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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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든 삶이든 궁리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대상이 아니던가.’ (165쪽)

 

 꾸밈없고 솔직한 글이 좋은 글이라고 배웠다. 배운 대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과 감정을 적절히 배합할 수 있는 글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연습과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셀 수 없는 날들의 노력이 쌓여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으니 작가의 삶이란 정말 대단하다. 어느 시절에는 소설가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짐작했다. 이제는 그것이 부단한 쓰기의 결과라는 걸 믿는다. 한창훈은 그런 사람일 것이다. 삶을 쓰는 소설가. 때문에 소설과 산문은 다르지 않았다. 한창훈이라는 고유한 무늬가 문장 속에 있었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는 글쓰기에 대한 책이 아니다. 삶에 대한 책이다. 그가 사랑하는 바다, 섬,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의 표현이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그것과 하나 되어 살아온 삶으로 고독과 결핍을 아는 사람이기에 말이다. 그 안에 글이 소설이 있고 문학이 포함될 뿐이다.

 

 ‘반쯤 가라앉아 가는 배.

 돌에 눌린 배추씨앗처럼, 익사 직전의 상태에서 언어의 싹을 틔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창작하는 이들과 닮았다. 노질을 하고 있는 이상 언젠가는 바닷가에 닿을 것이고 그러는 사이 배는 낡아진다. 결핍과 상처를 창작의 질료로 삼으라는 말은 맨 처음 누가 했을까.’ (106쪽)

 

 파도를 이불 삼은 선원, 건설현장 잡부, 수산물 가공 현장, 살아온 삶의 이력이 말해주듯 한창훈의 문장엔 생명력이 넘친다. 어쩌면 노동을 동반한 생명력이 한창훈 문장의 시원인지도 모른다. 바다와 섬은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아버지를 누군가의 남편을 데려가 버린 바다, 하루가 다르게 얼굴을 바꾸는 바다에서 삶을 퍼올렸다. 그것은 생활이자 소설이다. 그래서 한창훈이 쓰는 소설은 언제나 바다를 품었고 소설 속 인물들은 고단하고 외롭다.

 

 ‘상황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언어. 견디는 자세가 아픔을 더 크게 보여주듯이, 이를 악물로 웃음을 참는 자의 얼굴이 좌중의 웃음을 유발하듯이, 언어는 냉정하게 정돈된 거라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164쪽)

 

 아는 것을 쓰는 것과 안다고 믿는 것을 쓰는 것은 다르다. 한창훈이 쓰는 글은 전자이다. 제대로 문학을 배운 적 없는 사람이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건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온 그의 치열한 삶이 있어 가능했다. 신춘문예 등단 영예가 아니라 당선 상금에 눈을 돌렸던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설 쓰기와 좋은 글과 감동을 주는 글에 대해 고민할 때 만난 백석의 시 여승이 그에게 답을 주었듯 삶을 쓰는 그의 글이 나를 감격하게 만든다. 인간 한창훈도 다르지 않다. 가족과 지인, 문단의 동료에 대한 글에서 그들을 격하게 아끼고 있다는 게 보인다. 시인 안현미를 위한 만세는 마치 행복을 부르는 주문과도 같다.

 

 ‘안현미처럼 사는 인생, 만세다. ‘만세’는 압박과 불편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노래하는 단어이다.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앞으로는 더 잘 될 거라고 예측할 때도 슨다. 뭐 당장 그렇게 안 돼도 상관없다. 만세를 또 부르면 되니까. 자꾸 만세 부르다 보면 얼마 있지 않아 그녀의 웃음소리가 정말로 행복하게 들리게 될 것이다.’ (262쪽)

 

 한창훈과 바다는 자석처럼 서로를 당기는 한 몸이다. 문장에서 파도 소리가 나는 건 착각이 아니다. 바다향 짙은 그의 소설을 함께 읽어도 좋겠다. 그나저나 거문도의 5월 바다는 무슨 빛을 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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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0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는 냉정하게 정돈된 거라야‥
공감합니다.

자목련 2015-05-07 20:50   좋아요 0 | URL
그 냉정함은 얼마나 험난한 것일까, 생각했어요.
한창훈의 산문이 참 좋구나 생각도 함께요...

왕눈이 2015-06-20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쓰는 작가죠. 그냥 글로만 만났으면 좋을 작가네요.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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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에 읽으니 더욱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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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에 꽂혀있는 시집을 다 읽는다면 나는 달라질 것이다. 분명 그러할 것이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를 사지 말고 우선은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맑다 못해 터질 것 같은 투명한 봄날에 꺼내든 시집은 김사인의 『가만히 좋아하는』이다. 최근에 새 시집이 나왔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아직은 이 시집에 더 정겹고 가깝다. 유독 지인에게 선물을 많이 한 시집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제목이 좋다는 거였다. 어떤 바람이나 요구 따위 필요 없이 그저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건 얼마나 지극한 정성이란 말인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행위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생을 향한 눈빛 같은 것 말이다.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

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

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

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

게 되리라 생각한다.

 -「풍경의 깊이」전문, 10~11쪽

 

 

 소중하지 않은 생이 없다는 걸 아는 순간은 언제 오는 것일까. 김사인의 시는 우리 삶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에 근원이 있는 듯하다. 함께 삶을 나누는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아는 것이다. 그가 주목하는 곳엔 꾸미고 치장한 것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것들이 있다. 쓸쓸하고 고즈넉한 풍경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무척 아름답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어른의 손길이랄까.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조용한 일」전문, 38쪽

 

 

 사람들 가슴에

 

 텅텅 빈 바다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길게 사무치는 노래 하나씩 있다

 늙은 돌배나무 뒤틀어진 그림자 있다

 

 사람들 가슴에

 겁에 질린 얼굴 있다

 충혈된 눈들 있다

 

 사람들 가슴에

 막다른 골목 날선 조선낫 하나씩 숨어 있다

 파란 불꽃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후두둑 가을비 뿌리는 대숲 하나씩 있다

 -「깊이 묻다」전문, 81쪽

 

 

 들풀 하나, 낙엽 하나, 개 한 마리, 인절미 하나에 담긴 담긴 이야기를 아는 시인. 어쩌면 그것은 시인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이 시집을 선물로 받은 이도 포함) 김사인의 시가 왜 좋은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만 몰랐던 것이다. 시 속에 우리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과거가 있었고 누군가에게는 현재가 있다. 하여 하나의 시에 추억이란 이름으로 물들고 아픔이란 이름으로 감춰두었던 눈물을 흘린다.

 

 

 나 이제 눕네

 봄풀들은 꽃도 없이 스러지고

 우리는 너무 멀리 떠나왔나 봐

 저물어가는데

 

 채독 걸린 무서운 아이들만

 장다리밭에 뒹굴고

 아아 꽃밭은 결딴났으니

 

 봄날의 좋은 볕과

 환호하던 잎들과

 묵묵히 둘러앉던 저녁 밥상의 순한 이마들은

 어느 처마 밑에서 울고 있는가

 

 나는 눕네 아슬한 가지 끝에

 늙은 까마귀같이

 무서운 날들이

 오고 있네

 

 자, 한 잔

 눈물겨운 것이 어디 술뿐일까만

 그래도 한 잔

 -「빈 방」전문, 72쪽

 

 

 봄빛이 사그라 지기 전에 좋은 사람과 술 한잔 마시고 싶은 밤이다. 멀리 떨어져 나왔다고 믿었던 삶의 중심으로 한발을 내딛어도 좋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품어본다. 잊고 있던 시집을 펼치게 만든 당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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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05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만큼이나 자목련님 글도 좋아요.
어린당나귀곁에서. 담아갑니다^^
느긋한 봄밤 되세요

자목련 2015-05-06 18:21   좋아요 0 | URL
좋은 시가 참 많았어요. 좋은 보다 더 좋은 말로 말하고 싶은데...
입하(立夏)란 말은 좋은데 여름이 조금 천천히 오면 좋겠어요^^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시절은 영원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어른이 되는 순간 보호는 사라진다. 육체적인 성장뿐 아니라 정신적인 독립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인정하는 나이가 아니더라도 결혼을 하게 되면 어른으로 대우한다.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서로에게 부여된 의무와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빠른 결혼은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나는 봄에 없었다』, 『딸은 딸이다』를 통해 인간관계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 애거사 크리스티의 『두번째은 여자에게 두번째 생이라 할 수 있는 결혼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소설은 초상화가 래러비가 만난 서른아홉 살의 여자 셀리아의 인생이다. 절망의 순간과 맞닿은 셀리아가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시작한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연보라색 아이리스가 기둥을 휘감은 것 같은 아기방의 벽지. 유모가 있었고 셀리아의 전부가 되었던 엄마 미리엄과 다정한 아빠, 유쾌하고 친절한 할머니. 아름다운 정원이 있던 집에서 셀리아의 삶은 모든 게 완벽했다. 때문에 친구란 존재는 필요하지 않았다. 셀리아에겐 엄마라는 가장 든든한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셀리아는 읽기의 매력을 알게 됐다. 책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 요정과 마녀, 도깨비, 유령의 세계. 그녀는 요정 이야기에 홀딱 빠졌다. 현실 세계의 아이들 이야기는 별로 재미없었다.’ (50~51쪽)

 

 동화 속 행복한 공주였던 셀리아의 책 속엔 불행은 없었다. 아빠가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셀리아는 두려움을 상대하지 않았다. 피아노와 성악을 배운 셀리아의 외모는 뛰어났고 만찬과 파티에서 만난 남자들의 청혼으로 이어졌으니까. 미리엄은 모든 엄마가 그렇듯 셀리아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바랐다. 셀리아를 이해하고 감싸줄 남자를 찾았다. 하지만 셀리아는 결혼이라는 현실을 알지 못했고 박력 넘치는 군인 더멋을 선택했다.

 

 더멋에게는 영원한 소년 같은 기질이 있었다. 그 소년이 셀리아 안의 아이를 만났다. 그들은 인생의 목표, 내면세계, 성격이 전혀 달랐지만 놀이 친구를 원했고 서로에게서 그것을 발견했다. 그들에게 결혼생활은 놀이였고, 그들은 열심히 놀았다.’ (247쪽)

 

 평생 돌봄을 받았던 셀리아에게 결혼은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더멋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굳게 믿은 것이다. 모두가 그랬듯 더멋도 자신만을 바라보며 가족을 사랑하는 멋진 남편이 될 거라 기대했다. 딸 주디에게 최고의 아빠로. 그냥 보통의 삶을 원했고 나쁜 일은 타인의 몫이라 여기며 산다. 점점 가정에 소홀하는 더멋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그랬듯 셀리아는 그녀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그 시간에 만족한다. 사실 누가 불행을 예비하고 살겠는가. 때문에 미리엄의 죽음으로 힘겨운 상황에 마주한 더멋의 외도에도 기다림으로 응수할 수 있었다. 어쩌면 셀리아가 처음으로 능동적으로 선택한 결혼이기에 맏아들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감당할 수 없던 것이다. 셀리아는 소설 곳곳에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반추하는 것으로 성장이 아닌 도피를 선택한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추억과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려움을 상대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사람이 자라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두려운 일인가. 사람에게 다른 어떤 순간보다 더 자기 자신다운 특별한 순간이라는 게 있을까? 앞으로…… 앞으로 셀리아는 어디로 가게 될까……’ (354쪽)

 

 우리네 인생엔 목적지를 입력하면 소요 시간을 알려주는 길 찾기 앱이 없다. 다양한 길을 발견하고 걸어봐야 한다. 변화가 주는 놀라운 힘을 경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셀리아가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두번째 봄을 맞은 것처럼 말이다. 악재라 말하는 아홉 수를 견디고 다시 성장을 위해 돌아간 그녀. 셀리아를 통해 애거사 크리스티를 본다. 그랬다. 이 소설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자전적 소설이다. 초상화가 래러비가 그림이 아닌 글로 셀리아를 묘사하듯 추리소설가가 아닌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한 여자의 생을 읽는 것이다. 

 

 ‘그녀는 서른아홉 살에 돌아갔다…… 성장하기 위해……’ (412쪽)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상처와 좌절을 견디고 추리 소설의 여왕으로 두번째 봄을 맞은 그녀의 황홀한 비상은 우리에게 내면의 성장을 선물한다. 상실과 성장의 계절인 봄에 만난 애거사 크리스티는 다른 얼굴로 평온한 미소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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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4-29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좋은 단어이지요.

자목련 2015-04-30 06:59   좋아요 0 | URL
^^*

뒷북소녀 2015-05-1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 2015-05-12 06: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람도 비도 잠잠한 아침이네요. 그곳도 그럴까요?
 
에프 민음사 모던 클래식 69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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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 건 심각한 착각이다. 자신에게 특별했던 부분만 선명하게 기억할 뿐이다. 하나의 사건에 개입된 사람들의 기억이 같지 않은 것도 그렇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직업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우선은 외형적인 모습과 정보로 판단하고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받아들인다. 내밀한 관계라고 믿는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 하나의 진실에 닿는 것과 한 사람을 안다는 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처음 만나는 작가 다니엘 켈만 소설 『에프』속 인물들이 그랬다. 

 

 이야기는 가족을 떠나 다른 가족을 만든 아버지가 큰 아들 마틴과 쌍둥이 이복동생 이반과 에릭을 데리고 최면술 쇼에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낯설고 당황스럽게 서로의 존재를 처음 확인시킨 후 아버지는 최면술사 린데만 말대로 자신의 삶을 찾아 사라진다. 마틴은 성직자로 화가를 꿈꿨던 이반은 큐레이터가 되고 에릭은 잘 나가는 투자 전문가가 된다. 아버지 아르투어는 소설가가 되어 가끔씩 만남을 갖는다.

 

 소설은 마틴, 아르투어, 에릭, 이반의 인생을 교차로 들려준다. 그러니까 하나로 연결된 네 명의 인생을 만난다. 성직자 마틴의 삶은 전혀 성직자 답지 않다. 고도비만으로 고해성사를 들으면서 초콜릿을 먹고 신에 대한 간절한 믿음도 없다. 마틴에게 소중한 건 큐브뿐 교리와 믿음에 대한 어려운 질문엔 신비로운 것이란 답으로 무마한다.

 

 ‘부서지는 초콜릿, 알싸한 코코아 맛. 하지만 이제 깨닫는다. 너무 기름지고 지나치게 달다는 걸. 거의 모든 게 이러한데, 예수는 이를 간파했고 부처는 보다 신중했다. 정말 충분한 것이란 없다. 모든 건 불충분하며, 그래도 사람들은 떨쳐 내지 못한다.’ (94쪽)

 

 에릭은 누가 봐도 성공한 사업가다. 아름다운 전직 여배우 아내와 거대한 저택에서 사랑하는 딸과 살고 비밀리에 애인도 만난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지만 잘못된 투자로 고객에게 손해를 입히고 장부 조작으로 숨기고 부도 위기에 처했다. 그럼에도 오히려 가족에게 큰소리를 친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이반에겐 재능이 없었다.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이반은 우연한 기회에 거장의 작품을 모작한다. 사람들은 진품으로 알았고 이반은 이를 이용해 한 화가의 그림을 모작한다. 가짜가 진짜가 된 것이다. 언론과 매체의 힘으로 말이다. 진실을 아는 사람과 그것을 확인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이반이다.

 

 ‘예술은 신만큼이나 드물다. 시간의 종말, 영원, 천사의 무리 만큼이나. 작품만 있을 따름이다. 스타일, 형태, 존재 면에서 다양한.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의견들의 끝없는 속살거림도 있다. 동일한 대성도 시간 분위기에 따라 붙는 이름이 다르다.’ (258쪽)

 

 가장과 아버지의 책임과 역할을 모두 아내에게 미루고 독특한 소설을 쓰는 아르투어의 이야기는 그의 소설 『가족』이 대신한다. 자신과 다르지 않은 아버지가 등장하는 소설은 의미심장하다. 다양한 직업과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의 아버지, 그 이전의 아버지. 아버지로 존재하면서도 아버지가 아닌 사람, 아버지는 수많은 개인이자 우리였다. 결국엔 저마다의 방식대로 살아갈 뿐이다.

 

 다니엘 켈만은 소설에서 거짓과 진실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소설 속 인물은 두 개의 모습을 갖고 살아간다. 욕망을 성직자라는 옷으로 가리고 실패를 성공으로 위장하고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키며 소설 속 인물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다니엘 켈만이 전하고 싶었던 건 아르투어의 주인공이 에프인『내 이름은 아무도 아니다』란 소설과 최면술사 린데만의 말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람이 있냐고. 자신에 관해 뚜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냐고. 사람은 너무 많은 걸 원하며, 원하는 게 매 순간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이다.’ (246쪽) 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손녀인 마리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 아르투어의 말로도 이어진다. 가짜였다가 진짜가 되기도 하고 거짓에서 진실을 보고 우연처럼 찾아오는 운명을 믿고 사는 우리네 삶처럼 말이다.

 

 “우연은 막강하고, 누구에게도 정해지지 않은 운명이 느닷없이 찾아오지. 우연의 운명이라고나 할까. 그런 건 금방 일어나.” (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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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9 07: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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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9 06: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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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9 07: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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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9 2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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