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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ㅣ 미도리의 책장 5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시작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미도리의 책장에서 처음 나왔던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를 아주 재미있게 읽어서 이 라인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이 출간되어 읽게 되었다. 연작집으로 범죄물인데 가볍게 읽히는 분위기라고 할까. 구성은 다르지만 재미있을것 같았다. 와카타케 나나미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데뷔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이 국내 출간되었지만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이 아주 재미있어서 이 작품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은 코지 하드보일드라는 장르로 소개되었는데 처음 들어보는 장르였다. 코지 미스터리와 하드보일드를 합친 말 같은데, 코지 미스터리의 코지란 편안함이나 안락함을 뜻하는 말로 독자들이 트릭을 깨기 위해 골머리를 앓거나 복선과 암시를 찾아 책 속에서 헤매기보다는 편안하게 스토리 전개를 즐길 수 있는 추리소설의 한 장르를 말한다. 주로 작은 마을이나 도시에서 벌어지는 ‘절친한 사람들의 그룹’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내가 알던 사람이 용의자로 몰리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형식으로, 등장인물들 간의 가십이나 인간관계 등이 사건에 큰 영향을 끼치고 더불어 범인을 찾아가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편안하고 쉬운 코지 미스터리에 주로 탐정 스토리의 모습을 취하며, 범죄나 폭력, 섹스에 대해 이렇다할 감정없이 무미건조한 묘사를 하는 것이 특징인 하드보일드를 합치다니 극과 극이 만난 모습인데 작품을 읽다보니 적절한 표현인것 같다. 하드보일드다운 잔혹한 살인사건이 등장하면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방법은 코지 미스터리답게 등장인물들 간의 가십이나 인간관계로 풀어나간다. 게다가 이 작품은 구성도 독특하다.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두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이다. 눈이 흩날리는 어느 겨울날, 경찰관 다이도지 케이가 30대 초반의 여성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다이도지 케이는 상사 고이즈미 무사시와 함께 그녀의 살해 사건의 진상을 찾기 위해 조사를 시작하지만 다른 사건보다 심적으로 유난히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여 동료 경찰 고이즈미가 평소와는 다른 그의 행동을 이상히 여기며 조사를 해나간다.
총 여섯 번의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는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은 시간대별로 한편씩, 경찰을 은퇴하고 격는 현재 이야기 앞에 펼쳐진다. 즉 현재와 과거가 함께 교차하는 독특한 형식인데,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두 이야기가 교묘하게 맞물리면서 이야기가 흥미로워 지고 마지막에 나름 반전이 있어서 이런 구성으로 이야기를 진행한것이 이해가 되게 만든다. 작품 해설을 보면 잡지에 현재 이야기 5편을 연재하고 단행본을 만들면서 과거의 이야기인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를 추가했다고 하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구상한듯 절묘하게 만들었다고 느껴진다. 물론 현재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가 추가되지 않았다면 결말이 조금 맥빠지는 이야기었을거라 생각한다.
현재 이야기는 주인공 다이도지 케이가 경찰관을 그만두고 출간한 책 <죽어도 안 고쳐져> 속에 언급된 얼간이 범죄자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순직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17년간 경찰관으로 일했던 그는 경찰을 그만두기 직전 마지막 사건을 수사하던 중에 만난 소꿉친구이자 출판 편집자 히코사카 나쓰미의 강요로 책을 출판하게 된다. 경찰관이었을 때 만났던 어리숙한 범죄자의 바보 같은 범죄 실패담을 출간한 <죽어도 안 고쳐져>는 독자들의 호응을 얻게 되고,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강의 제의와 속편 <죽여도 안 죽어>의 출간으로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작품을 계기로 그의 앞에 차례차례 범죄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알 수 없는 살인사건들이 계속 벌어진다.
동료를 살해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는 다이도지 케이를 납치한 트레이시 로즈, 가출한 딸을 데려와 달라며 찾아온 프리랜서 소매치기, 자신의 작품을 평가한 뒤 그에 대한 내용을 첨삭해달라는 뻔뻔한 요구를 하던 추리작가 지망생, 완전범죄를 꿈꾸는 살인범, 다이도지 케이의 저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밥줄이 끊기게 된 2인조 절도범 등 얼간이 범죄자 다섯 명의 이야기가 차례차례 펼쳐진다. 이들 얼간이 범죄자 다섯 명의 이야기는 다이도지 케이가 경찰관을 그만두기 전 최후에 맡았던 사건 속에서 숨바꼭질하듯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며 재미와 궁금증을 유발한다. 현재 이야기의 소제목중 죽어도 안 고쳐져는 죽어도 잊지 않아, 원숭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는 작품 제목 패러디인줄 알았더니 이 책이 더 먼저 출간된거라 관계는 없는것 같다.
작품의 맨 마지막에 언급되지만 이 작품의 주제는 ㅂ ㅅ 다. 이걸 알고 읽으면 재미가 조금 줄어들기에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겠지만 보통 범죄소설에서는 무겁게 다루는 주제인데 이 작품에선 가볍게 읽히도록 유머러스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신선한 재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