁에 질린 얼굴 있다

 충혈된 눈들 있다

 

 사람들 가슴에

 막다른 골목 날선 조선낫 하나씩 숨어 있다

 파란 불꽃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후두둑 가을비 뿌리는 대숲 하나씩 있다

 -「깊이 묻다」전문, 81쪽

 

 

 들풀 하나, 낙엽 하나, 개 한 마리, 인절미 하나에 담긴 담긴 이야기를 아는 시인. 어쩌면 그것은 시인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이 시집을 선물로 받은 이도 포함) 김사인의 시가 왜 좋은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만 몰랐던 것이다. 시 속에 우리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과거가 있었고 누군가에게는 현재가 있다. 하여 하나의 시에 추억이란 이름으로 물들고 아픔이란 이름으로 감춰두었던 눈물을 흘린다.

 

 

 나 이제 눕네

 봄풀들은 꽃도 없이 스러지고

 우리는 너무 멀리 떠나왔나 봐

 저물어가는데

 

 채독 걸린 무서운 아이들만

 장다리밭에 뒹굴고

 아아 꽃밭은 결딴났으니

 

 봄날의 좋은 볕과

 환호하던 잎들과

 묵묵히 둘러앉던 저녁 밥상의 순한 이마들은

 어느 처마 밑에서 울고 있는가

 

 나는 눕네 아슬한 가지 끝에

 늙은 까마귀같이

 무서운 날들이

 오고 있네

 

 자, 한 잔

 눈물겨운 것이 어디 술뿐일까만

 그래도 한 잔

 -「빈 방」전문, 72쪽

 

 

 봄빛이 사그라 지기 전에 좋은 사람과 술 한잔 마시고 싶은 밤이다. 멀리 떨어져 나왔다고 믿었던 삶의 중심으로 한발을 내딛어도 좋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품어본다. 잊고 있던 시집을 펼치게 만든 당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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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05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만큼이나 자목련님 글도 좋아요.
어린당나귀곁에서. 담아갑니다^^
느긋한 봄밤 되세요

자목련 2015-05-06 18:21   좋아요 0 | URL
좋은 시가 참 많았어요. 좋은 보다 더 좋은 말로 말하고 싶은데...
입하(立夏)란 말은 좋은데 여름이 조금 천천히 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