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 여자
카트린 아를레 지음, 홍은주 옮김 / 북하우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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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원하고 더 여유로운 삶을 갈망한다. 한 단계 높은 그곳에 행복이 존재할 거라 믿는다. 물론 그곳에 도착했을 때 다른 곳을 보고 만다. 그러니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 끝이 절망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때문에 한 번의 기회로 인생역전이 가능하다는 제안을 단칼에 자르지 못하고 주저한다.

 

 힐데가르트에게 그런 기회가 온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아니 감히 거부해서는 안 되는 제안이었다. 가족과 친구도 없이 번역으로 겨우 살아가는 힐데가르트에게 신부를 구한다는 백만장자의 공고를 확인하고 당장 편지를 쓴다.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행복의 조건은 사랑이 아닌 돈이었다.

 

 ‘저는 서른네 살입니다. 키가 크고 금발이며, 감히 말씀드리자면 예쁜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 형제도 없고 남편도 아이도 없고, 일체의 감상적, 인습적 욕심도 없습니다. 제게는 아무 계획도 없습니다. 다만 잘 살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당신의 공고를 보고 저는 이내 사랑에 빠졌습니다. 저는 벌써 당신의 돈, 그리고 당신이 제공할 생활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12쪽)

 

 놀랍게도 억만장자의 초대장이 도착했다. 칸으로의 초대였다.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우선은 그를 만나는 게 맞았다. 힐데가르트 앞에 나타난 남자는 억만장자의 안톤 코르프라는 비서였다. 그는 힐데가르트에게 병에 걸려 늙고 괴팍한 억만장자와 결혼할 수 있는 계획과 그 후로 받을 수 있는 유산에 대해 설명한다. 이미 칸에 도착했을 때 힐데가르트의 인생은 달라졌다. 직접 만난 칼 리치먼드는 예상외로 재미있는 노인이었다. 어쩌면 그와의 결혼생활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자신과 한 편인 안톤 코르프가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얼핏 미녀와 야수나 신데렐라처럼 진정한 사랑을 찾는 뻔한 결말이 아닐까 짐작했다. 안타깝게도 힐데가르트의 유리구두는 단단하지 않았다.

 

 갑자기 죽어버린 남편과 유산 상속을 위해 안톤 코르프가 자리를 비운 사이 힐데가르트는 살인 용의자로 전락한다. 세상은 돈을 노리고 결혼한 천박하고 비정한 여자라고 비난한다. 설사 진범이 존재한다 해도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사태를 해결한 사람은 오직 안톤 코르프 밖에 없었다. 힐데가르트는 그를 의지했다. 그러나 안톤 코르프가 신겨준 유리구두는 사라졌고 그는 오히려 그녀를 조롱한다.

 

 “당신은 애초에 날 믿지 말았어야 했소. 난 당신이 어떤 여자인지 정확하게 판단했던 게 아니겠소? 당신은 날 실망시키지 않았소. 그건 인정하오…… 인간은 저마다 고유한 도덕의 레일 위에서 전진하는 법이오. 아무리 굳센 의지를 품어도 거기서 이탈하지 못하오. 난 당신이 어떤 레일을 달리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도 알고 있소. 당신은 건드리기만 해도 깨지는 보잘것없는 단지에 불과하오. 반면 나는 당신과 똑같은 점토로 빚어진 단지가 아니오.” (239쪽)

 

 힐데가르트는 안톤 코르프의 설계도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지우고 수정하면 그만이었다. 지푸라기처럼 말이다. 힐데가르트는 세상은 너무 쉽게 봤던 것일까. 지긋지긋한 가난의 삶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데, 무엇이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을까. 힐데가르트의 삶은 안타깝지만 색다른 로맨스와 추리의 빠른 전개와 신선한 결말까지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녀는 정말로 살았던가? 그 모든 것이 꿈이었거나, 그녀의 욕망과 후회가 만들어낸 상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따금 지난날의 몇몇 편린이 보일 때도 있었다. 그것들은 냄새와 몇 마디 말과 풍경의 일부 따위를 통해 간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러나 기억 속에 떠오른 과거의 일들은 희미해지거나 잊힌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것을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두 번 죽지 않는가. 한 번은 생명이 몸을 떠남으로써, 또 한 번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힘으로써.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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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가족 - 아파트 키드의 가족 이야기
박재현.김형재 엮음, 박해천 기획 / 마티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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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아파트는 정말 꿈같은 공간이었다. 아파트키드가 아니라서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 책이다. 집단처럼 보이는 아파트를 사회학으로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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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마메 - 나는 시바견과 산다
길은 지음 / 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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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면 좋아요. 절로 미소가 번지는 사랑스러운 마메. 우리집에 하루만 데리고 와서 함께 지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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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5-09-02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 갔는데 이책이 보이더라구요. 한참을 웃으면서 보다 왔어요. 마메, 우리집에 하루만 왔으면 좋겠어요

자목련 2015-09-03 20:14   좋아요 0 | URL
눈 앞에서 마메의 귀여운 모습을 본다면 완전 빠져들 것 같아요. ㅎ
 
언제까지나 내성적으로 살겠다 - 내성적인 당신이 변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이유
에비스 요시카즈 지음, 강한나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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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함께 부제가 묘하게 끌리네요. 알 수 없는 방어기제로 외향적인 듯하지만 누군에게나 내성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 담백한 저자의 이야기가 마음을 열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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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보인다 - 버려야만 볼 수 있는 것, 알 수 있는 것, 얻을 수 있는 것
윌리엄 폴 영 외 48인 지음, 허병민 엮음, 안진환 옮김 / 카시오페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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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야 빈 자리를 보고 채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삶입니다.그게 욕심이든 미련이든 말이지요. 지금껏 껴안고 내려놓지 못한 것들이 한 눈에 들어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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