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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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흑에서 왔다.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영원이란 무형의 형태 테두리 갇힌 암흑이 나의 근원인 셈이다. 방향성 없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홀로 그곳을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7쪽)


지독하게 슬픈 문장이다. 빛이 존재하지 않는 암흑이 근원이라는 걸 말하는 생은 얼마나 외로울까. 감히 내 맘대로 짐작할 수 없지만 문장 그대로 읽노라면 너무 슬퍼진다. 온통 어둠뿐인 세상, 혼자라는 막연한 인지, 그리고 여기 있다는 존재의 무력감.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야 할까.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야 하는 게 생이라지만 한없는 쓸쓸함에 무너질 것만 같다.


조해진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끝에 정체성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존재의 위로, 혹은 나도 다르지 않다는 이해의 몸짓이라고 할까. 『단순한 진심』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어떤 마음들, 그 삶에 개입할 수 있는 맨 처음의 마음은 어떻게 생성되는 것일까. 이 소설은 단편 「문주」에서 시작되었지만 조해진의 말대로 그것과는 전혀 다른 소설이다.


35년 전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계 극작가 화자인 ‘나’는 자신의 이름을 찾아 한국에 온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는 서영의 메일이 그 시작이었다. 뱃속에 아이(우주)를 품지 않았더라면, ‘이름은 집’이라는 서영의 메일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한국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나’이면서 ‘문주’인 그녀는 한국에서 그녀가 알지 못했던 자신의 삶의 기억을 하나씩 마주한다.


처음에 소설을 읽으면서 철로에서 그녀를 구해준 기관사를 찾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했다. 그녀에게 ‘문주’란 이름을 지어준 사람, 그 사람이 들려주는 어떤 이야기를 말이다. ‘문주’란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나’가 서영의 집에서 머물면서 건물 1층 복희식당에서 주인 할머니와의 관계. 할머니를 찾는 폐지 줍는 노파. 그리고 그 둘 사이에 흐르는 어떤 증오와 연민들. 그들이 지나온 시간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처음에 ‘나’는 그들의 삶을 지켜보는 목격자이자 이방인의 관찰자에 불과했다.


자신을 구해준 기관사의 현재를 찾아가는 과정과 ‘나’가 마주하는 주변의 일상들을 통해 알게 되는 어떤 삶들. 한 번씩 밥을 먹으면서 서로를 관찰하듯 나누는 복희식당에서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 복희란 이름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슬프고도 애틋하다. 조금씩 그녀의 삶에 다가가는 ‘나’는 결국 죽음으로 향하는 그녀를 돌보고 마지막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험난하고도 가여운 삶을 알게 된 것이다. 주인 할머니의 이름이 아닌 그녀가 지키고 싶었던 이름, 그녀가 살리고 싶었던 이름이었다. 식당 주인인 ‘추연희 ’할머니 앞에 나타난 ‘백복순’과 그녀의 딸 ‘백복희’. 타인이었던 이들이 만나 조금씩 서로의 삶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일, 그것을 단순히 인연이나 운명이란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그 셋은 하나였고 하나였기에 복희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결정이 이별이었다.


백복희로 태어났지만 스테파니로 살아온, 나와 넘버 원 닮은 여자. 우리의 닮은 구석은 눈매나 입매만은 아닐 터였다. 삶의 어느 장면에서 우리는 같은 자세로, 같은 표정으로, 같은 생각을 하며 투명한 벽 앞에서 있곤 했을 것이다. 얼굴의 일부가 아니라 생애의 접힌 모서리가 절박하게 닮은 사람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220쪽)


연희가 ‘나’를 통해 보았던 모습은 복희였을 것이다. 살아내기 위해 전부를 걸어야 했던 시대의 여성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삶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 말이다. 부디 더 나은 세상에서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그게 전부였다.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 복희란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겠지만 복희란 이름을 간직해 주기를 바랐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가 나나였지만 문주란 이름을 찾아 한국에 온 것과 같은 마음으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근원이 되는 게 이름일까. 그 이름을 부르는 이가 없다면 나는 사라지는 것일까. 이름에 담긴 사랑과 애정,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보살핌을 받는다는 안도. 그러니 나나로 불렸던 시간도 충만했지만 그 이전, 기억 저편에 자신을 문주로 부르며 돌봐준 이들을 생각하면 또 다른 안온함이 있다. 그래서 ‘나’가 존재할 수 있게 만든 생모, 그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그녀가 전하는 말이 전하는 힘은 세다.


나는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252쪽)


조해진의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단편 「문주」의 다른 이야기라 더욱 궁금했다. 조해진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 스스로를 돌보며 연대하는 여성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이야기. 한 사람의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수 있는지 가만히 생각한다. 이름을 잊은 채 살아간 수많은 연희와 복순이 살아온 삶을 생각한다.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어떤 생을 알았든 무조건적인 환대 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저마다 고유한 이름에  담긴 측정할 수 없는 크기의 사랑을 느낀다. 그 사랑이 전해져 마음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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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4-05 1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읽은 이 소설 참 좋았어요. 저도 ˝나는 암흑에서 왔다˝라는 첫 문장 인상적이었어요.

자목련 2021-04-06 16:11   좋아요 1 | URL
아프면서도 따뜻한 연대가 느껴졌어요. 고단한 여성의 삶을 위로하고 축복하는 이가 여성이라서 더욱 좋았고요.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 매일의 기분을 취사선택하는 마음 청소법
문보영 지음 / 웨일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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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영 시인의 산문은 언제나 신선하다는 걸 확인시킨다.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란 제목만 보고는 처음엔 오늘에 주목을 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중요한 건 버렸다는 행위다. 보통의 평범한 하루에서 나는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 선뜻 떠오르는 게 없었다. 매일 무언가를 버리고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것들이 있을 텐데. 책상 옆 작은 쓰레기통이 텅 빈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하루에 하나씩 버리는 일. 물건을 버리고, 감정을 버리고, 과거를 버리고. 그렇게 버릴 수 있을까. 익숙해서 그 익숙함을 버리지 못해서 사용하는 물건들, 책에서 나온 고무줄이 다 늘어난 바지나 닳고 낡은 베개 같은.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 무언가를 하나씩 버려보는 건 어떨까. 버린 만큼 기억의 무게도, 슬픔의 무게도, 짊어져야 할 무게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이다. 버리지 못해 붙잡고 있던 것들을 막상 버리고 나면, 내가 그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해 깨닫게 된다. 일명 '버리면서 불안 다이어트하기'. 버린 만큼 나쁜 기억과 자잘한 불안은 휘발될 것이다. 나쁜 기억은 맥주 한 캔처럼 마셔 오줌으로 배출하고 좋은 기억은 홍차처럼 오래오래 오려 마시길. (9쪽)


여느 산문처럼 보통의 일상 이야기다. 어디에 중심을 두고 쓰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다르게 읽힌다. 나는 문보영의 시보다는 산문을 읽었다. 그녀의 글은 좀 기발하다. 기발하다는 건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본다는 말이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건 발견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하나씩 물건을 버리면서 그 물건에 대한 사소한 기억, 혹은 추억이나 다짐을 기록하는 일.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일기 같지만 전혀 다르다. 물건을 통해 자아를 관찰하고 관계를 생각한다고 할까. 제 할 일을 다해서 쓸모가 없어져서 버리는 물건도 있지만 사용하지 않아서 이제는 단호하게 헤어져야 할 물건도 있으니까. 어쩌면 그건 이별에 대한 예의이자 연습 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가장 단순한 이유는 소중해서, 나중에 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런데 문보영의 이유는 남다르다. 그녀는 포장지를 버리지 못하는데 소중하게 물건들을 포장하는 그 마음을 저버릴 수 없다는 게 전해졌다. 포장하는 물건은 그렇지 않은 물건보다 훨씬 소중하며 포장지를 고르는 마음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물한다. 사실 나도 포장지를 모으고 보관한 적이 있다. 그때는 곱고 예쁜 포장지가 아까워서 그랬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은 생각하지 못했다. 


버린다는 건 그것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는 걸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가 버린 것들, 일상, 친구의 고민, 친구와의 대화, 만남, 여행, 시, 등 많은 것들에 대한 글을 만날 수 있지만 나는 유독 병원, 수술, 재활이란 단어에 끌렸다. 그것들과 관련된 이야기들,  고정된 슬픔이나 어떤 순간의 포착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쓰는 글들이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나의 생각, 내가 버리고 싶은 것들, 내가 버리지 못한 기억들인 것 같다.  병원의 시간,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나는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버리고 싶었던 걸까. 그 시절의 나는 나에게 최선을 다했던 것일까. 나를 휘감는 생각들, 복잡한 것들이 마음을 채운다. 


입원 환자에게 필요한 물품들은 여행 갈 때 필요한 물건과 비슷했다. 일회용 세면도구, 수건, 치실, 슬리퍼 등등. 환자는 일종의 여행을 가는 사람인가. 엄마가 수술받는 시간에는 피가 말릴 것 같은데, 엄마는 이건 일종의 여행이며 자신의 수술받는 시간은 비행시간이라고 말했다. (169쪽)


나의 부재로 인해 엄마는 엄마의 탈을 벗고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다. 대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마음껏 겁을 표출하고, 수술받기 싫다고 떼쓰고, 아이가 될 수 있었다. 무섭다고 충분히 말하는 것은 환자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 같은 것이다. 보호자가 환자보다 더 불안에 떨어선 안 되는 이유는 그것이 환자의 공포를 가로채기 때문이다. 나아가 공포에 관한 환자의 발화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173쪽)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는 엄마와 나눈 대화를 읽으면서 나는 크게 공감했고 그 길고 차가웠던 복도와 공간을 체감할 수 있었다. 잠깐의 외출은 여행과 닮았지만 그 시간은 전혀 다른 의미로 채워진다.  두려움, 공포, 불안. 그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날은 퇴원의 순간, 돌아오는 길, 비행이 끝난 시간일까.  


엄마를 간호하면서 버린 것들은 엄마가 나아지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증거였다. 환자였던 엄마, 간병하는 그녀에게 그것들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들은 차마 버리지 못하는 증표가 되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여행지에서, 그곳에서 의사인 친구를 만나고 쓴 글은 더욱 빛을 발한다. 기적보다 더 좋은 말이 재활 같다는 말, 나는 이 문장을 오래 간직하고 사랑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일상의 재활이다. 


재활은 치료의 지루함에 대한 만반의 준비와 각오를 연상케 한다.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재활의 이미지는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서서히 회복되어서, 기적이라고 부르기 뭣한 것. 민망할 정도로 느리게 낫는 것이다. 그런데 절대 나을 수 없는 사람이 치유되었을 때,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르기 전에 재활이라고 부르면 더 좋을 것이다. 기적보다 더 좋은 말이 재활 같았다. 견딘 사람의 몫을 쳐주는 것 같아서. 기적보다는 재활이 더 성실한 것 같아서. 재활은 거저 얻는 게 아니라서 거저 잃을 것 같지도 않아서. (106쪽)


“오늘 버릴 것은 ()이다.”로 시작하는 산문, 나도 따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나도 따라 써보고 싶은 버리고 싶은 것들. 그것은 나의 마음의 한 조각이며 내가 좋아하지 나의 일부라는 걸 안다. 버릴 수 있을까. 그것을 버리면 나는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거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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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5-0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05-09 16:23   좋아요 0 | URL
^^*

서니데이 2021-05-08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1-05-09 16:2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
 
나만의 필사책 어린 왕자 - 마음을 다해 쓰는 글씨 마음을 다해 쓰는 글씨, 나만의 필사책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박선주 옮김 / 마음시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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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책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잘 아는 이야기라서 어렵고 그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어린 왕자를 만난 건 중학교 때였다. 정확한 기억일까. 중학교 국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좋은 사람에게 선물하는 책 가운데 한 권은 어린 왕자였다. 언제나 만나고 반갑고 좋은 책, 그런 책이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이다. 최근 방송에서 추천의 책으로 다시 나왔을 때 반가웠다. 너무도 순수한 어린 왕자, 무작정 양을 그려달라는 어린 왕자. 만약 내가 그런 아이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사막의 한가운데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라고 했겠지만 나 혼자 그 아이를 상대해야 한다면. 글쎄 양을 그려줄 수 있을까. 선뜻 답을 할 수 없다.


이토록 오랜 시간 사랑을 받는 책,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어린 왕자를 소개한다. 마음시선의 『나만의 필사책 어린 왕자』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필사를 할 수 있게 기획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치유와 위로를 주는 방법, 필사였다. 가만히 글을 읽고 필사를 하는 순간 마음은 고요해지고 정화되는 걸 느끼니까. 글씨를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꼭 필사를 위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필사를 할 필요는 없을 듯. 스티커를 붙이거나 나만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붙여도 좋을 듯하다. 물론 빈 공간을 그대로 두어도 좋다. 책을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니까.


어떤 책은 읽을 때마다 발견하는 문장이 달라지거나 다른 해석을 하게 만든다. 어떤 책은 언제나 같은 부분에서 밑줄을 긋고 마음을 빼앗긴다. 내게 어린 왕자는 후자 쪽이다. 지구별에 떨어진 어린 왕자가 차례로 만나는 어른들, 그들은 모두 정신없이 바쁘다. 그들은 어린 왕자를 친구로 대하지 않는다. 그런 어른의 모습과 나는 다르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 역시 그들처럼 숫자나 공부, 외부에 대해서만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걸 수없이 말하고 기억한다고 여겼으면서도 말이다.


어린 왕자를 다시 천천히 만나면서 나의 친구들, 내가 길들인 것들, 나를 길들인 것들은 무엇인가 돌아본다. 나는 무엇에 책임이 있는가. 나의 모든 것들, 그러니까 나와 관계를 맺은 수많은 사람들과 물건들, 그리고 어떤 감정들까지도 내 책임하에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제나 가장 좋은 장면은 여우와 어린 왕자의 만남, 그리고 둘이 나누는 대화다.


“나는 밀을 먹지 않으니 밀은 내게 쓸모가 없어. 밀밭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야. 그건 슬픈 일이야. 하지만 너의 머리카락이 금빛이야. 네가 날 길들이면 얼마나 멋질지 한번 생각해 봐! 너의 머리카락과 같은 금빛 밀밭을 볼 때면 나는 네 생각이 날 거야.” (204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할 거야. 그리고 네 시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고, 네 시가 되면 몸을 들썩이며 네가 보고 싶어 안달이 날 거야. 그때의 내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일까!” (208쪽)


“오직 마음으로 봐야 올바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214쪽)


소중하고 행복한 것들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왜 항상 뒤늦게 깨닫는 것일까?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에 두고 온 장미꽃을 생각하면서 느꼈던 마음도 같을 것이다. 불평만 가득하다고 여겼던 장미와 보낸 순간들, 정성을 쏟은 그 시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것들은 모두 그런 것들이다. 가까이 있어 제대로 보지 않으려 하고 나중으로 미뤄도 괜찮다고 여긴 생각들.


처음에 안겨주었던 기쁨과 충만을 여전히 간직하게 만드는 책. 우리에게 어린 왕자는 그런 존재이다. 좋은 책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만의 필사책 어린 왕자』도 그렇다는 말이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선물할 수 있는 책. 기꺼이 반갑게 읽을 수 있는 책. 언제든 읽을 수 있어 미루고 있다면 이제 그만 미룸을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만난 어린 왕자를 기억하느냐고, 다시 그 순간의 울림을 느끼면 어떻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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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 문예단행본 도마뱀 1
박은정 외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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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는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던 적이 있다. 심지어 죄악이라고 분류했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절제하는 삶, 계획적인 삶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제는 아니라는 걸 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정해진 건 없으니까. 어떻게 살아가든 삶을 살아가는 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우리는 조언하고 충고한다. 내 경험에 비춰서 내 기준에 맞춰 타인을 본다. 도움을 주려는 마음에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건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정말 고루한 것인지도 모른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들이 탕진하는 재미를 주제로 쓴 『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를 읽기도 전에 이런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내 감정을 탕진할 수 있고 내 독서를 탕진할 수 있으니까. 아무튼 그렇다. 참여한 필자 리스를 둘러보고 꽂히는 대로 끌리는 대로 먼저 읽어도 좋다. 자신만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삶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내 맘대로 읽어도 상관없는 읽기의 즐거움이라고 할까. 인생에 있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쯤은 있어야 할지 않을까. 문득 드는 생각이다. 정리하고 정돈하는 대신 말 그대로 흥청망청 말이다.


직장 생활의 힘겨움을 토로하면서 함께 쇼핑을 하고 맥주를 마시던 친구가 떠오르는 건 조수진의 「경력 탕진 잼」을 읽을 때였다.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그 시절 즐거운 탕진이었다. 누가 봐도 좋은 직장, 괜찮은 직장에 다니던 저자는 업무에 최선을 다하느라 개인적인 삶을 이어가지 못했고 그 과부하는 소비하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잔고를 탕진하는 삶의 끝에 그녀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상담을 받고 퇴사를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한 즐거운 탕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남들이 정한 행복에 맞춰 사는 것은 한눈팔지 않고 내비게이션에만 집중하는 운전과 같다. 조금이라도 경로에서 벗어났다고 느끼면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반면 내가 원하는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은 마치 흐르는 물 위로 유영하는 것가 같다. 가볍고 자유롭다. 어디로 흘러가든 물결에 몸을 맡기기만 하며 된다. (33쪽)


백영옥의 「탕진 잼」을 읽으면 저마다의 탕진 목록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탕진 목록이라니. 그걸 다른 말로 대체하면 수집광이다. 백영옥의 남편은 칫솔과 샤프를 모으는데 탕진의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백영옥 자신은 매트다. 근데 생각해 보면 누구나 좋아하는 것에 대한 소비에 자비롭지 않은가. 그런 재미도 없다면 삶은 얼마나 팍팍한가. 그렇다. 제목처럼 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 스스로 주문을 외우는 일도 필요하다. 그건 하나의 쉼이고 휴식이니까.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눈물이 많으면 충분히 울면 되고, 마음의 변덕이 오면 그냥 오르락내리락하면 된다. 고정되고 단단한 감정과 마음이 필요하겠지만 때로는 흔들려도 큰일이 아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러니 맘껏 내 감정을 탕진하면 어떠랴. 그 감정을 추스르고 붙잡아줄 자신만의 존재가 있다는 걸 스스로가 가장 잘 아니까. 장은주의 「노 스트레스, 장미의 기분」에서 장미가 그러하듯이. 장미를 향한 경건한 환대를 느낄 수 있는 사진과 문장이 그걸 말해준다. 장미에 대한 기분을 읽으면서 나를 생각한다. 어느 시절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나락으로 나를 이끌 때 꽃을 보거나 바다에 가면 좀 나아졌다. 거기 그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당장 달려갈 수 없어도 존재만으로도 말이다.


장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 준다. 오늘 나와 눈이 마주친 장미 한 송이가 생의 모든 고독과 외로운 시간을 끌고 온다. 한 번도 제대로 발음해본 적 없는 자신의 나약함까지 말없이 위무하는 시선들. 저 붉고 광막한 열기는 이 순간 자신의 모든 저열한 감정을 태우고 있다. (93쪽)


언제나 장미 앞에서, 비록 장미가 아닐 때에도 장미를 생각하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구원일 것이다. (95쪽)


뭐든지 흥청망청 써 버려도 충분하게 남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대부분 충족할 수 있는 무언가보다는 결핍의 날들이 이어진다. 한 달 한 달 생활하는 월급, 대출금 같은 것 말이다. 그래도 이런 글을 읽으면 위안이 된다. 김나리의 「불안을 잘게 찧자, 달콤한 나의 탕진잼」이란 제목에서 비슷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소설과 에세이를 쓰면서 생활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기에. 낯선 도시의 낯선 모텔의 카운터에서 일하는 저자를 잠깐 상상했다. 표정 없는 얼굴이면 어쩌지 싶다가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 얼굴에 작은 미소를 장착시킨다. 살아가는 일은 계속해서 교환해나가는 일이라는 문장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버티지 말고 행복해지자. 아주 작고 하찮은 기쁨이더라도 기쁨은 기쁨. 열심히 작은 기쁨을 구매하자고 나를 다독여본다. 내가 잘 모르는 도시의 잘 모르는 모텔에 앉아 무얼 하고 있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 때,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차 밑에 앉아 있는 고양이의 시간을 본다. 그래 그렇게 하자. (135~136쪽)


유쾌하고 기발하고 슬프고 우울한 탕진 이야기를 읽으면서 행복과 만족은 주관적이며 우리는 그것을 탕진할 권리가 있다고 다짐한다. 그러니 때로는 주변의 눈치를 보지 말고 맘껏 행복해하고 기쁨을 누려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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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18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새 주변 눈치 안보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중인데 (쉽지는 않지만 ㅎㅎ) 자목련님 글보니 공감이 됩니다^^

자목련 2021-03-19 10:03   좋아요 1 | URL
맘처럼 쉽지 않죠. ㅎ 그래도 내 맘대로 사는 일도 중요한 것 같아요.
새파랑 님, 오늘 만큼은 눈치 보지 말고 지내요!!
 
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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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언제나 행복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불행한 것도 아니다. 행복과 불행을 오가며 그 경계에 머무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행의 날들을 지나다 보면 앞으로도 온통 불행할 것만 같다. 그래도 우리는 그 긴 터널을 지난다. 혼자서는 힘들지도 모르다. 하지만 누군가 곁에 있다면 그 불행의 터널을 견딜 수 있다. 처음엔 거리를 두고 걸었던 그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느낀다. 그는 때로 가족이고, 때로 타인일 수도 있다. 터널을 지나 서로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도 그 터널 속의 시간이 새로운 자양분이 될 것이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시작하고 말았다. 아주 예쁘고 힘찬 동화를 만났는데, 그 동화의 끝이 오는 게 너무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루리의 『긴긴밤』를 무척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어느 계절의 밤에, 어느 바다를 마주한 순간에, TV에서 펭귄이나 코뿔소를 볼 때마다 나는 긴긴밤을 떠올릴 것이다. 이 동화를 많은 어른이 읽었으면 좋겠다. 


코뿔소와 펭귄이 등장하는 동화라니. 넓은 초원과 깊고 푸른 바다는 전혀 다른 세계처럼 보이는데 각자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곳 동물원. 하지만 이 동화는 전혀 다른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동화는 코뿔소 노든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코끼리 고아원에 들어온 아기 코뿔소 노든. 그곳에서 노든은 코끼리처럼 살아간다. 자신이 코끼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코뿔소는 코끼리가 아니고 노든은 다른 세상을 향해 나간다. 자신을 돌봐준 코끼리들과의 이별은 힘들었지만 모르는 세상, 더 넓은 들판으로 나간다. 두렵고 떨렸지만 노든은 그 길을 선택했다. 자신과 똑같은 코뿔소를 만난 사랑하고 딸을 낳고 행복한 시간이 이어졌다. 인간의 총에 아내와 딸을 잃고 동물원에 온 노든은 복수를 결심했다. 인간을 용서할 수 없었다. 동물원에서 노든을 지켜준 건 먼저 그곳에 있던 코뿔소 앙가부였다. 악몽으로 괴로워할 때, 복수심에 불타는 노든을 앙가부는 달래주고 항상 위로해 주었다. 노든의 탈출 계획을 도왔다. 조금만 노력하면 철조망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앙가부가 있어 든든했다. 그런데 다시 앙가부를 잃었다. 뿔 사냥꾼이 앙가부를 죽게 만들었다. 노든은 혼자 남았다. 세상에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가 되었다. 


동물원의 펭귄 우리에 검은 반 점이 있는 알이 발견됐다. 이상한 알이라 아무도 품지 않았다. 젊은 아빠 치쿠와 윔보가 알을 품었다. 아빠가 되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정성을 쏟았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다. 세상이 무너졌다. 치쿠는 알이 담긴 양동이를 물고 살아남았다. 노든과 치쿠는 그렇게 만났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면서 둘은 걷고 걸었다. 힘들 때는 서로에게 기대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노든은 아내와 딸, 앙가부를 잃은 슬픔을 말했고 치쿠는 죽어가는 윔보를 뒤로 한 채 알을 들고 일을. 너무도 다른 존재였지만 노든은 치쿠가 있어 든든했고 치쿠도 노든이 있어 좋았다. 치쿠가 말하는 바다를 노든을 알 수 없었지만 긴긴밤을 위로할 수 있었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노든은 목소리만으로 치쿠가 배가 고픈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발소리만으로 치쿠가 더 빨리 걷고 싶어 하는지 쉬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63쪽)  


그러니 치쿠가 떠나고 남긴 알을 소중하게 지켜야 했다. 알을 깨고 나온 펭귄이 바다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치쿠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했다. 태어난 아이를 바다에 데려다주기로 한 약속 말이다. 동화의 화자 ‘나’는 알에서 태어난 펭귄이다. 노든이 들려주는 치쿠와 윔보 이야기를 들으면서 걸었다. 바다가 나올 때까지 걷고 또 걷는 게 전부였다. 노든의 알려주는 것들을 익히고 노든의 품에서 잠들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고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펭귄이 살아가는 바다의 이야기를 들었고 호수를 만나 수영하는 법을 배웠다. 노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든과 보내는 긴긴밤은 아름다웠고 따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94쪽)


항상 곁에서 같은 풍경을 마주하고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경험한 노든과 이별은 상상할 수 없었다. 오래전 총에 맞은 다리로 계속 걷는 일은 힘겨웠다. 노든은 늙은 코뿔소였다. 쓰러진 노든에게 다가온 인간을 ‘나’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나쁜 인간만 있는 게 아니라는 노든을 말을 기억하면서 밤이 되면 노든 곁으로 다가갔다. 코와 부리를 맞대고 인사를 나눴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다를 향해 걸었다. 



축축한 모래를 밟으며 나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내 앞의 바다는 수도 없이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노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 노든을 알아보고 내게 다가와 줄 것이다. 코뿔소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른 펭귄들은 무서워서 도망가겠지만, 나는 노든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코와 부리를 맞대고 다시 인사할 것이다. (125쪽)


흰바위코뿔소와 펭귄의 길고 긴 여정은 동화 속 풍경으로만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더 빛났다. 서로 다른 존재, 전혀 알지 못했던 이들이 만나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의 편이 되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한 일인지 알려주는 동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 우리는 누구나 코뿔소이고 펭귄이 아니던가. 언제 어디서든 단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존재들. 서로의 곁을 내주며 함께 보낸 긴긴밤이 떠오를 것이다. 만남과 이별, 그리고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긴긴밤에 바라보았던 풍경과 느꼈던 감각들이 있어 견디고 나갈 수 있었던 또 다른 긴긴밤을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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