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 문예단행본 도마뱀 1
박은정 외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낭비’는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던 적이 있다. 심지어 죄악이라고 분류했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절제하는 삶, 계획적인 삶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제는 아니라는 걸 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정해진 건 없으니까. 어떻게 살아가든 삶을 살아가는 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우리는 조언하고 충고한다. 내 경험에 비춰서 내 기준에 맞춰 타인을 본다. 도움을 주려는 마음에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건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정말 고루한 것인지도 모른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들이 탕진하는 재미를 주제로 쓴 『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를 읽기도 전에 이런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내 감정을 탕진할 수 있고 내 독서를 탕진할 수 있으니까. 아무튼 그렇다. 참여한 필자 리스를 둘러보고 꽂히는 대로 끌리는 대로 먼저 읽어도 좋다. 자신만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삶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내 맘대로 읽어도 상관없는 읽기의 즐거움이라고 할까. 인생에 있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쯤은 있어야 할지 않을까. 문득 드는 생각이다. 정리하고 정돈하는 대신 말 그대로 흥청망청 말이다.


직장 생활의 힘겨움을 토로하면서 함께 쇼핑을 하고 맥주를 마시던 친구가 떠오르는 건 조수진의 「경력 탕진 잼」을 읽을 때였다.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그 시절 즐거운 탕진이었다. 누가 봐도 좋은 직장, 괜찮은 직장에 다니던 저자는 업무에 최선을 다하느라 개인적인 삶을 이어가지 못했고 그 과부하는 소비하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잔고를 탕진하는 삶의 끝에 그녀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상담을 받고 퇴사를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한 즐거운 탕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남들이 정한 행복에 맞춰 사는 것은 한눈팔지 않고 내비게이션에만 집중하는 운전과 같다. 조금이라도 경로에서 벗어났다고 느끼면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반면 내가 원하는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은 마치 흐르는 물 위로 유영하는 것가 같다. 가볍고 자유롭다. 어디로 흘러가든 물결에 몸을 맡기기만 하며 된다. (33쪽)


백영옥의 「탕진 잼」을 읽으면 저마다의 탕진 목록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탕진 목록이라니. 그걸 다른 말로 대체하면 수집광이다. 백영옥의 남편은 칫솔과 샤프를 모으는데 탕진의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백영옥 자신은 매트다. 근데 생각해 보면 누구나 좋아하는 것에 대한 소비에 자비롭지 않은가. 그런 재미도 없다면 삶은 얼마나 팍팍한가. 그렇다. 제목처럼 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 스스로 주문을 외우는 일도 필요하다. 그건 하나의 쉼이고 휴식이니까.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눈물이 많으면 충분히 울면 되고, 마음의 변덕이 오면 그냥 오르락내리락하면 된다. 고정되고 단단한 감정과 마음이 필요하겠지만 때로는 흔들려도 큰일이 아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러니 맘껏 내 감정을 탕진하면 어떠랴. 그 감정을 추스르고 붙잡아줄 자신만의 존재가 있다는 걸 스스로가 가장 잘 아니까. 장은주의 「노 스트레스, 장미의 기분」에서 장미가 그러하듯이. 장미를 향한 경건한 환대를 느낄 수 있는 사진과 문장이 그걸 말해준다. 장미에 대한 기분을 읽으면서 나를 생각한다. 어느 시절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나락으로 나를 이끌 때 꽃을 보거나 바다에 가면 좀 나아졌다. 거기 그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당장 달려갈 수 없어도 존재만으로도 말이다.


장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 준다. 오늘 나와 눈이 마주친 장미 한 송이가 생의 모든 고독과 외로운 시간을 끌고 온다. 한 번도 제대로 발음해본 적 없는 자신의 나약함까지 말없이 위무하는 시선들. 저 붉고 광막한 열기는 이 순간 자신의 모든 저열한 감정을 태우고 있다. (93쪽)


언제나 장미 앞에서, 비록 장미가 아닐 때에도 장미를 생각하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구원일 것이다. (95쪽)


뭐든지 흥청망청 써 버려도 충분하게 남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대부분 충족할 수 있는 무언가보다는 결핍의 날들이 이어진다. 한 달 한 달 생활하는 월급, 대출금 같은 것 말이다. 그래도 이런 글을 읽으면 위안이 된다. 김나리의 「불안을 잘게 찧자, 달콤한 나의 탕진잼」이란 제목에서 비슷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소설과 에세이를 쓰면서 생활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기에. 낯선 도시의 낯선 모텔의 카운터에서 일하는 저자를 잠깐 상상했다. 표정 없는 얼굴이면 어쩌지 싶다가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 얼굴에 작은 미소를 장착시킨다. 살아가는 일은 계속해서 교환해나가는 일이라는 문장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버티지 말고 행복해지자. 아주 작고 하찮은 기쁨이더라도 기쁨은 기쁨. 열심히 작은 기쁨을 구매하자고 나를 다독여본다. 내가 잘 모르는 도시의 잘 모르는 모텔에 앉아 무얼 하고 있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 때,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차 밑에 앉아 있는 고양이의 시간을 본다. 그래 그렇게 하자. (135~136쪽)


유쾌하고 기발하고 슬프고 우울한 탕진 이야기를 읽으면서 행복과 만족은 주관적이며 우리는 그것을 탕진할 권리가 있다고 다짐한다. 그러니 때로는 주변의 눈치를 보지 말고 맘껏 행복해하고 기쁨을 누려도 괜찮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3-18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새 주변 눈치 안보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중인데 (쉽지는 않지만 ㅎㅎ) 자목련님 글보니 공감이 됩니다^^

자목련 2021-03-19 10:03   좋아요 1 | URL
맘처럼 쉽지 않죠. ㅎ 그래도 내 맘대로 사는 일도 중요한 것 같아요.
새파랑 님, 오늘 만큼은 눈치 보지 말고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