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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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는 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여기에 있고 쓰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돌아본다. 그 시작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말들이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고 다스릴 수 없는 화와 슬픔이 가득했다. 공개가 아닌 비공개로 나 혼자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도 한 번씩 그 글을 읽을 때가 있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글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런 글들이 나를 달래주었다. 솔직하게 미움을 표출했고 나를 기록했다. 그랬다. 나로 시작해 나와 이어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썼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글을 읽었다. 글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글쓴이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가진 슬픔이나 고유한 무언가가 전해졌다. 그런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열렸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쓰지 않았지만 결국엔 하나의 문이 열렸고 나는 다른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런 모호한 글은 좋은 글이 아니라고 한다. 홍승은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에 따르면 그렇다. 그 시절의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제적으로 쓰지 못하는 글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계속 쓰고 싶다. 책을 읽고 느낀 것들을, 일상의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쓰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이 역시 나를 위한 글쓰기라 여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글의 놀라운 영향력을 느꼈다. 글을 통해 나의 생각에 다른 생각을 더할 수 있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확장시키는 힘을 배운다. 글을 읽는 즐거움과 글을 쓰는 기쁨에 대해서도 말이다.

글쓰기는 단지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활동이 아니라 경험을 기반으로 끈질긴 사유와 해석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기존의 관념을 비틀어 존재를 자유하는 언어를 구사하고, 경험을 다각도로 해석할 때, 내가 쓴 글은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61쪽)

글쓰기를 전공하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고 각자의 삶이 전부 글이 될 수 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나의 삶을 어떻게 생생하게 포착해서 서술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쓴다는 것 자체를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저자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 나온 이들이의 마음처럼 말이다.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써도 될까, 사람들이 뭐라 생각할까. 저 깊은 곳에 자리한 어떤 사건, 지우고 싶은 순간의 기억, 이런 생각들이 튕겨 나와서 쓰지 못하는 시간들. 그것이 상처라면 더욱 그렇다. 상처, 트라우마, 일반적이지 않은 일상에 대해서 끄집어 낼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함께 읽어주고 공감할 이들이 필요하다. 저자는 그런 글쓰기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잘 쓰는 글이 아니라 아름답고 예쁜 글이 아니라 나를 기록하는 글 말이다. 나만이 쓸 수 있는 나의 글 말이다.

 

우리는 오늘도 기록하며 적극적으로 내가 되어간다.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적극적으로 각자가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을 지지하면서. (84쪽)

저자가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고 학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생활했고 비혼 주의자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에 대한 글이 그러하듯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은 나의 일부이며 나의 전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시간이 부끄럽고 잘못된 게 아니라는 인식을 시작으로 당당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이 글이라는 걸 알기에. 그래서 나는 더욱 쓰고 싶다. 아직 말하지 못한 나에 대해서. 나와 닮은 글을 쓰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 아닌 나를 발견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 아닐까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고 나의 내부에서 자라는 그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게 한다. 은밀한 욕망일 수도 있고 때로 세상을 향한 작은 외침일 수도 있다.

 

저자와 함께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읽고 조언을 하는 이들의 단단한 연대가 부럽다. 한 번도 그런 모임에 참여한 적이 없기에. 동생과 엄마와 저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글을 쓰는 부분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엄마와 동생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쓰는 존재로 인정하고 인정받는 기쁨이랄까. 저자의 말대로 그들의 삶이 입체적으로 변화하는 순간이라 느껴졌다. 강연을 하고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더욱 자신의 글쓰기에 필요한 확신과 그것을 위한 다짐을 하는 결연한 의지가 전해진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쓰는 사람으로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는 내 위치의 한계 알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하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기.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고통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쓸 수 없는 말을 쓰기. (141쪽)

나는 쓴다. 아직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에 대해서는 쓸 수 없지만 쓴다. 그러나 내가 써야만 하는 문장이 있다는 걸 믿는다. 나를 온전히 보여주는 글이라는 거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그 거울을 꺼내어 아주 오래 바라볼 날을 꿈꾼다. 그리하여 언젠가 나의 글이 영롱한 빛을 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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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2-2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 수 없는 말을 쓰기, 라는 문구가 들어오네요. 쓰기에 대한 생각과 회의와 기쁨 그리고 원점과 출발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 이른 봄밤이에요. 자목련 님 건강히 ^^

자목련 2020-03-02 15:42   좋아요 0 | URL
네, 무엇을 쓰고 싶은지,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해요. 3월, 생기있게 시작해요^^

공쟝쟝 2020-02-27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말하지 못한 글을 기다리고 있을 게요. 책 참 좋지요? 저도 엄마와 동생과 같이 글쓰는 부분에서 울컥 했어요. 저자는 용기 있는 사람 같아요. 그 용기에는 못미치더라도 조금씩 써나가요~~^^

자목련 2020-03-02 15:41   좋아요 1 | URL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참 좋으네요. 조금씩 써나가는 일, 그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공쟝쟝 님, 코로나로 힘든 시기지만 이 오후 환한 봄빛을 즐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