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 매일의 기분을 취사선택하는 마음 청소법
문보영 지음 / 웨일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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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영 시인의 산문은 언제나 신선하다는 걸 확인시킨다.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란 제목만 보고는 처음엔 오늘에 주목을 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중요한 건 버렸다는 행위다. 보통의 평범한 하루에서 나는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 선뜻 떠오르는 게 없었다. 매일 무언가를 버리고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것들이 있을 텐데. 책상 옆 작은 쓰레기통이 텅 빈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하루에 하나씩 버리는 일. 물건을 버리고, 감정을 버리고, 과거를 버리고. 그렇게 버릴 수 있을까. 익숙해서 그 익숙함을 버리지 못해서 사용하는 물건들, 책에서 나온 고무줄이 다 늘어난 바지나 닳고 낡은 베개 같은.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 무언가를 하나씩 버려보는 건 어떨까. 버린 만큼 기억의 무게도, 슬픔의 무게도, 짊어져야 할 무게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이다. 버리지 못해 붙잡고 있던 것들을 막상 버리고 나면, 내가 그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해 깨닫게 된다. 일명 '버리면서 불안 다이어트하기'. 버린 만큼 나쁜 기억과 자잘한 불안은 휘발될 것이다. 나쁜 기억은 맥주 한 캔처럼 마셔 오줌으로 배출하고 좋은 기억은 홍차처럼 오래오래 오려 마시길. (9쪽)


여느 산문처럼 보통의 일상 이야기다. 어디에 중심을 두고 쓰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다르게 읽힌다. 나는 문보영의 시보다는 산문을 읽었다. 그녀의 글은 좀 기발하다. 기발하다는 건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본다는 말이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건 발견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하나씩 물건을 버리면서 그 물건에 대한 사소한 기억, 혹은 추억이나 다짐을 기록하는 일.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일기 같지만 전혀 다르다. 물건을 통해 자아를 관찰하고 관계를 생각한다고 할까. 제 할 일을 다해서 쓸모가 없어져서 버리는 물건도 있지만 사용하지 않아서 이제는 단호하게 헤어져야 할 물건도 있으니까. 어쩌면 그건 이별에 대한 예의이자 연습 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가장 단순한 이유는 소중해서, 나중에 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런데 문보영의 이유는 남다르다. 그녀는 포장지를 버리지 못하는데 소중하게 물건들을 포장하는 그 마음을 저버릴 수 없다는 게 전해졌다. 포장하는 물건은 그렇지 않은 물건보다 훨씬 소중하며 포장지를 고르는 마음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물한다. 사실 나도 포장지를 모으고 보관한 적이 있다. 그때는 곱고 예쁜 포장지가 아까워서 그랬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은 생각하지 못했다. 


버린다는 건 그것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는 걸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가 버린 것들, 일상, 친구의 고민, 친구와의 대화, 만남, 여행, 시, 등 많은 것들에 대한 글을 만날 수 있지만 나는 유독 병원, 수술, 재활이란 단어에 끌렸다. 그것들과 관련된 이야기들,  고정된 슬픔이나 어떤 순간의 포착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쓰는 글들이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나의 생각, 내가 버리고 싶은 것들, 내가 버리지 못한 기억들인 것 같다.  병원의 시간,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나는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버리고 싶었던 걸까. 그 시절의 나는 나에게 최선을 다했던 것일까. 나를 휘감는 생각들, 복잡한 것들이 마음을 채운다. 


입원 환자에게 필요한 물품들은 여행 갈 때 필요한 물건과 비슷했다. 일회용 세면도구, 수건, 치실, 슬리퍼 등등. 환자는 일종의 여행을 가는 사람인가. 엄마가 수술받는 시간에는 피가 말릴 것 같은데, 엄마는 이건 일종의 여행이며 자신의 수술받는 시간은 비행시간이라고 말했다. (169쪽)


나의 부재로 인해 엄마는 엄마의 탈을 벗고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다. 대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마음껏 겁을 표출하고, 수술받기 싫다고 떼쓰고, 아이가 될 수 있었다. 무섭다고 충분히 말하는 것은 환자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 같은 것이다. 보호자가 환자보다 더 불안에 떨어선 안 되는 이유는 그것이 환자의 공포를 가로채기 때문이다. 나아가 공포에 관한 환자의 발화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173쪽)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는 엄마와 나눈 대화를 읽으면서 나는 크게 공감했고 그 길고 차가웠던 복도와 공간을 체감할 수 있었다. 잠깐의 외출은 여행과 닮았지만 그 시간은 전혀 다른 의미로 채워진다.  두려움, 공포, 불안. 그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날은 퇴원의 순간, 돌아오는 길, 비행이 끝난 시간일까.  


엄마를 간호하면서 버린 것들은 엄마가 나아지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증거였다. 환자였던 엄마, 간병하는 그녀에게 그것들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들은 차마 버리지 못하는 증표가 되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여행지에서, 그곳에서 의사인 친구를 만나고 쓴 글은 더욱 빛을 발한다. 기적보다 더 좋은 말이 재활 같다는 말, 나는 이 문장을 오래 간직하고 사랑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일상의 재활이다. 


재활은 치료의 지루함에 대한 만반의 준비와 각오를 연상케 한다.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재활의 이미지는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서서히 회복되어서, 기적이라고 부르기 뭣한 것. 민망할 정도로 느리게 낫는 것이다. 그런데 절대 나을 수 없는 사람이 치유되었을 때,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르기 전에 재활이라고 부르면 더 좋을 것이다. 기적보다 더 좋은 말이 재활 같았다. 견딘 사람의 몫을 쳐주는 것 같아서. 기적보다는 재활이 더 성실한 것 같아서. 재활은 거저 얻는 게 아니라서 거저 잃을 것 같지도 않아서. (106쪽)


“오늘 버릴 것은 ()이다.”로 시작하는 산문, 나도 따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나도 따라 써보고 싶은 버리고 싶은 것들. 그것은 나의 마음의 한 조각이며 내가 좋아하지 나의 일부라는 걸 안다. 버릴 수 있을까. 그것을 버리면 나는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거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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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5-0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05-09 16:23   좋아요 0 | URL
^^*

서니데이 2021-05-08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1-05-09 16:2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