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에 행복했다가 어지러운 뉴스를 접하면서 분노한다. 아침에는 즐겁고 저녁에는 우울하고 다가올 내일이 두려운 시간도 많다. 안락한 내 공간에서 소소한 즐거움에 만족한다고 스스로를 달래다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고민에 빠진다. 어른 말씀에 사는 거 모두 똑같다고 속 끓이지 말라고 했던가. 그러자고 단호하게 다짐하면서 사소한 감정에 무너지는 게 인생인가.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선 『가든 파티』속 읽으면서 인생은 알 수 없다는 걸 깨달는다. 알 수 없으니 계속 살아내야 하는 건가. 잘 모르겠다.


감히 이렇게 평해도 좋을까 싶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단편이었다. 표제작「가든 파티」만이 이미 읽은 소설이었다. 소설 속 인물이 한눈에 그려지는 단편은 적었고 읽다가 앞으로 돌아간 단편도 있었다. 평범한 일상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지만 단순하지 않았다.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건 인생에 대한 질문들, 스스로를 다잡는 주문, 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 열망, 욕망 같은 것들이라고 할까. 저마다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 괜찮은 거라는 이전의 생각을 주춤하거나 주저하게 만든다. 타인의 삶은 방관해도 좋은가. 내 안위와 평화가 우선이라고 말해도 좋은가. 9편의 단편 속 화자의 시선이 다양하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러니까 캐서린 맨스필드는 다양한 계층과 세대의 생각을 읽고자 했던 것이다. 「가든 파티」속 소녀, 유일한 남성 화자인「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도 그렇고 등장인물이 많은「서곡」에서도 모든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한다. 대부분 여성 화자를 통해 그녀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잡아낸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모든 것이 완벽, 그 자체인 「차 한 잔」의 로즈메리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불안은 아주 작은 선의에서 시작되었다. 우연하게 차 한 잔의 값을 부탁하는 거리의 젊은 여성을 향한 마음. 따뜻한 집에 가서 차 한 잔을 대접하는 게 뭐 대수일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발견하지 못한 게 있었다. 남편의 등장으로 확인한 그녀의 미모. 자신보다 젊고 예쁜 여성을 향한 남편의 관심을 차단해야 했다. 남편에 의해 결정되는 여성의 삶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런 여성의 삶은 「죽은 대령의 딸들」에서도 마주한다. 아버지는 죽었는데 여전히 그의 그림자 속에 살아가는 자매의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다. 군위적이고 지배적인 아버지로 인해 오랜 시간 학습된 결과라고 해야 할까.


자매들이 용기를 냈더라면, 결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갔더라면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여성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가정교사를 위해 길을 떠나는「어린 가정교사」속 어린 여성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여성 전용 기차에 오르지만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남성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의 심하고 조심했건만 노신사의 친절함에 경계를 허문다. 아, 나는 당장 소리치고 싶었다. 조심해, 그는 흉측하게 늙은 늑대야. 예상대로 흘러가는 이야기. 어린 그녀가 자책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냥 소설이라고 할 수 없는 이야기들. 캐서린 맨스필드의 놀랍고 대단한 통찰력. 내면에서 하나의 점으로 시작하는 불안, 공포, 우울, 절망이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지 인물의 심경 변화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다. 「뜻밖의 사실」에서 끔찍한 불안에 시달리는 서른세 살의 예민한 모니카는 10년만 젊었더라면 생각하고 젊은 여자들을 곁눈질하는 남편이 못마땅하다. 유독 바람이 강한 아침, 모든 게 귀찮다가 불현듯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주문을 외듯 중얼거린다.


“난 자유로워. 나는 자유야. 바람처럼 자유라고.” 그러자 이제 떨리고, 요동치고, 신나고, 펄럭이는 세상이 모두 그녀 차지였다. 그녀의 왕국이었다. 그래, 그렇지. 나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야. 오직 인생의 것이지. (「뜻밖의 사실」, 133쪽)


예민하지만 당당한 모니카는 미용실에서 예전과 다르게 자신을 대하는 마담이 이상하다. 그러나 뭐라 할 수도 없고. 머리를 만지는 심상치 않은 조지의 태도까지. 관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조지가 모니카에게 들려주는 말, 자신의 어린 딸이 죽었다는 사실. 불쾌했던 모니카의 마음은 서늘해진다. 아, 인생이란 뭘까. 누가 우리의 불운과 불행을 조정하는 것일까. 


복잡하고 미묘한 여성의 마음은 「서곡」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시내에서 벗어난 한적한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가족. 그곳으로 이동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서곡」에서는 린다의 여동생 베릴과 어머니 페어필드의 부인, 어린 세 딸까지 각기 다른 세대의 여성이 느끼는 감정을 담아낸다. 언니의 코에 비해 자신의 코가 끔찍하지만 머리카락에 만족하는 베릴, 딸과 손녀까지 돌보는 페어필드, 호기심 가득한 세 딸. 평범한 일상은 이어진다. 꽃과 나무들로 채워진 아름다운 정원까지 평온한 것 같다. 하지만 잔잔한 풍경 뒤에 숨겨진 내면은 너무도 복잡하다. 린다는 자상한 남편을 존경하면서도 자신에게 강한 그가 혐오스러웠다. 평범한 일상이 때로 지루하고 허무하다. 어디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머니와 여동생, 아이들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안겨주는 건 알로에였다.


아래쪽에서 보니 알로에 잎 가장자리에 길고 예리한 가시가 돋아 있었는데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린다의 심장이 점점 단단해졌다… 특히 길고 예리한 가시가 마음에 들었다… (「서곡」, 245쪽)


「서곡」은 읽을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단편이다. 인생에 대한 궁금증, 나의 내부를 흔드는 게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길고 예리한 가시 같은 존재에 대해서. 캐서린 맨스필드는 우리의 인생을 채우는 각각의 감정들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나를 흔드는 문장들이 많았다. 유일한 남성 화자의 시선인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의 이런 문장에 감탄한다. 빈틈없이 완벽한 단편선이라 말하고 싶다. 책장에서 꺼낸 나의 <가든 파티>, 나는 더 캐서린 맨스필드의 소설과 가까워져야 한다. 


나는 인간이란 커다란 여행 가방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로 채워지고 움직이기 시작하고 내동댕이쳐지고 덜컹거리며 보내지고 잃어버려졌다가 다시 찾아지고 갑자기 반쯤 비워지거나 아니면 더 꽉꽉 채워지다가 마침내 궁극의 짐꾼이 궁극의 기차에 홱 올려놓으면 덜그럭거리며 사라져버린다…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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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5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 축!카!
맨스필드 단편 사랑하는 1人
자목련님 페이퍼 두번 읽고 가여 ^.^

자목련 2021-03-08 10:19   좋아요 1 | URL
이 단편집 좋았어요.스콧 님 맑은 한 주 시작하세요^^
 


친구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이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아니라서 놀랐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요양보호 센터에서 지내신 걸로 안다. 친구가 시어머니를 뵈러 올 때 그 도시에 내가 있을 때면 항상 나를 보러 왔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자주 뵙지 못하는 아쉬움을 전하던 친구를 기억한다. 그저 코로나 사태가 안정세로 접어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었는데 들려온 소식에 안타까울 뿐이다. 직접 장례시장에는 갈 수 없어 인편에 조의금을 부탁했다.

다시 겨울의 한복판으로 질주하는 양 추위가 몰려온다.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힘겹다. 기다림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듯 삶은 우리에게 수많은 기다림을 안겨준다. 그 과정이 삶일 것일까. 밥을 먹으려고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일, 자판기에서 나오는 커피를 기다리고, 언제 도착할 거라는 친절한 안내를 해주는 버스를 기다리고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고, 누군가는 눈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이상하게 생각이 기다림으로 모아진다. 연휴로 인해 주문한 책을 받아 볼 마음에 기다리는 택배 상자, 급한 연락을 하고 답장을 기다리려 스마트폰을 매만진다. 일초의 기다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생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조바심을 내는 걸까. 오후에는 조카에게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겨 의향을 물어보는 연락을 했다. 빨리 보고 확인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조카의 상황을 나는 알 수 없고, 조카는 내가 다시 연락을 해줘야 하는 상황을 모른다. 그 짧은 몇 분의 시간에 나는 그 일에만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냥 천천하게 나의 할 일을 하면서 기다릴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조급함이 몰려왔다. 그 자리를 조카가 놓칠까 아쉬웠던 걸까. 조카가 하겠다고 응답도 하기 전에 나는 그런 아쉬움을 먼저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면 우산을 준비하고 날씨가 추우면 따뜻하게 입을 준비를 하면 괜찮다. 설령 우산을 챙기지 못해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음에는 더 준비를 잘 할 수 있으니까.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는 또 온다. 기회도 그럴 것이다.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여기고 준비를 해야겠지만 살다 보면 그 기회가 최선이 아닐 때도 많다. 사람도 그렇고. 좋은 사람을 기다리며 할 일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끝내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지도 모른다. 그럼 또 어떤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는 걸 내가 알면 충분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 그 순간에 내가 그것을 기다리며 그것을 생각하는 것으로도 괜찮을 게 아닐까. 컵라면에 물을 넣고 끓기를 기다리는 몇 분, 전자레인지 속 즉석밥을 기다리는 몇 분 동안 우리는 맛있게 먹을 생각으로 즐겁고 행복하니까.


연휴에 기다린 건 이런 책들이다. 노란 표지 때문에 더 읽고 싶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집, 이제야 만난 루시아 벌린의 단편집, 무얼 버리는 걸까 궁금했던 시인 문보영의 책. 기다렸던 것들과 만나는 순간, 기다림은 끝난다.다른 기다림이 시작된다. 기다리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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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의 『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란 책을 읽기 전 표지의 그림을 한참 바라보았다. 의자에 앉은 한 여자의 무릎 위에는 한 권이 책이 올려져 있다. 편한 자세로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무릎 위 책의 제목은 무엇일까.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그 그림 속 여자가 나라면 나는 무엇을 보고 싶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무슨 책을 읽고 싶을까 그런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세상에 대한 것이었고, 결국 책 속 여자들의 세상과 다르지 않았다.


여자와 장소를 동시에 생각하니 특정한 장소가 몇 개 떠올랐다. 책에서도 언급한 부엌(주방)과 화장실이 가장 먼저였다. 나 역시도 최대한 공동화장실 사용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경험하지 않아도 두려움과 공포를 안겨주는 공간이다. 여성에게 불합리한 장소, 차별적인 장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묵과해온 나의 상처를 대면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하고 좋은 책이다. 내가 경험한 장소와 공간의 의미와 관행에 대해서도 의문과 의심을 갖게 만들었으니까.


부엌은 항상 여자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가족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일에 대해 보살핌과 희생정신까지 고스란히 그곳에 담겨 있었다. 과거와 다르게 편리해졌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여성들의 공간으로 여긴다. 식기세척기, 전기밥솥, 전자레인지는 여성만을 위한 제품이 아니다. 세탁기와 청소기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집안의 주방과 곳곳을 노동의 현장, 노동을 요구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일하는 남자와 똑같이 일하는 여자에게도 집은 노동의 연장선이 아니라 휴식과 쉼, 즐거움의 장소여야 마땅하다. 부엌에서는 더더욱.


동일한 공간을 무대로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아주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장소는 경험이 일어나고 무르익는 곳인데, 성별·나이·계층 등에 따라 특정 공간에서 맺는 관계와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 『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11쪽)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면 교육으로 실천해야 한다. 부엌뿐만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13개의 장소에 모두 그렇다. 우리는 알지 못해서 실수를 범하기도 하지만 알면서도 잘못을 행한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장소와 열린 공간이 상처로 연결되면 안 된다. 학창 시절 운동장은 여학생들에게 닫힌 장소였다. 저자의 경험처럼 2차 성징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해 체육 활동을 제한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일도 다르지 않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 시간에 축구나 농구를 하는 학생들은 남학생이었다. 교실과 장례식이라는 장소에서도 여성은 주체가 아닌 도움을 주는 존재였다.


회장이나 반장은 남학생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그게 당연시되었다. 장례식장에서 상주는 남자라는 사실도 그렇다. 한 번도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문제라서 나 역시 놀랐다. 딸이 아니라 사위가 상주이고 어린 남자아이가 상주 역할을 하다니. 돌이켜보니 큰언니의 장례식에서도 그랬다. 결혼을 하지 않은 큰언니의 상주는 조카였다. 물론 현재는 다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그것을 고치기까지 저자와 같은 여성 인권활동가의 수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행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점도 충분히 공감한다. 남성의 경우, 무박여행, 자유여행에 대해 아무런 제약의 시선을 보내지 않는 반면 여성은 불편한 시선을 동반한다. 여행지의 숙소에서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한 대책과 제도 개선이 아니라 혼자 여행을 온 여성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친절과 배려에도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게 여성의 현실이다.


여성들의 장소 투쟁은 지금 이 시대에 산소호흡기 같은 것이다. 그런 곳으로 정치적 여행을 확장하고 싶은 것이 내 꿈이기도 하다. 불안을 동반자 삼아야 하고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유독 가시화되는 여행이더라도 장소와 장소를 연결하고 책임지는 마음이라면, 여행의 세계를 바꿀 힘이 여성의 여행에 있을 거라고 믿는다. ( 『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111쪽)


이전에는 머물고 생활하는 장소를 사유한 적이 없었기에 여성과 장소를 연결하니 더욱 집중하게 된다. 하나의 장소에 대해 그곳의 의미와 함께 우리가 살아갈 장소에 대해서 고민하고 충분히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준다. 청소년과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를 떠나서 우리의 주변에서 익숙하게 자행되는 차별적인 행동과 불합리한 제도에 대해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자리와 나의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이 공간에 대한 감사함도. 어린 시절 오빠에게는 방이 있었다. 성이 달라서 주어진 공간이 아니었다. 아들이라서, 장손이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두 권의 책이 생각났다. 제목 그대로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과 김이설의 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다. 하재영의 에세이는 작가가 지나온 공간, 그러니까 어린 시절 가족이 모두 함께 살았던 집, 독립을 하면서 살게 된, 방들, 그리고 원하는 공간으로 이뤄진 집까지. 다양한 공간이 등장한다. 보통의 에세이였지만 공간에 대한 사유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안겨주었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하는 물음이 나에게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이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이 세상에서, 좁게는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130쪽)


내가 자기만의 방을 소망할 때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나 자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나의 고유함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135쪽)


하나의 공간에 특정되는 인물, 엄마에 대한 부분은 속상한 마음이 컸다. 엄마에 대한 공간, 엄마의 자리에 대해서. 나만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엄마에겐 어떤 공간이 필요했고 가장 절실했을까. 공간이 무엇으로 채워졌느냐를 통해 우리는 그곳의 주인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편안한 공간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북성로 집에 살던 어느 날, 내가 거실과 주방에 없는 엄마를 찾으러 다니며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엄마의 자리, 엄마의 일이 다른 어딘가, 다른 무언가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142쪽)


엄마의 역할, 엄마의 자리를 생각은 엄마의 노동으로 이어진다.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던 노동,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던 일, 그 고단함을 헤아려준 이가 없었다. 김이설의 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에서 화자가 하는 일이다. 그녀는 밖에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든 집안 일과 양육을 도맡았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일은 어려웠다. 그럴수록 자신의 공간, 자신의 자리가 간절했다. 그녀가 삶의 전반을 살아온 목련빌라를 나와 작은방을 얻었을 때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면 그건 당신도 그런 시절을 견뎌왔기 때문이리라. 우리에게 온전히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린 적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잠시만이라도 나는 나로 살고 싶었다. 필사 노트는 계속 늘어났다. 혼자 지내게 되었다고 곧바로 시가 써질 리 없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 동안 온전히 나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오늘은 그래서 시가 쓰고 싶었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170~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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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2 10: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던 노동,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던 일, 그 고단함을 헤아려준 이가 없었다]이구절에 깊이 공감합니다.
아들이 형제 서열에서 최고로 하고 딸들은 부엌데기로 키운 유교문화
몇주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서 한국에 유교문화는 오랜세월에 걸쳐서 언어에 뿌리깊게 박혀 쉽게 사회적 성차별 가족간 서열에 따른 비극이 사라지지 않을것 같다고 썼더군요

자목련 2021-01-22 10:35   좋아요 1 | URL
어렸을 때는 엄마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던 것 같아 너무 미안해요.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사회 곳곳에 남은 차별은 여전하겠지 싶어요.
좋은 책이라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스콧 님, 비 오는 금요일, 포근하고 안전하게 보내세요^^

2021-01-21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2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눈이 내린다. 겨울이니 눈이 오는 게 맞다. 어느 해 4월에 눈이 내렸을 때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자꾸만 문자를 확인하고 날씨를 검색하고 지인의 sns를 살핀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차들이 적다. 많은 차들이 지하 주차장으로 피신을 했기 때문이다. 눈이 온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대피를 하고 대비를 한다. 어, 하는 사이에 높게 쌓인다. ‘대한’을 맞이하려는 눈일까. 쓸데없는 소리다.


겨울에는 겨울의 맛이 있다. 늦은 밤 먹는 홍시의 맛, 출출한 허기를 채우는 라면의 맛, 그리고 조금 뜨거운 유자차의 맛. 겨울의 맛을 즐기는 방법으로 영화를 보는 일도 좋겠다. 사실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던 어제 오후부터 자꾸 생각나는 영화가 있어서다. <부부의 세계>에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인 김희애가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마음의 이야기를 꺼내는 영화, 《윤희에게》.


내가 아는 윤희는 두 명이다. 한 명은 블로그를 통해 인연이 닿은 동생. 한 명은 대학 동기다. 한 명과는 안부를 나누고 한 명과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제목 때문인지 그들이 생각났다. 흔한 이름인 것 같은데도 나와 연결된 윤희는 하나뿐이었다. 그런 그렇고 이 영화는 완전 겨울 영화다. 그러니까 눈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아름답다. 그 안에서 눈싸움을 하는 윤희의 딸 새봄의 모습은 생동감 그 자체다. 어쩌면 ‘새봄’이라는 이름은 어떤 복선은 아닐까. 윤희가 마주할 새로운 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윤희에게 온 편지를 먼저 본 건 새봄이다. 윤희는 남편과 헤어지고 새봄과 산다. 고3 새봄은 엄마에게 여행을 제안한다.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쥰이 엄마의 첫사랑이 짐작했으니까. 느닷없는 여행의 결정. 윤희는 직장을 며칠 쉬겠다고 말하지만 돌아보면 자신의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답변을 받는다.


처음으로 떠난 둘만의 여행. 새봄은 조력자 경수와 함께 엄마와 쥰의 만남을 계획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쥰의 모습. 윤희의 고교시절 친구, 그리고 사랑한 사람. 윤희 역시 쥰을 생각한다. 가까운 곳에 쥰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혼자 바에서 술을 마시는 윤희의 모습은 가장 자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쥰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단절시킨 부모님, 딸이라는 이유로 오빠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을 했던 윤희.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오지 못한 지난 시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결정하는 윤희.





쥰과 윤희의 만남은 영화에서 가장 궁금했던 장면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니다. 많은 시간을 돌아왔고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만남은 어색한 반가움. 하지만 둘만의 내밀한 눈빛은 말로 할 수 없는 감정들을 전달한다. 그들만이 간직하고 나눈ㄹ 수 있는 빛나는 파편을 말이다.


폭설로 가득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눈은 그저 아무런 의미도 아닐 것이다. 눈이 내리면 쓸고 치우고 살아간다. 언제 눈이 그칠까, 기다리면서. 누군가에게 어떤 것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의미도 없다. 정작 타인들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의 기준에 맞춰, 그들의 생각을 강요한다. 윤희는 그런 생을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삶을 살지 않기로 한다.




한국으로 돌아와 새봄과 함께 떠나기로 결정하고 오빠에게 통보하는 윤희,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하는 윤희, 쥰에게 편지를 쓰는 윤희. 그런 엄마를 응원하고 사진기로 담아보는 새봄. 윤희와 새봄에게 환한 봄이 다가오고 있다.


“나도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이 없으니까.” 이 대사를 가만히 말해본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가 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다정함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이미지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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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8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이 언급하신 겨울의 맛 홍시의 맛, 라면의 맛, 유자차의 맛 더하기 제가 좋아하는 겨울의 맛은
군밤맛-모과차 맛-모찌맛-코코아맛-율무차 맛 그리고 귤맛 ㅋㅋㅋ
윤희에게 라는 영화 상영 당시 언제가 볼꺼야 라며 다른 영화보다가 어느날 내렸져서 못봤는데
자목련님 말씀처럼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봐야겠어요.

전 겨울이면 러시아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원작 시베리아의 이발사)‘를 보는데 ^.^

자목련 2021-01-19 09:31   좋아요 1 | URL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겨울의 맛은 무궁무진하네요.
<윤희에게>, 이번 주 목요일에 mbc에서 방영하다고 합니다.
스콧 님이 말씀하신 영화도 찾아봐야겠네요.
어제보다는 많이 따뜻한 것 같아요. 포근한 화요일 보내세요^^

stella.K 2021-01-19 18:29   좋아요 1 | URL
동치미 맛, 냉면 맛, 호박죽, 팥죽 맛, 군고구 맛도 있는데...ㅋㅋ

<윤희에게>를 mbc에서 하는군요.
보면 좋겠지만 아마 거의 못 볼 것 같군요.
꼭 보다가 자는 바람에...
그래도 기억하겠슴다.^^

자목련 2021-01-20 09:52   좋아요 1 | URL
스텔라 님, 군고구마랑 동치미 침이 고이네요.
붕어빵도 생각나는데 요즘은 파는 곳을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하루에도 몇 번은 절망한다. 하루에도 몇 번은 희망한다. 그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다. (97쪽)

춥고 쓸쓸한 겨울밤이다. 까만 밤이 내리는 듯하다. 그런 밤은 때로 외로워서 눈에 힘을 준다. 시를 읽는 밤이 늘어난다. 마음이 울적해서 시를 읽기도 하고 아무 기대 없이 펼친 시집에서 다정한 마음을 선물 받는다. 시가 있어 좋은 계절, 겨울이다. 시가 태어나는 과정을 알지 못한다. 불현듯 쏟아지는 별똥별처럼 그렇게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시인만이 아는 통로에서 시를 발견하는 것처럼. 아니었다. 하나의 단어가 확장되고 하나의 문장을 고치고 다듬어졌을 때 시가 되는 것이었다.

시인은 떠났고 나는 시인이 남긴 시를 읽는다. 위암이 발병해 투병했다는 소식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아렸다. 암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일상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조금은 알기에. 그 시간을 지켜보았기에.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시인의 부재가 아프고 아프다. 어쩌면 고국이 아닌 타국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한다. 곁에 소중한 사람이 있었고, 사랑하는 이들과 마음을 나누었을 게 분명한데도 나는 자꾸만 그런 생각을 들춰낸다.

시인에게 시는 전부였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정말 그랬다. 2011년부터 2018년 떠날 때까지 쓴 시작 메모는 온통 시였다. 시인의 삶에 시는 그냥 시로 존재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시와 시인은 하나였고 서로 기대어 사는 존재였다. 메모라고 쓰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는 시를 향한 갈망이었다. 하루를 시작하고 날씨를 기록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어딘가를 다녀오고 그런 보통의 일상도 하나같이 시의 시작이었다. 시를 목적으로 하는 삶, 시를 향한 마음, 새로운 시를 쓰는 일상은 시처럼 고요하고 헤아릴 수 없는 시처럼 어려웠다. 어스름의 순간, 나는 하나의 장면을 상상한다.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의자에 담긴 어떤 기운을 느낀다. 나는 시인이 아닌데도 그 마음을 짐작하고 싶다.


간절히 기다릴 때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저녁이 찾아오는데 등이 시려서 옷을 하나 더 껴입으려다 슬그머니 당신의 손이 내 등에 닿아 있다 생각하고 옷을 의자에 내려둔다. (26쪽)

겨울을 즐겨야 할 시간이다. 하얗게 쌓인 눈으로 둘러싸인 세상. 눈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지만 헛헛한 마음을 채우는 일은 어렵다.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도 그러하다. 막막한 밤이 지나고 나면 아침이 온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한 번씩 새벽에 깰 때면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서도 잠들지 못한다. 스마트폰을 만지다가 다시 이불을 끌어당겨도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눕기를 반복한다. 그 시각이 길어서 힘이 든다. 내가 원하는 건 깊은 잠일뿐인데. 시인이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한국의 서울에서 지인을 만나고 돌아가는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아끼는 이의 시를 읽고 그들이 건네준 애정을 받고 다시 삶을 위해 돌아가는 그 길을 상상할 수 없다.

오늘 나의 일은 초록이 얼마나 무성한지, 그 무성함은 얼마나 아름답고도 참혹한 시간을 살게 하는지 생각하는 것. 가을이 오면 그 시간들 앞에서 나는 얼마나 솔직하지 못한 언어의 욕망에 시달릴 것인가. (175쪽)

시인의 계절은 어떤 모습, 어떤 표정이었을까. 새해의 시작 시인의 글을 따라 읽으면서 내가 지나온 계절들을 떠올린다. 무더웠던 여름, 사랑에 빠졌던 봄, 병실에서 보냈던 여름, 그 계절들과 시인의 그것이 같을 수 없겠지만 문득 신성하게 다가온다. 타인의 부재와 슬픔을 통해 삶을 배우고 살아가는 우리의 계절들.

언젠가 쓸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301쪽)

언제나 내가 원하면 내가 쓰고 싶은 것들을 쓸 수 있다고 믿으면 살아온 나였다. 그러나 시인의 말처럼 나도 쓸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시인의 글이 가슴에 박힌다. 쓸 수 없는 삶, 보통의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건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 순간만을 생각하며 겁에 질려 살 수는 없는 일. 병원에 가기 전에 베란다 창 틀에 올려 둔 귤을 퇴원 후 돌아와 마주하며 쓴 시인의 글이 오래 마음을 붙잡는다.

나는 귤을 쪼갰다. 귤 향! 세계의 모든 향기를 이 작은 몸 안에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살아오면서 맡았던 모든 향기가 밀려왔다. 아름다운, 따뜻한, 비린, 차가운, 쓴, 찬, 그리고, 그리고, 그 모든 향기. 아,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가기 전에 나는 써야 하는 시들이 몇 편 있었던 것이다. (307~308쪽)

그때를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모두 떠날 존재다. 사라질 존재라는 사실은 서글프지만 그러므로 우리의 생은 아름답게 빛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담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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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1-04 1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한겨레에서 코로나로 사망하신
분들에 대한 장례 기사를 읽었는데,
팬데믹 시절의 비정함에 대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네요.

지구별에 머무는 동안 빛나도록 노력
해야겠습니다.

자목련 2021-01-05 09:55   좋아요 1 | URL
준비하지 못한 영원한 이별, 얼마나 아플까 싶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일상의 변화가 참 서글픕니다.
그러니 살아 있음에 감사가 절로 나오기도 하고요.

scott 2021-01-04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허수경시인에 유고집
자목련님에 첫문장
[하루에도 몇 번은 절망한다. 하루에도 몇 번은 희망한다. 그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다.]
여러번을 읽었네요.
허수경시인이 번역하신 파울 첼란 1920년 11월,이제는 지도에서 사라진사라진 부코비나의 체르노비츠에서 태어나 1970년 4월 파리의 센강에 투신했던 시인에 운명과 도 겹치네요..

우리모두 사라질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순간 열심히 살아야겠죠

자목련 2021-01-05 09:56   좋아요 1 | URL
가슴 먹먹한 문장들이 많지만 어떤 날은 그런 문장이 큰 힘으로 다가옵니다.
소한인 오늘, 춥고 차갑지만 따뜻함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니데이 2021-01-04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유고집이네요. 저는 그 직전에 나온 책을 선물받은 적이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부고를 알게 되었던 생각이 납니다.
자목련님 새해 첫 주말 잘 보내셨나요.
올해도 좋은 일 가득한 한 해 되세요.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자목련 2021-01-05 09:57   좋아요 2 | URL
네, 유고집이에요. 그래서 더 쓸쓸하게 다가오고요.
서니데이 님, 즐겁고 건강한 화요일로 채우세요^^

scott 2021-02-10 15: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2관왕~*
추카~추카~
설연휴 가족 모두 평안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래요.^.^

자목련 2021-02-10 16:1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스콧 님을 비롯한 이웃님들 덕분이에요.
스콧 님도 건강하고 평온한 명절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