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하다. 방을 도려내서 전자레인지에라도 돌리고 싶다. 내일도 비 소식이 있다. 제습기를 돌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건조대에는 기운 없는 표정의 옷가지들이 있고 침대에는 책 몇 권이 널브러져 있다. 악스트를 읽고 구매한 최진영의 구의 증명,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윤이형의 『개인적 기억』도 그 시리즈다. 김중혁의 단편집을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나란하게 보이는 『악기들의 도서관』, 『펭귄뉴스』도 읽지 않았다. 산문집은 빨리 읽었는데 소설집은 미뤄진다.  어쨌거나 연애소설이란 부제 아닌 부제가 붙은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꼼꼼하게 읽고 싶다.

 

 연애,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시작하는 연인들은 투케로 간다를 빼놓을 수 없다. 말랑말랑하면서도 절절하고 당돌한 사랑에 대한 표현에 빠져든다. 아껴가며 조금씩 읽고 싶은 소설이다. 그래서 현재 멈춘 상태다.

 

 그녀는 열세 살이 되던 여름에 떠났다. 우리의 경쾌함과 밝은 웃음, 내 불멸의 사랑, 그녀가 처음으로 흘린 피까지 모조리 가져가 버렸다. 나는 계속 그녀를 기다렸지만 나의 기다림은 남자들의 매력적인 야성미에 보잘 것 없었다. 그녀는 나 없이 성숙했다. 그녀는 나 없이 아름다워졌다. 그 누구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졌다.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하는 아름다움. (57~58쪽)

 

 독서 에세이는 거부할 수 없다. 읽는 인간이 그런 책이다. 오에 겐자부로가 선택한 책이라니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한동안 큰언니와 지내면서 가족과 형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족이라는 병을 통해 가족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와 조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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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5-07-28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하는 연인들은 투케로 간다는 여행에세이 인줄알았는데 아니군요. 김중혁의 소설집이 반가워요. 전 이분의 장편보다 단편이 좋아요

자목련 2015-07-29 09:24   좋아요 0 | URL
묘한 매력을 지닌 소설집이에요. 김중혁 님의 이번 소설은 연애라는 키워드가 있어 기대가 커요^^

프레이야 2015-07-2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하는연인들, 담아가요
표지가 어디론가 부르네요. 환상 같기도 하고 허상 같기도 하고‥
이곳은 햇볕이 점점 뜨거워지는 날씨에요. 밤이라 식었지만 그래도 후텁지근ㅠ 내일은 더할 것 같은데‥ 여름답게요! 김중혁의 신간 단편집도 끌려요. 편안한 밤~^^

자목련 2015-07-29 09:23   좋아요 0 | URL
바다, 축제, 바탕스, 그리고 사랑의 감정들이 골고루 담긴 소설이라고 할까요.
각 단편마다 등장하는 꽃의 이야기도 흥미로워요.(아직 다 읽지는 못해지만요.)

여긴 비가 와요. 비 오는 수요일입니다. 쏟아져요, 그래서 또 제습기 돌려요, ㅎ
 
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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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눅눅한 날씨 같은 일상을 견디는 삶을 생각한다. 그 여자, 윤영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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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끝났을 때 비로소 사랑은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것이 얼마나 빛났는지, 얼마나 조악했는지 말이다. 7년 동안 연인으로 지냈던 루이자와 패트릭의 사랑은 전혀 빛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의 이별은 현명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윌과 루이자의 이별은 달랐다. 윌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던 루이자에게 사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는 분명 로맨스 소설로 읽힌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지마비 환자 윌과 그를 간병하는 루이자의 사랑 이야기다. 6개월이라는 시한부 사랑이니 얼마나 진부하고 식상하겠는가. 하지만 소설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다. 유쾌해서 많이 웃었고, 눈부시게 아름다워 황홀했고, 절절하게 애틋해서 아팠다.  

 

 모든 게 완벽했던 젊고 부유한 사업가 윌은 불의의 사고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생을 이어간다. 최고의 의료진과 간병인을 두었지만 윌의 삶엔 의욕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족함이 없던 과거였기에 현재를 인정할 수 없었다. 때문에 스스로 삶을 끝내려는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자식의 그런 선택을 받아들 수 있겠는가. 간병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루이자가 면접을 보자마자 취직이 된 이유는 그녀의 활기차고 밝은 성격이 윌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으리라 믿어서다.

 

 루이자는 나고 자란 고향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은 단순한 삶을 사는 여자다.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행복했다. 주인이 문을 닫지 않았더라면 간병이라는 직업을 몰랐을 것이다. 미혼모인 여동생과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실직 위험에 놓인 부모님을 생각하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니 사지마비 환자 윌의 곁에서 상태를 지켜보고 여유 시간에 청소를 하며 고액의 급료를 받는 일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엔 고약하기만 했던 윌과 점차 가까워진다. 윌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세계에 대해 알아간다. 단순한 간병이 아니라 진심으로 윌을 좋아한다.

 

 그러다 루이자는 윌의 선택에 대해 알게 된다. 왜 그녀가 6개월만 고용되었는지 말이다. 윌이 부모님에게 6개월의 시간을 제시한 것이다. 루이자는 분노한다. 그러나 곧 윌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공교롭게도 남자친구 패트릭과 이별한다. 윌과 잦은 외출을 감행한다.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연주회를 가고, 가족을 소개하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루이자가 혼자만 간직한 고민에 대해 털어놓으면 윌은 항상 멋진 답을 제시한다. 루이자는 윌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해외여행을 떠난다. 영국을 떠나 도착한 휴양지, 루이자는 스스로 대견하고 윌은 루이자의 모습에 행복하다.

 

‘우리를 에워싼 세상이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은 폭풍우 소리, 자줏빛 도는 흑청색 바다, 그리고 부드럽게 일렁이는 거즈 커튼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밤바람에 흔들리는 연꽃 냄새를 맡고 멀리서 짤랑거리며 부딪는 유리잔과 황급하게 의지를 미는 소리를 들었으며, 어딘가 먼 축하 파티장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정없이 날뛰는 자연의 포화를 느꼈다. 팔을 뻗어 윌의 손을 내 손 안에 꼭 쥐었다. 한순간, 나는 지금 이 순간처럼 세상에 또 다른 인간에게 이토록 강렬하게 연결된 느낌을 다시는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462쪽)

 

 자신이 마음을 전한 루이자는 윌이 스위스행을 포기할 것이라 믿었다.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윌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랬다. 뻔한 결말이 아니었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윌과 루이자의 행복한 결말을 짐작했다. 아니, 제발 윌이 루이자와 예쁜 사랑을 하기를 기대했다. 루이자를 찾는 윌을 향해 스위스에서 둘의 아름다운 언약식이 그려지길 간절하게 바랐다.

 

 윌은 떠났고 루이자는 남았다. 윌은 루이자에게 많은 유산을 남겼다. 루이자가 몰랐던 루이자의 재능과 꿈을 찾기에 충분했다. 작은 마을을 떠나 더 넓은 세계에서 루이자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가 남긴 편지. 그 어떤 고백보다 뜨겁고 감미롭다. 

 

내 생각은 너무 자주 하지 말아요. 당신이 감상에 빠져 질질 짜는 건 생각하기 싫어요.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534쪽)

 

 아마도 루이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때로 사무치게 그립고 때로 미치도록 보고 싶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도 알잖아요, 내가 얼마나 씩씩한 여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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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를 구매한 적이 언제였던가. 화장품, 악세사리 같은 사은품에 눈이 멀어 구매한 적이 있었다. 문학잡지는 아니었다. 문예지를 정기구독한 적도 있지만 섬세하게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나 리뷰 정도가 전부였다. 악스트는 나 같은 이를 위한 잡지다. 가격도 이렇게 착할 수 있을까, 아니 이렇게 착해도 되는 건가?

 

 구성과 필진을 보면 기존의 계간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가 읽은 작가의 소설, 연재, 단편이 있다. 색다른 점은 시가 없다는 것. 그렇다. 악스트는 오로지 소설을 위한, 소설에 의한, 소설을 주로 다루는 잡지인 것이다. 시인 김민정은 시가 아닌 그림을 소개한다.

 

 김태용과 최진영에 대한 에세이도 있다. 최진영에 대한 글을 읽고 『구의 증명』이 읽고 싶어졌다. 단편집 『팽이』에서 만난 최진영에 끌려 장편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를 책장에 두었다는 잊고 있던 기억도 떠올랐다.

 

 

 

 

 

 좋아하는 작가 정용준이 천명관을 인터뷰한 내용도 읽고 천명관의 소설을 읽는다면 소설 쓰는 천명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될 것 같다. 인터뷰를 마무리한 정용준의 이런 문장이 어떤 믿음을 안겨준다.

 

 ‘소설쓰기는 권투 같다고 했던 헤밍웨이의 말을 비슷하게 바꿔본다면 천명관에게 있어 소설쓰기는 격투다. 그는 권투도 하고 킥도 쓰고 필요하다면 레슬링도 하는 종합 격투기 선수다. 빠르고 유연하며 강한 선수다. 상대는 그가 뭘 사용할지 모른다. (…) 그는 능숙한 테크니션이자 지지 않는 싸움꾼이다.’

 

 

 

 

 

 꼭꼭 씹거나 정성을 다해 한 줄 한 줄 읽은 건 아니다. 그러니까 훑어보기라 할 수 있다. 첫 시작엔 든든한 박수가 필요하다. 박수가 그치고 나면 지속적인 응원과 조언이 필요하다. 만드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말이다. 좋아했던 『풋』처럼 사라지지 말고 도끼날이 무뎌지지 않고 영롱하게 빛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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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5-07-2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간지 `자음과모음`이 처음 나왔을 때도 시 없이 `거의` 소설로만 승부하는- 그 부피! - 값이 아주 저렴하다는 특장을 띠고 있었죠.

아무려나 악스트는... 이짝 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기사 젊고 보다 신선하니까요.^^

...시 있었나? 죄송, 술을 너무 마셔서 제 기억에 자신이 없습니다요.ㅎㅎ

자목련 2015-07-24 10:16   좋아요 0 | URL
아, 자모 계간지도 그랬군요.
은행나무도 계간지가 없으니 어쩌면 악스트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르겠네요.
저 역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데...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금요일, 복숭아 한 입 베어먹으면 맥주를 마셔도 좋겠습니다, ㅎ
 
쥐포 스타일 - 제3회 스토리킹 수상작 비룡소 스토리킹 시리즈
김지영 지음, 강경수 그림 / 비룡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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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 마자 잼나게 읽은 동화. 기발한 아이디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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