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Philos Feminism 6
수전 팔루디 지음, 손희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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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이나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수전 팔루디의 저서는 필독서라고 알고 있다. 나는 그녀가 어떤 형태로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잘 모른다. 여성운동, 여성학,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나 에세이를 접한 게 전부다. 그러니 내게는 수전 팔루디의 『다크룸』을 읽는 일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읽은 건 아니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폭력적이고 무서운 아버지가 엄마와 이혼 후 오랜 시간 연락을 끊고 지낸 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때문이다. 안부가 아니라 자신의 근황에 대해 설명한 편지였다.

 

저자는 2004년 여름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발신자는 아버지였고 내용은 자신이 태국에서 성전환수술을 받았고 현재 여성으로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으니 이름도 이제는 '스티브 팔루디'가 아닌 '스테파니 팔루디'라고 말이다. 아버지는 미국이 아닌 헝가리에 거주하고 있었고 저자는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아버지와 딸의 만남이 아닌 그녀와 나의 만남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수술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고 현재 여성으로의 삶에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여성인 자신에게 친절하고 배려하는 태도에 좋아했다. 70세가 넘은 여성에게 친절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말이다. 그녀의 집에는 여성스러운 옷이 가득했고 사진도 많았다. 마치 한 단 번도 남성으로 살아오지 않은 것처럼. 그러나 그녀에게는 여전히 과거 아버지가 보였던 성향도 존재했다.

 

저자는 아버지의 결정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가장이었고 마초맨 그 자체였다. 무엇이 그를 여성으로 살고자 했을까. 저자는 태국에서 수술 후 회복을 도와준 아버지의 지인들과 아버지와 같은 사례를 분석한다. 성전환 수술을 했지만 완전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신체적인 외형은 다른 성으로 바꿀 수 있겠지만 내면에는 항상 정체성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수술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나 사회적 시선, 그 모든 것들은 그들에게 감내하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중성인 것 같아요, 하지만 중성이 되지 싶지는 않아요.” “사람들은 구분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경계에 있는 사람들조차 구분이 필요하죠. 그래야 경계에 있을 수 있잖아요. 정체성이 있어야 해요.” (217쪽)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정체성’이다. 저자가 아버지인 그녀와 헝가리에서 그녀의 과거에 대해 추적하면서 마주하는 그녀의 삶은 고통과 혼란 그 자체였다. 아니,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헝가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그에게 애정을 쏟지 않았다. 부모의 이혼 위기에서 자신의 존재로 인해 재결합을 했다는 걸 말하면서는 딸인 저자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자신은 가정을 지켰지만 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딸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고 아버지를 버렸다고 화를 냈다. 아버지가 감추고 싶었던 그녀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다. 헝가리를 점령한 나치는 유대인을 수용소로 보냈고 그곳에서 많은 이들이 죽었다. 아버지의 가족도 전쟁에서 죽음을 맞았다. 당시 아버지는 유대인인 아닌 나치를 선택했고 나치 행세를 하면서 그의 부모를 구했다. 그리고 이후에 헝가리를 떠나 덴마크, 브라질, 미국으로 왔다. 유대인이었지만 철저하게 자신을 속여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 미국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만난 어머니와 결혼 후에는 미국 사회가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 이 역시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정체성은 사회가 너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야. 사람들이 인정한 대로 행동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적이 생긴단다. 나는 그렇게 살았어. 그래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지.” (517쪽)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헝가리의 역사를 알아야 했다. 책에는 헝가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설명한다. 전쟁 당시 유대인의 실상, 정권의 흐름, 그리고 아버지가 거주하는 현재의 헝가리의 상황까지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꺼내기 싫어하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저자는 아버지의 친구와 친척들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두 번의 아이를 잃고 얻은 아들을 냉대한 어머니. 자신들을 나치로부터 탈출하게 만든 아들에게 유산으로 천 원도 안 되는 금액의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까지.

 

2004년부터 10년에 걸쳐 헝가리를 방문해 아버지와 아버지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과거의 현장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은 600여 쪽의 이야기로 부족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헝가리의 역사에 집중할 수도 있다. 어렵기만 할 것 같았던 기대와는 달리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저자의 이야기 무척 진솔하다.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치매로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저자의 모습은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저널리스트도 아닌 그냥 아버지를 오래 돌보고 싶은 딸의 모습이다.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 그렇게나 자주 그랬던 것처럼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대교도인가 기독교인가? 헝가리인인가 미국인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너무 많은 상반되는 것들이 함께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의 누워 있는 몸을 보면셔, 나는 생각했다. 이 우주에는 단 하나의 구분, 단 하나의 진정한 이분법이 있구나. 살과 죽음,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녹아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622~623쪽)

 

한 사람을 온전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드러난 외면으로 짐작하는 것들, 그 이면에 숨겨진 어둡고 깊은 내면을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저 가능할 거라 바라면서 더 가까이 다가가고 노력하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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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지구 벙커X - 강영숙 장편소설
강영숙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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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가 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성적 판단을 쉽게 할 수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갇히고 만다. 정부의 대책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세상에 의지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나와 같은 처지의 누군가에게 의심 없이 다가갈 수 있을까? 더 이상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는 이야기, 바로 강영숙의 『부림지구 벙커 X 』다

소설은 지진이 휩쓸고 간 부림지구의 벙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진으로 인해 도시는 무너졌고 삶은 망가졌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많은 이들이 부림지구를 떠났다. 대규모 제철 단지였지만 현재는 쇠락한 도시가 돼버렸다. 그런데다 지진 발생 후 폐허로 전락해버렸다. 정부는 부림지구를 오염된 곳으로 지정하고 사람들을 근처 N시로 이주시킨다. 주민과 협의된 사항이 아니었다. 이주 조건으로 몸에 칩을 이식해야 한다. 그들을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생존자인 이재민들은 오염된 사람들로 치부한다. 소설 속 화자인 40대 여성 유진은 부림지구에서 태어나 자랐고 떠났다가 돌아왔다. 그러니까 부림지구의 흥망성쇠의 역사와 함께 한 것이다. 유진은 지진 후 흙더미에서 구조되었고 이재민이 되어 벙커에 살게 되었다. 유진과 같이 벙커에 사는 이들은 다양하다. 인격장애를 앓는 십 대 소녀, 신문기자였던 남자, 교수 출신의 노부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 그들을 이끄는 대장, 지진 역학 조사를 하는 연구원 등이다. 소설의 초반은 유진과 연구원의 인터뷰 과정으로 지진을 겪은 이들의 심리를 상당하는데 그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다.

“지진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연구원이 물었다. 평소에 하던 어떤 놀이 경험을 떠올려보라고도 했다.

“놀이 경험요? 지진은 그냥 다 무너지는 거예요. 겪어놓고도 그렇게 말해요? 놀이에 비유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41~42쪽)

 

지진은 지진인데, 무엇을 떠올릴 수 있단 말인가. 이 부분에서 나는 몇 해 전 경험한 태풍의 공포가 살아났다. 베란다 유리창을 날려버린 태풍, 그것은 죽음이었다. 지진과 태풍 같은 재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소설 속 유진을 비롯한 이들처럼 삶을 이어갈 뿐이다. 어둡고 축축한 좁은 공간에서의 생활은 비참하다. 정부가 그들에게 지급한 건 최소의 생존 키트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부림지구의 벙커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대장을 중심으로 허물어진 도시를 돌아다니며 혹시 모를 생존자를 찾거나 먹을 것을 구한다.

​부림타운을 돌아다니는 게 하루 일과였다. 단순히 산책만 하는 것은 아니었고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살아 있는 무언가를 구하러 다녔다. 대장이 먼저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다 내가 대장을 따라나섰고, 나중엔 해나도 함께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올 때마다 나뭇가지를 이용해 벙커 개폐구를 잘 가리는 걸 잊지 않았다. 우리의 벙커는 우리가 꼭 지켜야 했다. (72쪽)

​소설을 읽는 이들은 모두 2017년에 발생한 포항의 지진을 생각할 것이다. 아니, 지금 우리에게 닥친 바이러스의 공포를 대입한다. 목적은 다르지만 방역복을 입고 벙커 주변을 다니며 이재민을 찾는 이들의 모습마저도. 유진이 살고 있는 벙커 X도 그들의 손길을 피할 수 없다. 그들 중 일부는 N 도시로 향하고 유진과 몇 명만 돌아온다. 어떤 미래도 꿈꿀 수 없는 현실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공간은 벙커가 유일했다. 정신적 안정이 가능한 장소라고 할까.

지금 내가 가진 유일한 소유물은 더러워진 정맥류 스타킹과 지진으로 인해 다 부서져버린 이 삶뿐이다. 벙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벙커에서는 그래도 좋았다. 좋았던 시간, 앞으로 그런 시간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염된 지역에 남은 우리만이 이제 부림지구의 주인이었다. (290쪽)

앞으로 어떤 재해와 재난이 우리에게 닥칠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어느 미래엔 소설과 현실을 따로 떼어낼 수 없는 날들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겪는 상황을 잘 이겨낸다 해도 미래는 희망과 공포가 함께 온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희망이 아닐까. 유진에게 벙커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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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3-17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진 같은 재해는 사람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거군요 지진이지만 지금 일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소설 속 일이 소설만은 아니다는 느낌도 들어요 지금이 지나가면 또 다른 일이 일어나겠지요 그렇다 해도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할 텐데...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라져도 살아 있다면 살아가겠지요 그게 좀 슬프기도 하지만...


희선

자목련 2020-03-18 12:0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지진은 과거의 일이고 현재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생각나요. 소설을 소설 속의 일로만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희선 님 건강하고 환한 봄날 보내세요^^*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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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주변의 반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너무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반응이다. 그것이 걱정하는 마음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때로는 적극적인 관심이 피곤하다. 나의 감정도 추스르기 힘든데 그들의 감정까지 걱정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들어서다. 다른 하나는 그저 기다리는 마음이다.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보통의 일상에 대해 공유하려는 이들이다. 밥은 먹었는지, 날씨가 춥다거나 꽃이 피었다거나 하는 그런 보통의 이야기를 건넨다. 내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주기를 바라고 묻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오히려 전부다 털어놓는다. 이상한 일일까. 아닐 것이다. 섣불리 질문하기보다는 상대를 살피는 배려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기에 그렇다. 이주란의 단편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읽으면서 소설 속 화자의 주변에 그런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기다리는 일, 그냥 가만히 곁에 있어주는 일이 어려운 일도 아닌데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조급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감정의 흐름도 그렇게 흘러가길 원한다고 할까. 그래서 어떤 상처가 회복되기까지 평균 시간이 없는데도 그러기를 바라는 거다. 괜찮냐고 묻는 대신 괜찮을 거라고 단정해버리는 습관처럼 말이다. 이주란의 단편집에 등장하는 이들은 최근에 일을 그만두었거나 어떤 일로 인해 무척 힘들어하는 상태에 놓였다. 작가는 친절하게 그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만으로 실직을 했거나 이직을 했다는 걸 알려준다. 표제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 화자인 ‘나’ 조지영은 언니를 잃었다. 언니가 남긴 조카 송이와 엄마와 셋이서 함께 산다. 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조카 송이를 돌보며 서점에서 근무하는 모습만 볼 수 있다. 서점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 조카의 숙제를 봐주고 간식을 만들어주고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집들이 약속을 잡으며 별문제 없이 살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곳곳에는 슬픔이 묻어난다. 새 학기를 잘 적응하는 조카를 보면 기쁘면서도 슬프다. 익숙한 듯 익숙해지지 않는 언니의 부재와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지난날들이 다시 오시 않다는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밤. 그날들은 지났고 다른 날들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사실에 잠시 안도했던 적이 있었으나 어쩌면 그 사실이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모든 날들을 비슷하게 만들며 살고 싶었다. 나 혼자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한 사람을 위한 마음」, 38쪽)

이주란의 이 소설집은 연작소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조카와 엄마가 계속 등장하고 나의 주변 인물 역시 같은 이니셜로 등장한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처럼 함께 살지 않지만 서로 집을 오가며 조카를 돌보고 나를 잘 아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는 언니가 세상을 떠났지만 「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에서는 동생인 조지영의 자살로 그녀의 언니인 조수영이 동생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H에게」에서는 수영과 지영으로 짐작할 수 있는 자매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한다. 가난한 일상, 아버지의 부재, 낡고 허름한 월세방, 불안정한 직장 생활.

최선을 다하지만 통장 잔고는 늘어나지 않고 직장동료나 친구들은 그 모든 게 내 잘못인 양 조언을 한다. 이별과 상처에 대해서도 그들의 시선으로만 상대하는 것이다. 슬픔과 고통이 같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그래서 이 소설집의 화자는 조금 달라지려고 한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걸 받아주는 일도 그만하고 싶다.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과거와는 다른 삶으로 걸어가는 느낌이다. 그 느낌은 소설을 읽는 이들에게도 전해진다.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가끔 넘어지면서 살고 싶다. 무리해서 뭔가를 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것이 싫다.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 88쪽)

나는 앞으로 정말 미안할 때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살 것이다. (「일상생활」, 134쪽)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대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하다. 일부러 밝은 분위기를 유도하지 않는다. 하나의 작은 점들을 이어 선을 만들듯이 아주 천천히 회복되도록 내버려 둔다고 할까. 그런 점이 나는 더 좋았다. 뭔가 대단한 발전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는「일상생활」속 꿈 모임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미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알고 있다. 어떤 후회와 지난날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삶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살아낸다. 감당할 수 없는 일상에 놓인 이들에게 괜찮냐고 묻는 이야기들, 그 속에 슬그머니 속상한 내 마음도 꺼내고 싶다. 한없이 울고 싶은 날, 그냥 곁에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반려동물처럼 그렇게 나를 위로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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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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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는 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여기에 있고 쓰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돌아본다. 그 시작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말들이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고 다스릴 수 없는 화와 슬픔이 가득했다. 공개가 아닌 비공개로 나 혼자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도 한 번씩 그 글을 읽을 때가 있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글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런 글들이 나를 달래주었다. 솔직하게 미움을 표출했고 나를 기록했다. 그랬다. 나로 시작해 나와 이어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썼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글을 읽었다. 글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글쓴이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가진 슬픔이나 고유한 무언가가 전해졌다. 그런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열렸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쓰지 않았지만 결국엔 하나의 문이 열렸고 나는 다른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런 모호한 글은 좋은 글이 아니라고 한다. 홍승은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에 따르면 그렇다. 그 시절의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제적으로 쓰지 못하는 글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계속 쓰고 싶다. 책을 읽고 느낀 것들을, 일상의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쓰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이 역시 나를 위한 글쓰기라 여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글의 놀라운 영향력을 느꼈다. 글을 통해 나의 생각에 다른 생각을 더할 수 있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확장시키는 힘을 배운다. 글을 읽는 즐거움과 글을 쓰는 기쁨에 대해서도 말이다.

글쓰기는 단지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활동이 아니라 경험을 기반으로 끈질긴 사유와 해석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기존의 관념을 비틀어 존재를 자유하는 언어를 구사하고, 경험을 다각도로 해석할 때, 내가 쓴 글은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61쪽)

글쓰기를 전공하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고 각자의 삶이 전부 글이 될 수 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나의 삶을 어떻게 생생하게 포착해서 서술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쓴다는 것 자체를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저자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 나온 이들이의 마음처럼 말이다.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써도 될까, 사람들이 뭐라 생각할까. 저 깊은 곳에 자리한 어떤 사건, 지우고 싶은 순간의 기억, 이런 생각들이 튕겨 나와서 쓰지 못하는 시간들. 그것이 상처라면 더욱 그렇다. 상처, 트라우마, 일반적이지 않은 일상에 대해서 끄집어 낼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함께 읽어주고 공감할 이들이 필요하다. 저자는 그런 글쓰기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잘 쓰는 글이 아니라 아름답고 예쁜 글이 아니라 나를 기록하는 글 말이다. 나만이 쓸 수 있는 나의 글 말이다.

 

우리는 오늘도 기록하며 적극적으로 내가 되어간다.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적극적으로 각자가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을 지지하면서. (84쪽)

저자가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고 학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생활했고 비혼 주의자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에 대한 글이 그러하듯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은 나의 일부이며 나의 전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시간이 부끄럽고 잘못된 게 아니라는 인식을 시작으로 당당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이 글이라는 걸 알기에. 그래서 나는 더욱 쓰고 싶다. 아직 말하지 못한 나에 대해서. 나와 닮은 글을 쓰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 아닌 나를 발견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 아닐까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고 나의 내부에서 자라는 그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게 한다. 은밀한 욕망일 수도 있고 때로 세상을 향한 작은 외침일 수도 있다.

 

저자와 함께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읽고 조언을 하는 이들의 단단한 연대가 부럽다. 한 번도 그런 모임에 참여한 적이 없기에. 동생과 엄마와 저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글을 쓰는 부분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엄마와 동생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쓰는 존재로 인정하고 인정받는 기쁨이랄까. 저자의 말대로 그들의 삶이 입체적으로 변화하는 순간이라 느껴졌다. 강연을 하고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더욱 자신의 글쓰기에 필요한 확신과 그것을 위한 다짐을 하는 결연한 의지가 전해진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쓰는 사람으로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는 내 위치의 한계 알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하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기.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고통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쓸 수 없는 말을 쓰기. (141쪽)

나는 쓴다. 아직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에 대해서는 쓸 수 없지만 쓴다. 그러나 내가 써야만 하는 문장이 있다는 걸 믿는다. 나를 온전히 보여주는 글이라는 거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그 거울을 꺼내어 아주 오래 바라볼 날을 꿈꾼다. 그리하여 언젠가 나의 글이 영롱한 빛을 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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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2-2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 수 없는 말을 쓰기, 라는 문구가 들어오네요. 쓰기에 대한 생각과 회의와 기쁨 그리고 원점과 출발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 이른 봄밤이에요. 자목련 님 건강히 ^^

자목련 2020-03-02 15:42   좋아요 0 | URL
네, 무엇을 쓰고 싶은지,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해요. 3월, 생기있게 시작해요^^

공쟝쟝 2020-02-27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말하지 못한 글을 기다리고 있을 게요. 책 참 좋지요? 저도 엄마와 동생과 같이 글쓰는 부분에서 울컥 했어요. 저자는 용기 있는 사람 같아요. 그 용기에는 못미치더라도 조금씩 써나가요~~^^

자목련 2020-03-02 15:41   좋아요 1 | URL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참 좋으네요. 조금씩 써나가는 일, 그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공쟝쟝 님, 코로나로 힘든 시기지만 이 오후 환한 봄빛을 즐겨요!!
 
호텔 창문 - 2019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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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혼자서 척척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삶 말이다. 독립적으로 살고 싶었다고 할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적지 않은 이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빚진 삶이라고 할까. 언젠가 그 빚을 갚아야지 생각하면서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나 살면서 나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에 붙잡혀 살고 있다면 어떨까?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수상작인 편혜영의 「호텔 창문」속 화자는 그런 시달림에 힘들다. 그건 죄의식이었다. 여름 날 강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고 대신 죽은 사촌 형에 대한 마음이었다. 자신을 구하고 죽은 사촌 형은 의사자 지정을 받았다. 희생정신이 있거나 모범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죽음은 그런 결과를 만들었다. 살아남은 게 죄일까. 사촌 형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과연 나에게 있는 것일까. 사고였고 어쩔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원망할 대상을 찾는다. 수습이나 대책이 아니라 화와 분노를 쏟아낼 단 한 사람. 소설 속 화자에게 그 사건은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된다. 그 사건을 아는 이들이 화자를 대하는 태도는 과연 정당한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오롯이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소설은 묻고 있다.

 

자라면서 운오는 누구 덕에 살아났는지 자주 상기했다. 큰어머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고 말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들뜨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오래전에 죽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만 누리는 이런 무덤덤함을 큰어머니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28~29쪽)

수상작인 「호텔 창문」외에 6편은 일상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특히 기억에 남는 단편은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과 최은미의 「보내는 이」와 동성 연인과 자신과의 사이를 돌아보는 김혜진의 「자정 무렵」이었다. 존경하는 선생님이 어린 남자와 사랑에 빠져 이혼을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김금희의 「기괴의 탄생」, 폭력과 폭행에서 안전할 수 없는 여성의 미래를 그린 조남주의 「여자아이는 자라서」, 김사과가 만든 인물의 독특한 세계관을 만날 수 있었던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도 흥미로웠다. 이주란의 단편집에서 만났지만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두 번 읽어도 좋았다. 하루의 일과를 담담하게 이어가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그 안에서 발견하는 사소한 것들이 주는 기쁨을 위대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회가 규정해놓은 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김혜진의 시선이 점점 더 날카롭다.

아이들로 인해 친해진 엄마들의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최은미의 「보내는 이」는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거의 매일같이 함께 커피를 마시고 음식을 나누며 모든 걸 공유한다고 여겼는데 상대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면 어떨까. 막역한 사이라 믿었는데 어느 순간 거리를 두고 결국엔 아무런 인사 없이 이사를 가버린다면 서운한 마음보다 그동안에 보냈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고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스스로를 자책할지도 모른다. 필요에 의해 맺어진 관계의 속성일까.

 

인생엔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이 생긴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때로 우리는 소설을 통해 그런 상황을 점검하고 대비한다. 감정을 다스리는 노력을 하고 어떤 일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연습하고 짐작으로 결과를 예측하지 말라는 조언 같다고나 할까. 여전히 삶은 어렵고 세상엔 내가 모르는 일들이 많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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