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1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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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리에 대해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을 그려낸 소설. 전쟁을 배경으로 한 보통의 그것과 다른 감동을 전해주는 유려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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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위를 심하게 타지는 않지만 감기에 걸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기에 체크무늬 남방 위에 그레이 색 니트 원피스 위에 남색 꽈배기 무늬가 들어간 카디건 위에 모자 달린 빨강 패딩조끼를 입고 미용실에 다녀왔다. 아침에는 그저 빗소리가 유쾌한 정도였는데 밖에 나가보니 바람소리를 더해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원장님의 가위 소리를 들었다. 정말 귀를 기울이니 예전에 몰랐던 가위질이 경쾌한 리듬을 탄다는 걸 알았다. 신기했고 신선했다. 멍하니 거울을 통해 잘려 내동댕이쳐진 머리카락을 보는 게 전부였는데 가위질의 리듬을 듣다니. 제법 길었던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나니 다시 도토리가 되었다. 짧은 단발로 해달라고 하면서 아주 짧아도 괜찮다고 했더니 결과는 도토리였다. 나쁘지 않다. 무거웠던 기운 대신 왈츠라도 출 수 있는 경쾌한 머리카락 사이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흰 머리카락만 보이는 것만 빼면 말이다. 오랜만에 머리카락 손질이라 그 사이 수고비가 올랐다는 것도 몰랐다.

 

 그토록 기다렸던 비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이 모든 반응은 미용실에서 들은 것들이다. ‘왜 이리 많은 비가 내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비가 와야 한다, 비 오기 전 김장을 해서 다행이다, 마트에 가야 하는데 비가 와서 귀찮다.’  비 오는 걸 좋아하는 나는 감기에 걸려도 좋은 날들이라면 비 속에 서 있고 싶었다. 안다, 이제 그런 용기를 낼 수 없는 나이라는 걸. 어쨌거나 비 오는 수요일의 오전은 경쾌한 가위질의 리듬으로 남는다.

 

 비, 수요일, 왈츠와 어울리는 책은 어떤 책일까. 내 멋대로 고르자면 오늘의 책으로 꼭 읽고 싶은 김엄지의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김소형의 『ㅅㅜㅍ』, 제목 때문에 끌리는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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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12-02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을 등쪽으로 뻗어 잡으면 잡힐만큼 머리카락이 자라서 미용실 한번 다녀와야하는데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자목련님 글 읽으니 냉큼 다녀오고 싶어지네요 ㅎ 저도 이 참에 짧게 잘라볼까도 생각해보게 되구요 ㅋ 미용실가면 가위소리에 귀기울여봐야겠어요^~^

자목련 2015-12-03 19:08   좋아요 0 | URL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가볍게 퍼머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해피북 님이 들으실 가위소리는 어떨까요? 신나는 리듬이면 좋겠어요, ㅎ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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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우리와 닮은 스토너. 담담하면서도 치열했을 그의 인생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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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이 아닌 모든 것
이장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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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냇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고 있다고 믿으며 흘러가듯 우리의 생도 끝을 모르는 어딘가를 향해 나간다. 누군가는 빠르게 속도를 내고 누군가는 천천히 늦은 걸음으로 살아간다.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는다. 그들에게서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소설이 아닐까 싶은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이장욱의 소설이 그랬다.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구나 싶다가도 어딘가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어떤 소설 속 인물은 너무도 기묘할 정도로 놀랍고 어떤 인물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해서 놀랐다.

 

 이장욱이 그린 인물들은 다른 듯했지만 같았다. 소설 속 인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겹쳐졌고 하나의 단편이 끝나고 다른 단편에서 다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여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본인 답지 않은 일본인 하루오와의 만남을 그린 「절반 이상의 하루오」와 언제나 그곳에 있었지만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다가 죽은 후 부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는 「우리 모두의 정귀보」는 하루오가 정귀보처럼 여겨겼다. 강렬한 인상을 준 것도 아닌데 순간순간 떠올리게 되는 인물 말이다. 어쩌면 하루오와 정귀보는 우리와 가장 친숙한 누군가와 닮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내 삶의 모든 페이지에서 여전히 그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페이지를 넘기면 그 자리에서 숫자가 차례차례 바뀌듯이 말예요. 물론 어느 페이지는 찢어진 채 버려져 있겠지요……’ (「우리 모두의 정귀보」, 154쪽)

 

 그들이 우리가 스치고 지난 사람 중 하나였다면 물에 대한 이미지를 시작으로 평범했던 욕실이 어느 순간 무서운 공포로 돌변하는 경험을 들려주는 「어느 날 욕실에서」속 인물과 집주인인 작가가 여행 중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낯선 집에서 방이 움직이는 환상을 보는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의  주인공은 살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 같았다. 두 단편의 인물들은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랄까.

 

 일주일에 세 번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파출부로 일하는 집주인의 물건으로 성향을 짐작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와 안다고 믿었던 사람과 삶이 언제라도 우리를 배신할 수 있는 걸 한 남자의 죽음을 통해 확인하는 「칠레의 세계」는 산다는 게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미래를 계획하는 어처구니없는 인생이라니. 곳곳에 웅덩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피할 수 없이 건너야 닿을 수 있는 게 우리의 삶이라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세계를 견딜 수 있는 건 하루오나 정귀보 같은 인물이 우리 곁에 존재해서다.

 

 ‘마약성 진통제와 오케이캐시백의 아름다운 조화 속에 인생이 있는지도 모르니까. 죽어가면서도 습관처럼 오케이캐시백 포인트를 적립하는 게 빌어먹을 인생이라는 것이니까.’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 47쪽)

 

 ‘우연이라는 향기로운 공기로 가득한 세계가 곧 낙원 아니겠나? 그런데 어쩌겠는가. 그 낙원의 공기 안에, 치명적인 의지의 고리, 무서운 인과의 사슬이 숨겨져 있다면 말일세. 이불 속의 바늘처럼. 향기로운 포도주 속의 독극물처럼.’ (「칠레의 세계」, 191~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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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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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남겨진 삶에 대해 잔잔하게 그려낸 아름다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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