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키고 싶은 비밀>, <마당을 나온 암탉>, <일기 감추는 날>등의 많은 작품을 선보인 황선미씨는 작가 인지도 만으로도 신간이 나올 때면 주목 받는 작자이다. 이번에 발표한 <나온의 숨어 있는 방>은 현실과 판타지 공간이 교차되는 '넝쿨집'을 배경으로 나온이라는 여자 아이가 겪게 되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나온이는 지병인 천식 때문에 독감에라도 걸리게 되면 종종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할 만큼 몸이 약한 편이다. 자식이 조금만 아파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철렁하고, 행여 열이라도 많이 나는 날에는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지켜보는 것이 부모 아니던가. 특히 나온이처럼 지병이 있는 아이에게는 늘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고, 매사에 조심을 시키느라 잔소리가 늘 수 밖에 없다. 반면 아이 입장에서는 그것이 간섭이고 속박으로 여겨져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특히 배우고 싶은 것은 못 배우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억지로 배우게 하는 엄마가 미운 나온. 아이들은 이런 나온이의 입장에 충분히 공감을 하지 싶다. 엄마는 나온이에게 운동도 못하게 하고 여자다워야 한다면서 바지도 못 입게 하니 과잉보호에다 극성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엄마가 나온이를 공주과처럼 차려 입히고 단장을 시키는 것이 못마땅하게 여겨졌지만 나중에서야 엄마 나름대로도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였지만 그렇게라도 자식을 지키고 싶은 것이 어미의 마음임을 알기에 수긍하기로 했다. 나온은 근무하는 학교가 멀리 있어서 주말에나 만날 수 있는 아빠가 집에 빠트리고 간 물건을 갖다 드리러 갔다가 아빠와 함께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가 보게 된다. 벽에 싱싱한 담쟁이 넝쿨이 숲처럼 우겨져 있고 마당에는 풀이 무성한 그 집을 '넝쿨집'이라고 부르기로 한 나온. 그런데 그 곳에서 또 다른 세상의 공간과 내내 자신을 불렀다는 '라온'이라는 남자 아이를 만나게 된다. 라온이는 나온이를 잘 알고 있는 것 마냥 대한다. '나온'과 '라온'은 하나이면서 둘인 존재이다. 다만 머물고 있는 세계가 다른 탓에 둘의 만남은 늘 꿈속인 냥 희뿌연 안개와 향기로운 꽃들로 싸여 있다. 현실에서 나온이가 힘들어 하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같은 아파트에 할머니와 사는 강우는 예전에 나온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등 한동안 가깝게 지내던 친구였으나 나온이가 심하게 앓으면서 멀어진 친구이다. 조각난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은 탓에 비틀린 모습으로 비춰지는 강우를 엄마는 편견이 실린 시선으로 대하는데,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오해가 자리해 있다. 나온과 강우 간에도 오해와 반목이 거듭되지만 결국 서로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나온이에게는 '나의 왼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이 꾼 꿈을 기록하곤 하는 일기장이 있다. 이와 대조적인 상징물로 라온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를 연상시키는, '오른눈이'이라는 토끼가 있다. 그리고 넝쿨 집에 세들어 살던 사람이 베어버린 모과나무도 엄마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나무이다. 아이에게 알려 주지 못할 아픔을 오래 전 가슴에 묻은 엄마. "자식은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이 있다. 나온의 엄마는 그 커다란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기에 더욱 나온이 각별하고 조바심이 생겼던 것이다. 대화의 단절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나온은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과 한 박자씩 어긋나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특히 나온과 라온이 주고받는 대화는 금방 이해가 되지 않는 난해함을 지니고 있다. 판타지 동화 형식을 취한 것은 좋았으나 마지막까지 비밀을 끌고 가려다 보니 대화 속에 이를 드러내지 못하는 제약이 따른 탓이지 싶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궁금증을 유발하여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은 있으나 글이 술술 읽히는 편은 아니었다. 삽화는 깔끔하면서도 선명한 느낌을 주며 라온이 속한 세계의 풍경이 특히 눈길을 끈다. -저자의 머리말을 읽고 검색창에서 '나온'이라는 단어를 한 번 찾아보았는데 나오질 않아 이번엔 '라온'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단어는 '라온'의 기본형인 랍다- 형용사로 '즐겁다'의 옛말.