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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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주변의 반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너무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반응이다. 그것이 걱정하는 마음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때로는 적극적인 관심이 피곤하다. 나의 감정도 추스르기 힘든데 그들의 감정까지 걱정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들어서다. 다른 하나는 그저 기다리는 마음이다.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보통의 일상에 대해 공유하려는 이들이다. 밥은 먹었는지, 날씨가 춥다거나 꽃이 피었다거나 하는 그런 보통의 이야기를 건넨다. 내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주기를 바라고 묻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오히려 전부다 털어놓는다. 이상한 일일까. 아닐 것이다. 섣불리 질문하기보다는 상대를 살피는 배려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기에 그렇다. 이주란의 단편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읽으면서 소설 속 화자의 주변에 그런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기다리는 일, 그냥 가만히 곁에 있어주는 일이 어려운 일도 아닌데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조급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감정의 흐름도 그렇게 흘러가길 원한다고 할까. 그래서 어떤 상처가 회복되기까지 평균 시간이 없는데도 그러기를 바라는 거다. 괜찮냐고 묻는 대신 괜찮을 거라고 단정해버리는 습관처럼 말이다. 이주란의 단편집에 등장하는 이들은 최근에 일을 그만두었거나 어떤 일로 인해 무척 힘들어하는 상태에 놓였다. 작가는 친절하게 그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만으로 실직을 했거나 이직을 했다는 걸 알려준다. 표제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 화자인 ‘나’ 조지영은 언니를 잃었다. 언니가 남긴 조카 송이와 엄마와 셋이서 함께 산다. 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조카 송이를 돌보며 서점에서 근무하는 모습만 볼 수 있다. 서점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 조카의 숙제를 봐주고 간식을 만들어주고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집들이 약속을 잡으며 별문제 없이 살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곳곳에는 슬픔이 묻어난다. 새 학기를 잘 적응하는 조카를 보면 기쁘면서도 슬프다. 익숙한 듯 익숙해지지 않는 언니의 부재와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지난날들이 다시 오시 않다는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밤. 그날들은 지났고 다른 날들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사실에 잠시 안도했던 적이 있었으나 어쩌면 그 사실이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모든 날들을 비슷하게 만들며 살고 싶었다. 나 혼자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한 사람을 위한 마음」, 38쪽)

이주란의 이 소설집은 연작소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조카와 엄마가 계속 등장하고 나의 주변 인물 역시 같은 이니셜로 등장한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처럼 함께 살지 않지만 서로 집을 오가며 조카를 돌보고 나를 잘 아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는 언니가 세상을 떠났지만 「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에서는 동생인 조지영의 자살로 그녀의 언니인 조수영이 동생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H에게」에서는 수영과 지영으로 짐작할 수 있는 자매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한다. 가난한 일상, 아버지의 부재, 낡고 허름한 월세방, 불안정한 직장 생활.

최선을 다하지만 통장 잔고는 늘어나지 않고 직장동료나 친구들은 그 모든 게 내 잘못인 양 조언을 한다. 이별과 상처에 대해서도 그들의 시선으로만 상대하는 것이다. 슬픔과 고통이 같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그래서 이 소설집의 화자는 조금 달라지려고 한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걸 받아주는 일도 그만하고 싶다.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과거와는 다른 삶으로 걸어가는 느낌이다. 그 느낌은 소설을 읽는 이들에게도 전해진다.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가끔 넘어지면서 살고 싶다. 무리해서 뭔가를 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것이 싫다.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 88쪽)

나는 앞으로 정말 미안할 때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살 것이다. (「일상생활」, 134쪽)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대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하다. 일부러 밝은 분위기를 유도하지 않는다. 하나의 작은 점들을 이어 선을 만들듯이 아주 천천히 회복되도록 내버려 둔다고 할까. 그런 점이 나는 더 좋았다. 뭔가 대단한 발전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는「일상생활」속 꿈 모임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미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알고 있다. 어떤 후회와 지난날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삶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살아낸다. 감당할 수 없는 일상에 놓인 이들에게 괜찮냐고 묻는 이야기들, 그 속에 슬그머니 속상한 내 마음도 꺼내고 싶다. 한없이 울고 싶은 날, 그냥 곁에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반려동물처럼 그렇게 나를 위로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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