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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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흑에서 왔다.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영원이란 무형의 형태 테두리 갇힌 암흑이 나의 근원인 셈이다. 방향성 없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홀로 그곳을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7쪽)


지독하게 슬픈 문장이다. 빛이 존재하지 않는 암흑이 근원이라는 걸 말하는 생은 얼마나 외로울까. 감히 내 맘대로 짐작할 수 없지만 문장 그대로 읽노라면 너무 슬퍼진다. 온통 어둠뿐인 세상, 혼자라는 막연한 인지, 그리고 여기 있다는 존재의 무력감.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야 할까.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야 하는 게 생이라지만 한없는 쓸쓸함에 무너질 것만 같다.


조해진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끝에 정체성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존재의 위로, 혹은 나도 다르지 않다는 이해의 몸짓이라고 할까. 『단순한 진심』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어떤 마음들, 그 삶에 개입할 수 있는 맨 처음의 마음은 어떻게 생성되는 것일까. 이 소설은 단편 「문주」에서 시작되었지만 조해진의 말대로 그것과는 전혀 다른 소설이다.


35년 전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계 극작가 화자인 ‘나’는 자신의 이름을 찾아 한국에 온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는 서영의 메일이 그 시작이었다. 뱃속에 아이(우주)를 품지 않았더라면, ‘이름은 집’이라는 서영의 메일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한국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나’이면서 ‘문주’인 그녀는 한국에서 그녀가 알지 못했던 자신의 삶의 기억을 하나씩 마주한다.


처음에 소설을 읽으면서 철로에서 그녀를 구해준 기관사를 찾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했다. 그녀에게 ‘문주’란 이름을 지어준 사람, 그 사람이 들려주는 어떤 이야기를 말이다. ‘문주’란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나’가 서영의 집에서 머물면서 건물 1층 복희식당에서 주인 할머니와의 관계. 할머니를 찾는 폐지 줍는 노파. 그리고 그 둘 사이에 흐르는 어떤 증오와 연민들. 그들이 지나온 시간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처음에 ‘나’는 그들의 삶을 지켜보는 목격자이자 이방인의 관찰자에 불과했다.


자신을 구해준 기관사의 현재를 찾아가는 과정과 ‘나’가 마주하는 주변의 일상들을 통해 알게 되는 어떤 삶들. 한 번씩 밥을 먹으면서 서로를 관찰하듯 나누는 복희식당에서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 복희란 이름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슬프고도 애틋하다. 조금씩 그녀의 삶에 다가가는 ‘나’는 결국 죽음으로 향하는 그녀를 돌보고 마지막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험난하고도 가여운 삶을 알게 된 것이다. 주인 할머니의 이름이 아닌 그녀가 지키고 싶었던 이름, 그녀가 살리고 싶었던 이름이었다. 식당 주인인 ‘추연희 ’할머니 앞에 나타난 ‘백복순’과 그녀의 딸 ‘백복희’. 타인이었던 이들이 만나 조금씩 서로의 삶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일, 그것을 단순히 인연이나 운명이란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그 셋은 하나였고 하나였기에 복희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결정이 이별이었다.


백복희로 태어났지만 스테파니로 살아온, 나와 넘버 원 닮은 여자. 우리의 닮은 구석은 눈매나 입매만은 아닐 터였다. 삶의 어느 장면에서 우리는 같은 자세로, 같은 표정으로, 같은 생각을 하며 투명한 벽 앞에서 있곤 했을 것이다. 얼굴의 일부가 아니라 생애의 접힌 모서리가 절박하게 닮은 사람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220쪽)


연희가 ‘나’를 통해 보았던 모습은 복희였을 것이다. 살아내기 위해 전부를 걸어야 했던 시대의 여성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삶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 말이다. 부디 더 나은 세상에서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그게 전부였다.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 복희란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겠지만 복희란 이름을 간직해 주기를 바랐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가 나나였지만 문주란 이름을 찾아 한국에 온 것과 같은 마음으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근원이 되는 게 이름일까. 그 이름을 부르는 이가 없다면 나는 사라지는 것일까. 이름에 담긴 사랑과 애정,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보살핌을 받는다는 안도. 그러니 나나로 불렸던 시간도 충만했지만 그 이전, 기억 저편에 자신을 문주로 부르며 돌봐준 이들을 생각하면 또 다른 안온함이 있다. 그래서 ‘나’가 존재할 수 있게 만든 생모, 그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그녀가 전하는 말이 전하는 힘은 세다.


나는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252쪽)


조해진의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단편 「문주」의 다른 이야기라 더욱 궁금했다. 조해진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 스스로를 돌보며 연대하는 여성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이야기. 한 사람의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수 있는지 가만히 생각한다. 이름을 잊은 채 살아간 수많은 연희와 복순이 살아온 삶을 생각한다.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어떤 생을 알았든 무조건적인 환대 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저마다 고유한 이름에  담긴 측정할 수 없는 크기의 사랑을 느낀다. 그 사랑이 전해져 마음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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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4-05 1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읽은 이 소설 참 좋았어요. 저도 ˝나는 암흑에서 왔다˝라는 첫 문장 인상적이었어요.

자목련 2021-04-06 16:11   좋아요 1 | URL
아프면서도 따뜻한 연대가 느껴졌어요. 고단한 여성의 삶을 위로하고 축복하는 이가 여성이라서 더욱 좋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