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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귀울음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온다 리쿠는 밤의 피크닉을 읽고 팬이 되어 삼월은 붉은 구렁을, 네버랜드를 재미있게 읽었으니 그 뒤로 출간된 유지니아 ,흑과 다의 환상, 빛의 제국,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를 읽고 실망해 그 다음부터는 읽지도 않고 새 책이 출간되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코끼리와 귀울음은 2000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5위, 2001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6위에 랭크될 정도로 본격 미스터리 적인 재미가 있다고 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코끼리와 귀울음>은 단편 모음집인데 주인공이 같아서 통일성을 부여해 연작집을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 온갖 사건을 접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주인공은 전직 판사 출신인 세키네 다카오로 한편을 제외하고는 그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세키네 다카오는 온다 리쿠의 데뷔작 <여섯 번째 사요코>에서 조역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는데 그 작품을 읽지 않아서 알수 없지만 이번 작품을 읽으니 단편집의 주인공으로 세울만한 재미있는 캐릭터라고 느꼇다.
말끔한 트위드 양복을 갖춰 입고 담배 대신 캐러멜을 우물거리며 아이들의 단편적인 대화나 편지 속의 한두 문장을 통해 사건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머릿속에서 추리에 추리를 거듭해 범인을 밝혀내는 세키네 다카오의 모습은 홈즈같은 안락의자탐정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모든 문제풀이를 퇴직후 두뇌활동을 위해 즐기면서 하기때문에 재미있다.
그리고 조연으로 세 명의 자식이 등장하는데 각각의 이름은 슈운, 나쓰, 슈.
검사인 큰아들 슈운은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중편 <PUZZLE>에, 변호사인 딸 나쓰는 <도서실의 바다>의 표제작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작은아들 슈는 <여섯 번째 사요코>의 남자 주인공인데, 삼남매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 <코끼리와 귀울음>에 얼굴을 내밀지 않아 팬들로부터 아쉬움을 샀다고 하는데 역시 이 작품들도 읽지 않아 내력은 알수 없지만 아버지처럼 흥미로운 성격을 지녀 재미있었다.
요변천목의 밤 - 부인과 함께 다완 전시회에 갔다가 문뜩 떠오른 친구의 죽음을 파고 들다가 결국 죽음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다완이 뭔지 몰라 초반에 좀 지루했는데 친구의 죽음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슬픈 감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신 D고개 살인사건 -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에 오마쥬를 하는 작품인데 란포의 작품을 읽지 못해서 제대로 작품의 재미를 못느꼇다. 대도시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인 욕망과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간접살인을 한다는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 좀 식상한 주제였다.
급수탑 - 산보친구가 권해서 급수탑 주변에서 계속 사고가 일어나 살인 급수탑이라 불리는 것을 구경갔다가 진짜 범인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인데 조금 꼬인 부분이 있어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산보친구인 도키에다 미쓰루가 <메이즈>의 주인공이라는데 신비한 분위기를 갖고 있어서 <메이즈>를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코끼리와 귀울음 - 표제작인데 작가의 말에 따르면 표지그림 때문에 정한 것이지 큰 의미는 없는 작품이다. 찻집에서 만난 여자가 자신이 갖고 있는 코끼리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하면서 그 이면에 감춰진 죄의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심리묘사가 인상적이다.
바다에 있는 것은 인어가 아니다 - 세키네 부자가 등장하는 첫번째 이야기로 이 둘이 여행만 떠나면 이동수단이 고장나고 그 와중에 사건을 만나 결국 해결하게 되는데 아주 재미있다. 여기선 차가 고장나 기다리는 동안 지나가는 초등학생이 말한 바다에 있는 것은 인어가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인상에 남아 그에 대해 이야기하다 그 지역에서 일어난 사고의 진실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로 마지막에 상상속에서 범인과 초등학생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뉴멕시코의 달 - 세키네가 가벼운 사고로 입원해 있는데 병문안 온 검사와 과거에 9명을 살해한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분쟁지역에 자원봉사를 다녀올 정도로 좋은 의사였는데 9명이나 살해했다니 믿을수가 없어 이야기를 나나누다 살인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는 스토리다. 9명을 살해한 살인마 의사나 그 속에 감춰진 슬픈 이야기 등 가장 자극적인 소재를 재미있게 풀어내서 제일 마음에 든 작품이었다.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 - 7페이지의 짧은 이야기로 여러가지 기억이 얽혀 없었던 이야기를 있었던 일처럼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다. 읽고 나면 이게 뭔가 싶은 작품.
폐원(廢園) - 폐원에서 벌어지는 세키네의 슬픈 사랑 이야기. 한국에선 불가능한 슬픈 사랑이라는 느낌을 받지만 일본에선 친족과 결혼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쓴 것 같다. 과거와 현재시점을 오가는 것이나 폐원을 미로처럼 활용해 환상적인 분위기가 나는 작품이다.
대합실의 모험 - 세키네 부자의 두번째 이야기. 이번엔 열차가 인신사고로 연착해 기다리는 동안 사건을 해결한다. 부자간의 한가로운 대화가 재미있는데 갑자기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사건이라고 해봐야 사람이 죽는것도 아니고 가벼운 소동극을 보는 듯한 분위기다.
탁상공론 - 검사인 큰아들 슈운과 변호사인 딸 나쓰가 방 사진을 보고 주인을 알아맞히는 게임을 벌이게 되는데 검사와 변호사라는 경쟁관계인 남매가 벌이는 대화가 재미있다. 나중에 밝혀지는 방 주인도 웃음거리.
왕복 서신 - 편지내용으로만 전개되는 이야기라 흥미롭다. 세키네가 신문기자가 된 조카와 나누는 편지를 통해 조카의 주변에서 일어난 방화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인데 편지만을 통해 얻은 정보로 범인을 맞춘다는 안락의자탐정다운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지막에 편지만을 통해 해결한것이 아님이 밝혀지긴 하지만 재미있었다.
마술사 - 도시괴담을 조사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지방자치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들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작가 후기를 보면 장편으로 구상한것을 축약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제대로 재미를 못느꼇다. 사회파 미스터리 분위기가 나는 작품이다.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많아서 다시한번 온다 리쿠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다. 이제 <메이즈>를 읽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